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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 국어 구사하며 세계에 한국 알리기 앞장서는 벨기에 입양아 출신 심지희

기획·김명희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07.06.22 09:45:00

세계 각국에 태권도를 홍보하는 심지희씨. 열한 살 때 남동생과 벨기에로 입양됐던 그는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벨기에 공용어인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배운 데 이어 중국어·러시아어 등을 차례로 익혀 현재 8개 국어를 구사한다. 입양아라는 아픔을 딛고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8개 국어 구사하며 세계에 한국 알리기 앞장서는 벨기에 입양아 출신 심지희

입양 아픔 딛고 8개 언어 구사하는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한 심지희씨.


전세계 182개 국가를 회원으로 확보하고 있는 세계태권도연맹(WTF) 홍보팀에 근무하는 심지희씨(31). 그는 한국어와 영어를 비롯해 네덜란드어·프랑스어·중국어·독일어·스페인어·러시아어 등 8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가 8개 국어를 하게 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고 한다.
그의 본명은 지희 반덴 베르게. 그의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국적은 벨기에다. 76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열두 살이던 지난 87년 네 살 어린 남동생과 함께 벨기에로 입양됐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심’이라는 성은 친아버지의 성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심리치료사인 양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양어머니, 아홉 살 위인 쌍둥이 언니·오빠는 그와 동생을 따뜻하게 보살펴주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 얼마간 한국이 그립고 낯선 세계가 두려워 울기만 했다고.
“아주 어릴 때 간 게 아니라,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립되고 한국적 습성이 자리 잡은 후에 간 것이라 쉽게 적응할 수 없었어요. 더욱이 제가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편이라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었죠.”
하지만 어떻게든 그곳에 적응하고 살아야 했던 그는 곧 모질게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누구보다 힘이 돼준 이는 함께 입양된 동생이었다. 그보다 벨기에 생활에 적응을 잘했던 동생은 때로는 의젓한 오빠처럼, 때로는 다정한 친구처럼 그의 곁을 지키며 힘을 주었다고 한다.
벨기에 생활에서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언어였다. 초등학교 5학년으로 편입한 그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수업은커녕 친구들과 말 한마디를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외톨이로 남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언어를 익혔어요. 벨기에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있고 입양이 활성화돼 있어 그에 대한 편견은 거의 없는 편이지만 저 자신이 말이 통하지 않아 대화에서 제외되고 수업에서 뒤처지는 걸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매일 몇 백 개의 단어를 암기하고, 저녁이면 옆집에 사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집에서 특별 과외를 받았어요. 그렇게 2년 정도 지나니까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어졌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엔 독일어와 영어를 익혔다고 한다. 언어의 기본 생리를 터득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보다 쉽게 익혔다고. 외국어 습득은 처음이 어렵지,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쉬웠다는 것이 그의 설명. 대학에서는 중국어를 전공하며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전공으로 중국어를 선택한 이유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였다고.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한국어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어요. 벨기에에서 살아가기 위한 제 나름의 방법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픈 기억뿐인 한국과 한국어를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양어머니가 저와 동생을 데리고 한국 여행을 했어요. 저희 남매를 위한 배려였죠. 한 달 동안 한국을 여행하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편안함을 느꼈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던 한국어를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여행에서 돌아온 후 그는 한국어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벨기에에는 한국어학과가 있는 대학이 없었다. 결국 그는 차선책으로 3학년 때 한국어학을 별도로 전공할 수 있는 르븐 카톨릭대학의 중국어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한국어학을 별도로 전공할 수 있는 제도는 그가 입학하던 해부터 폐지됐다.
낙심하던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대학 3학년을 마치고 장학생으로 선발돼 중국 산둥대학으로 연수를 갔는데 그곳에서 한국 유학생들을 만나 한국어를 익히게 된 것.
“같은 연수 프로그램을 듣는 유학생이 2백 명이었는데, 그중 절반이 한국인 유학생이었어요. 한국인 유학생들과 요리를 해먹고 놀러도 다녔죠. 한국에 대해 아픈 기억만 가지고 있던 제게 그때 한국 친구들은 따뜻한 기억을 선물해줬어요.”
연수를 마치고 벨기에로 돌아간 그는 대학 졸업 후 외교관의 꿈을 갖고 같은 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해 공부하던 중 또다시 한국에 올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2002년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해 선발된 것이다.

“언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각 나라의 신문과 소설책 꾸준히 읽어요”
1년 과정의 연수를 마치고 벨기에로 돌아가야 했을 때, 그는 정든 한국을 떠나기 싫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그는 2003년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에 진학했고 이때 기숙사에서 러시아 친구와 한방을 쓰게 돼 러시아어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원을 마친 뒤, 그는 8개 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발휘해 2005년 1월부터 세계태권도연맹에서 일하게 됐고, 그렇게 계속 한국에 머물게 됐다. 사실, 그가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벨기에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2003년 경희대에서 만나 지금까지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또 지난해 대구에 있는 친어머니를 찾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보지 못하고 외삼촌과 외할머니만 봤다고. 그는 친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제 삶이 있듯, 그분의 삶도 있는 것이니까, 그걸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것 같아요.”
그에게 8개 국어를 사용하면서 가장 힘든 때를 묻자 “무의식적으로 다른 언어가 튀어나올 때”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령 네덜란드어로 이야기하는데 불쑥 프랑스어가 튀어나오는 경우라고. 때문에 그는 대화할 때 집중력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언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그 나라 문화에 대해서도 꾸준히 공부를 한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프랑스와 독일 신문을 구독하고 각국 소설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외국어를 정복하기 위해선 부단한 호기심과 함께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그 정도면 됐다”고 말을 하지만, “어릴 적 겪은 언어적 충격 때문인지 새로운 언어를 보면 더 알고 싶고 잘하고 싶다”는 심지희씨. 그의 도전의 끝이 과연 어디쯤일지 궁금하다.

여성동아 2007년 6월 5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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