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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다시 꿈꾸는 행복

10년 만에 방송 복귀, ‘조강지처클럽’으로 사랑받는 오현경

글·김유림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2008. 08. 22

지난해 ‘10년 만의 복귀’를 선언하며 SBS 주말드라마 ‘조강지처클럽’으로 연기활동을 재개한 오현경.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옛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는 그에게 남다른 감회 & 여섯 살배기 딸 키우는 이야기를 들었다.

10년 만에 방송 복귀, ‘조강지처클럽’으로 사랑받는 오현경

현재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SBS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에 여주인공 ‘나화신’으로 출연 중인 오현경(38). 그는 10년이란 긴 세월을 돌아 연기자로 다시 섰지만 오랜 공백기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안정된 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물론 방영 초반에는 ‘발음이 부정확하다’ ‘표정연기가 어색하다’ 같은 시청자들의 냉철한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세 차례에 턱관절 수술을 받으면서 광대뼈부터 턱까지 뼈 접합 부분에 금속으로 이음새 장치를 해놓아 뜻대로 표정이 지어지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 하지만 그는 1년 가까이 화신의 굴곡진 삶을 온몸으로 연기하면서 어느새 시청자들에게 친근한 얼굴이 됐다.
지난해 연기 복귀를 선언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촬영에 임했던 그는 지금 어떤 심경일까. 오현경은 “처음에는 해낼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연기를 하면서 차츰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10년 만에 방송 복귀, ‘조강지처클럽’으로 사랑받는 오현경

오현경은 지난 7월 중순 SBS ‘조강지처클럽’ 80회 방영을 기념해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 1년 동안 다시 연기자로 살면서 느꼈던 감회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조강지처클럽’을 통해 인생을 새로 배우고 있어요. 어떤 분들은 ‘비현실적이다. 뻔한 내용의 불륜 드라마’라고 폄하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조강지처클럽’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단면이라고 생각해요. 주위를 둘러보면 드라마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가정이 참 많거든요. 나에게, 내 가정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일어나지 않는 일은 아니죠. 이번 작품을 연기하면서 부부간 사랑, 형제간 사랑, 부모와의 사랑 등 모든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극중 전남편 한원수(안내상)와 완벽한 조건의 남자 구세주(이상우)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는 “결론이 어떻게 나면 좋겠냐”는 질문에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분들은 ‘제발 구세주와 결혼해서 아줌마들의 로망을 이뤄달라’고 하시고, 또 어떤 분들은 ‘아이 생각해서 전남편과 다시 잘 살아야 한다’고 하세요. 저 역시 둘 중 어떤 게 옳은 선택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화신이 행복해야 한다는 거겠죠. 더 이상 남의 행복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여자가 되면 좋겠어요.”
2006년 이혼 후 여섯 살배기 딸을 키우고 있는 그는 현실에서는 드라마에서와 달리 새로운 사랑을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한다. “진실한 사랑이 찾아오면 뿌리치기 쉽지 않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는 것.
“요즘 제 머릿속엔 딱 두 가지 생각밖에 없어요. 내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는 것과 연기로 인정받는 것이에요. 지금은 행복을 찾아가는 중간 단계라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매 순간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나머지 행복도 찾아오겠죠.”
한창 호기심 많을 나이인 딸은 엄마가 TV에 나오는 걸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조강지처클럽’의 열혈 시청자로 늦은 시간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그가 나오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다고. 대본이 나올 때마다 먼저 읽겠다고 조를 정도로 드라마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극중 화신의 아들로 나오는 철이(강이석)를 좋아해 철이의 대사를 중점적으로 본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원수 삼촌이랑 구세주 삼촌이 자꾸 엄마 괴롭혀서 이젠 드라마 보기 싫어” 하고 볼멘소리를 해 그를 웃게 만들었다고.
“대본을 읽는 덕분에 아이가 한글을 많이 깨쳤어요(웃음). 집에서 대본 연습을 하고 있으면 ‘철이오빠는 내가 연기할게’ 하면서 대사까지 맞춰줘요. 아직은 탤런트란 직업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TV에 나오는 게 신기하고 좋은가봐요. 친구들한테도 많이 자랑하는 모양이더라고요.”

10년 만에 방송 복귀, ‘조강지처클럽’으로 사랑받는 오현경

그는 가끔 촬영장에 아이를 데려간다고 한다. 4년 전 가까운 후배와 함께 골프의류 사업을 시작한 뒤 줄곧 아이에게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왔지만, 연기를 하고부터 생활이 불규칙적으로 변하자 아이가 다소 불안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처음에는 엄마가 밤늦게 들어오고 새벽에 나가는 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항상 제 품에서 잠들고 일어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옆에 없으니까 많이 서운해하더라고요. 그래서 하루는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새벽에 촬영장으로 데리고 나갔어요. 엄마 말고도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그렇게 몇 번 촬영장에 데리고 갔더니 그 뒤로 아이가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아이한테 ‘엄마 늦게까지 못 들어가’라고 하면 기다리지 않고 잘 자요(웃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요즘이 더없이 행복해요”
지난해 7월 첫 촬영에 들어가 1년 가까이 극을 이끌어오고 있는 그는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서로 가족처럼 보듬어주는 동료 연기자와 스태프 덕분에 즐겁다고 한다. 앞으로 20회 정도를 남겨두고 있는데 드라마가 끝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서운함이 앞선다고. ‘조강지처클럽’이 이처럼 끈끈한 팀워크를 이룬 데는 문영남 작가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그동안 ‘애정의 조건’ ‘장밋빛 인생’ ‘소문난 칠공주’ 등 인기 드라마를 집필해온 문 작가는 매주 대본연습에 참여한 뒤 회식자리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연기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고. 그는 92년 문영남 작가가 쓴 드라마 ‘분노의 왕국’을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다.
“문 작가님이 회식에 참석하시는 건 단순히 친목도모를 위해서가 아닌 것 같아요. 함께 어울려 음주가무를 즐기면서 연기자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시거든요. 저희가 무의식중에 하는 말과 행동을 그대로 대본에 옮겨놓으시기 때문에 연기하기가 훨씬 수월해요.”
그는 80회 넘게 촬영해오면서 처음이나 지금이나 감정연기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이혼을 결심할 때, 아이를 빼앗기고 홀로 지내게 됐을 때, 연하남 구세주와 사랑을 시작할 때 등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고. 촬영이 길어지면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은데, 얼마 전 구세주와 입맞춤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구세주가 화신과 입을 맞춘 뒤 “나화신은 내 거다” 하고 외치는 순간 구경꾼 중 한 명이 “나화신은 좋겠다”라고 맞받아쳐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됐다고 한다.
차분한 말투로 조목조목 질문에 대답하는 그의 모습은 지난해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기 앞서 가진 기자회견 때와 비교해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는 “아직까지 마음의 문이 완전히 열리진 않았지만 연기를 다시 하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고 말했다.
“주위에서 다시 도전해보라고 했을 때 앞으로 제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두려웠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더 이상 무서울 게 없더라고요. 오랜 세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괴로워했지만 그러면서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은 것 같아요. 이 세상에 있는 한 못 이겨낼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러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졌어요. 이렇게 언론과 대중 앞에 나설 수 있는 것도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일 거예요. 제가 다시 연기활동을 시작하자 많은 분이 ‘예전과 달라진 점이 뭔 것 같아요’라고 물어보세요. 저 역시 그분들께 이제는 저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시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해가는 과정 또한 인생의 영원한 숙제인 것 같아요.”
미스코리아 출신답게 여전히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오현경. 하지만 그는 “아줌마가 되니 어쩔 수 없다”며 손으로 배를 가리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방송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고 하루에 5백 번씩 훌라후프도 돌렸는데 촬영에 들어간 뒤로는 운동할 시간이 안 나더라고요. 하지만 운동을 안 하는 상태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서 얼마 전부터 필라테스를 새로 시작했어요. 코디네이터가 살을 빼지 않으면 의상협찬이 곤란하다고 협박(?)해서요(웃음). 모처럼 운동하면서 땀을 흘리니까 기분도 상쾌해지고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에요.”
이제 그에게는 현재와 미래만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던 상황에서 벗어나 오늘보다 나은 내일, 내일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요즘이 더없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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