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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소식

신장암으로 세상 떠난 김주승

‘안타까운 죽음 뒷얘기 & 풀리지 않는 의문’

글·김명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여성동아 사진파트

2007. 09. 22

80년대 최고의 톱스타 김주승이 지난 8월 중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큰손’ 장영자씨 딸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지만 사업 실패, 암 투병, 이혼 등 잇단 불행을 겪으며 사생활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 궁금증을 자아냈던 김주승. 그가 생을 마감하자 유족들은 조문도 받지 않고 빈소도 공개하지 않아 그 이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장암으로 세상 떠난 김주승

지난해 8월 신장암이 재발한 김주승은 홀로 투병하다 조용히 생을 마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탤런트 김주승이 지난 8월13일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향년 46세. 사인은 신장암이다. 97년 6개월 간격으로 신장암과 췌장암 수술을 받았던 그는 이후 병세가 호전되는 듯했으나 1년 전 신장에 암세포가 재발, 투병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부음을 듣고 경기도 부천시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을 때 그의 빈소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의 마지막 가는 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적막했다. 입구에는 고인의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았으며 조문도, 조화도 받지 않았다. 김주승의 어머니와 친구, 그리고 후배 몇 명이 신문에 부고도 내지 않은 채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조용하게 배웅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이 돼서야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온 하희라·김동현·김정현·오대규·정보석 등 평소 고인과 가까이 지내던 동료들도 “조문을 받지 않겠다”는 유족 측의 간곡한 뜻에 따라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심지어 미국에 거주 중인 김주승의 아버지와 형제들, 또 지난 1월 이혼한 전처와 딸(10)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이같이 조용히 장례를 치르는 이유에 대해 김주승의 지인은 “이는 조용히 세상을 마감하기를 원한 고인의 뜻이었다. 형이 유언으로 조문을 받지 말 것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또한 4남1녀 중 끔찍하게 사랑했던 막내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친지들에게조차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그의 어머니도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다”며 조문 받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생전 발자취를 따라가보면 김주승의 삶은 드라마만큼이나 극적이었다. 지난 83년 MBC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드라마 ‘애정의 조건’에 황신혜와 연인으로 출연하며 멜로드라마의 왕자로 떠올랐고 이후 ‘서울 무지개’ ‘첫사랑’ ‘순심이’ ‘야망의 세월’ ‘달빛가족’ 등에서 지적이고 도시적인 이미지로 인기를 이어갔다.
연기자로서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지난 90년, 금융비리로 유명한 ‘큰손’ 장영자씨의 딸과 결혼하면서부터. 김주승은 이때부터 연기 외 다양한 사업에 손대기 시작했으며 94년에는 ‘장영자 부도사건’ 여파로 미국으로 도피하는 등 시련을 맞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97년 신장암과 췌장암이 연이어 발병하는 불운을 겪었다. 하지만 두 차례 수술로 건강을 되찾은 후 2003년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회장으로 선임되는 한편, 드라마 제작사를 설립하는 등 재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가 신장암 재발 판정을 받은 것은 드라마 ‘나도야 간다’ 제작에 열정을 쏟던 지난해 8월이라고 한다. 사업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가운데 몸의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신장암 말기였다고 한다. 이에 앞서 그해 5월 연기자에서 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한 그에게 기자가 건강을 묻자 “이미 완치가 된 상태다. 요즘은 살이 쪄서 다이어트를 해야 할 정도로 건강하다”고 말했었다. 그 자신은 완치를 믿고 있는 듯했지만 얼굴빛이 검고 푸석해 보이는 등 건강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암 판정을 받은 그는 곧바로 서울 여의도의 한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시작하자 그는 눈에 띄게 쇠약해져갔다고. 그의 한 후배는 “치료를 시작하고 두 달 만에 전혀 딴사람이 됐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 도저히 예전의 형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신장암으로 세상 떠난 김주승

뒤늦게 부음을 듣고 빈소를 찾은 동료 연기자 하희라 김동현 김정현.


항암치료 받는 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러 차례 병원과 거처 옮겨
치료를 받는 동안 그는 뚜렷한 거처 없이 서울 외곽의 친구 집, 경기도 부천의 요양원 등을 오가며 쓸쓸한 투병생활을 했다고 한다.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에게조차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병원도 여러 차례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 측은 지금까지 그가 이렇게 조용하게 생을 마감한 이유가 무엇인지, 투병생활이 어떠했는지, 누가 간병을 했는지 등 김주승의 죽음을 둘러싼 모든 의문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지인들에게 착하고 겸손한 연기자로 평가받고, 더군다나 연기자협회 회장을 지내며 단역배우를 비롯한 연기자들의 권익을 찾아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의 마지막이 이처럼 쓸쓸하고 베일에 가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가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한 지인은 “드라마 제작사업을 하면서 연기자의 권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다 보니 수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지자 그전에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등을 돌렸고, 형이 그 문제로 몹시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전처 김씨와는 올초 이혼했지만 연락을 끊고 남남처럼 산 지 이미 오래됐다고 한다. 전처와 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그는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있어 나도 경황이 없다. 김주승씨 일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취재 결과 김씨의 친정아버지는 심장 수술을 받고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남에게 신세를 지기 싫어하는 평소 그의 성격도 쓸쓸한 최후를 보내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암 투병 사실을 알고 찾아오는 지인들에게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는 것. 한 지인은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러웠지만 스스로는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고 안으로 쌓아두는 성격인데 그게 암을 키운 것 같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드러냈더라면 본인이 좀 더 홀가분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고인의 조용한 죽음에 관한 의문이 증폭되자 유족 측에서는 이와 관련, 좀 더 상세한 입장을 발표할지 여부를 고민 중이라고 한다. 유족 측 관계자는 “일단 장례식 직후 미국으로 돌아갔던 김주승씨의 어머니가 한국으로 돌아와 의혹을 해소할 기자회견을 열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그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가 풀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쓸쓸하고 고통스럽게 투병을 하기는 했지만 김주승은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운영하던 드라마 제작사를 정리한 뒤 남북 합작 드라마를 준비하는 등 마지막까지 생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 지난해 5월 인터뷰 당시 ‘지금까지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참 동안 생각한 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 의지대로 산 삶이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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