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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인터뷰

방송 활동 재개한 이찬 파경 후 첫 심경 고백

글·김수정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08.10.21 17:16:00

결혼 10여 일 만의 파경과 폭행시비. 이찬은 지난 2년여 동안 캄캄한 터널 안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이 두려워 숨어 지내다시피한 그가 최근 케이블방송을 통해 활동을 재개했다.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다는 이찬의 속내 고백.
방송 활동 재개한 이찬 파경 후 첫 심경 고백

이찬(32·본명 곽현식)의 옷에서 진한 땀냄새가 배어나왔다. 그는 한 달째 ENG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메고 거리를 누비는 중이다. 출근하자마자 시작된 오전 회의는 점심시간이 돼서야 끝났고, 오후에 시작된 촬영은 저녁까지 계속됐다. 밤 10시, 제작진과의 저녁 회의가 끝난 뒤 만난 이찬은 다소 지쳐 보였지만 밝은 모습이었다.
“저는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대화하는 걸 즐겨요. 그런데 그 일을 겪은 뒤 인터뷰를 제대로 한 적이 없어요. 사람들은 제게 ‘한마디만 해달라’고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눈앞이 캄캄해져서 결국 피했죠. 지금은 어느 정도 마음의 빗장을 열었지만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건 여전히 두려워요.”
지난해 동료 탤런트 이민영과 결혼한 지 10여 일 만에 파경을 맞은 뒤 방송활동을 중단했던 이찬이 최근 케이블채널 tvN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180분’의 ‘나는 PD다’ 코너를 통해 활동을 재개했다. ‘나는 PD다’는 이찬·이영자·이윤석·김경민 등이 실제 PD가 돼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는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관심 있는 아이템을 찾아 직접 출연자를 섭외하고 취재해야 한다.
방송 활동 재개한 이찬 파경 후 첫 심경 고백

“첫 번째 취재원은 베이징올림픽 근대5종 경기에 출전한 윤초롱 선수였어요. 사람들에게 선수들의 숨은 노력을 보여주고 싶어 무작정 베이징으로 향했지만 더운 날씨 때문에 몸이 점점 녹초가 되고 경기장 입장권을 구하지 못해 힘들었죠. 베이징 거리를 헤매다가 극적으로 윤 선수를 만났는데 반가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껴안았어요. 올림픽에 참가한 다른 선수들도 만나고 싶어 서너 시간을 꼬박 기다렸지만 거절당한 경우도 많았어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외출 삼가고 집에서만 지내

그가 처음 활동을 재개한다고 했을 때 일부에서는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는 지난해 파경 후 폭행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2백40시간을 선고받았고 이에 따라 지난 2월부터 석 달간 서울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중증 치매노인들을 위해 간병·배식 등을 지원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이후 두문불출했던 그가 연기가 아닌 오락 프로그램으로 복귀한 까닭이 무엇일까.
“사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소규모 공연을 열고 싶었어요. 오래전부터 연기를 했고,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도 연기니까요. 그래서 대학 선후배들과 연극을 제작, 무대에 오르려고 했는데 막상 하려니 많이 망설여지더라고요. 제가 착한 역을 맡으면 ‘가식적이다’라고, 나쁜 역을 맡으면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라고 말할 것 같았거든요. 연기가 정말 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감내할 용기가 없었고, 혹시 그런 저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볼까봐 두려웠어요.”
그때 마침 ‘나는 PD다’의 출연 제의를 받은 그는 평소 모습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는다는 제작진의 말에 정식으로 오디션에 응했고, 합격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뒤따랐다고 한다.
“첫 촬영을 앞두고 제작진에게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어요. 미안하다고,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했더니 제작진도 저를 더 이상 설득하지 못하더라고요. 그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고만 하더군요.”
그는 오랜 망설임 끝에 “언젠가 한번은 치러야 할 과정”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어쩌면 이번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렸다고.
“한 달이 지나든 1년이 지나든 사람들이 제게 궁금해하는 건 다 똑같을 거예요. 과거의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어떤 각오로 복귀했느냐…. 지금으로서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따가운 시선을 묵묵히 견디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잊히지 않을까요.”

방송 활동 재개한 이찬 파경 후 첫 심경 고백

오랜 고민 끝에 컴백한 이찬은 꾸밈없고 솔직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년의 시간이 지옥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컴퓨터를 켜는 게 두려웠다고.
“종종 인터넷에 저와 관련된 기사가 올라오면 ‘이찬은 무조건 사람을 때린다’ ‘욱하는 성격은 평생 못 고친다’ 등의 댓글이 달리더군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폭행으로 얼룩진 이미지를 지우긴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네 가까운 곳에 나갈 때도 모자로 얼굴을 가려야 했던 그는 곧 그것도 그만둔 채 방에 틀어박혀 TV와 DVD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심해 한동안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스트레스로 인해 몸무게가 18kg이나 불어났다고 한다.
“하루 종일 뉴스만 틀어놨어요. 극장에 가는 대신 컴퓨터로 다운로드해 본 영화가 수백편이 넘고요. 그땐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 ‘나도 저들처럼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더라고요.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됐는데, 아마 지난해 마신 술의 양이 지금까지 살면서 마신 것보다 많을 거예요.”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에 대한 원망은 사라지고 제가 잘못한 것만 기억에 남아요”



그런 그를 바라보는 부모와 형도 괴롭긴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현재 SBS 일일드라마 ‘애자언니 민자’ 연출을 맡고 있는 곽영범 PD. 이찬은 “특히 아버지에게 큰 불효를 저질렀다. 부모님이 그토록 반대하신 연예인이 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가족끼리 한 달에 한두 차례 외식을 하곤 했는데, 저로 인해 가족들도 마음껏 외출을 하지 못하더라고요. 엄마가 ‘이제 괜찮을 거야. 나가자’라고 위로하면 ‘뻔히 알면서 왜 그래!’ 하면서 버럭 화를 냈어요.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아버지가 그런 제 모습에 많이 실망하신 것 같아요. 화가 다 풀리지 않았는지 지금도 제 전화를 잘 받지 않으시죠. 그래도 제가 PD를 하게 됐다니까 아이템 하나를 슬쩍 귀띔해주셨어요.”
그가 힘들어할 때마다 용기를 준 건 친구들이었다고 한다. 외출을 꺼려하는 그를 위해 친구들은 먹을 것을 사들고 그의 집에 찾아왔다고.
“한번은 대학동기가 안부전화를 걸어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묻더라고요. ‘집 앞 슈퍼에 초콜릿이나 사러 갈까 해. 됐다, 사람들이 쳐다보면 어떡해’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가 초콜릿을 종류별로 사왔더라고요. 정말 눈물이 났어요. 수입은 없고, 그렇다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을 처지도 못되고…. 그때마다 친구들이 많이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서울 이태원에 갔다가 그 근처에서 탤런트 홍석천이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는 사실이 떠올라 무작정 찾아갔다고 한다. 홍석천은 그에게 자신이 커밍아웃 후 겪은 힘겨웠던 때를 들려주며 용기내라고 격려했다고.
“형이 그러더군요. 힘들고 괴롭겠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야한다고. 형이 처음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라고 권했을 때 많이 망설였지만 그 말에 힘을 냈어요.”
그는 홍석천의 레스토랑에서 서빙과 주방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처음엔 먼저 말을 걸지 못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혹시 이찬씨 아니에요?” 하고 먼저 물으면 그제야 “맞는데요…”라면서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고.
“그분들이 앉았던 자리를 기억해뒀다가 다음에 또 오면 ‘잘 들어가셨어요? 그때 이 테이블에 앉으셨죠?’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가갔어요. 그분들이 다른 친구들을, 그 친구들이 또 다른 친구들을 데려와 저에게 인사시켜줬는데 그러면서 희미하게나마 ‘몇 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사건으로 언론에 나왔던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겠지’라는 희망이 생겼어요.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일주일에 서너 번씩 레스토랑에 나가 일해요.”
그는 지난 2년을 “괴로웠지만 성숙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처음엔 저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에 대한 원망은 사그라지고 제가 잘못한 부분만 기억에 남더라고요. 법원을 오가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제가 누군가를 속상하게 한 일,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일이 모두 떠올랐죠.”
그는 먼저 다혈질적인 성격부터 고쳤다고 한다. 예전에는 화가 나면 욱하는 성격에 그 자리에서 다 퍼부어놓곤 나중에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했는데, 지금은 화가 나도 마음을 다스리고 차근차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고.

방송 활동 재개한 이찬 파경 후 첫 심경 고백

사람들에게 밝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
“어떤 분이 제게 ‘지금은 고통스럽겠지만 언젠가는 그 고통을 이기고 너도 누군가를 위로해줄 수 있는 기회가 올 거야’라고 하셨어요. 힘들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면서 저 자신을 믿으려고 애써요.”
그는 살을 뺄 생각이라고 한다. 불어난 체중 또한 과거의 잔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젠 웃고 싶어요. 데뷔 후 드라마 ‘눈꽃’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밝고 명랑한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그때마다 선배들이 ‘꼭 너 같은 캐릭터만 맡는다’고 말했어요. 그만큼 살면서 심각하고 우울했던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에게 고개 숙이거나 찌푸린 인상만 남기게 돼 안타까워요. 긍정적이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되찾고 싶어요.”
그는 앞으로 ‘나는 PD다’를 통해 진솔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연기자로의 복귀는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내년 초 연극 출연을 계획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연기가 하고 싶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더 이상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아닌, 연기자로서의 진실된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것, 그리고 스쳐가는 역이라도 밝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을 말하죠. 아직도 부모님과 형이 걱정을 많이 하는데,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낼 겁니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그는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다시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의 발걸음이 홀가분해 보였다.

여성동아 2008년 10월 5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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