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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이 여자가 사는 법

당당한 싱글맘, 영화 ‘마지막 선물’ 시나리오 작가 김윤정

기획·김명희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성종윤‘프리랜서’

입력 2008.03.21 14:43:00

최근 개봉한 영화 ‘마지막 선물’의 시나리오 작가 김윤정씨는 싱글맘이다. 딸에 대한 사랑을 영화에 담아낸 그가 미혼의 몸으로 아이를 낳게 된 사연과 애환, 아이와 함께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당한 싱글맘, 영화 ‘마지막 선물’ 시나리오 작가 김윤정

“생애 처음, 지키고 싶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지난 2월5일 개봉한 영화 ‘마지막 선물’의 포스터 카피다. ‘마지막 선물’은 부정(父情)에 대한 이야기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무기수 태주(신현준)가 윌슨병에 걸린 형사 영우(허준호)의 딸에게 간 이식을 하기 위해 휴가를 나왔다가 그 아이가 자신의 딸임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 김윤정씨(필명 봄의환·40)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 작품에 담아냈다고 한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딸 김서인양(14)을 키워온 싱글맘이다.
“지난 2002년 갑자기 몸이 아파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는데 그때 든 ‘어느 날 내가 죽게 되면 우리 서인이는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에서 이 작품이 시작됐어요. 주인공 태주와 영우는 모두 무엇인가가 결핍된 아버지인데, 그들은 또 다른 저예요. 그들에게 제 마음과 상황을 투영한 거죠.”
얼마 전 그와 함께 영화 시사회에 다녀온 서인이는 “슬프면서 재미있다”고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고.
“전 좋은 엄마, 존경받는 엄마는 못 돼요. 특히 요리에 있어서는 더 그렇죠. 서인이는 제가 해주는 음식을 잘 안 먹어요. 그런데 이번 일로 아이에게 조금 인정받게 된 것 같아 기뻐요.”
조심스레 서인이 아버지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의외로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많이 사랑했고, 아이를 갖게 됐죠. 그런데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남자친구는 해외로 도피해야 하는 처지였어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를 그냥 보내줬죠. 그 뒤로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어요.”
그는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결심했지만 이런 선택 뒤에는 만만치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기저귀도 떼지 않은 갓난아이를 공동 탁아소에 맡긴 채 성당에서 신부님 밥을 해주는 일부터 재봉사 일까지 닥치는 대로 해야 했던 것. “그래서 서인이를 키우는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업어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자 혼자 아이 키우며 산다는 게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어요. 주변의 차가운 시선까지 감당해야 하고요. 특히 성당에서 식복사로 일할 땐 주변의 수군거림이 심했어요. 신부님 밥을 해주는 여자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아이를 키우니까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오더라고요.”

임신 사실 말하지 못한 채 해외로 도피하는 남자친구 떠나 보내
당당한 싱글맘, 영화 ‘마지막 선물’ 시나리오 작가 김윤정

김윤정씨는 홀로 서인이를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느라 서인이를 제대로 한번 업어주지도 못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날의 상처를 이야기하던 그는 갑자기 자신의 꿈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다. 자신의 상처를 다 드러내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이 일 저 일 하면서 짬짬이 아르바이트로 대필도 하고 웹진에 글도 실었어요. 그러다 문득 글을 써서 서인이를 먹여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어려서부터 글 쓰는 것이 꿈이었죠.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지난 2002년 초 서울에서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포천으로 이사를 왔어요.”
이사 후 그는 학원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드라마 작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듬해인 2003년 KBS ‘드라마시티’ 극본 공모에 영화 ‘마지막 선물’의 원작인 ‘귀휴’로 당선돼 드라마 작가로 등단했고 그 이후 드라마 단막극과 뮤지컬 등을 집필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돈이 없으면, ‘어라 돈이 없네’ 하고 뭐 하나 끊든지 뭐 하나 팔든지 했어요. 그런데 돈이 없어 서인이가 유일하게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둬야 했을 땐 속이 많이 상했어요. 더 다니겠다고 조르지도 않고, 그냥 순순히 그러겠다고 하니까 더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서인이는 그렇게 뭘 조른 적이 없어요. 졸라도 소용없다는 것을 아니까요. 학원에 못 가니까 서인이 나름대로 다른 방법을 찾아내더라고요. 학원 대신 교회에서 열심히 피아노를 치는 거예요. 덕분에 지금 교회에서 반주를 할 정도로 피아노를 잘 쳐요. 그렇게 제가 못해줘도 자기 스스로 알아서 잘 자라준 것 같아요.”
보통의 싱글 부모들은 아빠 또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일찌감치 그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은 포기했다. 대신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서 해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사는 동안 서인이는 아빠의 부재에 대해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서인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오히려 그가 먼저 “아빠에 대해 궁금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고.
“내심 아이 반응이 걱정됐는데 ‘궁금하지 않다’고 담담하게 말하더라고요. 자기가 궁금해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것 같았어요. 그 뒤로 기회 될 때마다 조금씩 아빠 이야기를 해줬어요.”
이에 대해 서인이는 “어렸을 때부터 주위에 엄마나 아빠, 혹은 할머니하고만 사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엄마하고만 사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빠가 궁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아빠 엄마와 다 같이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 친구들이나 자신이나 가족과 사는 것은 똑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김씨가 서인이에게 아빠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무렵, 김씨 아버지는 서인이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남동생 둘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심장이 안 좋은 아버지에게는 그동안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
“부모님 집에 갈 땐 아이를 친구에게 맡기거나 혼자 집에 두고 갔어요. 당당하지 못했던 건 아니에요. 다만 아버지 건강도 걱정됐고 제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된 후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죠.”
서인이의 존재를 알게 된 그의 아버지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그동안 애썼다”라고만 말했다고 한다. 그냥 그렇게 서인이를 받아들여준 아버지가 그는 지금도 고마울 따름이라고.

“아프리카 아이들 후원하며 결혼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더 넓은 세상 보려 노력해요”
당당한 싱글맘, 영화 ‘마지막 선물’ 시나리오 작가 김윤정

그는 서인이가 어렸을 땐 많이 힘들고 외로웠다고 한다. 결혼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까.
“저 독종이었어요. 이 바닥(작가 세계)에서는 유명해요(웃음). 눈만 뜨면 글을 써댔죠. 작가가 돼서 서인이를 먹여 살려야 된다는 생각밖엔 없었던 것 같아요. 언젠가 연말에 서인이가 1년 동안 감사한 것 10가지를 쓴 적이 있는데 그중에 ‘굶은 날 없던 것’이 있더라고요. 아이가 굶을까봐 얼마나 걱정했으면 그런 걸 썼을까 싶어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그만큼 먹고사는 문제가 급했기 때문에 결혼은 생각할 틈도 없었어요. 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독립해서 줄곧 혼자 살아왔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제도가 막연히 부담스럽기도 해요. 더군다나 전 서인이가 있어 관계가 더 복잡해지잖아요. 그런 것이 싫어요. 외로웠지만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작가로서의 꿈이 있어 참을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남녀를 떠나 꿈이 같은 친구를 만나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결혼은 하지 않을 것 같네요.”
그는 얼마 전, 비혼모를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미스(Miss) 엄마들의 도전 편’에 출연했다. 비혼모란 자신의 의지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성을 뜻하는 신조어. 하지만 김씨는 엄밀히 말하면 자신은 비혼모가 아닌, 미혼모였다고 고백한다. 서인이를 가졌을 때, 결혼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못했기 때문. 하지만 지금은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모라고 한다.
“제게는 미혼모니 비혼모니 하는 수식어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여성일 뿐이죠. 그걸 굳이 구분짓는 것부터가 또 다른 사회적 편견 아닐까요.”
그는 싱글맘으로 살아오면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보다도 사회적 편견 때문에 더 많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한때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 맞서 당당해져야 한다고 스스로 세뇌시키기도 했다고.
“‘그래 내가 이렇게 사는데 너희가 어쩔 거냐’라고 되뇌며 애써 당당한 척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이젠 자연스럽게 당당해요. 그렇게 되기까지는 서인이가 곁에서 많은 힘이 돼주었죠. 한번은 서인이가 그러는 거예요. ‘엄마, 예수님도 처녀의 몸에서 나오지 않았느냐’고. 서인이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사실, 그에게는 서인이 외에도 7명의 자식이 더 있다. 아프리카 아이들 7명을 후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계약을 할 때마다 한 명씩 늘리다 보니 어느덧 7명이나 되는 자식을 더 얻었다고 털어놓았다.
“결혼을 했더라면 좁은 굴레에 갇혀 살았을텐데 그것을 뛰어넘으니 더 넓은 세상을 얻었어요. 많은 아이들의 엄마로 사는 것이 만족스럽고 행복해요. 하지만 만약 다음 생이 있어 또 이렇게 살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웃음).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아프리카로 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저는 서인이와 같이 가면 좋겠는데, 서인이는 싫다고 하더라고요. 조금 서운했지만 서인이가 제 삶을 인정해주었듯 저도 서인이의 삶을 인정해줘야죠.”
그는 서인이가 자신보다 더 사랑의 열정을 갖고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인이에게 인생의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서인이는 “세상 그 누구보다 엄마가 최고”라고 말했다.

여성동아 2008년 3월 5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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