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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신정아 사건’ 파편 맞은 린다 김

“지금 나를 거론하는 건 ‘두 번 죽이는’ 일”

기획·송화선 기자 / 글·조성식‘신동아 기자’ / 사진·문형일‘프리랜서’,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7. 10. 24

‘신정아 사건’이 전방위 로비사건으로 번져가면서 지난 2000년 무기 도입 스캔들로 화제를 모았던 로비스트 린다 김이 새삼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9월 중순 직접 인터뷰에 응한 린다 김은 신정아를 ‘제 2의 린다 김’이라고 부르는 것에 불쾌감을 나타내면서도 신정아를 감싸는 듯한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신정아 사건’ 파편 맞은 린다 김

신정아씨 사건의 불똥이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55)에게 튄 것은 언뜻 자연스러워 보이면서도 엉뚱한 것이었다.
“정말 너무하지 않아요? ‘제2의 린다 김’이라니. 신정아 사건과 내 사건이 어떻게 같아요. 나 참, 나이 들어 이게 무슨 망신이에요.”
전화를 받자 다소 격앙된 린다 김의 목소리가 잊어져가는 과거를 흔들어 깨우며 귓전을 울렸다. 특유의 컬컬하고 중성적인 목소리. 그녀는 분통을 터뜨렸다.

‘사건’ 이후 우울증 치료 받은 뒤 다시 한국 미국 오가며 사업하고 있어
지난 9월15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얼굴은 세월의 무게를 실감케 했다. 수년 전 스캔들로 곤욕을 치를 때의 도발적인 모습은 찾기 힘들다. 상대를 정면으로 또렷이 바라보는 자신감 넘치는 눈매는 여전하지만.
옷차림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세련된 느낌의 검은색으로 멋을 냈다. 검은색 티셔츠에 검은색 카디건을 걸치고, 품이 넉넉한 검은색 바지를 입었다. 얇은 은색 목걸이와 작은 귀고리는 그다지 사치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았다.
“예전에 비해 인상이 부드러워졌다”고 덕담을 건네자 린다 김은 “꽤 좋아졌는데, 신정아 사건으로 다시 험악해졌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업차 미국과 한국을 오간다는 그녀가 국내에 입국한 것은 지난 8월25일. 입국 직후부터 ‘신정아 사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화병과 두통이 되살아났다. 몇 년 전 그녀는 두통약 과다 복용에 따른 후유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좀 심하다고 생각지 않아요? 그 사건으로 내가 얼마나 당했어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습니까. 그 사건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이제 막 좋아지고 있는 상황인데….”
널리 알려졌다시피 린다 김의 스캔들은, 김영삼 정부 시절 무기도입을 둘러싸고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 등 정·관계 고위층과 ‘특별한 친분’을 맺었다는 의혹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이 전 장관과는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스캔들이 불거진 2000년 여름 린다 김은 무기도입 과정에서 백두사업팀 관계자에게 뇌물(1천만원)을 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백두사업은 감청을 통해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정찰기를 들여오는 사업이었다.
린다 김은 자신의 스캔들과 신씨 사건을 동급으로 취급하는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출했다.
“내가 가장 화가 나는 게 ‘제2의 린다 김’이에요. 정말 돌겠더라고요. 어떻게 사기나 연애 스캔들인 신정아 사건이 ‘제2의 린다 김 사건’이냐고요. 나는 사업하는 사람이잖아요. 당시 내가 들여온 정보수집 장비, 지금 잘 쓰고 있잖아요. 두 대 더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성능을 인정받았어요.”
백두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비행기보다 비행기에 싣는 감청장비 시스템이었다. ‘성능이 떨어진 장비를 린다 김의 로비에 의해 비싸게 들여왔다’는 비난을 받았던 백두정찰기는 도입된 후에는 한국군의 정보자주화에 이바지한다는 평을 들었다. 비행기 성능과 기술이전, 한국군의 운용능력 등에 대한 논란이 부각되지 않을 정도로.
“언론은 내가 조국에 도움이 되도록 고생하며 일한 데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하고 늘 여자 스캔들의 대명사인 양 보도해요. 그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한 방송에선 신정아와 저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까지 하더라고요. 너무 심하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몇 년간 묶여 있다 풀려나 다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한테. 한 번 죽이면 됐지 두 번 죽일 이유가 뭡니까. 백두사업은 미국과 한국의 정치상황, 한·미 연합작전체제 등 고려해야 할 점이 많았다고요. 지금 한국 공군에 들어오고 있는 미국제 전투기 F-15만 해도 한국의 구매요청이 없었다면 생산라인이 폐쇄됐을 낡은 기종이지만 한·미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수주 경쟁에서) 성능이 더 우수한 다른 나라 비행기들을 제쳤잖아요.”

‘신정아 사건’ 파편 맞은 린다 김

무기 로비 스캔들로 파문을 일으켰던 린다 김.


그녀는 신정아 사건에 대해 심한 불쾌감을 드러내긴 했지만 신씨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동지의식을 발휘하는지 감싸는 듯한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신정아씨도 억울한 면이 있을 거예요. 그냥 매장당하고 있는데, 뭔가 할 말이 있을 거예요. 내가 그 세계를 겪어봤잖아요. 그 사건으로 3년간 우울증 치료를 받았어요. 한방병원 원장님 도움이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몰라요.”
사건 초기 신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혼자 사는 여자라서 더 비난을 받는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이에 대해 린다 김은 “공감이 가는 얘기”라고 편들었다.
“같은 싱글 여성으로서 이해되는 면이 있어요. 우리라고 왜 로맨스가 없겠어요. 누굴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이 왜 없겠어요. 모르긴 몰라도 신정아도 나처럼 답답하고 억울한 점이 있을 겁니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해봤잖아요. 한 여자의 인생을 아주 죽이는 거예요.”
린다 김 스캔들의 정점은 이양호 당시 국방부 장관과의 특별한 관계였다. 그녀에게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겠지만, 묻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이 장관에 대해 “훌륭한 분”이라고 치켜올리면서 “그분을 생각하면 늘 맘이 짠하다”고 복잡한 심사를 드러냈다.
“이 장관과 나는 정말 그런 사이가 아니었어요. 이 장관이 내게 편지한 건 사실이에요. 내가 그분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실은 그분이 저를 이용한 면이 있어요. 가격이나 기술이전 면에서. 내가 그 양반 심부름을 얼마나 했는데요. 그 양반에 대한 감정은 아버지같이 푸근한 느낌과 존경심이었어요. 내가 참 잘 따랐어요. 시키는 건 다 했으니까. 지금도 좋아하고 존경해요.”
2000년 봄 이 전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두 번 관계를 가졌다”고 실토한 사실을 들이대자 그녀는 이렇게 반박했다.
“이 장관이 (96년에) 뇌물사건으로 구속돼 실형을 살고 나왔잖아요. (2000년에) 나와의 관계가 문제됐을 때 주변에서 그 양반에게 ‘법적 제재를 피하려면 차라리 스캔들로 몰고 가는 게 낫다’고 권고했대요. 스캔들은 사생활이니 구속당할 일은 없다고. 당시 그 양반은 그 일로 다시 감옥에 갈까봐 무척 겁을 냈어요.”
이 전 장관의 고백으로 두 사람에게 날아든 비난의 화살과 이 전 장관 가족을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이 받았을 고통, 군과 정부의 위신 추락 등을 생각하면 그녀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린다 김은 2002년 LA 현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이 전 장관에 대해 연애 감정을 느꼈다고 털어놓았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자못 진지하다.
“이 장관이 참 순진하거든요. 언론의 공세를 모면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운 거죠. 저는 그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편지엔 플라토닉하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묻어나 있는데. 그런데 왜 굳이 지저분하게 호텔방 어쩌고 했는지.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장관이 감옥에 가느니 가족에게 미안한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거죠. 당시 저한테도 ‘순간적인 판단 실수로 거짓말 했는데 너는 진실을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화가 났죠. 저 양반이 멍청인가, 바보인가. 왜 지저분한 스토리를 만들 구실을 줬는지….”

“신정아 사건은 두 사람의 연애문제일 뿐, 여자의 성공을 ‘몸 로비’로 보는 시각엔 반대”
린다 김은 자신의 스캔들과 비교가 되는 신정아씨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야망을 품고 달리던 여자가 어떤 남자를 만나 연애한 건데… 저는 변 실장의 직책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어요. 일반인들 사이에선 흔한 일이거든요. 그 일로 두 사람의 삶이 완전히 망가진다는 게 안타까워요. 저도 사건의 진실이 뭔지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얘기하지 못한 채 언론이 떠미는 대로 밀려다녔잖아요.”
그녀는 “그것(스캔들)만큼 여자에게 치명적인 게 없다”면서도 신씨 사건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신정아씨의 경우 변 실장 한 사람의 힘으로 모든 게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제가 한 일은 달랐어요. 이 장관 한 사람의 도움으로 될 일이 아니었어요. ‘제2의 린다 김 사건’이라는 표현은 우리 둘을 묶어 비난하는 건데… 그건 아니라는 거지. 어떻게 국가적 사업과 개인적 연애사건이 같냐고요. 나와 이 장관의 관계는 국가적 비즈니스에 대한 협조관계였어요. 여자가 비즈니스를 하다가 좀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죽이는 건 진짜 죽음보다 더한 거죠. 그리고 어떻게 무기중개업을 ‘몸 로비’로 표현합니까. 수십 명의 실무자를 상대하고 미국과 한국 양국 정부를 상대로 성사시킨 것인데. 그걸 어떻게 장관 한 명이 결정합니까. 신정아씨의 경우 변 실장이 그림 좀 팔아줬는지 모르겠지만.”

‘신정아 사건’ 파편 맞은 린다 김

린다 김은 신씨 사건의 본질을 연애문제로 간주하는 듯싶었다.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되는 몇 가지 위법행위, 이를테면 허위학력으로 동국대 교수로 임용된 것, 광주비엔날레 감독 선정과정에서의 문제점, 기업들의 이례적인 전시회 후원에 대한 의혹 등에 대해 그녀는 간단하게 정리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겠죠.”
화제가 신정아씨의 ‘누드 사진’ 파문으로 넘어갔다. 사진이 합성이든 아니든 “몸 로비의 결정적 증거이기 때문에 고민 끝에 실었다”라는 ‘문화일보’측의 해명은 부실한 관련기사 내용만 봐도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었다. 인과관계라는 기본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기사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것이 ‘증거’라고 해도 누군가의 딸이고 여동생일 한 여자의 벗은 몸을 세상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구경시키는 것에 대한 언론의 윤리적 고민은 그만두더라도, 그 바람에 비난받아 마땅한 것으로 보이는 신씨에 대해 난데없이 동정론이 일기도 했다. 오죽하면 ‘문화일보’와 신씨의 커넥션을 제기하는 음모론까지 제기됐을까. 린다 김의 촌평이다.
“여성으로서, 정말 언론이 너무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사건과 관계없는 프라이버시잖아요. 또 누드를 찍었다면, 뭐가 문제죠? 그걸 왜 공개해야 하냐고요. 신정아가 누드 사진을 돌리면서 ‘날 잡아 잡수’ 했다는 거예요? 그건 아니잖아요.”
린다 김은 두 사람의 불륜에 대한 세간의 비난에 대해선 이렇게 냉소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정 있는 남자들 중 바람 안 피운 사람 있나요? 그런 사람이라면 손가락질하라고 해요. 굉장히 이율배반적이라고 봐요. 비슷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말은 더 많아. 그들이 과연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나요?”
그녀는 신씨와 변 전 실장의 관계를 설명하며 이런 흥미로운 분석을 덧붙였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걸 보면 이용이라기보다는 정이나 애정, 아낌, 존경심에 가깝다고 봐야죠. 또 파워라는 건 상당히 매력적인 것이에요. 파워가 있는 남자는 보통 남자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죠.”
남자들 세계에서는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적극적이고 어떤 남자든 쉽게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재주를 가진 여성의 사회적 성취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그 배경을 의심하는 풍토가 있다. 미모의 여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린다 김은 이를 “일하는 여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독특한 사고방식”이라며 “편견”이라고 잘라말했다.
“여자가 뭘 따냈다, 성공했다 하면 실력으로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죠. 여자가 정상의 위치에 오르면 꼴을 못 보는 건지, 인정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건지. 제 경우만 봐도 사건의 본질을 다룬 언론이 거의 없었잖아요. 다들 선글라스가 어떻고 옷이 어떻고 하면서. 우리 일은 프로페셔널이 아니면 못해요. 남자가 연결되면 뇌물, 여자가 관련되면 섹스 쪽으로 생각해요. 이런 잘못된 인식이 빨리 사라지면 좋겠어요.”
린다 김은 요즘 미국 군수회사의 로비스트로서 중동 쪽에 전투기를 파는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공군에 관련된 사업도 있다는데, “비밀”이라며 말을 아꼈다. 린다 김은 인터뷰를 당당하게 마무리했다.
▼ 당시 이양호 장관과 조금 거리를 뒀어야 하지 않을까요. 후회하지 않습니까.
“거리를 뒀다면 백두·금강 끝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금강은 영상정보를 수집하는 정찰기다. 역시 린다 김이 로비스트로 나서서 한국군에 납품했다.
▼ 그 얘기는 이 장관과의 밀착관계가 사업에 도움이 됐다는 얘기네요.
“국익에도 도움이 됐고. 나한테도 도움이 됐고. 10년 이상 끌던 사업을 우리가 끝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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