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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따뜻한 만남

작가 최인호·화가 김점선 남다른 우정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07.10.24 10:23:00

작가 최인호와 화가 김점선의 남다른 우정이 화제다. 최인호가 10여년 만에 펴낸 수필집 ‘꽃밭’에 난소암으로 투병 중인 화가 김점선이 그림을 그린 것. 5년 전 처음 만났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는 두 사람을 만났다.
작가 최인호·화가 김점선 남다른 우정

최인호(62)와 김점선(61). 한국 문단과 화단을 대표하는 중진인 두 사람이 함께 책을 펴냈다. 최인호가 지난 10여 년간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에세이를 모아 묶은 수필집 ‘꽃밭’에 난소암으로 투병 중인 김점선이 그림을 그린 것.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5년 전, 작가 다섯 명과 화가 다섯 명이 함께 연 ‘그림으로 읽는 소설 전시회’ 때라고 한다. 이때 최인호와 김점선은 ‘짝꿍’이 돼 ‘그림 소설’을 선보이며 친해졌다.
“그 때 열 사람 중에 여자는 나와 작가 박완서 선생 밖에 없었어요. 가만 보니까 아무래도 나와 박완서 선생을 붙여줄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얼른 선수를 쳐서 최인호 선생과 짝지어 달라고 했지(웃음).”
김점선은 “고등학교 때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데뷔한 최인호 선생은 젊을 때부터 우리 연배한테 우상같은 존재였다. 최인호 선생과 같이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내겐 출세였다”며 허허 웃었다.
예술 앞에서 어린아이 같이 순수해지는 면이 똑 닮은 두 사람은 함께 작업하며 금세 친해졌고, 최인호는 ‘오누이같은 느낌’에 한 살 어린 김점선을 ‘점선이 누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나이 들어 만난 사이에 ‘점선아’ 하기는 어색했기 때문. 김점선은 최인호를 ‘최선생’이라고 부르지만, 대하는 품은 오랜 친구 대하듯 자연스럽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꽃밭’의 출간이 화제를 모은 건 김점선이 지난 4월 난소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 암수술 전까지 끊임없이 전시를 열며 활발히 활동했던 김점선은 항암치료를 받으며 한동안 외부 활동을 삼가해왔다. 그런데 ‘꽃밭’의 그림을 그린 사실이 알려지며 관심이 쏠린 것이다.

난소암 투병 중 최인호 수필집 그림 그린 김점선
작가 최인호·화가 김점선 남다른 우정

김점선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뜨거운 열정으로 완성시킨 수필집 ‘꽃밭’의 삽화


이에 대해 김점선은 “사실 지난 2월 최인호 선생의 산문집에 실릴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암 발병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몸이 많이 아프긴 했는데 그냥 장염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흔쾌히 ‘그러마’ 했죠. 그런데 4월 초에 검사를 받으니 암이라고 하더라고요. 부랴부랴 수술하고 입원해 있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었어요. 잡혀있던 전시 일정이 꽤 있었는데 제가 암 걸렸다는 소문이 나기 무섭게 하나 둘 취소돼 ‘암이 무섭긴 무서운가보다’ 생각했죠.”
그런데 다른 모든 일이 그렇게 정리되던 무렵, ‘꽃밭’ 출판사의 편집장이 “힘드시겠지만 표지화 하나만이라도 그려주실 수 없겠느냐”는 간곡한 이메일을 보내왔다고 한다.
“실은 그때 배를 40cm나 열고 수술을 받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표지화만 그릴 게 아니라 다 그리지 뭐’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점선은 바로 그날 밤 최인호에게 전화를 걸어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몸이 이렇게 아파도 그림이 될지, 과연 영감이 떠오를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다행스럽게도 막상 그림을 시작하니 몸이 제대로 움직여졌어요. 아프다는 걸 까맣게 잊고 그림에 몰두하면서 행복했고요.”
다소 체중이 준 듯 보일 뿐, 여전히 씩씩하고 건강해 보이는 김점선의 말에 최인호는 “생사를 넘나드는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불꽃같은 열정으로 그림을 그려줘서 고맙고, 그리는 작업이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니 그저 기쁠 뿐”이라고 말했다.
김점선은 ‘꽃밭’ 말미에 쓴 ‘그린이의 말’을 통해 “무엇보다 아프기 전의 내 그림과 후의 그림이 동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하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구나 하고 웃었다. 남들이 바라보듯이 내 자신을 구경하면서 웃었다”고 썼다.
두 사람이 친해진 건 이처럼 예술적 열정만 있으면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김점선은 “우정이라는 게 꼭 어릴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야만 생기는 게 아니지 않나”라며 “최인호 선생은 자기가 이미 수십 권의 책을 썼다는 걸 다 잊고 아직도 야망에 불타는 젊은이”라고 했다.
“그림은 장편이라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인지 최 선생이 짧은 시간에 장편 소설을 써내는 걸 보면 정말 놀라워요. 그 수많은 학문적 자료, 사실들을 어디서 건져서 어떻게 머리 속에 꿀벌 집처럼 질서정연하게 정리해두는지…. 정말 감탄스럽고 존경스럽죠.”
꿀벌이라는 표현이 나오자 최씨는 “글을 쓰는 건 정말 꿀벌이 꿀을 모으는 것과 같다”고 거들었다.
“꿀벌은 아무 생각 없이 꿀을 모으지만 그 결과로 벌집이 생기는 것처럼, 소설은 오직 글을 열심히 쓰면 나오는 결과 같아요. 그 열정과 집중이 죽는 날까지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죠.”
최인호는 “점선이 누나도 아마 그럴 것”이라면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음 작품에 대한 꿈과 열정은 젊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8월15일 마지막 항암 주사를 맞은 김점선도 “이제 병원 치료는 다 끝났다”며 “바로 12월에 잡힌 전시회 준비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해 보였다.

최인호 부인과는 ‘마피아적 우정’으로 뭉친 사이
작가 최인호·화가 김점선 남다른 우정

최인호와 김점선은 최인호의 아내 황정숙씨와 삼각으로 묶인 사이기도 하다. 황씨는 김점선의 둘도 없는 친구. 최인호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마피아적 우정으로 뭉친 사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마피아’란 배신하면 바로 죽음이 따르는, 무조건적인 충성을 뜻한다고 한다.
“황정숙은 몇 년 전 친구 생일 모임에서 처음 만났어요. 모르는 얼굴이 하나 있기에 누군가 했더니 최인호 선생 부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얌전한 옷매무새며 조신한 행동거지가 나와 어울릴 사람이 아닌 거 같아서, 안 그래도 제가 거친 스타일인데 그 날은 평소보다 열배쯤 더 거칠게 나갔어요. 기겁을 하고 도망가서 다시는 저 노는 데 못 끼게 하려고 했죠(웃음).”
하지만 황씨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김점선의 ‘강펀치’를 끄떡없이 받아넘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의 만남 이후, 두 사람은 금세 두터운 정을 쌓게 됐다고.
최인호는 “남자들의 우정이란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훈장이거나 이해득실을 따지는 물물교환같이 느껴질 때가 많은 데 비해 여자들의 우정은 순수하고 진실하다는 걸 아내와 아내의 친구들을 보며 발견한다”며 “여자들의 우정은 남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남자들의 의리와 우정은 깡패 영화에나 나오는 거죠. 남자들은 상대방의 단점이 거슬리면 곧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여자들은 서로 단점을 알고 싫어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같이 가더라고요.”
최인호는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김점선이 먼저 떠난 사람을 늘 그리워한다는 이야기도 아내를 통해서 들었다고 했다.
“점선이 누나가 늘 활달하다보니 남들이 보기에는 남편 생각을 하는 사람인가 싶지만 집사람한테만은 그런 속내를 털어놓았다고 하더라고요. 힘든 모습 아픈 모습 다 보이는 진짜 친구인 거죠.”
이에 김점선은 “황정숙에게 남편한테 ‘있을 때 잘하라’는 얘기를 해주느라 한 얘기”라며 다시 허허 웃었다.
“엄마 돌아가신 뒤에 사진을 보니까 사진 속에서 나는 항상 무표정인데 엄마는 나를 보며 그저 좋아서 웃고 계시더라고요. 이 늙은 딸이 좋아 어쩔 줄 모르던 엄마의 눈빛을 살아 계실 적 몰랐던 게 정말 미안해요.”
인생의 소중한 것들에 대해 뒤늦게 알게 된 깨달음. 최인호의 산문집 ‘꽃밭’은 이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내 자식, 내 남편, 내 아내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한 사람과 평생을 살아도 그 사람의 1%도 알 수 없을 거예요. 자기 가족이야말로 신이 각자에게 내려준 신대륙이고 우리는 평생을 두고 조금씩 그 대륙을 발견하고 탐험하고 알아가면서 인생에 대해 배우는 겁니다.”
오래된 친구도 마찬가지. 서로가 서로에게 미지의 세계이고 신대륙이었다가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꽃이 되는 그대와 내가 있기에 인생은 찬란한 꽃밭이라는 이야기다.

여성동아 2007년 10월 5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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