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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병원 원장, 밤에는 고깃집 사장으로 바쁘게 사는 주혜란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07.12.24 16:20:00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의 전 부인으로 한때 ‘경기도의 힐러리’라 불리던 주혜란씨가 서울 강남에 고깃집을 열어 화제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보건소장, ‘에이즈 박사’ 등으로도 유명했던 그가 두 번의 구속과 두 번의 이혼을 겪은 뒤 낮에는 노인요양병원 원장으로, 밤에는 식당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얘기를 들었다.
낮에는 병원 원장, 밤에는 고깃집 사장으로 바쁘게 사는 주혜란

지난 11월 초, ‘경기도의 힐러리’ 주혜란씨(59)가 서울 강남에 고깃집을 열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 나섰다. 주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보건소장으로, 에이즈 환자 복지문제에 앞장섰던 인물. 또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의 전 부인으로 한때 ‘경기도의 힐러리’라는 별명을 얻으며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에 연루돼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된 뒤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주씨는 알고 보니 고깃집뿐 아니라 병원도 운영하고 있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시흥의 시흥현대요양병원을 찾았을 때, 주씨는 병원 앞에서 막 가방을 둘러메고 어디론가 나서고 있었다. 입원 환자인 한 할머니가 먹고 싶다고 해서 밤과자를 사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엄마(주씨는 그의 병원 환자들을 모두 이렇게 불렀다) 한 분이 지난번에 제가 사다드린 밤과자가 참 맛있었다고 하셔서요. 요 앞 빵집에 얼른 다녀올 테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릴없이 그를 기다리다 빵을 사들고 온 주씨와 함께 병실로 올라가자, 그는 6인실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 한 분 한 분에게 빵을 권하며 불편한 데 없는지를 물어본 뒤 “엄마, 우리 같이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 부르자, 뭐 부를까?” 하고 박수 장단을 치며 노래도 불렀다.
시흥현대요양병원은 치매노인 등 노인 환자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곳. 잠시 후 원장실에 돌아와 마주앉은 주씨는 “치매노인들한테는 노래가 제일 좋거든요. 하루 종일 화내고 소리 지르며 욕하는 분들도 노래만 시작하면 웃으면서 따라 불러요”라고 말했다.

2002년 구속됐다 풀려나온 후 방황, 봉사활동하면서 마음 다잡아
경기도지사 부인 시절, 화려한 미모와 활달한 성격으로 ‘사교계의 여왕’이라고 불리기도 하던 그가 노인들 속에서 부대끼는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주씨는 “요즘은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해질 때까지 간직해 때투성이가 된 알사탕을 입에 넣어주면서 ‘원장님만 몰래 먹으라’는 노인들 때문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눈시울을 적신다”고 말했다.
주씨는 지난 99년 경기은행 퇴출을 막아준다는 조건으로 4억원을 받고 2002년엔 경기도 성남시 분당 파크뷰아파트 건축허가를 사전에 내주는 조건으로 1억여원를 받은 혐의로 두 차례 구속된 적이 있다.
“각각 6개월씩 1년을 감옥에 있었죠. 너무 괴롭고 비참해서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구속됐다가 풀려나온 뒤 연락해보면 ‘지금 좀 바쁜데’ 하면서 피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딸이 있는 미국을 오가며 마음을 못 잡고 방황했지만, 봉사활동하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졌어요. 두 번째 사건으로 구속됐다 풀려난 뒤 5백 시간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는데, 복지시설에서 장애인·치매노인과 함께 지내며 ‘아직 내가 이 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5백 시간 채우고 나서 제가 자원해 1백 시간 더 일했을 만큼 제게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그러던 차에 이 노인병원을 맡을 기회가 생겨 그는 주저없이 병원 근처에 13평짜리 오피스텔을 얻어 이사왔다고 한다. 하루라도 그의 모습이 안 보이면 원장님 어디 갔느냐고 찾고, 그를 만나지 못하면 원장실에 들어와서 사진이라도 집어가는 환자들에 대해 그는 “평생 어느 누가 나한테 이런 사랑을 줬던가 싶어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주씨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 쇼와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일반 병원이 아닌 보건소에서 의사 일을 시작해 화제를 모았다. 경기도 의정부시, 서울 강동구·용산구 등에서 보건소장을 지내며 유흥업소의 매매춘 여성을 위한 건강검진과 에이즈 예방에 힘써 ‘윤락여성들의 대모’ ‘에이즈 박사’ 등의 별명을 얻기도 했다.

낮에는 병원 원장, 밤에는 고깃집 사장으로 바쁘게 사는 주혜란

주혜란씨는 식당에서 직접 손님을 접대하고 여유시간에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분위기를 돋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곳에서처럼 큰 사랑을 받아본 적도 준 적도 없었다고 회고한다. “워낙 사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남들에게 오해도 많이 받았다”는 주씨는 한평생 갈구하던 사랑을 변두리 작은 노인병원에서 원 없이 받고 퍼주고 있다고 했다.
주씨는 부모가 모두 의사이고 7남매 가운데 5명이 의사인 의사 집안의 둘째 딸. 지난 2000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 주인호 박사는 지난 69년부터 17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세계보건기구 수석고문관으로 활동한 ‘한국의 슈바이처’였다. 어머니 김경신 박사는 올해 아흔 살이지만 지금도 자신의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한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주씨도 자연스레 ‘봉사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고려대 의대 본과 2학년이던 73년, 1학년 때 미팅으로 만난 서울대 법대생과 결혼해 딸 애령씨를 낳았다. “워낙 사랑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생겼는데, 당시 아프리카에 계시던 부모님은 딸이 임신한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당시 우간다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어머니가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집안에서 기어다니는 아기를 보고 ‘얘는 누구냐’고 물었을 정도라고.
“그런데 결혼생활을 오래 하지는 못했어요. 연애할 때는 몰랐는데 첫 남편은 ‘여자들 설치고 다니는 거 싫다’면서 제가 의사되는 걸 반대할 만큼 보수적인 남자였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열심히 살겠다는 열정 빼면 시체인 제가 그런 남자와 오래 살 수 있었겠어요…? 딸이 세 살 때 결국 이혼을 선택했죠.”
주씨는 이후 91년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대리대사였던 경제 관료 출신 임창열씨와 결혼했지만, 11년 만인 지난 2002년 가을 두 번째 이혼으로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두 번째 이혼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진짜 내 인생을 살고 싶어 한 이혼이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병원 일에 지칠 때 건강한 이들로 북적대는 식당에서 활력 찾아”
그가 고깃집을 문 연 것은 지난 9월. 주씨는 “지난 여름 친구가 하는 가든 식당에 갔다가 일을 좀 도와줬는데 아주 재미있었다”며 “고기를 굽고 불판을 갈아주는 게 신났다. 하루 팁을 16만원이나 벌어서 직원들에게 나눠줬더니 친구가 ‘장사는 네가 해야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걸 계기로 몇 년 전부터 단골로 다니던 식당을 인수했어요. 사실 그전엔 의사니까 평생 환자를 만나야 하고, 전과자도 만나고, 늘 힘든 사람들만 봤는데 여기선 건강한 사람 만나며 돈까지 버니까 정말 좋아요.”
그가 병원 일을 마치고 식당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7시쯤. 주씨는 식당에 도착하면 병원장 분위기를 완전히 벗고 능숙한 식당 사장이 된다고 한다.
“손님을 반갑게 인사하며 맞고, 물수건을 대령하고, 정중하게 주문받고, 불판 갈아주고, 고기를 썰어 굽는 고깃집의 모든 서비스를 다 제가 해요(웃음). 술 취해 비틀거리는 손님이 있으면 팔을 붙들고 계단 아래까지 모셔다 드리기도 하죠. 고깃집을 하든 병원을 하든 내 집에 온 손님을 맞는 마음은 다 똑같거든요.”
피아노 연주가 특기인 주씨는 다소 여유가 생기면 식당홀에 마련된 피아노에서 근사한 연주를 선보여 식사 분위기를 돋우기도 한다. 그 때문에 ‘여사장이 피아노 치고 노래도 부르는 고깃집이 있다’는 소리만 듣고 식당을 찾았다가 주씨를 알아보고 놀라는 손님들도 많다고.
“가끔 ‘박사님이 이게 웬일이시냐’며 놀라는 사람을 만나죠. 얼마 전엔 손님방에서 사장님 찾는다고 해서 가봤더니 일행 가운데 한 명이 놀라서 일어나며 ‘기억하시냐, 유엔에서 만났던 아무개 대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런 이들을 통해 차차 주씨가 식당을 열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보건소장 시절 가깝게 지내던 이들부터 시작해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이들이 하나 둘 찾아와 요즘은 식당을 연 데 대한 또 하나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매일 밤 식당이 문을 닫을 때까지 일하는 그가 일찍 식당을 떠나는 때는 병원에서 돌아가실 것 같은 환자가 생겼다는 연락이 올 때. 그때는 만사 제치고 바로 경기도 시흥으로 달려간다고 한다.
“아까 밤과자 찾던 그 할머니 소원이 하늘나라 갈 때 제가 옆에서 손 붙잡고 찬송가 불러주는 거거든요. 당신이 의식 없어도 꼭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많아요.”
문득 그의 목에 걸린 청진기에 눈이 갔다. 주씨는 청진기를 옷 밖으로 내놓지 않고 꼭 옷 안에 넣고 다닌다고 한다. 청진기가 환자의 맨살에 닿을 때 차갑지 않도록 늘 자신의 체온으로 데워놓는 것이다.
“병원과 식당일을 함께 하며 요즘 새삼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하루 종일 노인 환자들과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죽음을 일상처럼 받아들이게 되고 우울해질 때가 있는데, 식당일을 통해 다시 활력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여성동아 2007년 12월 5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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