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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이주헌의 그림읽기/아이와 함께 보는 명화②

시대의 불안 인상적으로 그린 거인

2008. 12. 10

시대의 불안 인상적으로 그린 거인

고야, 거인, 1812~16년경, 유화, 116×105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큰 거인이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구름이 아랫도리를 두를 정도니 몸집이 얼마나 큰지 모르겠습니다. 아래로는 사람들과 역마차, 소 떼가 정신없이 질주하네요. 엄청난 거인이 나타나 놀란 탓일까요?
주먹을 쥔 거인은 무섭고 잔인해 보입니다. 하지만 거인은 도망가는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어 당장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거인이 이쪽으로 몸을 돌린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겠지요.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며 고야가 단순히 심심풀이로 이렇게 무서운 거인을 그린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스페인에 쳐들어온 나폴레옹의 군대라느니, 백성을 괴롭힌 재상 고도이를 그린 것이라느니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이처럼 여러 해석이 있지만, 가장 그럴듯한 해석은 공포 그 자체를 그린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고야가 살던 당시 스페인은 매우 불안정하고 공포스러웠습니다.
당시 서유럽에는 산업혁명이 일어나 나라마다 산업과 기술을 발달시키려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왕가와 지도층은 산업과 기술의 발달에는 관심이 없고 백성들을 수탈해 자기 배를 불리는 데만 혈안이 되었지요. 상공인과 지식인, 젊은 귀족들은 개혁과 계몽주의의 확산에 열을 올렸으나 정부가 워낙 부패해 가망이 없었습니다.
왕은 무능하고, 왕비는 제 욕심만 채우고, 정부는 학정을 일삼고, 급기야 외국 군대까지 쳐들어와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니 백성들은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무서웠습니다. 고야는 그런 스페인 민중의 고통과 공포를 이 거인의 모습에 담았습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것만 그리지 않고 민중의 고통과 아픔을 자기 것으로 느껴 그린 고야는 진정 인간미가 넘치는 예술가였습니다.


▼ 한 가지 더~
산업혁명은 18세기 중엽 서유럽에서 시작된 기술혁신과 이로 인해 일어난 사회·경제의 변화를 일컫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사람 손으로 하던 일을 기계 기술이 대체하면서부터 경제체제가 변하고 사회도 그에 걸맞게 바뀌게 된 현상을 말하지요.


▼ 이주헌씨는…
일반인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서양미술을 알기 쉽게 풀어쓰는 칼럼니스트. 신문기자와 미술잡지 편집장을 지냈다.
매주 화요일 EBS 미술 프로그램 ‘TV 갤러리’에 출연해 명화 감상 포인트와 미술사적 배경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최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풍속화에 대해 소개한 ‘정겨운 풍속화는 무엇을 말해줄까’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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