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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 기자의 키워드 토크

김지영

사랑, 열정,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 ■ 장소협찬·카페 TARA’S(02-3475-6091) ■ 헤어·이화(김청경 퍼포머 청담) ■ 메이크업·김정현(김청경 퍼포머 청담) ■ 코디네이터·서미선

입력 2008.01.23 14:54:00

김지영은 지금 삶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 스크린, 브라운관, 연극무대를 오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던 배우로서의 삶을 잠시 중단하고,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기 때문.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백기를 앞두고 두려움과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김지영

김지영(34)을 만난 건 12월 어느 늦은 밤이었다.
그는 온종일 자신이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 역으로 출연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홍보와 라디오 프로그램 ‘김지영 김일중의 좋아좋아’ 녹음, 그리고 연극 ‘몽연’ 연습으로 바빴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마주앉은 그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힘들긴요. 요즘 하루하루가 제게 얼마나 소중한데요. 할 수만 있다면 저를 스쳐지나가는 시간의 아주 작은 조각까지 모두 다 붙잡아두고 싶어요. 매 순간 좀 더 열심히 할 수 없을까 조바심이 나죠.”
김지영은 새해부터 모든 활동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 2004년 동료 탤런트 남성진(38)과 결혼하면서부터 이미 예정해뒀던 일이다. 결혼 당시 그는 시부모인 탤런트 김용림·남일우와 친정 부모에게 “당분간 연기생활을 더 하다 3년 뒤 아이를 갖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연기력이 한창 무르익었다는 평을 듣는 지금, 그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저는 저를 잘 알아요. 연기를 더 하고 싶은 욕심에 시간을 미루다 보면 계속 ‘한 작품만 더, 한 작품만 더’ 하다 결국 시기를 놓쳐버릴 거예요. 그래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마친 뒤 ‘내년부터는 연기활동을 중단하고 아이 갖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말씀드렸죠. 제가 언제까지 계속 일만 할까 싶어 내심 마음 졸이셨던 시부모님이 정말 기뻐하시더군요(웃음).”
지난 93년 연극 ‘수전노’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지 15년째. 인생의 절반을 무대 위에서 살아온 김지영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복귀까지 최초의 공백기를 갖게 된 셈이다.

김지영

First keyword ; 복·길·이
“전원일기는 내 연기 학교, 연기에 대한 열정 하나밖에 없던 저를 진짜 배우로 만들어줬죠”

연기자 김지영에게는 늘 ‘복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스물두 살, 아직 젖살도 채 빠지지 않은 통통한 얼굴로 ‘전원일기’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스물아홉 살까지 무려 7년 동안 복길이로 살았고, 순박한데다 눈치 없이 솔직하기만 한 ‘양촌리 아가씨’의 이미지는 그에게 빛이자 그림자가 됐다. ‘전원일기’를 끝낸 뒤 김지영이 ‘그대 그리고 나’ ‘올드미스 다이어리’ ‘내 사랑 못난이’ 등 여러 작품에서 눈에 띄는 연기를 보여줬음에도 여전히 ‘복길이’가 그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김지영의 고향은 서울에서도 강남. 경기여고와 한양대를 졸업한 그의 이력은 ‘시골 아가씨’보다는 ‘도회지 깍쟁이’ 쪽에 더 어울린다.
“그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많죠. 실제로 보면 세련되고 예쁜데 늘 사람들이 ‘복길이’로 기억하는 게 속상하지 않느냐고요(웃음). 그런데 저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복길이’가 없었다면 지금의 김지영도 없을 테니까요. ‘전원일기’는 저를 연기자로 거듭나게 해준 학교 같은 작품이에요.”
김지영이 연기자의 길에 접어든 과정은 좀 독특하다. 평생 단 한 번도 배우의 꿈을 꿔본 적 없던 그는 지난 93년, 대학교 1학년 때 내한공연을 가진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뮤지컬 ‘캣츠’를 보러 갔다가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듯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지영

“무대 위에서 고양이처럼 자유롭고 아름답게 움직이는 배우들의 몸짓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꾼 거죠. 인간이 마치 신이 된 듯 한 존재를 창조하고, 거기에 영혼을 불어넣는 게 마술처럼 느껴졌어요. 그전까지는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숫기 없는 스타일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열정이 제 안에 생긴 거예요.”
그가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엄마, 나 배우가 되고 싶어”라고 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그래라. 누가 말리니?”라고 답했다고 한다. 김지영이 정말 연기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바로 다음 날부터 대학로를 돌아다니며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고, 혼자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모노드라마를 연습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연극반 활동 한 번 한 적 없는 완전 초보였으니 오디션을 보는 족족 떨어졌죠.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오디션에서 뭘 해야 하는지조차 몰랐어요. 그렇게 연이어 한 백 번은 떨어진 것 같아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포기가 안 되더라고요. ‘난 이 일을 해야 한다, 이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만 계속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 실패의 아픔을 맛본 오디션장에서 김지영은 사고를 쳤다. 자신의 부족함이 부끄럽고, 배우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억울해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린 것이다.
“처음엔 훌쩍이다가 나중엔 아예 엉엉 소리내 울었어요. 말리는 사람들을 붙잡고 ‘열심히 할게요. 제발 시켜만 주세요’ 하며 울부짖었죠(웃음). 마침 그 극단에서 ‘연기에 대한 열정이 충만한 신인’을 캐스팅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얼토당토않게 제가 뽑혔죠.”
그렇게 무대에 데뷔한 김지영은 몇 편의 연극에 더 출연하다 우연히 그의 작품을 본 방송사 PD의 눈에 띄어 KBS 드라마게임 ‘가장 행복하게 깨는 남자’에 캐스팅됐고, 96년 ‘전원일기’를 통해 마침내 본격적인 ‘연기자’의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원일기’에는 최불암 선생님, 김혜자 선생님, 고두심 선생님, 유인촌 선생님 등 정말 어떻게 이 많은 분이 한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나 싶을 만큼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다 모여 계셨어요. 그분들이 혼신을 다해 만들어가는 작품에 갓 스물 넘은 제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죠. 여전히 연기에 대한 열정만 있을 뿐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그분들을 통해 진짜 연기라는 걸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어요.”
‘복길이’가 촌스럽고 못생기고 철없이 짝사랑만 하는 캐릭터인 것이 그에겐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원일기’로 얼굴을 알린 뒤 2년쯤 지났을 때부터 매니지먼트사와 지인들이 “이미지가 더 망가지기 전에 그만 드라마에서 빠지자”고 권유했지만, 그는 “내가 ‘복길이’라는 이유로 나를 캐스팅하지 않는 PD가 있다면 할 수 없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예뻐 보이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연기를 배우는 것”이라며 버텼다고 한다. 그는 ‘전원일기’가 끝난 뒤엔 1년간 유인촌이 대표로 있는 ‘극단 유’의 연극 ‘노틀담의 꼽추’ 무대에 서며 연기력을 갈고닦았고, 조금씩 자신의 연기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김지영

Second keyword ; 열·정
“어린 시절 앓던 희귀병이 기적처럼 치료돼 더욱 뜨겁게 살고 있어요”



김지영은 자신을 ‘연기쟁이’라고 말한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너는 정말 그렇게 연기가 좋니? 괜히 멋있어 보이려고 가식적으로 그러는 거 아니야?’라고 물을 만큼 연기가 좋다”고 했다.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 얘기할 때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서는, 심지어 절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열정이 묻어났다.
“그런가요?(웃음) 어쩌면 제가 매 순간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사실 저는 지금 제 삶이 일종의 덤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김지영은 자신이 어린 시절 혈관이 서로 뭉치는 희귀병에 걸려 “성인이 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왜 그런 증세가 나타나는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조차 밝혀지지 않은 병이라 그는 늘 학교와 병원을 오가며 “미래를 어떻게 꿈꿔야 할지 모르는”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입원도 반복돼 학년이 넘어갈 때마다 “계속 학교에 안 나오면 출석일수가 모자라 유급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고등학교 때까지 모두 여덟번의 수술을 받았어요. 그 과정에서 기적처럼 병이 치료돼 지금은 괜찮아졌죠.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직 제 안에 남아 있어요. 지금도 가끔씩 ‘내일 아침 다시 눈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김지영

그가 스무 살, 연기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을 던지고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것이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도전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전까지 김지영이 할 수 있었던 건 병실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혼자 글을 끼적이거나, 영화와 만화를 보며 자신은 살 수 없을지도 모를 ‘건강한 삶’을 동경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한창 해리슨 포드가 고고학자 역을 맡은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 빠져 있었어요. 나도 건강해지기만 하면 인디애나 존스처럼 고고학자가 돼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하리라 생각했죠. 그래서 대학도 문화인류학과에 입학했고요(웃음).”
연기자의 길에 들어서면서 고고학자의 꿈은 접었지만, 그에겐 아직도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동경이 있다. 연기에 뛰어드는 과정은 순간 순간이 새로운 ‘모험’이라고 한다. 연기자를 ‘머리로 연기하는 이’와 ‘가슴으로 연기하는 이’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면 김지영은 철저하게 후자에 속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극 안에 뛰어들지 않으면, 자신이 순수하게 그 인물이 되지 않으면 연기를 아예 못하는 타입이라고 한다.
“한 배역을 맡으면 전 완전히 그 사람이 돼요. 그의 감정으로 일기를 쓰고, 식성과 성격까지 바꿔버리죠. 가끔은 그렇게 일상과 연기가 하나로 묶이는 게 견딜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지만, 동시에 그렇게 흠뻑 빠져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
요즘 그는 연극 ‘몽연’에 빠져들어, 그 ‘죽을 만큼 괴로우면서 동시에 죽을 만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몽연’은 끔찍이 사랑하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꿈속에서라도 그를 만나기 위해 꿈으로 빠져드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이 작품에서 그는 남편을 잃고 고통에 울부짖는 여인 ‘유인우’ 역을 맡아 매번 연극을 할 때마다 20분 전부터 무대 뒤에서 혼자 울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막이 오르면 제가 ‘여보 여보~’ 하면서 남편을 찾아요. 막 장사가 끝나고 저승길로 떠나려는 그를 잡지 못해 애를 태우죠. 내내 슬프기만 하면 견딜 수 있을 텐데, 작품 중간 중간 우리의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는 부분을 연기하다보면 정말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아 만신창이가 돼버려요.”
작품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그의 눈은 어느새 촉촉이 젖어 있었다. 회가 거듭될수록 더욱더 ‘유인우’의 삶에 빠져들어, 이제는 연기와 일상 사이의 공간을 유지하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고 했다. 그가 얼마 전 연출자에게 “제게 이걸 계속 시키시면 아무래도 일신상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연출자 역시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른 배우들은 작품을 할 때 자신이 겪은 실제 사건을 떠올리며 연기하기도 한다는데, 전 그러지를 못해요. 그냥 배역 자신이 되죠. 그게 힘들어서, 더 이러다 보면 ‘나 못 살겠다’는 심정으로 공연을 뿌리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지영의 문제는, 그러면서도 공연을 뿌리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몰입 속에, 열정 속에 자신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행복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지영은 “나는 배우로 태어나지 못했지만, 배우로서 죽고 싶다”고 말한다.

김지영

Third keyword ; 가·족
“가족은 내 연기를 지탱해주는 힘, 예쁜 아기 낳아 더 행복한 가정 꾸릴래요”

이렇게 작품에 빠지면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내어놓는 그를 지켜주는 건 그의 가족이라고 한다. ‘유인우’가 되어 남편을 잃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도, 문득 자신의 곁에 건재한 남편을 보며 “아, 나는 유인우가 아니라 김지영이지”라고 생각한다니, “가족이 없다면 나는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닌지도 모른다.
95년 KBS 일일드라마에서 오누이 사이로 만나 10년 가까이 친남매처럼 지내다 결혼한 남편 남성진은 여전히 친구 같고 오빠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지난 몇 달 동안 김지영은 전라도에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촬영하고, 남성진은 경상도에서 드라마 ‘대조영’을 찍느라 도 경계를 오가며 잠깐씩 만났지만, 그래도 그의 존재는 김지영에게 가장 든든한 힘이라고. 연기자 선배로서 며느리의 연기 열정을 100% 이해해주는 김용림, 남일우도 남성진에게 늘 “지영이 힘들지 않게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하라”고 말해주는 고마운 어른들이라고 한다.
“우리 가족은 매년 한 번씩 온 식구가 모여 여행을 가요. 저희 엄마 아빠와 동생, 그리고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시누이까지 8명이 함께 놀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 가족’이죠. 시누이와 동생을 더해 젊은 사람 넷만 따로 펜션을 빌려 놀러 간 적도 많고요. 이렇게 화목한 가정 안에서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건 제가 가진 최고의 행복인 것 같아요.”
김지영이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잠시 접어두고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한 것도 가정의 행복을 더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기를 할 때면 일상의 삶을 송두리째 던져버리는 자신의 성격상 아이를 잘 기르려면 잠시 일을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요즘 하루하루는 두렵고, 설레고, 마음 아프면서도 행복해요. 아이를 낳고, 돌보려면 몇 년간은 연기를 떠나 있겠죠. 하지만 그 시간이 제게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한 소중한 경험이 될 거라고 믿어요. 언젠가 제가 다시 배우로 돌아오면, 그동안 성숙되고 깊어진 더 좋은 모습을 꼭 보여드릴 겁니다.”

여성동아 2008년 1월 5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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