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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똑똑한 가족여행

“세계 여행과 일기 쓰기, 고전 읽기로 자녀의 감수성·사고력 길러주기”

10년간 5대양 6대주 여행한 정인화 교수 가족 공개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8.02.14 13:55:00

“여행이라는 직접 체험에 독서를 통한 간접 체험이 더해지면 자녀의 사고력과 감수성이 부쩍 자란다”고 말하는 정인화 교수. 그는 두 딸이 초등학생 때부터 방학이면 세계 곳곳을 함께 누비고 귀국한 뒤엔 고전을 읽으며 여행의 감동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도왔다. 그와 두 딸을 만나 특별한 가족여행 비법을 들었다.
“세계 여행과 일기 쓰기, 고전 읽기로 자녀의 감수성·사고력 길러주기”

관동대 교양과 정인화 교수(55)에게 가족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배움의 기회다. 정 교수는 다훈양(24·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과 다영양(23·고려대 행정학과)이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 배낭을 메고 세계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어느 곳을 여행하든 현지에서 느낀 점을 매일 밤 글로 남기게 했다.
“철들기 전에는 놀러 다닌다는 생각으로 여행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아버지가 일기를 쓰게 하셨죠. 마침 그때 아버지가 중국 베이징대에 교환교수로 가시게 돼 1년간 학교를 휴학하고 따라갔는데, 매일 밤 중국에서 보고 느낀 점을 쓰라고 하셨어요. 처음엔 종이 한 장을 채우기도 힘들어 쩔쩔 맸지만, 한 달쯤 하다 보니 점점 글 쓰는 게 쉬워지더군요.”
다훈양은 이때 1년 동안 정 교수와 함께 중국 곳곳을 여행하며 일기를 썼다고 한다. 한번은 아버지가 ‘혼자 여행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권해 티베트 고원에 있는 소수민족 마을 윈난성을 혼자 다녀온 뒤 그 감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때는 중국어가 서툴 때여서 겁이 많이 났어요. 일주일 가까이 고민하다 ‘그래,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여행을 떠났죠. 그런데 막상 혼자가 되니 무한한 자유가 느껴지더군요. 두려움을 박차고 나간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자유와 행복감을 맛본 뒤부터 여행의 진정한 매력을 알게 됐어요.”
다훈양은 중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이때의 여행 경험과 중국의 문화적 특색, 중국의 역사와 예술에 대한 개인적 감상 등을 담은 책 ‘클릭! 차이나’를 펴냈다. 1년 내내 어디를 가든 빼먹지 않고 쓴 일기가 책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정 교수는 이 무렵부터 짧은 여행에서도 ‘일기 쓰기’만큼은 빼먹지 못하게 했다. 사실 여행지에서 매일 밤 졸린 눈을 비비며 일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더구나 ‘오늘 이것저것을 봤다’는 식의 단순 메모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느꼈다’와 같은 감상문 형식으로 써야 했기 때문에 한동안 두 자매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어머니 강예덕씨(49)가 “온종일 힘들게 돌아다닌 아이들이 밤에는 일기 쓰느라 스트레스 받는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말할 정도. 하지만 강씨는 “여행은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공부고, 지금 이렇게 고생하면 훗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말없이 지켜봤다”고 한다.

“여행지에서 매일 일기 쓰고, 귀국 뒤엔 관련 책 읽으며 새로운 문화에 대한 지식과 감성 키웠어요”
“세계 여행과 일기 쓰기, 고전 읽기로 자녀의 감수성·사고력 길러주기”

정인화 교수와 두 딸 다훈(오른쪽), 다영양.


“저희가 일기를 쓰고 나면 아버지가 매일 꼼꼼히 내용을 읽어보고 짧은 평을 달아주셨어요. 또 여행지에서 느낀 궁금증을 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해주시기도 했죠. 여행에서 돌아온 뒤 아버지가 적어준 자료를 찾아 읽으면 현지에서 느꼈던 궁금증이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그 내용을 기존의 일기에 보충하고 정리하면 어느새 책 한 권 분량의 여행기가 완성됐죠(웃음).”
다영양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지난 2003년, 가족과 함께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터키, 이집트 등 이슬람 지역을 배낭여행한 뒤 이 일기를 정리한 책 ‘다영이의 이슬람 여행’을 펴내 화제를 모았다. 평범한 고교생의 눈에 비친 이슬람 역사와 문화가 9·11 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기 때문이다. 2년 뒤인 2005년에는 언니 다훈양이 터키·스페인·카르타고 등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신화의 고향을 여행한 감상을 담은 책 ‘다훈이의 세계 신화 여행’도 펴냈다.
다훈양과 다영양이 이렇게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정 교수가 추천한 관련 서적의 폭이 깊고 넓었기 때문. 다훈양은 이슬람 지역을 여행한 뒤 미국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파헤친 노암 촘스키의 저서 ‘숙명의 트라이앵글’을 찾아 읽었고, 티베트를 다녀온 뒤엔 히말라야의 오지 라다크에 사는 생태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현대사회 비판서 ‘오래된 미래’를 읽었다고 한다. 다영양도 이슬람 지역에서 돌아온 뒤 여행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이슬람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읽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이런 고전을 스스로 읽은 건 여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지적 호기심을 풀고 싶기 때문일 거예요. 이렇게 스스로 원해서 하는 독서의 효과는 논술 성적 잘 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는 독서와는 차원이 다르죠. 저는 여행이라는 직접 체험과 독서를 통한 간접 체험이 결합되면, 사고의 폭과 깊이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정 교수가 자녀에게 여행지에서 매일 일기를 쓰게 한 것은 그렇게 해야 현장에서 느낀 감정과 지적 호기심을 잊지 않고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여행을 하고 일기를 쓰고, 고전을 읽으며 정리하는 과정에서 다훈양과 다영양은 스스로 한 권의 책을 완성할 수 있을 만큼 사고력과 감수성이 부쩍 자랐다.
하지만 이렇게 온 가족이 꾸준히 여행을 다니려면 경제적인 부담이 크지 않을까.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사실 지금껏 우리 가족 여행비는 모두 두 딸이 내온 셈”이라며 빙긋 웃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았어요. 어차피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대신 두 아이 몫으로 매달 20만원씩 저금을 했죠. 그 돈을 모아 여행을 다닙니다(웃음).”
정 교수는 “매달 아이들 학원비로 그 돈 이상을 쓰는 집도 많을 것”이라며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교육비를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정 교수는 두 딸과 함께 지난 10년간의 여행 경험과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담은 책 ‘아빠와 딸이 여행을 하며 고전을 이야기하다’(휴머니스트)를 펴냈다. 책에 담긴 얘기는 모두 가족여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라고 한다.
“가족여행을 떠날 때면 저는 늘 그곳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으며 여러 가지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독서를 권하지 않아요. 아무 선입견 없이 보고 듣고 느끼면서 많은 경험을 얻는 게 일단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책 한 권 읽지 않고 떠나도 여행지에 가면 다양한 감상이 샘솟고 글이 써집니다. 그래서 여행이 좋은 거예요.”

여성동아 2008년 2월 5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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