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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드라마틱 인생

성과 인종 차별 극복하고 실리콘밸리 신화 이룬 김태연 회장

글·김명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8.06.23 12:04:00

아들을 기다리던 집안의 딸로 태어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차별을 받으며 자란 김태연 라이트하우스 회장. 20대 초반 맨손으로 미국 이민을 간 그는 온갖 시련 끝에 실리콘밸리에서 손꼽히는 기업인으로 입지를 다졌다. 그를 만나 성공 비결과 아이를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교육에 대해 들었다.
성과 인종 차별 극복하고 실리콘밸리 신화 이룬 김태연 회장

정월 초하루 자시, 경상도 시골 한 종갓집에서 태어나‘재수 없는 계집애’ ‘소·돼지, 그리고 태연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작은 여자아이. 성장기의 대부분을 멸시와 폭력 속에서 보낸 그는 40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가 청소부 일부터 시작, 현재는 라이트하우스 등을 비롯한 6개 회사의 CEO로 활동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김태연 회장(62)의 이야기다. 지난 5월 중순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강의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에게 인사를 건네며 손을 살짝 잡자 “악수를 할 때는 내 손을 상대의 손에 깊숙이 넣고 눈은 상대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해야 한다. 그래야 내 기를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다”며 자신의 조언에 따라 다시 악수를 하자고 청했다.
그는 나이에 비해 젊고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오렌지색 상의와 커다란 꽃무늬가 그려진 화려한 스커트, 반짝이가 달린 연두색 니트 정장… 대담한 의상과 짙은 화장도 눈길을 끌었다.
“제 차림이 남들 보기에 유별난가요? 화려한 화장과 옷차림은 키 150cm의 자그마한 동양 여자가 백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었어요. 미국이라는 넓은 사회에서 차림새마저 평범했다면 엑스트라로 그냥 묻혀버렸을 거예요. 의상들은 모두 제가 직접 의류회사에 디자인을 요청한 것들이죠.”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는 시원한 생수로 묵을 축였다. 기자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커피를 마시지 않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제 고향이 경북 김천인데, 어렸을 적에 신작로에 미군 차가 지나가면 친구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따라가곤 했어요. 그러면 미군들이 초콜릿·사탕·껌 같은 것들을 던져 주었죠. 저도 무척 따라가고 싶었지만 친구들이 끼워주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번은 미군 차가 지나가는데 마침 친구들이 아무도 없더라고요.‘이때다’ 싶어 따라갔더니 봉지 하나를 던져 주더군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입에 털어넣었다가 쓴맛을 보고는 모두 뱉어냈죠. 나중에 미국에 이민 와 ‘내 이름은 김태연, 당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라고 쓴 피켓을 들고 이웃집들을 돌았는데 그 가운데 한 집에서 음료수를 주더라고요. 마셔보니 씁쓸한 게 그때 그 맛이었어요. 그 다음부터 커피를 거들떠보지도 않게 됐죠.”
이는 그의 불행했던 기억의 아주 작은 한 토막일 뿐이다. 손자를 기대하던 그의 할아버지는 김씨가 태어나자마자 끓이던 미역국을 솥째 마당에 엎어버렸다고 한다.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기 힘들었던 어머니는 어린 그에게 젖조차 물리지 않았고 조금 자랐을 때는‘태연아, 우리 양잿물 먹고 같이 죽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고 한다. 할아버지와의 불화로 주벽이 생긴 아버지는 급기야 그에게 폭력까지 휘둘렀다고. 결국 그는 스물두 살 되던 68년 도망치듯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가 미국에 건너갔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는 청소 일을 하면서 일곱 살 때부터 배운 태권도 실력을 발휘할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궁리 끝에 인근 학교를 찾아다니며 태권도 사범으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그는 미국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고, 그렇게 번 돈을 밑천으로 85년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을 열어 컴퓨터 한 대를 놓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당시 전 재산을 쏟아부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잠잘 곳, 먹을 것조차 없었어요. 정육점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소뼈를 고아 그 국물에 수제비를 만들어 먹곤 했죠. 하루는 정육점 주인이 ‘너희 집에 개가 많냐’고 물어보더군요. 개 사료로 쓰라고 나눠주는 뼈를 사람이 먹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렇게 힘겹게 사업을 일궈 현재 그가 운영하는 반도체공장 오염방지시스템 전문회사 ‘라이트하우스’는 95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미국 100대 유망 기업에 포함됐으며 매년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부촌 새너제이에 서울 여의도 땅의 3배나 되는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실리콘밸리는 미국에서도 똑똑하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데 그 사람들이 보기에 작고 학벌도 보잘것없는 제가 얼마나 우스웠겠어요. 제가 그곳에서 사업을 한다고 하니까 다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더라고요. 한번은 물건을 사는 데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거예요. 10만 달러짜리인 줄 뻔히 아는 물건을 70만 달러에 사라는 거예요. 제가 당연히‘No’할 거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저는 두 말하지 않고 계약서에 사인했어요.‘손해봐도 상관없다. 대신 이 기회에 너를 확실히 잡아두겠다’라는 나름의 계산을 한 거죠. 그 계획은 적중했고, 다음에는 저희 쪽으로 가격결정권이 넘어왔어요. 물론 매번 그런 식이라면 곤란하겠지만 사업을 하다 보면 때로는 이런 대담함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미래 사회에서는 입체적으로 생각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 성공할 것
성과 인종 차별 극복하고 실리콘밸리 신화 이룬 김태연 회장

두 번 유산의 아픔을 겪은 후 이혼하고 6남3녀를 입양해 키운 김태연 회장. 그는 자녀들에게 ‘애국가’ ‘아리랑’ ‘쾌지나칭칭’ 등 한국 노래와 민속 놀이도 가르쳤다고 한다. 그가 함께 내한한 자녀들과 가요 ‘사랑해’를 부르는 모습.


그는 젊은 시절 미국인 남편과 결혼했지만 두 차례의 유산, 시집 식구들의 인종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는 외롭지 않다. 6남3녀의 자녀를 입양, 반듯하게 키워냈기 때문. 자녀들을 키우면서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Can do(할 수 있다) 정신’이다.
“어려서부터 ‘넌 안 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요.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막연하지만 ‘왜 난 안 돼?’라는 반문을 하게 됐고 세상과 맞서며 그 정신은 점차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바뀌었어요. 실리콘밸리 진출 초반 전자제품 박람회가 열렸는데 아이들이 경쟁기업 부스를 보고 돌아와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겠다’며 사업을 접자고 하더라고요.‘정말 안 되겠냐’고 재차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에게 도복으로 갈아입고 체육관으로 집합하라고 한 후 ‘세상에 부딪혀보지도 않고 안 되는 건 없다. 하지만 너희들이 무슨 잘못이겠느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내 잘못이다’라며 회초리로 제 몸을 후려쳤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엉엉 울며‘어머니, 할 수 있어요. 해보자고요’라면서 매달리더라고요.”
지금도 스킨스쿠버, 스카이다이빙 등 다른 사람이 잘 하지 않는 운동으로 체력을 다진다는 그는 성공을 위해서는 자신감과 함께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는 어려서부터 자기 스스로 절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엄마의 양육 태도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오감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절제하는 법을 가르치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건 사랑이 아니라 학대예요.”
그가 살아온 세대와 지금 세대의 사회적 환경이 다른 만큼 성공에 필요한 요소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상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자 그는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꼽았다.
“이제 얼마나 많은 지식을 습득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해서 굳이 암기하지 않아도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거든요. 비슷한 양의 정보가 누구에게나 공유된다면 그다음 중요한 건 뭘까요.‘기존 정보를 바탕으로 얼마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느냐’예요. 그런 면에서 사물의 한쪽 면만 보는 사람보다는 위성적 관점에서 앞과 뒤, 위아래까지 골고루 살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 학부모들의 지나친 영어교육 열풍을 지적하며, 한국적인 것의 소중함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40년 동안 미국에 살면서 영어 이름을 가진 적이 없어요. 명함을 주면 발음이 어렵다며 영어 이름을 쓰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내 이름은 김태연’이라며 다시 또박또박 발음해주었죠. 요즘 한국에서는 영어 붐이 인다는데 물론 세계화를 위해서는 영어를 배워야 하지만 거기에만 매달리다 보면 금방 모국어를 잃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요.”
자신의 삶에서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남자와 사랑다운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김태연 회장. 하지만 그는 앞으로 봉사활동, 교육사업 등을 통해 더 큰 사랑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동아 2008년 6월 5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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