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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드라마틱 인생

화재로 어린 아들 잃고 고통의 세월 보내다 구도자의 길 걷는 김수연 목사

글·최숙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8.09.17 14:25:00

누구에게나 고통이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고통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이 있다. 김수연 목사는 후자다. 자신의 불행을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축복으로 바꾼 김수연 목사를 만났다.
화재로 어린 아들 잃고 고통의 세월 보내다 구도자의 길 걷는 김수연 목사

한 남자가 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주식에 투자해 제법 큰돈을 모으고 기자가 돼 특종을 터뜨리며 인생의 탄탄대로를 걷던 남자는 어느 날 장인의 죽음을 시작으로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장인의 유산을 노린 조카에게 장모가 살해당하는 참변을 겪은 뒤 그 충격으로 종교에 빠진 아내는 가정을 소홀히 하고 자신도 바쁜 직장생활로 집안에 무관심하던 사이, 일곱 살 어린 아들을 화재로 잃는 끔찍한 비극을 겪었다. 아내와 이혼하고, 자포자기의 삶을 살던 남자는 우연한 계기로 그토록 증오하던 기독교에 귀의한다.
그가 바로 김수연 목사(62)다. 현재 그는 서울 청담동 한길교회의 담임목사이자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산타클로스처럼 넉넉한 인상의 김 목사에게서는 그런 파란만장한 삶을 지나온 흔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내가 허허거리며 잘 웃으니까 사람들은 순탄하게만 살아온 줄 안다”면서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일곱 살 어린 아들이 집에서 혼자 라면 끓여 먹으려다 화재로 숨진 후 죄책감에 시달려
84년 12월19일은 김수연 목사에게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날이다. 이날 그는 둘째 아들 현준이를 잃었다. 점심시간이 지나도 교회에 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현준이는 라면을 끓이기 위해 가스불을 켰는데 가스레인지의 오작동으로 불꽃이 튀며 집 안에 불이 붙고 말았다. 순식간에 거실 전체가 연기에 휩싸이자 아이는 욕실로 뛰어들어가 점퍼로 입과 코를 틀어막고 엄마, 아빠가 달려와 구해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던 것 같다고 한다. 아이는 아무리 불러도 엄마, 아빠가 나타나지 않자 욕실에서 뛰쳐나와 연기를 피해 자기 키보다 더 높은 아파트 베란다 난간을 넘어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당시 방송사 기자로 근무하며 취재현장에 있던 그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들은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말했다.
“제가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 2시간 뒤에 아들이 숨을 거뒀어요. 자는 듯이 죽은 아이의 시신을 끌어안고 울부짖었죠. 이 못난 아비를 만나기 위해 2시간 동안 산소호흡기를 쓰고 고통스럽게 숨을 쉬었다고 생각하니… 현실이 아니기를, 이것이 진정 꿈이기를 빌었어요. 현준이는 또래들보다 유난히 몸이 약한 아이였는데… 그래서 더욱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였는데… 그런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저를 괴롭혔어요.”
아들을 묻고 집으로 돌아온 뒤, 그는 욕실에서 물에 젖은 아이의 점퍼를 보고는 주먹으로 벽을 치며 흐느꼈다. “어딘가에서 아직도 아이가 홀로 웅크리고 앉아 아빠 엄마를 애타게 부르고 있을 것만 같았고, 죄 없는 아이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의 눈가가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사실 현준이의 사고가 있기 전부터 그의 가정은 조금씩 삐걱거리고 있었다. 몇년 전 장인이 폐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뜬 후 처가에서는 유산을 둘러싸고 분쟁이 있었고 그 와중에 장모가 조카에게 살해되는 참극이 벌어졌던 것. 그의 아내는 충격으로 종교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아내가 원망스러워 견딜 수 없었어요. 아내가 교회에만 다니지 않았어도 아이 혼자 가스레인지를 만지다가 그렇게 죽는 일은 없었으리란 생각이 들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올랐죠. 장모의 처참한 죽음으로 한순간에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은 아내를 제가 위로해주고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줬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아들을 잃은 후 그는 아내와 이혼했다. 그는 결혼생활 중 불행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자 문득 결혼 전 궁합을 봐주었던 역술가의 말이 생각났다고 한다. 그 역술가는 두 사람이 결혼하면 주변 사람들이 다 죽으니 결혼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 그는 “결혼할 당시에는 그 말을 무시했지만 실제로 장모가 끔찍한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현준이까지 잃자 두려웠다”고 말했다.
“이혼하던 날 아내와 집 근처 술집에서 밤새워 술을 마셨어요. 아내도 저도 눈물을 펑펑 흘렸죠. 현준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비참하게 보낸 죄책감도 있었지만 ‘첫째마저 잃으면 어떡하나’, ‘첫째라도 제대로 키우려면 헤어질 수밖에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되는 미신이라고 하겠지만 당시에는 남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는 이혼 뒤 첫째 아들 성준씨(33)를 맡았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 혼자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기란 쉽지 않은 일. 밥해 먹이고, 옷 입혀 학교 보내는 것만도 힘에 벅찼다. 또한 부모의 이혼 후 예전과 달리 주눅 든 아이의 모습을 보고는 가슴이 미어지게 아팠다고 한다.

화재로 어린 아들 잃고 고통의 세월 보내다 구도자의 길 걷는 김수연 목사

엄마, 형제 없이 외롭게 크는 큰아들 비뚤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엄하게 키워

“하지만 오냐 오냐 하며 해달라는 것 다 해주면서 버릇없이 키우지 않았어요. 홀로 서는 법을 가르치려면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엄마 없이 크는 게 측은했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마음이 아파도 호되게 야단쳤어요. 고등학교 때인가, 아이가 잠깐 나쁜 친구들과 어울린 적이 있어요. 하루는 술을 마시고 그걸 감추기 위해 껌을 씹으면서 집에 들어오기에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를 호되게 꾸짖고 다음 날 책가방·책·교복·운동화·모자 등을 불에 태웠어요. 학교에다가는 ‘자퇴를 시키겠다’고 말하고 아예 학교도 안 보냈죠. 선생님들이 찾아와 ‘사춘기 때는 돌발행동을 할 수도 있다’며 오히려 저를 설득했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그날 같이 술을 마신 친구들과 함께 반성문을 쓰게 하고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뒤 용서해주었죠. 그 후로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더군요.”
아들 성준씨는 이제 나이가 들어 뒤돌아서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도 앞에서는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하다고 한다. 지난해 결혼한 성준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김수연 목사가 살고 있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수림대 집 근처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그런 아들이 고맙게 느껴지면서 한편으론 너무 심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도 든다”면서 또 눈시울을 붉혔다.
김수연 목사는 주로 강원도에서 생활하며 일주일에 한 번 예배를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다. 교회에 나가느라 집안일을 소홀히 하던 아내가 미워 성경책을 보이는 대로 다 찢어버릴 정도였던 그가 어떤 이유로 기독교와 인연을 맺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을까.
화재로 어린 아들 잃고 고통의 세월 보내다 구도자의 길 걷는 김수연 목사

둘째 아들을 잃고 밥을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중 그는 우연히 개척교회의 목사가 된 후배를 만났다고 한다. 허름한 공장 건물에 교회를 차려놓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후배를 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됐고, 아내를 용서하고 아내가 믿었던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이 참회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86년 신학대학에 진학한 그는 87년부터 산간벽지에 책을 보내고 마을 도서관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문화 혜택이 취약하고 독서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세운 마을 도서관만 해도 1백28곳, 도서관 한 곳에 평균 3천 권 정도의 책을 직접 사서 보냈으니 그동안 쏟아부은 돈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액수다. 그가 21년째 이 일을 계속해오고 있는 이유는 바로 아들 현준이와의 약속 때문이라고 한다.
“현준이가 유난히 책을 좋아했어요. 그때마다 “좀 더 크면 실컷 읽을 수 있도록 아빠가 책을 많이 사주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현준이한테 좋은 책 한 권 사주지 못했다는 것이… 가슴의 한이 됐어요.”
그는 2005년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후원을 받아 도서관 차량으로 개조한 34인승 버스(책 읽는 버스)를 타고 산간벽지를 다니며 책 봉사를 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 ‘내 생애 단 한번의 약속’을 펴냈다. 그는 “책을 펴낸 것을 계기로 이제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내려놓고 나를 끊임없이 옥죄던 회한의 상처들을 끄집어내어 망각의 강물로 흘려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온갖 시련을 견뎌내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책 읽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김수연 목사는 “죽는 날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성동아 2008년 9월 5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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