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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 기자의 키워드 토크

오현경 첫 인터뷰

”지난 10년간의 고통, 다섯 살 딸의 엄마로 다시 꿈꾸는 행복…”

글·송화선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2007. 09. 22

꼭 10년만이다. 지난 98년 사생활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유출되면서 연예계를 떠났던 탤런트 오현경이 다시 세상 속으로 걸어 나온다. 오는 9월 말 방송되는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에 출연하며 브라운관에 복귀하는 것.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삶을 헤집어놓은 고통에 맞서며 사랑과 일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오현경을 만났다.

오현경 첫 인터뷰

“인터뷰를 하는 게 10년만이에요. 그동안 한 번도 기자와 마주 앉아 제대로 인터뷰라는 걸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도 온갖 기사가 쏟아졌죠. 저도 모르는 제 얘기가 마치 제 입을 통해 나온 것처럼 보도되는 게 두려웠어요. 그리고 왜 그렇게 다 이상한 사진들만 같이 싣는지(웃음). 그런 게 싫어서 점점 더 높이 벽을 쌓고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살았죠. 막상 이렇게 마주 앉으니 편안하고 홀가분하네요.”
오현경(37)의 첫 인상은 따뜻했다. 그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활짝 웃고 있었다. 그의 웃음을 본 건 정말 10년만이다. 지난 98년 사생활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유출되면서 떠밀리듯 연예계를 떠난 뒤 지금까지, 그의 근황을 알리는 보도에는 어김없이 딱딱하고 표정없는 그의 사진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표정을 통해 오현경에게 몰아닥친 각종 시련이 전해졌고, 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부침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눈앞에 마주 앉은 그는 웃고 있다. 그를 바라보다 문득 가슴이 먹먹했던 건, 그 웃음 뒤에 감춰져 있을 아득한 고통의 무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현경은 오는 9월 SBS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으로 10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다. 그와 더불어 한 걸음씩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First keyword - 고통
“저의 30대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숨도 쉬지 않고 고통이라고 말할 거예요”
오현경 첫 인터뷰

그가 지금껏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현경은 “나의 30대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나는 숨도 쉬지 않고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채 스무 살도 되기 전인 지난 89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히며 화려하게 연예계에 등장한 그는 늘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새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삶의 나락으로 추락했고, 가장 아름다운 30대를 그 안에서 헤매며 보내야 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제게서 돌아섰고, 저를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았죠. 그러면서 저를 내버려두지도 않았어요. 누군가 쉴 새 없이 제 뒤를 좇았고, 무심코 던진 한 마디, 우연히 목격된 행동 하나까지 다 기사가 됐으니까요. 믿었던 사람과 나눈 대화가 온통 왜곡돼 ‘특종’이라는 이름과 함께 팔려나갈 때 얼마나 막막하던지…. 겨우 20대 후반이던 그때의 제게 세상은 온통 두려움이었어요.”
평범한 여성의 삶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던 바람도 실패했다. 지난 2002년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아이도 낳았지만 남편의 사업 실패와 구속, 이혼으로 또 한 번 절망에 빠진 것이다.

Second keyword - 사랑
“ 인생을 살아가며 가장 잘한 일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것”

“제 삶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으로 끝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다시 일어서야 했죠. 아이가 자라고 있으니까요. 제 딸에겐 엄마가 오현경이라는 이유만으로 안고 가야 하는 아픔이 있잖아요. 아이가 자라서 엄마에 대해 알게 될 때 그걸 멋지게 극복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우리 엄마가 오현경’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게 하려면 전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게 됐죠.”
다섯 살배기 딸에 대해 얘기할 때 오현경의 눈은 반짝 빛났다. 그에게 딸은 인생의 모든 것이다. 그 아이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세상에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누군가의 절대적인 애정이 주는 기쁨도 깨달았다고 한다.
오현경은 딸을 낳은 뒤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지난 2004년부터 가까운 후배와 함께 골프 의류 업체를 런칭하며 세상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도, 이름도 알리지 않았다. ‘그 사건’의 오현경이 아닌 ‘사업가’ 오현경으로 성공한 뒤 비로소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제 이름을 팔아 돈을 벌고 싶지 않았어요. 이벤트처럼 몇 년 하고 말 일이 아니라, 평생 가야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오현경이 골프 의류 사업 한대’라고 소문이 나면 처음 한동안은 반짝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래 갈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정말 보통 사람 하듯, 한 걸음 한 걸음 바닥부터 시작했어요.”
오현경은 지난 6월 이 골프 의류의 여름 제품 화보 모델로 나서며 3년 만에 이름을 드러냈다. 회사가 매년 계획을 초과 달성하며 꾸준히 성장한 덕에 조금은 ‘사업가 오현경’으로서의 삶에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오현경 첫 인터뷰

그가 브라운관으로 복귀할 용기를 낸 건 그 자신감을 본 주위 사람들이 그에게 “이제 연기자로서의 삶도 되찾을 때”라고 설득한 게 계기가 됐다. 특히 오현경이 “어머니같은 분”이라고 말할 만큼 힘든 시간 동안 그의 곁을 든든히 지켜준 이명순 모닝엔터테인먼트대표는 “사업가로 성공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인생을 진정으로 회복하는 길은 잃어버린 정체성을 다시 찾는 것”이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이 대표의 주도로 각계 명사가 모여 만든 ‘오현경을 사랑하는 모임(오사모)’ 멤버들도 그를 격려했다. 이 대표를 비롯해 김현숙 세고엔터테인먼트대표, 김응조 한결법무법인대표, 이재인 서울대여성문제연구소부소장, 김경희 전 일간스포츠편집국장 등이 회원으로 있는 오사모는 오현경이 여성으로서 큰 아픔을 겪은 것을 위로하고 그의 새로운 출발을 격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 그동안 매달 1~2번씩 오현경을 만나며 그의 후원자가 돼 왔다. 그들 역시 “이제는 네가 다시 세상으로 나올 때”라며 그의 용기를 북돋웠다고 한다.
“그분들의 사랑이 제게 다시 일어날 용기를 준 거죠. 그러고 나자 세상 모든 게 마치 누가 대본이라도 쓴 것처럼 맞아 들어갔어요. 그 중 하나가 ‘조강지처 클럽’을 집필하시는 문영남 선생님과의 만남이었죠. 그분을 처음 알게 된 건 지난 92년 그분이 집필하신 ‘분노의 왕국’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하면서부터예요. 그때 꼭 언젠가 좋은 작품을 같이 하자고 한 뒤 그동안 연락이 없었는데, 그분이 우연히 ‘현경이는 요즘 뭐 하지?’ 하는 생각이 났다는 거예요. 그분의 연락으로 만난 자리에서 ‘현경아, 이제 다시 나와도 될 것 같다. 연기를 통해 네가 가진 고통을 다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오현경은 그 때 가슴 안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고 말했다. “이제야 찾았구나. 이 길을 찾는 데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동안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자신을 잊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는 걸, 다시 일어날 용기를 낼 때까지 기다리고 믿어준 많은 이들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은 것이다.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사도 ‘오현경’을 환영하고 격려해주셨어요. 한때는 간절히 원해도 가질 수 없을 것만 같던 모든 것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제 앞으로 다가온 거죠. 더 감사한 건 그분들이 제 상처받은 자존심을 다독이고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주셨다는 거예요. 만약 제가 먼저 나서서 ‘하고 싶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저는 결코 복귀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동안 세상에서 외면 받은 상처가 너무 컸거든요. 그런데 이분들이 먼저 망설이는 제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신 거예요. ‘네가 필요하다. 잘할 수 있다’…. 그 말씀 한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예요.”
힘겨운 얘기를 할 때조차 눈물을 비치지 않던 오현경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번 경험을 통해 그는 “힘겨운 사람에게 작은 위로와 격려는 다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오현경 첫 인터뷰

“얼마 전 복귀 기자회견을 하는데 수많은 기자들이 제 앞에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 말문이 막혔어요. 그동안은 늘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마주쳐야 했던 분들 앞에 제가 완전히 준비된 모습으로 서서 웃을 수 있다는 게 행복했어요. 그제야 제가 얼마나 연기를 원했는지, 제 뜻과 상관없이 떠날 수밖에 없던 이 세계로 돌아오고 싶었는지 알 수 있었죠.”
그동안 오현경을 평범한 ‘엄마’로만 알고 있던 딸이 그날 이후 신문이나 인터넷에 그의 사진이 나오면 ‘와, 우리 엄마다’ 하며 뽀뽀할만큼 좋아하는 것도 그를 기쁘게 한다고 한다. 그가 직접 얘기한 적은 없는데 어디에선가 엄마가 유명한 연기자였다는 얘기를 들은 듯, 딸은 TV를 보다 드라마가 나오면 “우리 엄마가 안 나오고 딴 사람이 나오네. 엄마는 언제 나와?”하고 묻기도 한다고.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아이의 미소를 보며 “복귀를 결심하기 잘했다”는 용기를 얻는다는 오현경은 “하지만 이제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가 금세 세상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10년 동안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악플은 다 받아봤잖아요. 이번에도 복귀 기자회견을 하고 나니 기사 밑에 또 좋지 않은 얘기들이 달리더라고요. 저는 사실 괜찮아요. 그 정도는 감수하고 다시 세상에 섰고요. 하지만 혹시라도 아이가 상처받을까봐 어린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받을까봐 자꾸 걱정이 돼요. 세상 사람들에게 ‘저도 아이 키우는 엄마입니다. 우리 아이 인생이 제겐 무척 소중해요’라고 일일이 고개 숙이며 말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Third keyword - 다시 꾸는 ‘꿈’
“일이 나를 찾아왔듯, 언젠가 사랑도 다시 다가올 거라 믿어요”

그렇게 날을 세운 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어디 얼마나 하는지 두고 보자’고 하는 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오현경은 요즘 밤을 새워 대본을 연구한다고 한다. 아니, 어쩌면 그건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이들과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딸,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새롭게 살아가고 싶은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워낙 오래 쉬던 일이라 쉽지는 않아요. 현장 분위기가 예전과 다르고, ‘아줌마’가 된 뒤 건망증이 생겨서 대본 외우기도 힘들고요(웃음). 하지만 어릴 때보다 나아진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세상을 산 덕분인지 저 자신과 주위를 읽는 눈이 깊어졌거든요. 제가 어느 면이 부족하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금세 알겠어요. 저와 가장 친한 친구인 혜선이(단국대 연극영화과 동기 동창인 탤런트 김혜선)가 함께 출연하는 것도 큰 힘이 되고요.”
오현경이 ‘조강지처 클럽’에서 맡은 배역은 아이가 하나 있는 평범한 주부 ‘화신’. 첫사랑인 친구 오빠와 결혼해 평생 그만 믿고 살아가지만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뒤 ‘복수’를 하는 역이다. “내 나이 또래의 배역이라 감정 이입이 상대적으로 쉬워 다행”이라는 그는 오랜만의 방송 복귀에서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하루 5백개씩 훌라후프를 돌리며 몸매를 가다듬고 있다고 한다.
“다시 일을 시작하니 정말 행복해요. 요즘 저는 세 가지 꿈을 꿔요. 첫째는 아이 잘 키우는 거요. 제 딸이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어디에 가도 기죽지 않는, 바르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자라게 해주고 싶어요. 둘째는 사업이죠. 의류 사업은 제가 다시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이끌어준 소중한 일이거든요. 저는 꼭 사업에서 성공하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은 연기죠. 어렵게 주어진 기회가 헛되이 사라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할 거예요.”
그는 엄마로, 사업가로, 연기자로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얘기하며 행복해보였다. 하지만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삶, 사랑하고 사랑받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더 이상 꿈꾸지 않는 걸까. 그에 대해 그는 “사람은 늘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입을 열었다.
“지금 제겐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가득해요. 이제는 일에 좀 더 사랑을 쏟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요. 여자로서의 사랑은 그 다음인 것 같아요. 제가 해야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동안, 어느 순간 일이 제게로 왔듯, 그렇게 사랑 또한 절 찾아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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