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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 스페인 현지 인터뷰

세계적인 인기 누리다 딸 납치 사건 후 활동 중단했던~

기획·김명희 기자 / 취재·MBC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 사진제공·B2E 김형기

입력 2008.03.21 14:38:00

화려한 화장과 독특한 창법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던 지난 87년 딸이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되는 끔찍한 사건을 겪으며 갑자기 무대를 떠났던 키메라. 최근 그가 가수 활동을 재개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납치 사건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스페인에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키메라를 만났다.
키메라 스페인 현지 인터뷰

8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한국 출신 가수 키메라(본명 김홍희·54).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메이크업과 독특한 창법으로 유명했던 그는 21년 전 딸이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된 사건을 겪은 이후 대중 앞에 서지 않았다.
아련한 기억 속에 남아있던 그가 최근 새 음반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MBC 휴먼 교양프로그램 ‘네버엔딩 스토리’ 팀은 지난 2월 초 스페인 마르베야에 위치한 키메라의 집을 찾아 그의 근황을 취재했다(2월27일 방영). 스페인 남부 해안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바다’라는 뜻의 마르베야는 세계 부호들의 별장이 즐비한 유럽 최고의 휴양지. 키메라의 집은 마치 고급 리조트처럼 꾸며져 있는데 레바논인 남편 레이몽 나카시안씨가 6년에 걸쳐 직접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키메라는 이 집에서 남편, 아들 아미르(23)와 함께 살고 있으며 납치 사건으로 큰 고생을 치렀던 딸 멜로디(25)는 현재 미국에서 유학 중이라고 한다.
“남편, 딸과 이야기할 때는 주로 프랑스어를 하고, 아들과는 영어로 대화해요. 요즘은 딸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어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국어에 굉장히 관심있어 하고, 곧잘 해요. 아들은 한국말을 하나도 못하고요. 남편은 제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일부러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어요(웃음). 사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한국말을 할 사람이에요. 언어 감각이 뛰어나거든요. 영어를 비롯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러시아어 등 10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죠.”

프랑스 유학 시절 친구 부탁으로 통역 도와주다 레바논 출신 부호 남편 만나
키메라의 남편 나카시안씨는 레바논 부호의 아들로, 젊은 시절 일찍 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키메라가 그런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은 프랑스 파리 유학시절 친구의 부탁으로 통역을 해주면서였다. 당시 그는 성신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파리로 유학, 불문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다시 음악 대학에 진학했을 때라고 한다.
“당시 런던에 거주하던 남편이 우리나라 한 대기업과 사업 관련 미팅이 있어 파리로 왔어요. 그때 제가 친구의 부탁을 받고 프랑스어 통역을 해주었죠. 당시 졸업시험을 앞두고 있어 통역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친구가 간곡하게 부탁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나갔는데 그게 운명이었나 봐요. 호텔로 들어가다 문에서 남편과 ‘쾅’ 부딪쳤거든요. 저는‘죄송하다’고 하고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남편은 그 순간 천 볼트짜리 전류가 흐르더래요(웃음). 동양적인 스타일을 좋아했던 남편이 제 외모에 끌렸다는군요.”
첫눈에 키메라에게 반한 남편은 그 뒤 1년 동안 끈질기게 그를 쫓아다녔고 두 사람은 80년 결혼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저는 그 당시 남편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남편이 원래 플레이보이였거든요(웃음). 그런데 저를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고, 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니까 마음이 약해져 결국 프러포즈를 받아들였죠(웃음).”
남편과 결혼하면서 그는 외국인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친정아버지와의 약속을 어겼다고 한다. 불효를 저지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던 그는 아버지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고.

키메라 스페인 현지 인터뷰

스페인의 유명 휴양도시 마르베야에 위치한 키메라의 집. 레바논 출신인 키메라 남편은 젊은 시절 쇼비즈니스로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유학 올 때 아버지와 두 가지 약속을 했어요. 첫째는 절대 국제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3년 안에 귀국해 대학교수가 되는 거였죠. 하지만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그 약속을 지킬 자신은 없었어요(웃음). 어쨌든 한동안 아버지께 결혼한 사실을 알리지도 못했어요. 뒤늦게 결혼 사실을 알고 화를 많이 내셨지만 멜로디를 낳은 후 저희 결혼을 인정해 주셨죠.”
하지만 그는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할 거냐”고 묻자“노땡큐”라고 답했다. 남편은 친구로는 최고지만 화나는 일이 있으면 좀처럼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을 지녀 힘들었다는 것. 더군다나 서로 성격이 극과 극이라 결혼 초에는 다툼이 잦았다고 한다.
“저는 원래 책 읽고 명상하며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 남편은 반대로 사람 만나는 걸 즐기고 사교성도 뛰어나요. 특히 남편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파티 열기를 좋아하는데 그럴 때마다 서로 부딪히곤 했죠. 남편이 파티하자고 할 때 세 번에 한 번 정도 그 부탁을 들어주면서 다툼을 피했어요.”

딸이 무장괴한에게 납치된 후 숨죽이며 살았던 11일
키메라는 어린시절부터 가수가 꿈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유학시절 불문학을 공부한 후 음악으로 진로를 바꾼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결혼 후 노래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남편은 강력히 반대했다. 아내가 가정생활에만 충실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던 것. 그는 남편과 실랑이 끝에 지난 85년‘기념 삼아’음반을 내기로 했다. 그게 바로 전 세계적으로 1천5백만 장 이상 팔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끈 ‘더 로스트 오페라’라고. 2집 앨범 ‘오페라 익스프레스’ 역시 1천만장 이상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음반을 낼 때 성공하리란 욕심도, 기대도 없었어요. 그저 제가 좋아서 한 것뿐인데 반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좋아서 어리둥절했죠.”
꿈을 이룬 것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그의 부부는 87년 11월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이들 부부의 재산을 노린 무장괴한들에게 딸 멜로디가 납치된 것. 당시 멜로디는 겨우 다섯 살이었다.
“멜로디를 구해내기까지 딱 11일이 걸렸어요. 11일이 마치 11년 것 같았죠. 그 기간 동안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며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어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던 납치 사건은 아이가 사라진 후 열흘 만에 예상치 못한 데서 단서가 잡혔다고 한다. 납치범들 중 하나가 흘린 지갑을 한 여성이 주워 신고했던 것이다. 지갑 안에는 납치범이 전날 그의 남편과 통화했던 것과 같은 내용의 협박편지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결정적인 단서가 돼 납치범들을 잡고 멜로디를 찾았다고.
“경찰서에 앉아 있는 멜로디를 보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나더라고요. 오히려 멜로디가 ‘엄마 괜찮아 울지 마’라며 저를 안심시켜 주었죠.”
멜로디가 살아 돌아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 그의 부부는 와인을 4천 상자나 만들었다고 한다. 와인 병에 아이 사진을 붙이고 ‘멜로디 와인’이라고 명명한 뒤 멜로디가 무사히 돌아오기까지 애써 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고. 그의 남편은 아직 남아있는 멜로디 와인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키메라 스페인 현지 인터뷰

남편의 끈질긴 구애 끝에 지난 80년 결혼한 키메라 부부는 슬하에 아들·딸 남매를 두고 있다. 끔찍한 납치 사건을 겪었던 딸은 현재 미국에서 유학 중이라고 한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그 일을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아직도 가끔‘딸이 어떻게 됐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처음엔 그 당시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했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우리 삶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나카시안씨에 따르면 키메라는 딸 납치 사건 이후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신의 유명세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것. 자신 때문에 멜로디의 얼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 납치의 원인이 됐다고 자책하던 키메라는 딸이 ‘엄마가 노래를 그만두면 좋겠다’고 하자 아무 미련 없이 가수 활동을 그만두었다.
“납치에서 풀려난 멜로디가 ‘엄마 노래하지 마. 노래하는 거 싫어’ 그러더라고요. ‘왜 싫으냐’고 물었더니 ‘혼자 남겨지는 게 무섭다’고 하더군요. 아이가 그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20년이 지났네요.”
멜로디는 지금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상처가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키메라는 가수 활동을 그만두고 가족에게만 전념하며 살아온 지난 20년 세월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를 겪은 멜로디가 착하고 사랑 많은 사람으로 자라준 것에 감사할 뿐이라고.



“새 앨범 작업 끝나면 한국 방문해 팬들과 만날 계획이에요”
남편이 파티를 좋아하는 덕분에 항상 손님들로 붐비는 그의 집에서 가장 바쁜 곳 중 하나가 바로 주방. 그의 집 주방에는 특급 호텔 주방장 출신 요리사와 보조 요리사 두명이 항상 대기 중이라고 한다. 주로 음식은 뷔페식으로 차려내는데 그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김치다. 가족들뿐 아니라 손님들한테까지 인기 만점이기 때문.
파티를 즐기는 남편과 달리 키메라는 자동차로 한적한 곳을 드라이브 하거나 요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언뜻 보면 저희 삶이 호화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해요.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저희도 고통이 있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왔거든요.”
그는 한 예로 멜로디 납치사건 당시 협상 진행과정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런 저런 정보가 뒤섞이는 바람에 그의 남편에 대한 잘못된 기사가 나간 적이 있는데 그로 인해 마음고생 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당시 한 언론이 남편 나카시안씨가 무기 거래상이라고 보도하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오해와 의혹의 시선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저희 집 옆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기 거래상이 살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람이 남편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아마 오보가 나간 것 같아요. 그 때문에 저와 가족들은 납치 사건 못지않게 큰 고통을 받았어요. 결국 그 보도가 사실이 아님이 법정에서 밝혀졌지만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는 분들도 있어요. 한 번 보도된 건 사람들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잖아요.”
키메라는 자신의 가족을 둘러싼 잘못된 이야기들을 바로잡는 한편 가수로서 무언가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웹사이트(http://kimeraweb.com)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이트를 통해 키메라는 아직도 많은 팬들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웹사이트를 개설하자마자 세계 각국에서 팬레터가 쇄도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이 주신 재능을 묵힌 채 ‘나몰라라’ 하고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다시 노래를 하고 싶다는 맘이 생겼죠. 마침 멜로디도 이제 ‘엄마 다시 노래해’ 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요.”
그는 앨범 작업을 마친 뒤에는 한국을 방문, 한국 팬들과도 만날 생각이라고 한다. 멀리 타국의 그가 행복하기를, 그리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또 한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를 기대한다.

여성동아 2008년 3월 5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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