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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 기자의 키워드 토크

성깔 있는 남자 김호진과 나눈 맛깔나는 이야기

글·송화선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 ■ 장소협찬·르삐에(Le pied)

2007. 12. 24

요리하는 남자. 요즘 김호진을 가장 잘 표현하는 수식어다. 최근 케이블 TV에서 요리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는 그는 삶도, 가정생활도 멋지게 요리할 줄 아는 진짜 ‘요리사’다. “내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말하는 17년차 배우, 7년차 남편, 네 살배기 딸 효우의 아빠 김호진을 만났다.

성깔 있는 남자 김호진과 나눈 맛깔나는 이야기

“가족, 요리, 연기 어때요?”
탤런트 김호진(37)과 키워드 토크를 나누기로 했을 때 그가 처음 제시한 단어는 이 세 가지였다. 탤런트 김지호와 결혼한 지 7년째. 풋풋한 청춘 스타가 서른일곱 중견 연기자로 변신하는 동안 변함없이 자신의 곁을 지켜준 건 이 세 가지였고, 앞으로 평생 함께할 것도 이것뿐이라고 했다. 일면 평범하게 여겨지던 단어들은 그와 함께 얘기를 나누는 동안 ‘성깔, 맛깔, 색깔’로 바뀌었다. 성깔 있는 남자, 하지만 자신만의 색깔로 삶을 맛깔나게 ‘요리하는’ 남자. 그가 바로 김호진이다.

First keyword ; 성깔 “지호를 안 만났다면 저는 지금도 까칠하고 제멋대로인 사람으로 살았을 거예요”

“제가 TV로 보면 착해 보인다면서요? 저 사실은 굉장히 까칠해요.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저를 불편해하죠. 잘 알거나 친한 사람들은… 음…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도 저를 싫어하는군요. 하하하.”
김호진과 나눈 대화의 시작은 그의 ‘성깔’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지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어이없게도 “사람들이 다 나를 싫어한다”고 했다.

성깔 있는 남자 김호진과 나눈 맛깔나는 이야기

“외아들로 자라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주위와 얽히는 걸 싫어했어요. 다른 사람이 제게 피해 주는 게 싫고, 제가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는 것도 싫죠. 예를 들어 누가 저와 생각이 다르고 이해가 안되잖아요? 그러면 저는 ‘아,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는 그 사람을 그냥 안 봐요. 하하하. 계속 만나려면 어떻게든 설득해서 그 사람 생각을 바꾸거나, 아니면 그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 저를 바꿔야 하는데 그 두 가지 다 제 체질에 안 맞거든요(웃음).”
김호진은 예전 자신의 성격을 “부러지면 부러졌지 휘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일을 할 때도 그랬다. 언제나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밝혔고,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다시는 같이 일하지 않았다.
91년 KBS 공채 탤런트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뒤 10년 동안 이런 ‘성깔’을 유지하며 후배들 사이에서 ‘무서운 선배’로 정평이 나 있던 그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건 지난 2000년. 드라마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통해 미래의 아내 김지호를 만나면서부터라고 한다. 털털하고 거침없는 김지호와 만나 ‘얽히게’ 되면서, ‘얽히기 싫어하던’ 삶의 방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고.
“지호를 처음 만난 건 90년대 말 한 선배의 생일 파티에서였어요. 첫인상이 좋아서 소개 시켜달라고 했더니 그 선배가 바로 ‘야, 지호는 너 같은 아이 싫어해’ 그러더라고요(웃음). 농담반 진담반으로 ‘너희 둘은 안 어울린다’는 얘기를 한 거죠. 사실 제가 봐도 우리 둘은 완전히 다른 것 같았어요. 그게 지호를 만나고 싶은 이유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선배가 안 도와주는 바람에 첫 만남은 흐지부지 끝나버렸죠,”
몇 년 후 드라마 ‘사랑은 아무나 하나’에서 서로 상대역이 돼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김지호에 대한 기억이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드라마 초기 그는 변함없이 까칠했고, 김지호는 여느 후배들처럼 그를 슬슬 피해다녔다고.
“그런데 남녀관계라는 게 참 신기하죠. 어느 순간, 왜 그런지 모르게 조금씩 마음이 끌리고 관심이 가잖아요(웃음). 저도 언제부턴가 저와 다른 지호의 면들이 또다시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특히 그에게 인상적이었던 건 ‘뭐든 줄줄 흘리고 다니는’, 그러면서도 전혀 속상해하지 않고 늘 ‘하하’ 웃는 김지호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지우개 하나 잃어버린 적 없을 만큼 꼼꼼한 김호진에게 그런 김지호의 모습은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졌다고. “처음에는 ‘쟤 참 독특한 아이네’ 하며 눈길이 갔어요. 그러다 보니 예뻐 보였고요. 제가 그러던 무렵 지호도 조금씩 제가 눈에 들어왔다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네요(웃음).”
두 사람은 2001년 12월 결혼식을 올렸고, 3년 뒤 딸 효우를 낳았다. 사실 김호진은 인터뷰 전 인생의 키워드를 얘기해달라고 했을 때 “지호가 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으니, 키워드 하나는 ‘와이프’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하하하’ 소리 내 웃은 적이 있다. 이때는 그 말이 김지호에 대한 애틋한 사랑 고백으로 들렸는데, 알고 보니 말 그대로 “김지호와의 만남이 내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처럼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결혼 전에 ‘~ 때문에 좋아’ 하던 사람은 꼭 결혼 뒤 ‘~ 때문에 정말 못 살겠어’ 한다고요. 제가 그랬어요. 처음엔 저와 다른 게 매력적이었는데, 그게 막상 현실이 되니 정말 못 견디겠더라고요(웃음).”
그는 김지호가 왜 자꾸 소지품을 흘리고 다니는지, 왜 물건을 쓰고 나면 도로 제자리에 갖다놓지 않아 다음 사람을 애먹이는지, 그리고 왜 몇 번씩이나 지적한 내용을 잊어버리고 ‘까먹었다’며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혼 초 모든 게 다 예뻐 보이던 시기가 지난 뒤부터 그런 면 때문에 많이 다퉜어요. 손톱깎이를 쓰려고 찾는데 제자리에 없으면 일단 화가 났거든요. ‘여기 있던 거 지난번에 쓰고 어디다 뒀어?’ ‘어? 모르겠는데…. 거기 한번 찾아보지, 왜’ ‘나 이런 거 필요할 때 제자리에 없으면 화나는 거 몰라?’ ‘아니,좀 찾아보면 되지 왜 화를 내?’…. 이렇게 싸움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부러지면 부러졌지 결코 굽히지 않던’ 원래 성격이 살아났지만, 이미 김호진에게 김지호는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어, 그렇구나. 그럼 안녕~’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난생 처음 누군가에게 적응하고, 자신을 적응시키는 과정을 거치며 비로소 자신이 “사람이 됐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지호도 결혼 초엔 별것도 아닌 일로 ‘부르르’ 떠는 저 때문에 마음고생 많이 했을 거예요. 그 시기를 지내고 나니 이젠 지호가 물건을 여기저기 흘려놓은 걸 보면 웃음이 나요. ‘아유~ 이게 지호지’ 싶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겼죠. 얼마 후면 결혼 6주년이 되는데, 결혼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은 요즘 저를 보면 깜짝 놀라요. ‘재수 없던’ 김호진이 변했다고요(웃음).”
그래서 김호진은 요즘 김지호와의 관계를 ‘제3기’라고 했다. 모든 게 신선하고 사랑스럽던 1기, 너무 달라서 밉기만 하던 2기를 지나 이제 무슨 행동을 하든 ‘웃겨 보이는’ 3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지호는 늘 이렇게 새롭다니까요(웃음). 지호를 안 만났다면 저는 여전히 까칠하고 제멋대로인 모습으로 살았을 거예요. 물론 결혼 뒤 저를 알게 된 사람들은 지금도 ‘도대체 무슨 성격이 좋아졌다는 거야?’ 할 테지만요. 그분들에게 결혼 전 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하하하.”

성깔 있는 남자 김호진과 나눈 맛깔나는 이야기

Second keyworld ; 맛깔 “지금 하는 요리 공부가 배우로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어요”



김호진의 말대로 결혼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타고난 동안 덕에 20대 시절 청소년 드라마 ‘맥랑시대’에서 고교생 역할을 맡으며 데뷔한 그는 결혼 전까지 줄곧 젊고 풋풋한 이미지로 인기를 모았다. 90년대 중반 연예오락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이나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의 진행자로 활동한 것도 그가 그 시절 청춘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창 일이 많을 때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죠. 제가 이렇게 몇 달씩 쉴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결혼 뒤 언제부턴가 소강기라고 해야 하나… 그런 시기가 오더라고요. 계속 일을 하긴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거죠. 처음 그런 변화를 느꼈을 때는 당황스러웠어요. ‘어, 이게 뭐지?’ 싶었고, 여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죠.”
그때 김호진이 시작한 것이 요리 공부였다. 2000년 케이블 TV 요리 채널에서 ‘솔로의 진수성찬’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요리의 매력에 빠져 ‘언젠가 시간이 나면 요리를 공부해야지’ 마음먹었던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성깔 있는 남자 김호진과 나눈 맛깔나는 이야기

“돌이켜 생각해보니 요리를 처음 만든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어디선가 먹어본 프렌치토스트 맛을 잊지 못해 집에서 혼자 만들어 먹은 적이 있죠(웃음). 식재료에도 관심이 많아서 어머니가 시장 가실 때면 꼭 따라가 이것저것 구경하곤 했어요. 본격적으로 요리를 한 건 ‘솔로의 진수성찬’ 때가 처음이지만 제 안에는 꽤 오랫동안 ‘요리 본능’이 꿈틀대고 있었던 거 같아요.”
마침 지인이 “집 가까운 곳에 한식조리사 자격증 취득반을 운영하는 학원이 있다”며 “이왕 요리를 배울 거면 그곳에 다니는 게 어떠냐”고 조언했다고 한다.
“정말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매일매일 학교 다니듯 재밌게 다녔어요. 제가 요리하는 걸 못 본 사람들은 대부분 ‘연예인이 하면 뭘 얼마나 하겠어’라고 생각하는데, 저 요리 정말 제대로 배웠답니다. 딱 칼 잡고 요리 시작하면 다들 깜짝 놀라요(웃음).”
‘뭐든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는 김호진은 한식조리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뒤 ‘이탈리아 쿠킹 마스터 과정’을 이수하고, 양식·중식·일식·복어 조리사 자격증까지 차례로 취득했다. 양식·중식·일식 요리를 공부할 때는 학원 주말반에 등록해 석 달 동안 주말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요리만 했다고 한다. 그는 “최선을 다해 노력한 뒤 합격증을 받아 들었을 때 느끼는 기쁨은 대학 입시에서 합격한 것 못지않다”며 활짝 웃었다.
김호진이 생각하는 요리의 매력은 하나의 요리를 완성할 때까지 40분~1시간 동안 완벽하게 집중할 수 있다는 점. 그는 요리에 빠져들어 집중하는 순간이 더없이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요리를 하는 건 정말 재밌는 영화를 혼자 보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에요. 요리가 완성되면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 연기한 뒤 느낄 수 있는 만족감과 희열이 찾아오죠. 그렇게 만든 요리를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면 정말 행복하고요.”
최근 김호진은 케이블TV에서 요리 토크 프로그램 ‘쿡·톡(Cook·Talk)’의 진행을 맡았다. 게스트와 대화를 나누면서 하나의 요리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이 프로그램에서 김호진은 재치 있는 진행자이자 요리전문가로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낸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한 뒤부터 비로소 사람들이 ‘네가 진짜 요리할 줄 아는구나’ 하고 인정해준다”며 활짝 웃었다.
“하지만 제게 요리는 취미생활일 뿐이에요. 요리를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조금도 없죠. 제가 복요리를 정말 좋아하는데, 복조리사 자격증을 딴 뒤 몇 달 동안 아예 못 먹었어요. 냄새도 맡기 싫을 만큼 복에 질렸거든요(웃음). 요리를 제가 일로 갖게 되면 그때부터 가장 좋은 취미를 잃게 되지 않겠어요? 이건 그저 저와 제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제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그래서 연기를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양념일 뿐이에요.”

성깔 있는 남자 김호진과 나눈 맛깔나는 이야기

Third keyword ; 색깔 “어떤 역을 맡든 고급스럽게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요리가 취미라면, 김호진에게 연기는 ‘팔자’다. 초등학교 시절 혼자 집에 앉아 TV에 빨려들어갈 듯 ‘주말의 명화’나 ‘토요 명화’를 보던 시절부터 그는 막연히 “나도 언젠가 저런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꿨다고 한다. 중학교 졸업 무렵 “예고에 진학하고 싶다”는 말로 처음 자신의 목표를 드러내보였다.
“집에서 난리가 났죠. 어머니가 일단 인문계 고등학교에 간 뒤 대학 갈 때 다시 생각해보자며 저를 설득하셨어요. 3년을 꾹 참은 뒤 대학원서 쓸 때 다시 연극영화과에 가겠다고 하자 그때는 더 말리지 못하시더군요.”
김호진이 생각하는 자신 연기의 원천은 ‘외로움’. 그는 심수봉의 노랫말과 장사익의 목소리를 좋아하고,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해삼 한 토막에 소주 반 잔/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로 시작되는 이생진의 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읽고서 “시라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라고 처음 생각했다고 한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제 안에는 늘 외로움과 슬픔이 있어요.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눈물이 나죠. 지호는 이성적인 성격이라 그런 저를 이해 못해요. 같이 뭔가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오빠, 또 울 거지?’ 하고 놀리는데, 그래도 저는 못 참고 눈물을 흘려요(웃음).”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김지호는 “남편은 날씨가 흐리면 항상 감성에 빠질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김호진은 “사실 나는 날씨가 맑은 날도 감성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요.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집 근처 극장에서 조조 영화를 보는데, 텅 빈 극장에 앉아 혼자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할 수가 없어요(웃음).”
그는 결혼 후 한동안 이런 ‘혼자만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위 시선 때문에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와 아내, 둘 다 많이 알려진 사람인 탓에 ‘혼자만의 외출’이 주위의 눈길을 끈 것. 외부 모임에 혼자 참석하고, 혼자 영화를 보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어김없이 “김호진이 혼자 다니더라”는 소문과 함께 불화설이 퍼지곤 했다고 한다.
“처음엔 그게 속상해서 지호한테 ‘같이 다닐까?’ 물은 적도 있어요. 그런데 지호도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굳이 주위 사람 시선을 신경 써’ 하더라고요. 그게 저희 스타일인 거죠. 그래서 결혼 초 저희 사이를 둘러싸고 갖가지 소문이 돌 때도 억지로 ‘저희 잘 살고 있어요~’ 보여주는 행동 같은 거 안 했어요.”
그와 김지호가 네 살배기 딸 효우를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유명인 부모를 둔 탓에 태생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최대한 막아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시간이 날 때면 모자 눌러쓰고 딸과 함께 이곳저곳 놀러 다니며 ‘평범한 아빠’가 줄 수 있는 기쁨도 모두 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집 근처 놀이공원에는 하도 자주 가서 이제 일하는 사람들이 저와 효우를 다 알 정도예요. 평일 낮에 아빠가 아이와 함께 찾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눈에 띈 거겠죠. 효우랑 둘이 동네 대형 마트에도 자주 가는데, 거기서 파는 신발 다 신어보고 시식하는 것도 먹으며 자유롭게 놀아요. 효우는 고집 세고 제멋대로인 게 지호를 똑 닮았지만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웃음).”
효우와 함께 놀고 있을 때면 “아이가 태어난 뒤 여유 시간이 생긴 게 축복이라는 생각도 든다”는 김호진. 하지만 그의 꿈은 어떤 역을 맡든 제 색깔을 내는 좋은 배우로 70, 80세까지 계속 활동하는 것이다. 머리가 하얗게 샌 뒤에도 20대 풋풋한 청춘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작업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고 한다.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시간과 여유는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연습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역을 맡든 가장 그 존재답게, 고급스럽게 연기하는 배우로 평생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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