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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아름다운 예술혼

뇌출혈 이기고 데뷔 40주년 무대 선 성악가 엄정행

글·김민지 기자/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08.07.17 18:29:00

지난해 뇌출혈로 쓰러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성악가 엄정행씨가 노래를 다시 부르겠다는 일념으로 병마를 이겨내고 최근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을 가졌다. 그를 만나 음악과 함께 걸어온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뇌출혈 이기고 데뷔 40주년 무대 선 성악가 엄정행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국민 가곡으로 널리 애창되는 ‘목련화’를 떠올리면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가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40여 년간 우리 가곡 알리기에 앞장서온 엄정행씨(65)다. 76년부터 경희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면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노래를 들려주던 그는 지난해 10월 지방공연을 마친 뒤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는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지난 6월 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독창회를 앞두고 만난 그는 생과 사를 오간 흔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의사들이 기적이라고 말하더군요. 만약 출혈이 조금만 더 지속됐다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고요. 적어도 3개월 정도는 입원해야 된다고 했는데 2주가 지나니 차차 몸이 회복돼 바로 퇴원을 결심했어요. 평생을 노래하며 다니던 사람이 누워만 있으려니 정말 답답하더라고요.”
그는 “병원에 있던 시간이 살아온 한평생 중 가장 한가로웠다”고 말할 정도로 늘 바쁘게 살아왔다. 쓰러지던 날도 평소처럼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공연을 마치는 순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강한 통증을 느꼈다고. 그는 곧바로 병원에 입원해 뇌 CT촬영을 했는데 한쪽 뇌가 새까맣게 나왔다고 한다.
“입원한 다음 날,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섰는데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제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어요. ‘이거, 정말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갑자기 두려워지더군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만 같았던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평생을 함께한 노래였다. 그는 “여기서 이렇게 쓰러질 수 없다. 죽는 한이 있어도 무대에 설 것이고, 거기서 죽자”고 결심하자 그 이후 몸 상태가 점점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의료진과 가족은 좀 더 쉬어야 된다며 퇴원을 극구 말렸어요. 하지만 누워 있을수록 ‘노래 부르고 싶다’는 갈망이 커져 결국 퇴원했죠. 퇴원한 지 이틀 만에 지방공연을 다녀왔는데 그때 노래를 부르면서 얼마나 행복하고 편안하다고 느꼈는지 몰라요.”
건강을 되찾은 그는 지난 3월 부산에서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첫 무대에 올라 혼자서 1시간 반 동안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그것도 병상에서 일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무척 위험했지만 그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다. 관중은 그런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고 그는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다.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을지 많이 걱정했는데 막상 노래를 불러보니 예전보다 더 맑은 소리가 나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게다가 제 노래를 좋아하는 관중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고요.”

“‘죽는 한이 있어도 무대에 서겠다’는 집념이 다시 일어서게 한 것 같아요”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그의 제자들이 기획한 이 공연은 지난 6월 서울 예술의전당으로 이어졌고 앞으로 광주·목포 등 지방공연을 거쳐 가을에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훌륭하게 성장한 제자들을 볼 때마다 제 은사님을 떠올립니다. 대학시절 교수님의 격려와 지지 덕분에 음악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원래 제 꿈은 배구선수였어요. 하지만 키가 자라지 않아 성악으로 대학을 가게 됐죠. 그래서 대학 신입생 시절엔 성악과 학생이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이탈리아어·독일어·프랑스어를 몰라서 노래도 제대로 못 불렀고, 운동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매일같이 체대 수업을 바라보며 방황했어요. 그러다 당시 과에서 유명했던 홍진표 교수님이 제 노래를 듣더니 ‘정행이 네 목소리는 힘차고 좋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교수님의 그 한마디에 ‘나도 노래를 잘 부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고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배웠어요. 홍 교수님께 배운 가르침을 생각하며 저도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이제 그 학생들이 절 챙겨주니 기특하네요.”
가정형편 때문에 유학을 포기한 엄씨는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면서 5년간 악기상·양장점·커피숍 등을 운영하며 성악가의 길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노래’를 다시 부르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날 MBC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가곡을 듣고 무작정 그 작곡가를 찾아가 녹음하고 싶다고 부탁했던 것. 이 일을 계기로 첫 앨범을 발표한 그는 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쏟았던 밤을 회상했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고등학교 음악교사였는데 아들이 성악가가 되기를 누구보다 바랐다고.
이런 그가 평생 노래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가족의 사랑이다. 성악을 전공한 아내는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평생 그를 뒷바라지했고 1남1녀의 자녀들도 그의 음악 사랑을 응원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제게 평생 수많은 공연을 했으니 부자가 되지 않았냐고 물어봐요(웃음). 그런데 사실 어려운 동네는 조금 받으면서 노래하고, 제자들 공연을 도와줄 때는 그냥 갈 때도 많아서 큰돈은 벌지 못했어요. 하지만 대신 전국 방방곡곡에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을 만나서 ‘음악 부자’로는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또 다른 공연장에서 그분들을 만난다는 생각만 해도 하루하루 해피데이죠(웃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엄씨. 그는 앞으로도 우리 역사와 문화가 담긴 가곡을 마음껏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전 목련꽃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알리는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을 인생에 빗대 생각할 때가 있어요.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 반드시 아름다운 순간이 온다는 거죠. 바로 지금이 제 두 번째 목련꽃을 피울 때라고 생각해요. 매일 즐겁게 살면서 여러분이 좋아하는 ‘목련화’를 더 힘차게 무대 위에서 부를 생각입니다.”

여성동아 2008년 7월 5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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