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재기사

유인경의 해피토크

좌파? 우파? 나는 양파가 좋다!

유인경

2008. 10. 02

좌파? 우파? 나는 양파가 좋다!

안윤모, 모닝커피, 캔버스에 아크릴릭, 72×60cm, 2008(좌) 안윤모, 커피와 튜리파, 캔버스에 아크릴릭, 91×72cm, 2008(우)


언젠가 내가 사는 게 힘들고 퍽퍽해 “난 쪼그만 간장종지인데 왜 남들은 날 큰 국사발로 보고 국을 퍼붓는지 모르겠다”고 구시렁대자 조영남씨가 이렇게 말했다.
“이봐, 왜 자기를 그렇게 함부로 단정해? 사람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존재야. 특히 인간의 능력은 무한한데 왜 자기가 간장종지네, 국사발이네 하고 단정 짓느냐고. 그건 굉장히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이야.”
별로 철학적인 명언도 아니었지만 그 말은 내게 와 닿았고 굉장한 해방감을 줬다. 스스로는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하다고 느끼지만 남들에겐 무척 당당하고 단호하며 심지어 뻔뻔하게 보여 곤혹스러웠는데 그런 갈등도 해소됐다. 내 안에는 소심함과 담대함이 공존하고 우유부단함과 대범함이 교류하며 내성적인 면과 뻔뻔함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에겐 철면피 아줌마로 보이고 어떤 이들에겐 이 나이에도 만화주인공 캔디처럼 명랑소녀 같은 면모도 드러내니 말이다. 내 생각엔 애교가 없는 것이 치명적 약점인 것 같은데 후배들에게 귀엽다는 평가도 듣고, 실오라기 같은 섹시함이라도 연출해보려 하면 주책없다는 비난이 퍼부어진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확실한 증거 외에 ‘나는 어떤어떤 사람’이란 말을 잘 하지 않게 됐다. 그런데 최근 내 정체성에 대한 의혹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사람은 하나의 틀로 가둘 수 없는 다면적인 존재
난 왼손잡이다. 우리나라 중년층에선 보기 드물게 글쓰기, 밥 먹기, 바느질하기 등을 모두 왼손으로 하는 골수 좌익(?)이다. 심장이 왼쪽에 있어서 왼편으로 누워 잠을 자는 습관이 건강에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잠도 왼쪽으로 누워 잔다. 식당에서 자리에 앉을 때도 왼쪽 모서리에 앉아야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좌파=빨갱이’란 편견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좌파들이 갖고 있는 개혁성향이나 사회주의 의식에 동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날보다 데모하는 날이 더 많던 시절, 친구들이 공장에 위장취업하거나 운동권 활동을 하며 노동자들에게 의식화 교육을 시킬 무렵 난 부자가 돼 가난한 이웃들에게 내 것을 많이 나눠줘야지란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여전히 학생이건 어른이건 단체로 시위를 하거나 장기파업을 하는 노조를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들의 문제를 재빨리 해결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괜히 죄의식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너무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도 들어서다.
진보적인 색깔의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는 스스로 보수적이라고 생각해왔다. 보수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 즉 전통을 지켜 제사를 충실하게 지낸다거나 어르신들을 위한다거나 가능한 한 혼전순결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거나 어지간하면 결혼생활의 고통은 참고 견뎌 가정의 틀을 지켜야 한다 등의 사고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물론 동성애자들과도 친하게 지내며 그들의 사랑을 존중하고, 남성 위주 사회에서 기죽지 않고 내 주장을 펼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 찬성하는 걸 보면 진보적인 면도 있다.

그리고 지난 정권에서 ‘옳은 소리도 참 싸가지 없이 하는 386세대’들의 행태에 부아가 치밀 땐 “나도 나이 드니까 절로 보수가 되는구나”라고 느꼈다. 무엇보다 2백여 년 전 이탈리아 철학자의 보수주의에 대한 말이 감명 깊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보수주의란 진보주의자들이 저지른 내일의 실패를 모레 다시 개선할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이다. 순수한 열정에만 넘쳐 자칫 실수하기 쉬운 진보주의자들에 비해 그들의 성급한 판단이 실패로 드러나도 의연하게 지켜보았다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는 건전하고 아름다운 보수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난 ‘좌파’로 규정됐다. 한 보수단체에서 내가 대통령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패널로 선정되자 “그런 좌파를 패널로 선정하다니 말이 안 된다, 그 사람을 선택한 사람도 처벌하라”는 요지의 논평을 발표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좌파라니? 나도 모르는 나의 정체성을, 나의 이념과 빛깔을 이렇게 알아서 규정해주다니….
나도 모르는 내 신분을 찾아준 것 같아 살짝 감동스럽기도 했지만 논리가 너무 우스꽝스러워 실망했다. 토론방송에 나가 “광우병 수입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걱정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단축될 것 같다”고 말하고 기자가 아니라 주부이자 엄마의 심정으로 글을 써달라기에 “의학적 전문용어는 잘 모르지만…” 등의 표현을 한 것을 단초로 ‘전문지식도 없는 무식한 좌파’라고 신분증을 발급해주었으니 말이다. 친구들은 나의 ‘좌파’ 판정에 키들거렸다. 내가 들고 다니는 명품 브랜드의 핸드백이나 유난히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취향을 보며 “너 같은 졸렬한 좌파는 없다”면서 비웃었다.

유연하고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일찍이 프랑스 혁명의회에서 그 앉은 좌석의 위치에 따라 불린 것이 기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좌우익’이란 용어 속에 숨겨진 역사적 짐이 있다.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좌익과 우익의 폭력적인 모습 때문이다. 하지만 6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좌파의 어두운 모습은 많이 벗겨졌고 레드 콤플렉스도 많이 해소됐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좌파라 불리는 정권이 집권했을 정도로 정당성도 획득했다.
어디 정체성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 나뿐일까. 또 왜 우리는 국민을 좌파, 우파로만 나눠야 하나. 미국 대통령 예비후보였던 허커비의 말처럼 앞도 있고 뒤도 있고 위와 아래도 있는데 왜 좌우로만 평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또 머리부터 발끝까지 뼈부터 피 한 방울까지 모두가 다 진보적이거나 몽땅 보수적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우에 따라 사안에 따라 달라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전통을 존중하는 보수주의자들도 최첨단 기법의 성형수술을 받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일용직들도 보수를 표방하는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성공해 경제가 살아나길 바란다.
제발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에 대한 공감능력을 갖추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순수한 좌파, 그리고 좌파의 저돌성을 보듬으며 우아하게 다독거릴 수 있는 건전한 우파가 많이 나오고 사람들의 좌우만 살필 것이 아니라 앞과 뒤, 위와 아래도 골고루 보살펴주는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도한다. 난 좌파 우파보다 암 예방에 좋은 양파를 사랑한다. 좌우 상관없이 건강하고 부유하게만 되면 좋겠다.

유인경씨는…
경향신문사에서 선임 기자로 일하며 인터뷰 섹션을 맡아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직장 여성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인데 성공이나 행복을 위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웃으며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실수담이나 실패담을 담을 예정이다. 그의 홈페이지 (www.soodasooda.com)에 가면 그가 쓴 칼럼과 기사를 읽을 수 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