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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김수정 기자의 브라운관 속 탐험!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 세트 촬영현장

謹弔

글·김수정 기자 / 사진·문형일 기자

입력 2008.02.21 17:52:00

함경도 출신 ‘할매’와 그의 며느리들이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KBS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 그런데 종영을 앞두고 찾아간 드라마 세트 촬영장에는 난데 없는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 세트 촬영현장

NG를 낸 뒤 멋쩍어하는 김지훈과 이수경. 둘은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좌) “지금은 웃고 있지만….” 병실 세트장에 모인 연기자들은 웃으면서 긴장을 풀었다.(우)


“쉿! 조용히 해주세요.” 노릇노릇한 족발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뚱땡이 족발’.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는 늘 족발 한 접시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찾아간 촬영장에서 나는 뜻밖의 모습을 보게 됐다.
지난 1월 초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드라마 A세트장. 조연출의 목소리가 바닥에 깔린다. 족발집 골목에는 적막이 흐른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어떡해….” 적막을 깬 것은 미순(윤여정)의 목소리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때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건 향심(김을동)이었다. 한 집안의 대들보이던 그의 안색이 몇 주 전부터 파리해졌기 때문. “어디 갔다 이제 오네? 네 시오마니 준명이네 병원으로 옮겼어.” 아뿔싸.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정신없이 뛰어나가는 미순. “야야, 조심해서 가라우!” 다급한 옹심(여운계)의 외침이 세트장에 울린다. 네 차례의 NG 끝에 떨어진 OK 사인. 하지만 여운계는 여전히 불안한 감정을 이어갔다. 몇 달 전, 신장염으로 큰 수술을 받은 그였다. 누구보다도 건강의 중요성을 알 터. 다행스럽게도 그의 혈색은 좋아보였다. “걱정해준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그나저나 오늘은 향심이가 문제네. 영 기운을 못 차리더니만 기어코….”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 세트 촬영현장

“어머니, 정신 좀 차려보세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박인환.(좌) ‘뚱땡이 할매’ 족발집 내부. 천장에 매달린 수십대의 조명기가 눈길을 끈다.(우)


원조 함경도 족발집 할매, 편히 가소서…
띠, 띠, 띠, 띠. 심장박동 기계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향심의 병명은 심근경색이었다. “병원 장면이 중요해 어젯밤 급히 만들었어요.” 뿜어져나오는 가습기, 노란색 링거액, 향심의 입에 씌워진 산소마스크. 입원실 세트는 실제 병원과 다를 바 없다. “할머니, 할머니이….” 복수(김지훈), 인우(이필모), 복남(서영희)이 향심을 에워싼다. 모두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밤새 옹심을 간호하다가 지쳐 잠든 미진(이수경)에게 주어진 미션은 코골이. 하지만 코고는 소리가 작아 애를 먹는다. “미진아, 코 골면서 정신없이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져야 돼.” 미진이 곯아떨어진 사이 향심의 딸 명희(김혜옥)가 들어온다. 쌀쌀맞던 명희도 엄마 앞에서는 여린 딸일 뿐.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향심 앞에서 그는 눈물을 보였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평소 극중 그의 연기를 보면서 “뭐 저런 시어머니가 다 있냐. 저렇게 시집살이를 할 바엔 안 사는 게 낫지”라고 말하던 나도 명희의 감정에 동화돼 두 손을 모은다. 안 돼, 죽으면 안 돼요….
감정연기에 몰입한 향심과 명희. 그런데 벽에 붙어 있던 소품이 눈치 없게 자꾸 떨어진다. 못질을 하는 대신 양면테이프로 고정시키다 보니 생긴 일. “이거이 와이리 계속 떨어지네. 이래서리 내가 편히 갈 수 있갔소?” 향심의 함경도 사투리가 애처롭게 들린다.
아침이 밝았지만 향심은 일어날 줄 몰랐다. 팔다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족발집을 호령하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자, 조금만 더 감정을 이어갑시다!” 아들, 손자, 며느리, 사돈에 팔촌까지 모인 장례식 촬영. 검은색 상복을 입고 등장한 이들은 말이 없었다.
“복수야, 그래도 넌 엄마가 있잖냐. 애비는 이제 엄마가 없다….” 장지를 앞두고 끝내 오열하는 수길(박인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새나온다. 스태프들의 어깨도 들썩인다. 하지만 행여나 그 소리가 방해될까 모두들 울음을 삼켰다. 아, 나도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해야지. 어느새 철이 든 것 같다.
“수고하셨습니다”라며 박수로 촬영종료를 알리는 감독. 조명이 꺼지고 카메라가 뒤로 물러났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아릿하고 스산했다. 주인 없는 족발집. 문을 열어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다. ‘뚱땡이 족발’ 간판에 그려진 향심이 벌써부터 그립다.

여성동아 2008년 2월 5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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