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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가슴 찡한 사연

의지와 희망으로 백혈병 이겨낸 한민구·이상우 모자 감동 스토리

글·김민지 기자 / 사진·장승윤 기자

2008. 08. 22

이상우씨는 2003년 중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골수이식을 받았지만 부작용으로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맞았던 이씨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바로 엄마 한민구씨 덕분이었다. 5년간 지독한 병마와 싸우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이들의 사연을 들었다.

의지와 희망으로 백혈병 이겨낸 한민구·이상우 모자 감동 스토리

“오늘이 바로 1천2백45일째 되는 날이에요.”
한민구씨(49)는 아들 이상우씨(20)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들에게 ‘2005년 2월3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백혈병을 앓던 이씨가 골수이식을 받고 다시 태어난 날이기 때문. 아들의 이식수술 다음 날 한씨는 ‘이제 다시 아들이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담아 노트에 ‘D+1’이라고 적어 넣었다고 한다.
“상우가 아플 때부터 매일 일기를 썼어요. 처음에는 무슨 병인지 정확히 몰라 혹시 다음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적던 메모가 일기가 됐죠. 이젠 상우 증세에 대해 특별히 적을 내용도 없지만 습관 때문에 자꾸 쓰게 돼요. 상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비밀 노트라고나 할까요?(웃음)”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사실 수십 권의 일기장 속엔 이상우씨가 건강을 되찾기까지의 고통과 아픔의 시간이 담겨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항상 반에서 1등을 도맡던 아들 상우씨는 한씨에게 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중학교 졸업식을 앞둔 2003년 12월 이씨에게 갑작스런 허리 통증이 찾아왔고 며칠 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들을 데리고 들른 종합병원에서 한씨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상우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에 걸렸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어요. 진료실에서 한 시간 동안 펑펑 울고 상우를 보니 병에 대해 얘기해줄 자신이 없더라고요. 한 달이 지나도록 상우에게 무슨 병인지도 말해주지 못했죠.”
이씨가 걸린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혈액암이라고도 불리는데 미성숙한 백혈구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 혈액 생성을 방해하면서 생기는 병이다. 주로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발병하는 질환으로 방사선이나 화학물질, 전자기파 등이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 치료법은 잘 마련돼 있어 복합 항암 화학요법을 통해 관해(백혈구 세포가 5% 이하로 줄고, 백혈병의 모든 증상이 없어지는 경우) 상태가 되면 조혈모세포, 즉 골수 이식을 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상우는 네 차례에 걸친 항암치료를 씩씩하게 견뎌줬어요. 하지만 한창 외모에 민감한 사춘기였기 때문에 치료과정에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 때문에 힘들어했죠.”
이씨는 당시 지독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머리가 빠지고 20kg 정도 살이 쪘다고 한다. 한씨는 지갑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사진 속 오뚝한 콧매와 순한 눈망울을 가진 소년은 이씨와 닮아 있었다.
“엄마가 꺼낸 사진 속 아이가 바로 저예요. 아프기 전 모습인데 지금의 저와는 별로 안 닮았죠? 아파서 약을 먹었더니 지금처럼 ‘문 페이스(Moon Face : 스테로이드제 복용 후 얼굴이 달덩이처럼 붓는 증세)’가 돼버렸어요.”
다행히 항암치료의 성과가 좋아 퇴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이 다시 시작됐고 재발 사실을 알게 됐다. 더욱 독해진 항암치료로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면서 한씨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선 골수이식 수술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가족 중엔 단 한명도 이씨와 골수가 일치되는 사람이 없었다.
“골수 기증자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같은 일이에요. 수많은 백혈병 환자가 골수 기증자를 기다리고 있지만 딱 맞는 기증자를 만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기증자를 찾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상우와 딱 맞는 골수를 가진 사람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죠.”

“열심히 공부해 아픈 사람 치료하는 의사 되고 싶어요”
의지와 희망으로 백혈병 이겨낸 한민구·이상우 모자 감동 스토리

한민구씨는 아들 이상우씨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골수이식 수술만 받으면 완쾌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이식수술 후 치료과정에서 나타난 식도염·구토 등을 참아냈다. 면역억제제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눈이 흔들리는 안구진탕증에 걸려 한 달간 안대를 하고 지내면서도 이씨는 답답하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고. 그는 오히려 간호하는 엄마를 위로하며 함께 용기를 내자고 말을 건넸다고 한다.
“너무 아프고 힘든 날, 가끔은 엄마에게 매달려 울고 싶을 때도 있었죠. 하지만 항상 저를 위해 옆에서 간호해주는 엄마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엄마는 두 배로 더 힘들어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항상 제게 ‘우리 상우는 이겨낼 수 있어. 우리는 이 병을 100% 물리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준 엄마는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절 웃게 해주는 분이에요.”
하지만 건강은 좀처럼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이식편대숙주반응·진균성 폐렴·거대바이러스성 망막염 등 수술 후 나타난 합병증으로 이씨는 수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그럴 때마다 이씨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지난 5년간 병원에 있으면서 항상 즐겁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아파서 누워 있을 땐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엄마와 크게 따라 부르기도 했고, 누나의 재밌는 대학생활 이야기를 들으면서 크게 웃기도 했어요. 또 아빠는 이렇게 병원에 있을 때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기라면서 디지털 카메라를 사다주셨죠(웃음).”
이씨는 항상 웃음 지으려 노력했지만 지난 2006년 11월 몸속 단백질이 소변으로 다 빠져나오는 급성신증후군에 걸렸을 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그 당시 거의 다 나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드디어 어둡고 긴 터널을 다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깜깜한 절망의 늪으로 빠진 것 같아 무척 괴로웠죠.”
또래 친구들처럼 뛰놀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을 무렵 다시 찾아온 병마는 그의 의지를 꺾고 최악의 상태까지 몰아갔다.
“아침에 눈도 못 뜰 정도로 상우가 힘들어했어요. 하지만 전 상우에게 ‘넌 슈퍼맨이야. 이제껏 더 힘든 것도 버텨왔는데 여기서 쓰러질 순 없어’ 하고 용기를 북돋워줬어요. 그랬더니 어느 날 상우가 힘을 내겠다며 밥 많이 먹고 열심히 간호해달라고 하더군요.”
드디어 건강을 되찾고 퇴원한 이씨는 지난 4월 특별한 일을 해냈다.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운전면허증도 딴 것. 그는 “인터뷰하는 장소까지 직접 운전하면서 왔다”고 웃으며 자랑했다. 한씨는 아들의 이런 모습에 “너무도 대견스럽다”며 “아들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영웅”이라고 말한다.
“아들이 병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 덕분이었어요. 대부분의 환자와 가족은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하지만 저희는 절대 울지 않았어요. 웃음이 병을 극복하는 힘이라고 믿었거든요.”
한씨는 아들이 병마와 싸우는 과정을 글로 써 내 대한암협회와 한국아스트라제네카가 주최한 ‘암희망수기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시상식 날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이씨. 앞으로 그가 어떤 삶을 꿈꾸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동안 아파서 못했던 공부를 마음껏 하고 싶고 능력이 된다면 저처럼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그것이 그동안 저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준 많은 분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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