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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10년 역사 이어온 우리나라 최고(最古) 기업 동화약품 윤길준 사장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동화약품 제공

입력 2007.09.22 12:01:00

구한말 우리나라 최초의 제약회사로 설립된 동화약품이 올해로 창사 1백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까스활명수’ ‘후시딘’ 등의 의약품으로 널리 사랑받아온 동화약품 윤길준 사장을 만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기업의 숨은 역사와 신약 개발에 잇달아 성공하며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최근 발전상에 대해 들었다.
1백10년 역사 이어온 우리나라 최고(最古) 기업 동화약품 윤길준 사장

서울시 중구 순화동 5번지. 서울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이 주소의 주인은 지난 1백10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1897년 우리나라 최초의 제약회사로 설립된 동화약품이 줄곧 이 자리를 지키며 기업을 발전시켜왔기 때문. 그사이 일제 강점과 해방, 한국전쟁, IMF 외환위기 등 거센 한국 현대사의 파도가 지나갔지만 동화약품은 한 번도 본사를 이전하거나 문을 닫지 않은 채 기업의 역사를 이어왔고, 올해로 창립 1백10주년을 맞았다.
지난 8월 초 동화약품 윤길준 사장(50)을 인터뷰하기 위해 사옥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도 바로 기업의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4장의 기네스북 인증서였다. 동화약품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회사이자 제약회사이며, 동시에 최장수 의약품 ‘활명수’(1897년 개발)와 가장 오래된 등록상표인 ‘부채표’(1910년 등록)를 보유하고 있다는 공식 확인서가 사옥 벽에 게시돼 있었던 것.
윤 사장은 “동화약품이 오랜 역사를 이어온 것도 자랑스럽지만, 그보다 더 기쁜 건 그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라며 입을 열었다.
“강산이 수도 없이 바뀔 시간이 흘렀지만, 창사와 함께 판매를 시작한 활명수는 지금도 한 해 생산량이 1억 병에 달할 만큼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시장점유율이 70%에 육박하고, 지난해 기준으로 누적 판매량이 78억 병이나 되죠. 후시딘·판콜에스 등 다른 의약품도 널리 팔리고 있고요. 동화약품 가족들이 ‘좋은 약을 만들어 사회에 봉사하자’는 사시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윤 사장의 말처럼 동화약품을 생각하면 바로 같이 떠오르는 것이 ‘부채표 까스활명수’. 액체 소화제의 대명사로 통하는 ‘활명수’는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던 지난 1897년, 당시 궁중 선전관(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직위)으로 한약지식에 능통하던 민병호 선생이 궁중 비방에 양약 처방을 더해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라고 한다. 달이는 탕제에 익숙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활명수’는 파격이었고, 그해 9월25일 민 선전관의 아들 민강이 동화약품의 전신 ‘동화약방’을 세워 판매를 시작하자 곧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고 한다. 당시 활명수 1병의 가격은 설렁탕 2그릇에 막걸리 한 말 값을 더한 것만큼이나 비쌌지만, 미리 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활명수 수익금으로 독립자금 만들어 상해 임시정부 지원했던 민족기업
“그때부터 유사상표가 끊이지 않아서 1910년 심벌마크 ‘부채표’를 만들어 등록했다고 해요. 활명수가 이렇게 큰 인기를 누린 건 11가지 순수 생약성분으로 제조해 과식·소화불량 등에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화약품이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한 민족기업이기 때문이기도 했죠. 당시 동화약품 경영진은 본사 사옥에 상해 임시정부와 연결된 비밀행정기관 연통부(聯通府)를 설치하고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은 한동안 동화약품 안에서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다 지난 95년 서울시가 광복 50주년을 맞아 본사 부지에 ‘연통부 기념비’를 설치하면서 대외적으로도 알려지게 됐죠.”
그러나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기업이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을 것. 동화약품 역시 창업자 민강이 독립운동 혐의로 1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존폐의 위기를 맞았고, 기업을 이어가기 위해 지난 1937년 보당 윤창식 선생(1890~1963)에게 회사를 매각했다고 한다. 동화약품의 5대 사장에 취임한 윤 전 사장 역시 신간회(1920년대 후반 좌우익 세력이 합작해 결성한 대표적인 항일단체) 활동 등으로 옥고를 치른 바 있지만 창업자 가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일제의 감시가 덜했기 때문이라고. 윤 사장의 뒤를 이어 경영을 맡은 아들 윤광렬 회장(83) 역시 학창시절 광복군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을 만큼 동화약품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선 민족기업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지난 2003년 동화약품 대표이사에 취임한 윤길준 사장은 “이러한 기업과 활명수의 전통 덕분에 아직까지도 많은 분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며 “자랑스런 역사를 남겨준 선대 사장들의 정신은 지금도 동화약품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고 말했다.

1백10년 역사 이어온 우리나라 최고(最古) 기업 동화약품 윤길준 사장

직원들과 함께 제품을 살펴보고 있는 동화약품 윤길준 사장.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의 활명수(活命水) 상표가 선명한 초창기 활명수 병.(작은사진)


동화약품은 1970년대 노동조합이 설립됐지만 지금껏 쟁의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영업직부터 안내직, 경비직에 이르기까지 회사의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퇴직 사원에게도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등 사원 복지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동화식구 정신’ 덕분이라고 한다.
“5대 사장이던 보당 윤창식 선생은 직원들을 모두 ‘식구’라고 불렀고, ‘동화는 동화식구 전체의 것이니 온 식구가 잘 살 수 있는 기업으로 이끌라’는 유훈을 남기셨어요.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사주는 사원 복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원칙도 세워주셨죠. 동화약품이 남녀고용평등법이나 비정규직 법안이 시행되기 전부터 남녀 구별 없이 전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건 이런 선대 경영진의 뜻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동화식구 정신’이 발전의 원동력
동화약품은 1970년대부터 내근직과 생산직 구별 없이 ‘전 직원 월급제’를 실시하는 등 공정한 성과 배분과 사내 복지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지난 98년 IMF 외환위기로 회사가 경영상 어려움에 처했을 때 노조가 앞장서서 상여금을 반납하며 경영진에 힘을 실어줬다고. 윤 사장은 “이듬해 회사가 정상화되자마자 돌려받은 상여금을 다시 지급했다”며 “노사가 힘을 합쳐 회사를 다시 세운 그때의 기억은 지금 다시 돌아봐도 마음 따뜻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회고했다.
임직원이 거래처에서 받은 선물을 모두 모아 일련번호를 매겨두었다가 해마다 설과 추석에 추첨을 통해 나눠 갖는 ‘수혜품추첨제’도 ‘동화식구’ 정신을 강조하는 동화약품만의 독특한 전통. 제약회사의 특성상 동화약품 직원들은 업무 파트너로부터 선물을 받을 일이 종종 있는데 그걸 개인적으로 갖지 않고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 반납했다가 명절에 공평하게 나눠 갖는 것이다.
“갈비나 과일처럼 보관이 어려운 선물이 들어오면 근처 마트에 가서 상품권이나 음료수 같은 것으로 바꿔옵니다(웃음). 그리고 명절에 한자리에 모여 추첨하는 거예요. 직원들이 좋은 선물을 받아가며 환호하는 모습, 낙첨돼 실망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신기한 건 말단 사원이나 고생을 많이 한 사원들이 큰 선물을 받아간다는 거죠. 처음에는 외부 선물을 일절 받지 않았지만, 선물 보내는 사람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고마움의 표시로 받기 시작하면서 이런 전통을 만들었어요.”
이처럼 남다른 전통과 가족적인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동화약품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1년 세계 최초의 간암치료용 방사성의약품 ‘밀리칸주’를 개발했고, 올해는 자체 개발한 신약물질 퀴놀론계 항균제(DW224a)를 미국에 수출한 데 이어, 골다공증치료제(DW1350)를 세계적인 제약사 ‘P·G 제약’에 국내 제약사상 최대 규모인 5억1천1백만 달러에 수출해 한국 제약산업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고.
“현재는 충북 충주시에 2만5천 평 규모로 미국 우수의약품제조기준(cGMP)을 충족시키는 최첨단 공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 공장이 완공되면 동화약품은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기업이 될 겁니다. 동화약품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발전하고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겠습니다.”

여성동아 2007년 9월 5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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