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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부녀 권투 챔피언 우동구·우지혜

기획·송화선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조세일‘프리랜서’

입력 2007.08.22 10:09:00

국제여자복싱협회 슈퍼페더급 세계 챔피언으로 최근 1차 방어에 성공한 우지혜양 뒤에는 전 라이트급 한국 챔피언인 아버지 우동구씨가 있다. 국내 최초 ‘부녀 권투 챔피언’인 이들을 만나 권투 사랑으로 묶인 가족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최초 부녀 권투 챔피언 우동구·우지혜

지난 6월 말 서울 중랑구 혜원여고 체육관 특설 링.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슈퍼페더급 세계 챔피언 우지혜양(20)이 일본인 도전자 미즈타니 지카를 3대 0 판정승으로 이기고 1차 방어에 성공하자 아버지 우동구씨(46)는 링으로 달려 올라갔다. 지혜양을 번쩍 들어 목에 태우고 사각의 링을 도는 우씨 얼굴에선 기쁨과 자랑스러움이 동시에 묻어났다.
“얼마나 기쁜지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었어요. 권투선수가 10라운드까지 뛰면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도 지혜가 상대 선수를 향해 계속 주먹을 뻗는데, 우리 딸이지만 진짜 대단하더라고요(웃음).”
80~90년대 두 체급 한국챔피언(주니어 라이트급·라이트급)이던 우씨는 ‘탱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저돌적 인파이터. 맞으면서도 밀고 들어가는 지혜양의 권투 스타일은 전성기 시절 우씨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우씨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가르친 ‘수제자’이기 때문이다.
“세계 챔피언은 젊은 시절 제 꿈이었죠. 하지만 지혜가 아홉 살 때 마음을 접었어요. 어느 날 훈련을 마치고 집에 갔더니 지혜가 엄마한테 백원만 달라고 조르는데 아내는 그걸 못 주고 도망다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권투를 계속합니까. 아내는 한국 챔피언 시절 제 팬이던 사람이라 제가 권투하는 걸 반대하지 않았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더 이상은 운동을 못하겠더군요.”
93년 글러브를 벗은 우씨는 막노동부터 야채 장사, 택시 기사까지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며 돈을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조금씩 생활이 안정되자 ‘세계 챔피언 벨트’에 대한 미련이 다시 그를 찾아왔다고. “내가 할 수 없다면 제자라도 기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시작된 것이다.
“2002년에 7년 동안 다니던 버스 회사를 그만두면서 퇴직금을 털어 권투 체육관을 열었어요. 그리고 당시 태권도를 하고 있던 지혜를 ‘꼬드기기’ 시작했죠(웃음). 처음엔 ‘아빠처럼 눈 찢어지고 코 망가지면 어떻게 시집가느냐’며 ‘죽어도 안 하겠다’고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득했어요.”
당시 고1이던 지혜양은 태권도 공인 3단으로 선수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태권도를 배운 뒤 바로 재능을 보여 중1 때 선수 생활을 시작한 것. 하지만 하루 종일 운동만 해야 하는 현실에 지친 그는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며 이듬해 운동을 그만뒀다. 우씨는 그 틈을 다시 노렸다고 한다.
“지혜가 태권도를 그만두더니 갑자기 살이 찌기 시작했거든요. 한 해에 무려 10kg이나 찌더라고요. 그래서 ‘권투를 하면 살이 잘 빠진다’며 ‘일단 한번 해보라’고 했어요(웃음).”
아버지의 설득에 넘어간 지혜양은 마침내 체육관을 찾았고, ‘챔피언의 딸’답게 금세 숨은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 최초 부녀 권투 챔피언 우동구·우지혜

권투 챔피언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우동구, 우지혜 부녀.


“내친김에 아들까지 챔피언 만들어 ‘챔피언 가족’ 이루고 싶어요”
“지혜에게 권투를 해보라고 하면서도 ‘과연 얼마나 할까’ 반신반의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정말 잘하더라고요.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드니 더 욕심이 생겼죠. 그래서 시작한 김에 한번 프로테스트를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꼬시고, 통과한 뒤에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데뷔전을 치러보자’고 했어요(웃음).”
한 걸음씩 딸을 권투의 길로 이끈 아버지 덕분에 지혜양은 고3이던 지난 2004년 3월 프로테스트를 통과했고, 7월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이때도 그는 여전히 권투를 하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솔직히 ‘이거 안 해도 먹고살 수 있는데 왜 굳이 권투를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권투가 태권도만큼 재밌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한 네 경기쯤 하고 나니 조금씩 권투의 매력이 느껴지는 거예요. 연습하며 배운 기술을 상대 선수에게 썼는데 잘 먹힐 때, 제 주먹에 관중이 환호할 때 ‘희열’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짜릿한 기분이 느껴졌죠.”
지혜양은 권투 입문 1년 만인 2005년 5월 한국 챔피언에 올랐고, 올 3월에는 마침내 세계 챔피언이 됐다. 국내 최초의 부녀 권투 챔피언이 탄생한 것. 딸이 자신의 오랜 꿈을 대신 이뤄준 날, 지혜양과 함께 링에 서서 애국가를 들은 우씨는 “얼마나 뿌듯하고 감동적이었는지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고 말했다.
“아빠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저도 좋죠. 기쁘고 좋은 만큼 책임감도 커지고요. 1차 방어전에서 이긴 뒤 보니 아빠가 저보다 더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가을쯤 2차 방어전을 할 것 같은데,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앞으로도 멋진 선수로 남고 싶고요.”
본격적으로 권투를 시작한 뒤 훈련에 매달리느라 개인 생활은 엄두도 못 내고, 특히 시합을 앞두고는 컨디션 조절 때문에 외출조차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좋다”며 활짝 웃는 지혜양은 “원래 아빠 팬이던 엄마는 이제 내 팬이 돼 열렬하게 응원해주신다. 아빠가 이제 그만 됐다고 하는데도 더 훈련하라며 오히려 강하게 나를 몰아붙일 정도”라고 전했다.
우씨의 다음 목표는 올해 권투 신인왕전 2위를 차지한 아들 병준군(18)을 ‘꼬드기는’ 것. 지혜양이 1차 방어전을 준비하는 동안 스파링 파트너로 누나의 훈련을 도와준 병준군은 아직은 권투선수가 되는 것에 회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씨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득 중이라고. 부녀 챔피언에 이은 부자 챔피언, 남매 챔피언이 탄생할지 궁금해진다.

여성동아 2007년 8월 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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