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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시련을 딛고

암 이기고 ‘퀴즈영웅’된 주부 박밀향 감동 사연

글·김수정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7. 11. 22

최근 방영된 KBS ‘퀴즈 대한민국’에서 퀴즈영웅이 된 주부 박밀향씨가 지난 9년간 세 차례나 암과 싸워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고통스런 수술과 항암치료에 시달리면서도 일과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그를 만났다.

암 이기고 ‘퀴즈영웅’된 주부 박밀향 감동 사연

지난 9월 말 KBS ‘퀴즈 대한민국’에서 제32대 퀴즈영웅으로 뽑힌 주부 박밀향씨(46)는 2년 만에 탄생한 주부 퀴즈영웅이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암을 세 번이나 이겨낸 진정한 ‘영웅’이기 때문. 이날 박씨는 퀴즈영웅을 가리는 파이널라운드에서 2천만원의 상금을 받으며 영웅이 된 순간 “지난 몇 년간 병든 딸을 묵묵히 도와준 친정엄마, 가슴 한쪽이 없는 게 무슨 상관이냐며 위로해준 남편, 구김살 없이 밝게 자라준 두 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박씨가 처음 암을 발견한 건 큰아들 병훈군(14)과 작은아들 병무군(12)이 한창 말썽피우며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던 9년 전이었다. 목욕을 하던 중 왼쪽 가슴에 단단한 멍울이 잡혀 병원을 찾았다가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은 것. 의사는 암 치료를 위해 가슴 한쪽을 절제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암에 걸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집안에 암 환자가 한 명도 없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암입니다’라는 말을 듣고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어요. 아마 ‘수술만 받으면 다시 괜찮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나봐요. 그때는 암에 걸린 게 속상하다거나 억울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어요.”

98년 유방암 2기 진단 받고 왼쪽 가슴 절제
마치 자신이 암인 걸 이미 알고 있었던 듯 침착하게 행동하는 그를 보며 의사가 도리어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단 하나 그가 걱정한 건 왼쪽 가슴을 절제해야 한다는 사실에 남편이 충격을 받진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고.
“그래서 ‘여보, 나 수술 받아도 되지?’ 하고 조심스레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 젖도 다 먹였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시원하게 답해주더라고요. 나중에 가슴 성형수술시켜달라고 했더니 ‘돈 많이 벌면 생각해보지’라면서 웃고요. 정말 암에 대해 무덤덤하고 용감한 부부였어요.”
그러나 반나절 이상 걸린 대수술 후 깨어난 박씨 앞에 기다리고 있던 건 건강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끔찍한 항암치료였다. 수술만 하면 바로 다 나을 줄 알았던 그에게 항암치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묵직한 이불에 눌린 것처럼 몸이 무겁고 임신한 것처럼 속이 메스꺼워 처음에는 누워만 지냈다고.
“자고 일어나면 잠자리에 머리카락과 눈썹이 수북이 빠져 있었어요. 점점 몰골이 흉해졌죠. 수술하며 겨드랑이 임파선을 제거해 팔이 퉁퉁 부어올랐고, 죽만 먹어도 구토증세가 계속돼 점점 무기력해졌고요.”
그런 그를 다시 일어나게 한 건 가족이었다고 한다. 특히 한쪽밖에 남지 않은 가슴을 서로 만지겠다고 품속에 파고드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힘든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날 이후 저는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남편을 위해 맛있는 저녁밥을 짓는 아내, 잠투정하는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엄마의 모습을 되찾았어요. 바깥 출입도 다시 시작했죠.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대중목욕탕에 갔고 모자를 쓰지 않은 채 시장을 돌아다니며 장을 봤어요.”

암 이기고 ‘퀴즈영웅’된 주부 박밀향 감동 사연

그러나 7개월간의 항암치료가 끝나자마자 박씨는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암은 수술을 받으면 대부분 완치되지만 이 과정에서 각종 호르몬을 생성하는 갑상선을 양쪽 모두 제거하기 때문에 평생 갑상선호르몬제를 먹어야 한다. 또 이 수술을 받고 나면 체력이 일반인의 절반 정도밖에 회복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박씨는 “수술 후 카랑카랑하던 목소리가 변한 게 속상해 동네 합창단에 들어가 매주 노래 부르는 연습을 했다”고 할 만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아픔을 극복했다고 한다.
“언제 암을 앓았냐는 듯 활기차게 생활했어요. 수술 부위가 잘 아문데다 경과가 좋아 ‘내 인생에 더 이상의 먹구름은 없을 것’이라며 걱정 없이 살았죠.”
하지만 그는 지난 2004년 유방암 재발 진단을 받았다. 꾸준한 정기검진 덕에 다행히 조기에 발견, 수술은 피할 수 있었지만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독한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다. 박씨는 그 무렵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 정도면 끄떡없다. 두 번 이겼는데 세 번은 못 이기랴”는 마음으로 버텼다고 한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똑 부러지게 살림 잘하고 아이들도 잘 키우는 나인데, 만약 내가 없으면 우리 남편과 아이들은 누가 돌보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북돋우며 용기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고.
“이렇게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생각한 것이 병을 이기는 데 큰 도움을 준 것 같아요. 억지로라도 많이 먹고 기운을 차리려고 애썼죠. 남편과 아이들은 가끔 제가 암 환자인 것도 잊고 지냈대요. 남편이 ‘당신은 안 죽는 병에 걸렸으니까 환자 대우 안 해줘도 되지?’라고 물을 정도였어요.”
한 달간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한 뒤 암이 완치됐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박씨는 아직까지도 모자를 쓰고 다녀야 할 만큼 머리숱이 적고 속눈썹도 거의 없어 가끔은 땀이 눈에 들어가 따가울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암을 세 번이나 이겼다는 자신감 덕분에 앞으로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박씨가 암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이처럼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함께 일과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씨는 암이 발병하기 전인 지난 97년부터 아르바이트로 김포시에서 실시하는 각종 통계조사 일을 했는데 암 치료 중에도 이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년에 세 차례, 총 4백여 곳의 기업과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매출 실적을 조사하는 고된 일이었지만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아플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고.
“가끔은 낮에 일을 다 끝내지 못해 밤을 지새우면서까지 한 적도 있어요. 남편이 처음에는 ‘건강이 상하지 않겠냐’며 걱정했지만 제가 일하면서 즐거워하니까 나중엔 반대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너무 바빠 버스 안에서 밥을 먹으며 어딘가 가다가 문득 창문에 비친 제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순간 ‘와, 내가 정말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참 뿌듯하더라고요.”
배움에 대한 열정도 그를 활기차게 만들었다고 한다. 조사업무 과정에서 컴퓨터로 하는 작업을 많이 하면서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자판 연습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한 박씨는 두 달 동안 매일 PC방에 가 자판 연습을 하고 나중엔 버려진 자판을 주워 연습했다고 한다. 또한 컴퓨터를 장만한 뒤엔 마을 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무료 교실 등에 다니며 워드와 파워포인트 자격증도 취득했다고 한다.

암 진단 받은 뒤에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바쁘게 살아
“암 진단을 받은 뒤 더 치열하게 산 것 같아요. ‘하느님, 앞으로 이렇게 열심히 살 테니 제발 병이 낫게 해 주세요’ 하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때때로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시기를 어떻게 넘겼냐’고 물을 때면 저는 ‘어떻게 넘겼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고 답해요.”
지난해 8월, 그는 지인이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뭔가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바로 매주 챙겨 보던 ‘퀴즈 대한민국’의 예심 참가를 신청했다고. 지난 92년 SBS ‘알뜰살림 장만퀴즈’에서 주장원에 오른 적이 있는 그는 1차 인터넷 시험과 2차 필기시험을 무난히 통과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항암치료를 받은 사실을 안 제작진이 “온 종일 서서 퀴즈를 풀다가 몸에 무리가 생길 수 있다”며 출연을 만류해 3차 면접에서 탈락했다고. 이후 그는 “오히려 잘된 일이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퀴즈를 준비하자”고 생각한 뒤 재도전 기회만 엿보며 꼼꼼이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아는 문제를 출연자가 풀지 못하면 “내가 저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데” 하고 안타까워했고, 가끔씩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책을 뒤지거나 인터넷을 검색해 반드시 알고 넘어갔다고. 이런 박씨를 두 아들은 “척척박사”라고 불렀으며 남편 이광휴씨(48)는 날이 갈수록 해박해지는 아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두 번의 예심 도전 끝에 지난 9월 본선에 진출한 박씨는 “퀴즈영웅이 못 돼도 최선을 다했으니 섭섭해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고. 그는 그런 마음을 갖고 나니 오히려 문제가 쉽게 느껴지고 답이 빨리 떠올랐다고 말했다.
“퀴즈영웅이 된 것보다 ‘사랑한다’는 남편의 말과 ‘우리 엄마 최고!’라는 아들들의 말을 들은 게 더 기뻐요. 친정엄마한테는 ‘더 이상 걱정 끼치지 않을 테니 마음 놓으시라’는 제 마음을 전달한 것 같아 홀가분하고요. 암을 이겨냈다고 하니 ‘축하한다’는 말보다 ‘감동적이다. 대단하다’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많은데 쑥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요.”
퀴즈영웅 등극으로 상금 2천만원과 함께 효도상품권, 동남아여행권을 받은 그에게 마지막으로 상품권과 상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 물었다. 박씨는 “효도상품권은 다리가 편찮으신 친정엄마께, 동남아여행권은 동생 내외에게 선물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상금은 가족들과 자기개발을 위해 쓸 생각이라고. 그는 “우선은 운전면허 취득과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는 데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아 미뤄왔거든요. 아이들이 커갈수록 운전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학원에 등록하려고 해요. 인라인스케이트 역시 그동안 무척 타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암 치료 때문에 할 수 없었어요. 이제 건강이 많이 회복됐으니 예쁜 인라인스케이트를 사고 열심히 배워 두 아이와 함께 씽씽 달리고 싶어요.”
박밀향 주부 조언!
퀴즈 달인 되려면 이렇게~

쉬운 역사·고전 책을 반복해 읽는다
역사와 고전 분야는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시중에 나온 두꺼운 책을 읽기보다 초·중학생 아이가 보는 수준의 책을 택해 반복해 읽는 것이 효과적이다. 우리나라 역사와 고전 뿐 아니라 세계 역사와 유명 고전작품도 눈여겨보자.

용어를 접한 순서대로 정리한다
퀴즈 프로그램에서는 방송 당시의 이슈나 사건을 묻는 시사문제가 많이 출제되므로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직전, 열흘이나 한 달 동안 정치·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집중 조명된 용어를 훑어본다.



인터넷으로 각 신문사의 뉴스를 꼼꼼히 읽는다
한 신문에서 놓친 정보가 다른 신문에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꼼꼼히 확인하는 게 좋다. 특히 매일매일 화제의 인물을 체크해두면 따로 시사 책을 읽지 않고도 시사문제에 대비할 수 있다.

다른 퀴즈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다
간혹 다른 퀴즈 프로그램에서 나온 것과 비슷한 문제가 출제되는 경우가 있다. ‘도전 골든벨’ ‘1:100’ ‘우리말 겨루기’ 등 유사 프로그램을 보며 문제 경향을 살핀 뒤 퀴즈의 정답을 응용한 다른 문제를 만들어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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