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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 기자의 키워드 토크

행복을 꿈꾸는 동성애자 Hong Seock Cheon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 ■ 의상협찬·NE2NOM(www.ne2nom.com)

입력 2007.08.22 15:10:00

한 사람을 몇 개의 단어로 설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대상이 홍석천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는 대책 없는 ‘날라리’면서, 동시에 열정적인 인권 운동가다. 하나로 수렴되지 않을 것 같은 두 모습 사이에는 양자를 가로지르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 솔직함, 자유, 행복. 홍석천이 건네준 세 개의 단어를 들고 그를 만났다.
행복을 꿈꾸는 동성애자 Hong Seock Cheon

홍석천(36)에게 ‘당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세 개 뽑아달라’고 했을 때 그가 얘기한 건 솔직함, 자유, 행복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솔직해지고 싶어 지난 2000년 인기 연예인으로는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했고, 자유로워지기 위해 거침없이 욕망을 표현하며,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행복을 꿈꾼다고 했다.
장마가 잠시 멈추고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던 7월 어느 날, 그가 일러준 세 개의 단어를 곱씹으며 홍석천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마이 타이(my thai)’를 찾았다. 하얀 셔츠와 블랙 진 차림으로 손님을 맞고 있는 홍석천은 그 공간 안에서 익숙하고 편안해보였다. 알고 보니 ‘나의 타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인테리어부터 소품 하나까지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홍석천에게 레스토랑은 생계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감각을 드러내고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길 하나 건너면 제가 운영하는 또 다른 식당이 있어요. 그곳 이름은 ‘아워 플레이스(our place)’인데, 우리말로 풀면 ‘우리집’이죠. 커밍아웃한 뒤 방송에서 다 잘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때,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해준 게 그 레스토랑이에요. 이름을 ‘우리집’으로 한 건, 그 공간에서 사람들을 마치 우리집에 초대한 것처럼 솔직하고 자유롭게 어울리고 싶었기 때문이죠. 제가 레스토랑을 하는 이유는 늘 그래요.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은 거죠.”

행복을 꿈꾸는 동성애자 Hong Seock Cheon

First keyword - 솔직함
”내 인생의 목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

세상 사람 열 중 아홉은 홍석천을 비난하고 모욕하던 시절, 그가 자신의 정체성과 감수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세상과 소통하겠다고 나서자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말렸다고 한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커밍아웃하고 이렇게 뻔뻔하게 돌아다니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죠(웃음). 하지만 전 제 모습을 감추고 싶지 않았어요. 저에 대한 욕설로 뒤덮인 글 아래 ‘저는 매일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이태원 ‘아워 플레이스’에 있습니다. 욕하려면 와서 보고 하세요’라는 댓글을 쓴 적도 있죠. 어떻게 보면 그건 제게 또 한 번의 커밍아웃이었던 것 같아요. ‘당신들이 아무리 나를 욕하고 미워해도 나는 내 세계를 아끼고 사랑한다, 내 취향과 감정대로 살 거다’라는 뜻이었으니까요.”
홍석천이 처음부터 이렇게 자신에게 솔직했던 건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자신이 한 살 많은 동네 형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처음 깨달은 순간 그는 세상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제가 충북 청양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거든요. 거기엔 저 같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남자를 좋아했죠. 작고 어린아이가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과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때 느낀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지는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절대 모를 거예요. 제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를, 제발 평범해지기를 간절히 바랐어요.”
하지만 그가 느낀 ‘다름’은 조금씩 밖으로도 드러나기 시작했고, 여느 남자아이들과 달리 가녀리고 예뻤던 그는 종종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의 대상이 돼야 했다. 급기야 중학교 시절 선배 3명에게 끌려가 으슥한 공장 옆에서 성폭행을 당하기까지 했다. 누구에게도 터놓고 얘기할 수 없는 ‘낯설고 두려운’ 경험 앞에서 그가 얼마나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혐오했을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남들이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자친구를 만나고 데이트도 했죠. 하지만 그건 저 자신을 속이는 일이더군요.”
그가 결정적으로 자신이 ‘일반’이 될 수 없다는 걸 느낀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고 한다. 군대 가기 전 총각딱지를 떼어야 한다는 선배들 손에 이끌려 억지로 미아리에 갔다가 오히려 “나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행복을 꿈꾸는 동성애자 Hong Seock Cheon

“아시겠지만 게이도 여자와 잘 수 있어요. 다만 남자와 잘 때만큼 좋지 않은 거죠. 제가 여자와 성관계를 맺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았어요. 그 뒤 군대에 들어가 저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죠. 내가 좋아하는 건 뭔가, 어떨 때 내가 가장 행복한가…. 답은 분명했어요.”
하지만 이때도 그저 그 사실을 받아들였을 뿐, 자신을 사랑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에게 ‘자기애’의 길을 열어준 사람은 97년 만나 3년을 사귄 첫 남자친구였다.
“네덜란드인인 그 사람은 저를 정말 사랑해줬어요. 항상 제게 ‘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누구보다도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줬죠. 그 친구 덕분에 저도 조금씩 ‘정말 내가 멋진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비로소 제가 게이이기 때문에 갖게 된 감각과 재능, 나아가 저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게 됐죠.”
홍석천은 “그를 만난 후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이제는 세상을 향해 말해도 되겠다’ 싶을 만큼의 자신감이 생겼을 때 커밍아웃을 했다”고 말했다. “내 삶과 사랑 앞에 솔직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함의 대가는 혹독했다. 네티즌이 쏟아내는 비난과 욕설에 그는 만신창이가 됐고, “이 골목을 돌면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오는 돌에 맞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릴 만큼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저에 대한 증오 섞인 협박, 욕설은 참을 수 있었어요. 가장 견딜 수 없던 건 제가 게이라는 이유로 저를 방탕하고 부도덕한 존재로 보는 시선이었죠.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면 건전한 거고, 남자를 사랑하면 문란한 건가요? 전 지금도 ‘누구든 나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 있으면 나를 욕해도 좋아.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 거의 없을걸’ 하고 자신할 만큼 열심히 살아요. 그런데 단지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어요.”
홍석천은 아침 일찍 그의 집에 마약단속반원 네 명이 들이닥친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게이니까 당연히 마약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표적수사를 한 것이다. 너무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그들을 붙잡고 “제가 갈 데까지 가는 놈이라 해도 마약은 절대 안 해요”라고 하소연했다는 그는 마약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혐의를 풀 수 있었다.
“솔직히 마약할 기회가 있었던 건 인정해요. 특히 커밍아웃하고 힘들 때 유혹이 많았죠. 그때 제 고민이 그냥 죽느냐 아니면 어떻게든 견뎌서 살아남느냐였는데, 약이 있으면 견디기가 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마약은 불법이니까, 제가 마약까지 하면 ‘홍석천, 저거 봐라. 게이가 다 저렇지’ 하는 소리 들을 게 분명하니까 죽을힘을 다해 참았죠. 그런데 아침부터 마약반이 들이닥치니 기가 막히더군요.”
그 시절 홍석천이 기댈 곳은 더 큰 솔직함과 자기애뿐이었다고 한다. ‘누가 봐도 멋진 사람임을 증명해 나를 욕하는 이들이 후회하게 하리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행복을 꿈꾸는 동성애자 Hong Seock Cheon

“커밍아웃하고 집안에만 있다가 처음 시작한 일이 나이트클럽 DJ였어요. 모든 방송에서 잘렸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건 나를 욕하는 사람과 직접 맞설 수 있다는 거였죠. 내 본모습을 보여줘도 과연 당신들이 나를 욕할지 한번 보자는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일은 쉽지 않았다. 홍석천은 “굳은 결심을 하고 무대에 올랐지만, 처음엔 20분짜리 공연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중간에 수십 번이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싸웠다”고 털어놓았다. 매 순간 “저 사람들이 내게 맥주병을 던질지 모른다. 무대로 뛰쳐 올라와 날 칠 수도 있다”는 공포에 떨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공연 초기엔 제게 손가락 욕설을 하거나 안주를 집어던지는 사람이 많았어요. 빨리 끝내고 무대 뒤로, 어둠 속으로,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공간으로 숨고 싶었죠. 하지만 거기서 버티지 못하면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살 수 없게 되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놀고 춤을 췄어요.”
그는 그때 그 나이트클럽에서 처음으로 윗옷을 벗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윗옷을 벗음으로써 사람들한테 얘기한 거예요. ‘잘 봐. 내가 니들이 욕하는 그 홍석천이야. 그런데 직접 보니까 어때? 멋있지 않니? 난 서른이 넘었는데 너희들보다 몸이 훨씬 좋아. 너희보다 춤도 더 잘 추고 훨씬 쿨해’.(웃음) 좀 유치하죠? 그런데 그건 실은 저한테 하는 말이기도 했어요. 내가 날 사랑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니까 더 많이 나를 사랑하게 된 거죠. 신기한 게 그렇게 제가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나서니 사람들도 저를 다시 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홍석천은 지난 2003년 ‘아워 플레이스’를 열었고, 자신의 가게에서 직접 사람들과 소통했다. 이번엔 20분이 아니라 하루 종일이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욕설을 퍼붓지 않았다고 한다.



Second keyword - 자유
”내 몸은 자신감의 근원, 난 내 몸과 욕망과 섹스를 사랑해요”

하지만 홍석천은 그 솔직함 때문에 ‘대책 없는 날라리’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최근 그는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오픈하며 전라의 누드 사진을 게시해 논란을 일으켰고, 가수 박선주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해 손바닥만한 속옷만 입고 누드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그는 몸에 대한 금기가 많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그만큼 솔직하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전 제 몸을 좋아해요. 이 나이에 이 몸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웃음). 끊임없이 운동하고 제 몸을 관리하며 자유를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죠.”
홍석천은 지금까지 모두 3명의 남자친구를 사귀었다고 한다. 커밍아웃 무렵 헤어진 네덜란드인 다음으로 미국인 남자친구를 만났고, 그와 4년을 사귀다 헤어진 뒤 만난 지금의 남자친구와 2년째 사귀고 있다. 그들 모두 홍석천의 몸을 사랑했고, 그걸 느낄 때 행복하다고 한다.
“저를 노출증 환자처럼 취급하고 욕하는 사람을 만나면 당황스러워요. 제가 그분 앞에 가서 옷을 벗은 게 아니니까요. 저는 벗을 만한 상황에서, 꼭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벗어요. 그리고 그 순간 제 몸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자유로움과 해방감, 즐거움을 느끼게 하죠. 인터넷 채팅에서는 매일 ‘몸몸몸몸’ 따지면서 대낮에는 근엄한 척, 정신으로만 사는 척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멋있지 않나요? 저는 제 욕망과 자유를 마음껏 즐기고 싶어요.”
홍석천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가족, 와인, 담배 그리고 섹스라고 답했다. 그가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건 섹스가 주는 큰 기쁨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섹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더욱 게이의 몸과 사랑에 대해 색안경 쓰고 보는 시선이 답답하고 싫다”고 말했다.
“이성애자들은 게이의 몸이나 섹스에 대해 생각하면 늘 ‘에이즈(AIDS)’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완전한 편견이에요. 에이즈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거든요. 게이들은 늘 에이즈에 대해 생각하고 조심하기 때문에 오히려 철저하게 콘돔을 써요.”
그는 애인과 관계를 맺을 때도 꼭 콘돔을 쓰고, 한 달에 한 번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 에이즈 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그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내가 거침없이 사는 듯 보이는 건, 그만큼 내 노력에 자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Third keyword - 행복
”매번 상처입고 배신당해도 저는 늘 행복을 꿈꿔요”

이렇게 사회를 향해 얘기할 때 홍석천은 투사가 된다. 커밍아웃 후 그는 일반인이 미처 몰랐던 동성애자의 인권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해왔고, 그 공로로 2004년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의 영웅’에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도 많이 입었다. 그의 발언을 선정적으로 이용하는 이들 때문에 무수한 오해와 비난을 받은 것. 최근 그는 한 대학 특강에서 “지금까지 3백 명 이상의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이 말은 인터넷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또다시 그에 대한 악플이 쏟아졌다.
“그런 기사를 보면 숨이 막혀요. 그때 전 학생들에게 성적으로 억압돼 있는 우리 사회에서 남학교에 다니는 게이가 겪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 설명하다가, 어린 시절 제가 수많은 선배와 친구로부터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을 받은 얘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사람이 생각보다 참 많았습니다. 요즘 영화 ‘300’이 인기니 그냥 3백 명이라고 할까요’라고 했는데 그걸 뚝 잘라 기사로 썼더군요.”

그는 이번처럼 최선을 다해 강의하고 인터뷰해도 정작 언론에는 자신의 진의가 왜곡돼 보도된 일이 무수히 많았다고 말했다.
그런 오해가 힘겹다면서도,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싫다면서도 그가 인터뷰를 하고 대학 강연을 나가는 이유는 뭘까.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덜 상처받지 않을까. 이 질문에 그는 문득 최근 다녀온 장례식 얘기를 꺼냈다. 홍석천은 지난 2004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동성애자 인권 보호를 목표로 하는 ‘성소수자위원회’에서 활동해왔는데, 자신을 그리로 이끈 후배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친구도 동성애자였는데, 아버지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아서 무척 힘들어했어요. 동성애자 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도, 끝내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고 그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죠. 그 애 장례식에 가서 꽃을 바치며 속으로 얘기했어요. ‘형이 더 열심히 살게. 하늘에서 꼭 지켜봐라’라고요. 제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건, 그런 수많은 죽음 때문이에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참 많아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게이로서, 전 동성애가 나쁜 게 아니고 우리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거죠.”
그가 “나는 멋있는 사람”이라고 끝없이 되뇌고, 더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게이도 참 멋있구나”라는 걸 알게 되기 바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게이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한 인간의 성정체성이 저주와 외면의 대상이 되지 않는 세상이라고 한다.
홍석천과 얘기를 나누며 문득 깨달은 건 지난 2000년 커밍아웃 이후 7년 동안 그의 삶을 이끌어온 건 ‘개인 홍석천’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동성애자 홍석천’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행동 하나, 발언 하나마다 의미를 담으려 했고,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동성애자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하려고 몸부림쳤다.
“가끔은 제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행동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니까요.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도 ‘홍석천 봐라. 저러고 다니니까 게이가 욕을 먹지’ 하는 소리가 들릴까봐 정신을 바짝 차려요.”
가끔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질 때면 그는 미국 뉴욕으로 여행을 떠난다. 낯선 사람들,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자유롭게 어울리다 보면 다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솟기 때문이라고.
“그러고 나서 한국에 돌아오면 ‘우리나라 커밍아웃 1호 연예인’ 홍석천의 삶이 시작되는 거죠. 저는 훗날 사람들이 저를 ‘모질게 열심히 살다간 사람’이라고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열심히 사는 모습이 어찌 보면 처량하고 안타까운…. ‘아이고, 저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저래서 저 사람은 행복할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그렇게 열심히 살던 모습으로 절 기억하기를 바라요.”
긴 얘기 끝이 왠지 쓸쓸하다고 말하자 그는 빙긋 웃었다.
“어차피 제 인생이 행복할 수 없으리라는 걸 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언젠가는 행복해지리라. 내가 안 된다면, 내 뒤에 오는 사람이라도 꼭 행복해지게 하리라. 그 꿈을 잃지 않고 사는 게 모진 거 아닌가요?”

여성동아 2007년 8월 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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