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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쭉한 입담으로 풀어낸 콩고인의 생활, 인생 이야기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기획·김동희 기자 / 글·민지일‘문화에세이스트’ / 사진·(주)솔로몬 ‘원시 부족, 원시 미술전’

입력 2007.06.11 10:48:00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낸 콩고인의 생활, 인생 이야기

카메룬 크웰레 부족의 가면. 가면에 칠해진 흰색은 고요와 평화를 상징한다.(좌) 부르키나파소 브와 부족의 태양가면.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데 쓰인다.(우)


‘아프리카’ 하면 우리는 대개 원시·미개·빈곤·풍토병·살육 등 어두운 단어를 떠올린다. 신문·방송에 보도되는 그곳 뉴스가 워낙 부정적인 탓일 것이다. 부족전쟁으로 수십만 명이 학살당한 소식들은 이젠 신문 한귀퉁이에나 실리는 뉴스가 됐다. 너무 자주 일어나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피골이 상접한 아이들이 눈만 퀭한 채 음식을 갈구하는 사진도 잊을 만하면 실려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최초의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나타났고 고대문명이 활짝 꽃을 피운 지역이건만, 지금 그곳에 문명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아프리카 문학인들 우리에게 제대로 소개됐을 리 없다. 월레 소잉카, 나딘 고디머, 존 쿠시 등 노벨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과 그들을 축으로 한 문학론이 시상식 무렵에만 반짝 선보이곤 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최근의 아프리카 문단, 그리고 아프리카인의 삶을 짚어보고 유추해볼 수 있는 ‘젊은 작품’은 찾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콩고 출신의 젊은 작가 알랭 마방쿠가 2005년 발표한 소설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는 꼭 한 번 찾아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우선 무엇보다 재미있다. 걸쭉한 입담으로 욕설을 곁들여 술집에 코 박고 사는 인간 군상의 삶을 풀어내는데, 가히 우리나라 판소리 수준이다.

콩고 출신 젊은 작가가 들려주는 현대 아프리카의 일상
‘외상은 어림없지’는 24시간 열려 있는 콩고의 명물 술집 이름이다. 감옥을 들락거리고 마누라에게 쫓겨나는 등 온갖 사연을 지닌 술꾼들이 종일 진치고 앉아 술을 마시고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소설의 화자 ‘깨진 술잔’은 어느 날 술집 주인 ‘고집쟁이 달팽이’로부터 노트 한 권과 함께 술집 역사를 기록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주인은 보통의 아프리카인과 달리 “결국 세상에 남는 건 문자로 된 기록”이라는 걸 철저히 믿는 사람. 그래서 “아프리카에선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탄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비유를 경멸하며 책 한 권짜리 술집의 기록을 남기고자 부탁한 것이다. 여기서 고집쟁이 달팽이의 주문을 한번 들어보자.

“깨진 술잔, 당신 안의 분노를 끌어내요, 폭발시켜요, 토해버려요, 내뱉고, 쏟아내고, 싸버리라고요. 난 상관 안 하니까. 하지만 이 술집에서 있었던 몇 가지 일들, 이 술집에 드나드는 몇몇 사내들, 무엇보다 당신 자신에 대해 뭔가를 써내요.”

사람들은 깨진 술잔이 노트와 펜을 들고 글을 써내려가자 그에게 다가와 제 인생의 굴곡을 슬금슬금 털어놓는다. 저마다 눈물과 한숨, 분노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사연을 씨부렁거리고 술주정 끝에 대판 싸움도 벌인다. 낱낱의 얘기에서는 현재 아프리카인들의 일상, 하층민의 삶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어이없는 실소, 비틀린 언어, 두서없는 이야기들이 춤을 추는 것이다.



누군가 노트를 보면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시장 바닥, 어중이떠중이, 아수라장, 굿판, 야만의 온상 같은 분위기는 뭐야, 이 기호의 제국, 수다 한판, 문학의 일대 추락은 뭐냐고, 개 짖는 소리도 아니고, 뭐야, 이게 진지하게 쓴 글이야,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이야, 젠장맞을.”

그러면 나, 깨진 술잔은 악의에 차서 이렇게 대꾸하겠다. “이 시장 바닥이 바로 인생이거든, 그러니까 내가 사는 동굴에 들어오시지, 사방이 쓰레기 천지, 썩은 내가 진동할 테니까, 나는 인생이 그런 거라고 생각하거든.”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낸 콩고인의 생활, 인생 이야기

부르키나파소 브와 부족의 나비가면. 비와 토지의 비옥함을 기원하는 의식에 쓰인다.


사기꾼, 술꾼, 오줌싸개가 들려주는 포복절도할 인생사
사실 이 술집에 죽치고 있는 사람들은 밑바닥 인생, 시장의 쓰레기와 다름없는 인간들이다. 맨 처음 깨진 술잔에게 쓴 사연을 털어놓은 ‘팸퍼스 기저귀를 찬 사나이’는 감옥에서 수도 없이 강간을 당했고 ‘인쇄공’은 정신병자로 몰려 프랑스 파리에서 콩고로 귀국했다. 또 부자가 된다는 부적을 팔고 다니는 사기꾼, 남자보다 더 남자 같은 여자술꾼과 오줌싸개들이 등장해 포복절도할만한 에피소드를 풀어놓는다. 그들의 얘기를 따라가다 보면 요즘 아프리카인의 생활과 생각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이런 문장을 보자.

“그는 특히 자본주의자라는 평판을 들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주의자’가 어머니, 누이, 이모, 고모의 은밀한 그곳을 모욕하는 것보다 더 심한 욕이다. 대통령 겸 총사령관 덕분에 우리는 자본주의자를 미워하게 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주의자만 아니면 무슨 소리를 들어도 괜찮다. … (중략) … 자본주의자는 불룩한 배때기를 두들기며, 쿠바 산 시가를 피우고, 메르세데스 벤츠를 모는 대머리이다. 그는 이기적이랄 만큼 돈이 많고, 뒷거래와 그 밖의 모든 수상쩍은 일에 손을 대며, 남성에 대한 남성의 착취, 여성에 대한 여성의 착취, 여성에 대한 남성의 착취, 남성에 대한 여성의 착취를 실현한다.”

“따지고 들면 나는 결코 선생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고등교원 자격증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교사를 양성하는 학교 출신도 아니다. 하지만 가짜 졸업장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가끔은 상황에 몰려 진짜 소명이 나타나기도 한다. 비겁한 수단으로 학교에 들어온 사람이 좋은 선생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감을 잡았겠지만 소설의 화자 깨진 술잔은 교사 출신이다. 그래서 그가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떠안게 된 것이고 바닥인생들의 설거지를 해주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그의 기록으로 ‘외상은 어림없지’는 문학사 속의 한 명소로 자리 잡게 되었고 우리는 걸쭉한 입담을 통해 아프리카 서민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책 한 권으로 신나게 콩고 여행을 한 셈이다. 랜덤하우스 간, 이세진 옮김.

원시 부족, 원시 미술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원시 부족의 전통공예품과 문화를 소개한다.
전시 일시 ~6월20일 오전 10시~오후 6시(주말·공휴일 오후 8시까지)
장소 서울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내 페이퍼테이너 뮤지엄 www.papertainer.co.kr
지은이 알랭 마방쿠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낸 콩고인의 생활, 인생 이야기
66년 콩고의 수도 브라자빌에서 태어났다. 항구도시 푸앵트누아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프랑스로 유학, 파리-도핀 대학(파리9대학)에서 상법을 전공했다. 98년 첫 소설 ‘파랑 - 하양 - 빨강’을 발표해 ‘검은아프리카문학상’을 받았다. 2002년부터 4년간 미시간대 프랑스문학 교수로 재직했고, 2007년 현재 UCLA에서 프랑스 문학부와 비교문학부 강의를 맡고 있다. 카날 프랑스 앵테르나시오날 방송에서 프랑스어권 47개국에 내보내는 문학 전문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여성동아 2007년 6월 5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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