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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의 공백 깨고 돌아온 가수 이은하

글·김수정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7.09.22 11:48:00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밤차’ 등의 노래로 70∼80년대 큰 인기를 모았던 가수 이은하가 15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하고 가수활동을 재개했다. 그동안 일본 진출 좌절, 사업 실패 등 여러 시련을 겪었다는 그를 만나 그동안의 생활에 대해 들었다.
15년간의 공백 깨고 돌아온 가수 이은하

이은하(46)가 돌아왔다. 70~80년대 ‘봄비’ ‘아리송해’ ‘밤차’ 등 무수한 히트곡을 내며 인기를 모으다 어느 순간 모습을 감췄던 그가 새 앨범 ‘Come Back’을 발표하며 화려하게 ‘컴백’한 것. 최근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그는 전성기를 방불케 할 만큼 생기 넘치고 발랄해보였다.
“92년 ‘탈출’을 끝으로 방송활동을 중단했으니 15년 만이죠.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예전과 똑같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나이 든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앨범도 젊은이들이 홍대에서 즐겨 듣는 하우스재즈·트랜스 장르로 채웠어요. 빠르고 강한 리듬인데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빠져들곤 해요(웃음).”
이은하는 자신의 이번 앨범을 ‘늦둥이’라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발매한 앨범이 모두 아들·딸처럼 귀하지만 마흔이 넘어 낸 이번 앨범은 특히 더 귀하게 느껴진다고.
“그동안 노래 부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거든요. 한두 곡만 녹음해서 한시라도 빨리 나갈까 하다가도 15년 만에 내는 음반인데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에 열세 곡이나 불렀어요.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아 마음이 놓여요(웃음).”
그는 카페에 흘러나오는 노래에도 어깨를 들썩일 만큼 에너지가 넘쳐보였다. 이토록 열정이 가득한 그를 왜 한동안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걸까.
“TV에 나오진 않았지만 ‘불량주부’ ‘인어아가씨’ 같은 드라마 OST에 참여하고 밤무대나 지역행사에서도 노래를 불렀어요.”

90년대 가요계 급변하면서 설 자리 잃어
이은하는 “TV에 출연하지 못한 건 후배들에게 밀렸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90년대로 접어들어 가요계가 급변하면서 그는 위기를 맞았다고 한다. 힙합과 랩이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가 인기를 끌고 화려한 댄스를 앞세운 후배들이 하나 둘 그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 무렵 아버지마저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그래도 재기를 꿈꾸며 앨범을 준비했지만 IMF를 겪으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한국에서의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역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혼자 스케줄 짜고 메이크업하고 운전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이래봬도 한국에서 가수왕을 세 차례나 수상한 가수인데’ 하는 자존심에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말이 들리지 않았어요. 배가 덜 고팠었나봐요(웃음).”
일본 진출에 실패하고 귀국한 그는 ‘이미 시대에 뒤처진 가수로 평가받았으니 이참에 후배 가수를 키워보자’는 생각에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밤무대를 전전하며 모은 돈을 투자해 후배 가수를 키운 그에게 또다시 시련이 닥쳤다. 그가 모든 것을 쏟아부은 신인이 앨범 녹음 직전 가수 데뷔를 포기한 것이다.
“다른 일을 하겠다면서 갑자기 그만둔다는 거예요. 정말 기가 막히고 당황스러웠지만 말리지 않았어요. 제 욕심 채우겠다고 하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붙들 순 없으니까요.”
이후 ‘누굴 키우기보다 아직은 직접 무대에 서는 게 더 마음 편하다’고 느낀 그는 3년 전 자신의 앨범 제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동시에 ‘제대로 공부해 훗날 제작자로도 성공하겠다’는 마음으로 서강대 최고경영자과정과 경원대 산학정책과정을 다니며 경영공부도 했다고.
“평소 알고 지낸 작곡·작사가에게 1백 곡이 넘는 곡을 받았어요. 그리고 본격적인 앨범 작업을 위해 지난해 10월 소규모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도 세웠죠. 기획사라지만 좁은 사무실에 녹음기기와 키보드, 기타 등 악기 몇 개 들여놓은 게 전부예요. 제 그릇에 맞게 새롭게 시작한 거죠.”

나이 속이며 어린 나이에 데뷔, 외로움과 냉대에 상처받기도
15년간의 공백 깨고 돌아온 가수 이은하

그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노래할 때”라고 답했다.


이렇게 3년간의 노력 끝에 ‘컴백’을 완성한 그는 “이제야 다시 행복이 온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는 가수활동을 재개하면서 그간 남몰래 짊어지고 있던 짐도 내려놓았다. 가수 데뷔 34년만에 처음으로 실제 나이를 고백한 것. 최근 법원에 호적정정허가 신청서를 낸 그는 “호적에는 58년생 개띠로 올려져 있지만 실제는 61년생 소띠”라고 털어놓았다.
“저를 빨리 데뷔시키려고 아버지가 편법을 쓴 거예요. 당시 방송사에서 16세 미만은 방송에 출연시키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하루빨리 제가 가수가 되길 바라셨거든요. 아버지는 금은방을 운영하며 취미로 아코디언 연주를 즐기셨는데 제가 네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팝송을 부르곤 했대요. 가수가 꿈이었던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고 제가 가수가 돼 당신의 못다 이룬 꿈을 이뤄주길 바라신 거죠. 그래서 적극적으로 저를 뒷바라지하셨고 열세 살 때 호적을 세 살 올려 열여섯 살로 만들어 데뷔시킨 거예요. 또래보다 덩치가 커서 그랬는지 다들 속으셨죠(웃음).”
뒤늦게 호적 정정을 신청한 건 새롭게 시작하면서 이제라도 제 나이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워낙 어릴 때 데뷔했고 처음부터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다들 제 가수생활이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속으로는 남모르는 상처와 아픔이 많았죠. 초등학교만 제대로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과정을 전수학교(직업준비 중심 교육기관)에서 이수해 친구가 거의 없거든요. 연예계에서도 데뷔 동기들은 다 열 살 이상 나이가 많은 언니, 오빠고 또래는 까마득한 후배라 마음 터놓고 얘기할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죠.”
73년 ‘님 마중’으로 데뷔한 뒤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밤차’ ‘아리송해’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최고의 인기를 모았지만, 남모를 외모 콤플렉스도 그를 괴롭혔다고 한다.
“통통한 외모 탓인지 PD들이 ‘이 자식 저 자식’ 하면서 저를 사내아이 취급했어요.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해도 카메라 클로즈업 한번 받지 못할 정도로 다른 여가수와 차별 대우를 받았죠. 무대 뒤에서 눈물을 쏟으면서 ‘두고 봐라, 내가 나중에 성공하면…’ 하면서 분을 삼키곤 했어요.”
가수활동 내내 외로움과 외모 콤플렉스로 스트레스를 받은 그는 스물넷 되던 해 사내아이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체중을 14kg이나 감량했다. 그리고 그 무렵 첫사랑이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평범한 남자였어요. 그때까지 남자라고는 아버지와 남동생밖에 몰랐는데 그 남자가 처음으로 저를 여자로 대해줬죠. 저 역시 화려한 인기 뒤에 가려진 제 외로움을 이해해주는 넉넉한 성품에 반했고요. 개인생활이 거의 없었을 만큼 스케줄이 빠듯해 마음껏 데이트를 하지 못했지만 1년 남짓 그와 만나면서 프러포즈를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우연히 아버지에게 들통이 났고, 결국은 헤어지고 말았죠.”
이은하의 아버지는 한창 활동해야 할 그가 가수생활을 등한시할 것을 염려해 두 사람의 만남을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처음 한동안은 그와 결혼하겠다며 떼를 썼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곧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은하가 직접 작사해 86년 발표한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사랑이 끝난 뒤 그의 심정을 담은 곡이라고 한다.
“저는 독신주의자가 아니에요. 지금도 결혼하고 싶고요. 하지만 그때 이후로 기회가 오지 않았죠. 초등학교 동창 가운데 결혼해 아이를 뒀거나 드물긴 하지만 벌써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친구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어요. ‘그때 사랑이 이뤄졌다면 지금쯤 나도 아이 둘 셋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렸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성실한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밝힌 그는 “이제 아이를 낳진 못하겠지만 아이를 많이 기르고 싶다”고 고백했다. 입양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포기했다는 그는 “언젠가는 보육원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함께 노후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당신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노래할 때”라고 답했다. 안무 연습 시간에 늦었다면서 부지런히 뛰어가는 그에게서 꺼지지 않을 열정이 느껴졌다.

여성동아 2007년 9월 5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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