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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명사가 말하는 ‘내 생애 최고의 요리’- 네 번째

어머니 사랑 담긴 녹두빈대떡 & 무물김치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추억 요리

기획·한여진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요리) 성종윤‘프리랜서’(인물) || ■ 요리·이영희(나온쿠킹)

2008. 04. 17

어머니 사랑 담긴 녹두빈대떡 & 무물김치

키 작은 봄꽃이 소담스럽게 핀 서강대 캠퍼스에서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56)를 만나 추억의 요리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는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과 문학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 ‘영미시 산책’ 등을 펴낸 수필가이자 문학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동아일보에서 일상사를 잔잔하게 들려주는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장 교수는 뉴욕에서 유학하던 시절, 음식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그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이 좌절되고 유학을 떠나게 됐는데 당시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음식이 무척이나 그리웠다고.
“유학생활 7년 동안을 기숙사에서 보냈어요. 유학생이면 누구나 한번쯤 걸린다는 향수병도 모르고 지냈는데, 어느 날 문득 어머니 손맛이 담긴 음식이 그리운 거예요. 평양이 고향인 어머니는 녹두빈대떡과 물김치를 즐겨 만들어주셨는데 그 ‘촌스러운 음식’이 먹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답니다.”
유학 시절 그리워하던 녹두빈대떡과 물김치는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즐겨 먹는 별미 요리가 됐다. 요즘도 주말이나 명절 등 온 가족이 모이면 어김없이 녹두빈대떡을 부치는데, 온 집안에 가득한 고소한 기름 향을 맡고 있으면 절로 행복해진다고.

장영희 이야기, 온 가족이 즐겨 먹던 녹두빈대떡 & 무물김치
”저는 식탐이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맛있는 반찬을 독차지해서 그런가 봐요(웃음). 어머니는 영양 가득한 굴비를 구울 때면 통통하게 오른 굴비알을 아버지(고(故) 서울대 장왕록 교수)와 제 밥그릇에만 올려주셨어요. 건강하지 못한 딸을 챙기는 어머니만의 특별한 사랑법이었던 거죠. 고사리와 김치 등 야채를 송송 썰어 투박하게 구운 녹두빈대떡도 저희 집 별미 요리예요. 돌아가신 아버지는 녹두빈대떡과 물김치를 특히 잘 드셨는데, 저도 아버지 식성을 꼭 닮아 두 가지 요리를 가장 좋아한답니다.
미국에서 유학할 때는 물김치가 먹고 싶어 직접 만들기도 했어요. 유학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무렵 갑자기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은 거예요. 잠자리에 들기 전 눈을 감으면 굴비알과 녹두빈대떡, 물김치가 머릿속에서 빙빙 날아다닐 정도였죠. 굴비알과 녹두빈대떡은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물김치는 채소만 있으면 만들 것 같았어요. 학생식당에서 샐러드로 나온 양상추, 당근 등 온갖 채소를 싸들고 기숙사로 돌아와 물김치를 만들었죠. 기다란 병에 채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넣고 소금과 물을 부어 화장실 창가에 두고 하룻밤 동안 숙성시켰어요. 물김치를 완성한 날 밤, 내일 아침이면 물김치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을 설칠 정도로 행복했지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 가보니 물김치가 없어진 거예요. 알고보니 옆방 친구가 이상한 냄새가 나서 버렸다고 하더군요. 친구는 제 이야기를 듣고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했고 저는 일주일 정도 물김치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지냈답니다.
요즘도 동생들이 집에 놀러 오면 어머니와 함께 녹두빈대떡과 물김치를 만들어 먹어요. 어머니가 반죽을 만드시면 동생들이 굽곤 하지요. 지난 3월1일에는 동생들이 만든 녹두빈대떡을 싸갖고 아버지 산소에 놀러가 먹고 돌아왔답니다. 온 가족이 두런두런 모여 앉아 먹던 음식에는 행복한 추억과 사랑이 깃들어 있어 더욱 맛있는 것 같아요. 나른한 봄기운 때문에 입맛이 없다면 녹두빈대떡과 시원한 물김치로 입맛을 살려보세요~.”

어머니 사랑 담긴 녹두빈대떡 & 무물김치

셰익스피어, 에밀리 디킨슨 등 영미시의 거장 시인들의 시를 엮은 장영희 교수의 저서 ‘생일’. 화가 김점선의 개성 넘치는 그림이 책 곳곳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녹두빈대떡은 녹두반죽에 고사리, 배추김치, 도라지 등을 넣고 섞어 만든다. 유학 시절, 샐러드 야채로 물김치를 만들었던 일화를 이야기하며 추억에 잠긴 장영희 교수.(왼쪽부터 차례로)


추억요리 하나 - 녹두빈대떡
어머니 사랑 담긴 녹두빈대떡 & 무물김치

준·비·재·료 불린 녹두 4컵, 불린 쌀 1큰술, 물 2컵, 불린 고사리 100g, 도라지·배추김치 150g씩, 다진 돼지고기 200g, 소금 2작은술, 송송 썬 홍고추 1개 분량, 식용유 적당량
만·들·기
1 녹두는 찬물에 하룻밤 동안 불린 뒤 손으로 비벼 껍질을 벗긴다. 여러 번 헹군 다음 믹서에 불린 쌀, 물과 함께 넣고 입자가 보일 정도로 갈아 반죽을 만든다.
2 고사리는 2㎝ 길이로 자르고, 도라지는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굵은 부분은 갈라 2㎝ 길이로 자른다.
3 배추김치는 속을 털어내고 국물을 꼭 짜서 송송 썬다.
4 고사리와 도라지, 배추김치에 다진 돼지고기와 소금 1작은술을 넣고 버무려 소를 만든다.
5 ①의 녹두반죽에 소금 1작은술을 넣어 간한 뒤 소를 넣고 버무린다.
6 달군 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반죽을 한 국자씩 떠서 홍고추를 올리고 도톰하게 지진다.

추억요리 둘 - 무물김치
어머니 사랑 담긴 녹두빈대떡 & 무물김치

준·비·재·료 무 1개, 절임양념(소금 1큰술, 설탕 1작은술), 찹쌀풀(물 5컵, 찹쌀가루 2큰술), 양념즙(생강 1쪽, 마늘 8쪽, 양파 1개, 배 ½개), 청양고추 5개, 실파 5대,물 2컵, 소금 1큰술
만·들·기
1 무는 1×4×0.3cm 크기로 썰어 소금과 설탕을 넣고 1시간 정도 절인다.
2 냄비에 물과 찹쌀가루를 넣고 끓여 찹쌀풀을 쑨다.
3 믹서에 생강과 마늘, 적당하게 자른 양파와 배를 넣어 곱게 간 뒤 면보에 밭아 양념즙을 만든다.
4 청양고추는 포크로 찔러 구멍을 내고, 실파는 4cm 길이로 자른다.
5 밀폐용기에 무와 찹쌀풀, 양념즙, 청양고추를 넣은 뒤 물을 붓고 소금으로 간한다.
6 ⑤에 실파를 얹고 하루 정도 실온에 두었다가 냉장보관해두고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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