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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작가의 향기

15년 만에 새 소설 펴낸 베스트셀러 ‘소설 목민심서’ 작가 황인경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7. 12. 24

지난 92년 발표돼 현재까지 5백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소설 목민심서’의 작가 황인경씨. 15년 만에 새 장편소설 ‘영웅 고선지’를 발표한 그를 만나 한때 무속에 의지해야 했을 만큼 힘들었던 방황과 좌절, 글쓰기에 대한 열정으로 이를 극복한 사연에 대해 들었다.

15년 만에 새 소설 펴낸 베스트셀러 ‘소설 목민심서’ 작가 황인경

90년대 초반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은 ‘소설 목민심서’의 작가 황인경씨(51)가 15년 만에 신작 소설 ‘영웅 고선지’를 펴냈다. 지난 92년 발표돼 현재까지 5백만 부가 팔린 ‘소설 목민심서’는 황씨가 10년의 세월을 쏟아부어 완성한 역작. 조선시대 천재 학자 정약용을 우리 시대에 새롭게 조명한 작품으로 대중적 인기뿐 아니라 평단의 호평까지 동시에 받았다. 이후 15년간 자취를 감췄던 그가 오랜 침묵 끝에 또 한 편의 장편소설을 선보인 것. 이번 작품의 주인공 고선지는 고구려 유민에서 당나라 장수가 된 인물로,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서역 72개국을 정복한 대장수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이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한 건 ‘소설 목민심서’를 펴낸 직후부터였어요. ‘소설 목민심서’의 주인공이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고독하게 학문적 업적을 쌓은 정약용 선생이었기 때문에 다음 작품은 활동적인 인물에 대해 쓰고 싶었죠. 아울러 외국에도 알릴 만한 인물을 찾다 보니 고선지가 떠오르더군요.”
그러나 황씨가 고선지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하자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말렸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조선시대에 국한돼 있었기 때문에, 그 이전 시대로 올라가면 독자들의 관심을 얻는 데 실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저는 언젠가 사람들이 조선시대 역사에 식상해하며 새로운 것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꿋꿋이 고선지에 대한 자료를 찾고 집필을 시작했죠.”
1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황씨의 예상은 적중했고, 그는 사극의 인기와 더불어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관심이 한창 높아지고 있는 이때 ‘시의적절하게’ ‘영웅 고선지’를 내놓게 됐다. 그의 작품은 벌써 영어·중국어·일본어 등으로 번역 출간이 결정됐으며, 조만간 영화와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소설 목민심서’는 당시 5권으로 출간됐고, ‘영웅 고선지’도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된 장편소설이에요. 어린 시절 글쓰기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던 제가 이렇게 호흡이 긴 장편 소설만 쓰게 된 건 참 재밌는 일이죠.”
황씨는 “사실 어릴 때는 단 한 번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절대 글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소풍 날 엄마가 여행을 가셔서 제가 직접 도시락을 싸가지고 간 적이 있어요. 그때의 심정을 일기에 썼는데, 그 내용이 재미있었는지 교장선생님이 전교생 앞에서 제 일기를 읽어주신 거예요. 마음 속에 혼자만 품고 있던 감정을 다른 아이들에게 들킨 게 얼마나 부끄러운지, 마치 발가벗은 몸을 보인 것처럼 창피하고 충격적이어서 다시는 글을 안 쓰겠노라고 굳게 결심했죠(웃음).”
황씨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결혼하고 아들 둘을 낳아 키우던 20대 중반부터였다고 한다. 대학교 1학년 때 결혼해서 아이들이 웬만큼 자란 덕분에 여유 시간이 생겼다고.

15년 만에 새 소설 펴낸 베스트셀러 ‘소설 목민심서’ 작가 황인경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장편소설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가 황인경씨.


“그전까지는 아이 둘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죠. 그런데 큰아이가 어느 날 문득 자기 방문을 잠그곤 ‘엄마 들어오지 마’ 하더군요. 그때 퍼뜩 ‘나도 내 일을 가져야겠구나,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에게 모범이 될 일을 찾아보니 글쓰기가 떠올랐다고 했다. 첫 작품으로 다산 정약용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된 것도 아이들에게 그에 대한 위인전을 읽어주고, 질문에 답해주려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은 게 계기가 됐다고.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인물이 너무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게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산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나라도 한 번 나서보자는 생각이 든 거죠.”

10년 만에 완성한 ‘소설 목민심서’ 신문 연재 물거품된 뒤 자살 충동에 시달릴 만큼 고통 겪어
그렇게 시작한 ‘소설 목민심서’ 집필은 자료 수집에 3년, 글 쓰기에 5년, 퇴고에 2년이 걸린 장기 작업이 됐다고 한다. 작품에 매달린 총 10년의 세월 동안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건 두 아들이었다고.
“주위에서 ‘도대체 그 작품은 언제 나오는 거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솔직히 많이 힘들었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아이들이 ‘엄마, 오늘은 뭐 썼어요? 내일은 뭐 쓸 거예요?’라고 항상 물어봐줬기 때문이에요.”
각고의 노력 끝에 ‘소설 목민심서’를 완성한 후에도 그에겐 고비가 있었다. 원고지 1만장 분량의 장편소설을 완성했는데 어느 한 곳 그의 작품을 받아주는 데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신인이지만 좋은 작품만 가져가면 신문사에서 연재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무명 작가의 소설을 실어주겠다는 신문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고 한다.
“한 신문사에서 원고를 보자고 해서 1백 장씩 세 번을 보냈어요. 그런데 몇 차례 회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안 되겠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거절 답변을 듣고 차를 몰고 집에 돌아오는 길, 그는 한강 다리를 건너다 ‘이대로 죽어버리자’는 충동에 차를 다리 난간까지 밀어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 가까스로 자신을 추슬렀다고. 말할 수 없이 큰 실망과 좌절에 빠져 있던 그때, 황씨는 우연한 기회에 접한 무속에 빠져들기도 했다고 한다.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무슨 일만 있으면 무당과 통화라도 해야 마음이 놓였다고.
“그러다 굉장히 중요한 일을 무당의 말만 믿고 처리해 그르쳤어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죠. 이후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서 비로소 그때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고요.”
황씨는 ‘소설 목민심서’ 출간을 포기하고, 소설 가운데 다산의 형 정약전 이야기만 뽑아내 단행본 1권 분량으로 정리해 출판을 추진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 작품은 흔쾌히 받아주는 출판사가 있어 지난 90년 첫 소설 ‘떠오르는 섬’을 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한 출판사 관계자가 서점에서 그 책을 읽고 제게 연락을 해온 거예요. 정약전 이야기를 이렇게 잘 풀어낼 수 있는 작가라면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정약용 관련 소설을 써볼 생각은 없는지 물으려고 절 찾은 거죠. 제가 ‘내게 이미 정약용에 대한 소설이 있다’고 얘기하면서 일사천리로 출간이 진행됐어요.”
이런 과정 끝에 92년 출간된 ‘소설 목민심서’는 그해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꾸준한 인기를 누린 끝에 올해 초 기존 5권 분량을 3권으로 압축한 개정판도 나왔다.
요즘 황씨는 글을 쓰면서 서울 청담동 프리마호텔 부사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얼핏 소설가와 어울리지 않는 직업 같지만 7년 전 친구를 통해 알게 된 호텔 경영주로부터 “호텔을 여성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쉼터로 만들고 싶다”는 말을 듣고 조언을 해주다 아예 취직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여성의 섬세한 손길과 배려라는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호텔 일에서도 큰 보람을 얻고 있다는 황씨는 앞으로도 호텔 일을 계속하며 다음 작품으로는 기독교 사상을 담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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