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자식이 어떻다며 팔자 타령할 시간이 있으면 스스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고 거기에 몰두하라”고 충고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라이트하우스 김태연 회장(61). 미국 1백대 우량 기업으로 선정된 반도체 장비회사 ‘라이트하우스’를 비롯해 여러 개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 회장은 자신의 지난 삶을 얘기하며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미친년’ 저자 이명희씨는 김 회장을 “자신의 꿈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편견과 싸워나간 ‘미친년’ 서열 1위”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15만 평 부지의 대저택을 소유한 한국인이며, 연간 매출 1억 달러 규모인 미국 벤처기업의 최고 경영자다. 동시에 미국 케이블 TV 토크쇼 진행자, 1백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의 저자, 미국인 남녀 아홉 명을 입양한 양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간 뒤 버몬트에서, 어렸을 때부터 익힌 태권도를 밑천 삼아 고등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1985년에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후에는 실리콘밸리에서 비디오게임 개발사업을 착수해 반도체장비 분야에서 가장 유망한 기업으로 일궈냈다. 다음은 최근 발간된 책 ‘미친년’에 실린 이씨와 김 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 경상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여성인 당신의 어린 시절은 가부장제의 전통 그 자체인 것 같다. 지금 세대의 딸들은 당신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도대체 어린 나이에 그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나도 생각해봤다. 모든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용서하고 할아버지를 용서했다. 나는 정월 초하루 자시에 태어났다. 제사를 뒤로 물리면서까지 고추를 기다리던 할아버지는 나의 울음과 동시에 끓이던 미역국을 솥째 바닥에 내던지셨다.
그때부터 나는 마녀 사냥을 당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굶어 죽으라고 일부러 젖을 물리지 않으셨다. 나는 죽으라고 내동댕이쳐진 인물이었다. 나는 손자를 기다리던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집안사람들을 실망시킴으로써 ‘추한 년’ ‘못생긴 년’ ‘나쁜 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나쁜 이름이란 이름은 다 뒤집어쓰고 살았다. 그때마다 나는 거울을 봤다. 동의할 수 없었다. 옆집 가시내에 비해 코도 그렇고 입도 그렇고 그럴듯하게 생겼는데 아니 왜 나보고 못생기고 재수 없는 년이라고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가치관이지 내 가치관은 아니었다. 아무리 어린 마음이라도 그 정도 지각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비뚤어진 것이 아니다. 난 참 예쁘다. 깜찍하게 생겼다. 내가 봐도 근사하다.’ 그렇게 스스로 자위했다. ‘팔자 드센 년, 저년은 김씨 망신시키는 년인데, 저년을 누가 데리고 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참 그 사람들이 안됐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여자의 최대 행복이 시집 잘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난 아니야. 난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하고는 맞지 않는 사람이야.’ 난 그렇게 되뇌곤 했다. 우리 할머니를 봐도 엄마를 봐도 술 먹은 남편한테 매일 두들겨 맞고 내동댕이쳐지고, 해 뜨면 나가서 소처럼 밭일하고 홍두깨질에 다림질에 죽어라고 일만 하는데, 그게 왜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인가.
나쁘게 말하면 고집불통이었고 좋게 말하면 내 인생의 목표가 정확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남이 사는 것처럼 똑같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나일 뿐이다. 삼백여 가구밖에 살지 않는 시골에서 신문도 잡지도 뉴스도 보지 못하고 자랐지만, 아버지한테 쫓겨나 막걸리를 받으러 다니면서도 밤하늘에 총총 빛나는 별을 보며 스스로 실패작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나 할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1970년 할아버지의 주선으로 버몬트에서 결혼한 것으로 안다. 그곳에서 인종차별의 벽에 부딪혀 당신은 다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시누이의 폭언으로 유산까지 했다. 그리고 이혼을 했고, 현재 당신은 6남3녀를 입양한 멋진 어머니다. 유산이나 이혼의 아픔은 현대 사회에서 많은 여자들이 경험하는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겪는 동안 여성들의 정신적 고통은 비교적 오래 간다. 혹자는 ‘서방 복 없는 년이 자식 복 있겠는가’라며 자신의 비극을 드센 팔자 탓으로 넘기기도 한다. 같은 경험을 한 여성으로서 당신은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겠는가?
“팔자 타령을 하는 사람을 난 한마디로 게으른 사람이라고 본다. 나는 슬픔을 간직하고서 아무것도 못 하는 여자들한테 이렇게 물어보곤 한다.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느냐?’고. 아무리 팔자 타령 하는 사람이라도 배가 고프면 꼭 밥을 찾아 먹는다. 왜 그럴까? 밥이 그만큼 중요하니까 먹는 것이다. 자기 인생이 중요하다면 ‘내 인생 내 팔자 기구하다’ 하지 말고, 곰곰이 앉아서 생각해봐야 한다.
여자들은 곧잘 ‘나는 실패작이야. 나는 틀렸어’라고 말한다. 본인이 그렇게 자신을 포기하는데 어떻게 성공이며 행복이 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겠는가? 기대하는 게 실패밖에 없는데 어떻게 성공과 행복이 찾아올 수 있겠는가?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생각을 바꿔라. 스스로를 불쌍한 팔자로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 승객이 되지 말고 운전사가 되어 운전을 즐겨라. 단 즐기면서, 가는 길 잘 보고, 신호등도 보고, 뒤에 오는 차도 가끔씩 봐주면서 살아야 한다. 자기 인생을 잘 관찰하면, 해답은 거기에 있다”
▼ 당신의 모습을 보면 먼저 카리스마가 떠오른다. 그렇지만 남성적인 카리스마가 아니라 여성적인 카리스마다. 사업을 하면서 여성으로서 장점이 된 경험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리고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조언해달라.
“내 사주는 남자로 태어났다면 나라를 뒤흔들 팔자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만약이라는 게 어디 있는가? 나는 솔직히 여자이기 때문에 말 못할 차별과 학대와 무시를 받았지만 스스로 여자여서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재미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건, 사업의 세계는 남자 여자가 따로 없다는 사실이다. 여자라서 봐주고, 여자라서 못 하고, 여자라서 금단의 구역이 있고, 이런 것은 없다. 나 역시 일을 하면서 내가 여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바쁜데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그거 들여다볼 시간이 있겠는가? 시작부터 범위를 나누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실제 무슨 일을 할 땐 성이 필요 없다. 실제 프로의 세계는 그렇다. 나는 한 여성이기에 앞서 한 인간일 뿐이다. 따라서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나누어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
▼ CEO로서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고쳐야 할 것들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또 여성들이 프로다워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첫 번째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반드시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확실하지 않으면 어려움이 닥쳤을 때 흔들리게 된다.
나는 이민 와서 식당과 호텔을 청소하면서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확실했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청소하는 것이 고달플 이유가 없었다. 태권도장을 할 때도 말할 수 없는 인종차별을 겪었다. 온갖 중상모략과 함께 누군가 도장의 유리를 부수고 쓰레기를 쏟아놓아도, 그것을 청소하고 동상 걸린 손을 녹이면서 ‘언젠가는 땅바닥에 있는 풀포기마저도 김태연을 알게 할 것이다’라는 결심과 확신으로 오늘까지 달려왔다. 그런 확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꿈을 세워놓고 이게 될까 말까 의심하지 마라. 망설이지도 마라. 어떤 친구가 당신에게 “너, 그게 말이 되냐? 너 미친 거 아니냐?”라고 말할 때 내가 자신이 없고 확신이 없으면, 바로 내 마음이 그 말을 받게 된다. “그렇지? 힘들겠지?”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한마디로 배가 부른 것이다. 만약 내가 너무 배가 고파 음식에 손을 댔다 치자. 옆에서 “그거 먹으면 안 된다”라고 말해도 눈에 보이는 게 없으면 “그래?” 하면서도 집어먹게 된다. 결국 절실함의 문제다. 누가 말린다고 안 하고 말리지 않는다고 하고 그런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절실함이 내가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확고부동한 추동력과 자신감만이 성취의 열쇠가 된다.”
▼ 올해로 육십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이순(耳順)이라 하여, 세상의 모든 이치를 순리대로 알아들을 줄 아는 순한 귀를 가진 나이라고 칭송한다. 당신을 보는 순간, 육십이라는 말이 숫자임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신은 여성으로서 나이 듦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성이 나이를 먹으면서 가져야 할 것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아름다움의 기준이 획일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는가?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감 있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만큼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도 된다. ‘나이가 들었으니 난 이건 못 해. 저건 못 해. 이미 늦었어. 해봤자 소용없어.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어?’ 이런 푸념들로 자신의 여생을 채우겠다면, 결국 남은 시간은 소원대로 그렇게 채워질 것이다.
늙었다고 안 될 것이 무엇인가? 아침에 일어나서 팔굽혀펴기도 하고, 밖에 나가 좋은 기운도 마시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머리 돌려가며 다시 아이디어도 내보고,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은 노동을 하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 은퇴하고 집에서 가만히 있는 돈만 까먹고, 놀기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약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게으르고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사보고 싶은 건 다 사볼 것이다. 먹고 싶은 것도 먹을 것이고, 얼굴에 발라보고 싶은 것도 다 발라볼 것이다. 내가 저 신발을 벗고 들어와서, 내일 저 신발을 다시 신고 나갈 수 있겠는가? 이런 마음으로 충실하고 화끈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인생에 나이가 있다고 누가 말했는가? 자기가 자기에게 언도하는 그날, 파삭 늙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놓아버릴 때 우리는 그렇게 늙어버리게 된다.”
▼ 당신은 6남 3녀를 모두 외국인으로 입양했다. 한국에서도 요즘 입양에 대해 서서히 의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입양에 대해 조언을 해 달라.
“우리나라에서는 내 자식, 내 핏줄, 내 자식새끼가 만들어준 제삿밥에 너무 집착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혈연이 지나친 가족 중심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버려진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누구나 자기 배로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 같은 코에 나 같은 입에 날 닮은 아이를 갖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자신의 닮은꼴을 열망한다는 것은 다른 꼴은 봐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은 차이를 인정할 줄 몰라 다양성을 상실하는 문화를 만들고, 결국 차이와 차별을 구별할 줄 몰라 초록이 동색이 되기를 희망하는 천편일률의 사회를 만들고 만다. 모두 다 나와 같기를 희망하는 세상, 모두 다 내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는 세상, 이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의 연대를 잃어버린 세상이다. 나눔의 미덕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이의 인생을 생각하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다면, 굳이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키우는 것이며, 결국 그것이 내가 같이 커가는 길이기도 하다.”
▼ 당신은 지금 스스로를 행복한 여성이라고 생각하는가?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인간은 자극을 받으면 진면목이 나온다. 그게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다. 내공이 쌓이면 환경을 컨트롤할 수 있다. 나는 돼지 밥도 먹어봤고, 죽은 아이를 삼 개월 동안 몸속에 넣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었고, 다섯 시간으로 예정했던 유방암 수술을 열세 시간에 걸쳐 받기도 했었다. 죽는다는 것이 어떠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내게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다. 오늘이 나의 생일이고 오늘이 내 결혼식 날이며, 또한 바로 오늘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지금 가장 행복하다. 행복은 스스로를 믿고 흔들림 없이 자신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미친년’ 저자 이명희씨는 김 회장을 “자신의 꿈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편견과 싸워나간 ‘미친년’ 서열 1위”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15만 평 부지의 대저택을 소유한 한국인이며, 연간 매출 1억 달러 규모인 미국 벤처기업의 최고 경영자다. 동시에 미국 케이블 TV 토크쇼 진행자, 1백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의 저자, 미국인 남녀 아홉 명을 입양한 양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간 뒤 버몬트에서, 어렸을 때부터 익힌 태권도를 밑천 삼아 고등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1985년에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후에는 실리콘밸리에서 비디오게임 개발사업을 착수해 반도체장비 분야에서 가장 유망한 기업으로 일궈냈다. 다음은 최근 발간된 책 ‘미친년’에 실린 이씨와 김 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 경상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여성인 당신의 어린 시절은 가부장제의 전통 그 자체인 것 같다. 지금 세대의 딸들은 당신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도대체 어린 나이에 그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나도 생각해봤다. 모든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용서하고 할아버지를 용서했다. 나는 정월 초하루 자시에 태어났다. 제사를 뒤로 물리면서까지 고추를 기다리던 할아버지는 나의 울음과 동시에 끓이던 미역국을 솥째 바닥에 내던지셨다.
그때부터 나는 마녀 사냥을 당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굶어 죽으라고 일부러 젖을 물리지 않으셨다. 나는 죽으라고 내동댕이쳐진 인물이었다. 나는 손자를 기다리던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집안사람들을 실망시킴으로써 ‘추한 년’ ‘못생긴 년’ ‘나쁜 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나쁜 이름이란 이름은 다 뒤집어쓰고 살았다. 그때마다 나는 거울을 봤다. 동의할 수 없었다. 옆집 가시내에 비해 코도 그렇고 입도 그렇고 그럴듯하게 생겼는데 아니 왜 나보고 못생기고 재수 없는 년이라고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가치관이지 내 가치관은 아니었다. 아무리 어린 마음이라도 그 정도 지각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비뚤어진 것이 아니다. 난 참 예쁘다. 깜찍하게 생겼다. 내가 봐도 근사하다.’ 그렇게 스스로 자위했다. ‘팔자 드센 년, 저년은 김씨 망신시키는 년인데, 저년을 누가 데리고 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참 그 사람들이 안됐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여자의 최대 행복이 시집 잘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난 아니야. 난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하고는 맞지 않는 사람이야.’ 난 그렇게 되뇌곤 했다. 우리 할머니를 봐도 엄마를 봐도 술 먹은 남편한테 매일 두들겨 맞고 내동댕이쳐지고, 해 뜨면 나가서 소처럼 밭일하고 홍두깨질에 다림질에 죽어라고 일만 하는데, 그게 왜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인가.
나쁘게 말하면 고집불통이었고 좋게 말하면 내 인생의 목표가 정확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남이 사는 것처럼 똑같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나일 뿐이다. 삼백여 가구밖에 살지 않는 시골에서 신문도 잡지도 뉴스도 보지 못하고 자랐지만, 아버지한테 쫓겨나 막걸리를 받으러 다니면서도 밤하늘에 총총 빛나는 별을 보며 스스로 실패작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나 할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1970년 할아버지의 주선으로 버몬트에서 결혼한 것으로 안다. 그곳에서 인종차별의 벽에 부딪혀 당신은 다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시누이의 폭언으로 유산까지 했다. 그리고 이혼을 했고, 현재 당신은 6남3녀를 입양한 멋진 어머니다. 유산이나 이혼의 아픔은 현대 사회에서 많은 여자들이 경험하는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겪는 동안 여성들의 정신적 고통은 비교적 오래 간다. 혹자는 ‘서방 복 없는 년이 자식 복 있겠는가’라며 자신의 비극을 드센 팔자 탓으로 넘기기도 한다. 같은 경험을 한 여성으로서 당신은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겠는가?
“팔자 타령을 하는 사람을 난 한마디로 게으른 사람이라고 본다. 나는 슬픔을 간직하고서 아무것도 못 하는 여자들한테 이렇게 물어보곤 한다.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느냐?’고. 아무리 팔자 타령 하는 사람이라도 배가 고프면 꼭 밥을 찾아 먹는다. 왜 그럴까? 밥이 그만큼 중요하니까 먹는 것이다. 자기 인생이 중요하다면 ‘내 인생 내 팔자 기구하다’ 하지 말고, 곰곰이 앉아서 생각해봐야 한다.
여자들은 곧잘 ‘나는 실패작이야. 나는 틀렸어’라고 말한다. 본인이 그렇게 자신을 포기하는데 어떻게 성공이며 행복이 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겠는가? 기대하는 게 실패밖에 없는데 어떻게 성공과 행복이 찾아올 수 있겠는가?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생각을 바꿔라. 스스로를 불쌍한 팔자로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 승객이 되지 말고 운전사가 되어 운전을 즐겨라. 단 즐기면서, 가는 길 잘 보고, 신호등도 보고, 뒤에 오는 차도 가끔씩 봐주면서 살아야 한다. 자기 인생을 잘 관찰하면, 해답은 거기에 있다”
▼ 당신의 모습을 보면 먼저 카리스마가 떠오른다. 그렇지만 남성적인 카리스마가 아니라 여성적인 카리스마다. 사업을 하면서 여성으로서 장점이 된 경험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리고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조언해달라.
“내 사주는 남자로 태어났다면 나라를 뒤흔들 팔자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만약이라는 게 어디 있는가? 나는 솔직히 여자이기 때문에 말 못할 차별과 학대와 무시를 받았지만 스스로 여자여서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재미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건, 사업의 세계는 남자 여자가 따로 없다는 사실이다. 여자라서 봐주고, 여자라서 못 하고, 여자라서 금단의 구역이 있고, 이런 것은 없다. 나 역시 일을 하면서 내가 여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바쁜데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그거 들여다볼 시간이 있겠는가? 시작부터 범위를 나누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실제 무슨 일을 할 땐 성이 필요 없다. 실제 프로의 세계는 그렇다. 나는 한 여성이기에 앞서 한 인간일 뿐이다. 따라서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나누어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
▼ CEO로서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고쳐야 할 것들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또 여성들이 프로다워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첫 번째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반드시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확실하지 않으면 어려움이 닥쳤을 때 흔들리게 된다.
나는 이민 와서 식당과 호텔을 청소하면서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확실했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청소하는 것이 고달플 이유가 없었다. 태권도장을 할 때도 말할 수 없는 인종차별을 겪었다. 온갖 중상모략과 함께 누군가 도장의 유리를 부수고 쓰레기를 쏟아놓아도, 그것을 청소하고 동상 걸린 손을 녹이면서 ‘언젠가는 땅바닥에 있는 풀포기마저도 김태연을 알게 할 것이다’라는 결심과 확신으로 오늘까지 달려왔다. 그런 확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꿈을 세워놓고 이게 될까 말까 의심하지 마라. 망설이지도 마라. 어떤 친구가 당신에게 “너, 그게 말이 되냐? 너 미친 거 아니냐?”라고 말할 때 내가 자신이 없고 확신이 없으면, 바로 내 마음이 그 말을 받게 된다. “그렇지? 힘들겠지?”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한마디로 배가 부른 것이다. 만약 내가 너무 배가 고파 음식에 손을 댔다 치자. 옆에서 “그거 먹으면 안 된다”라고 말해도 눈에 보이는 게 없으면 “그래?” 하면서도 집어먹게 된다. 결국 절실함의 문제다. 누가 말린다고 안 하고 말리지 않는다고 하고 그런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절실함이 내가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확고부동한 추동력과 자신감만이 성취의 열쇠가 된다.”
▼ 올해로 육십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이순(耳順)이라 하여, 세상의 모든 이치를 순리대로 알아들을 줄 아는 순한 귀를 가진 나이라고 칭송한다. 당신을 보는 순간, 육십이라는 말이 숫자임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신은 여성으로서 나이 듦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성이 나이를 먹으면서 가져야 할 것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아름다움의 기준이 획일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는가?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감 있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만큼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도 된다. ‘나이가 들었으니 난 이건 못 해. 저건 못 해. 이미 늦었어. 해봤자 소용없어.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어?’ 이런 푸념들로 자신의 여생을 채우겠다면, 결국 남은 시간은 소원대로 그렇게 채워질 것이다.
늙었다고 안 될 것이 무엇인가? 아침에 일어나서 팔굽혀펴기도 하고, 밖에 나가 좋은 기운도 마시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머리 돌려가며 다시 아이디어도 내보고,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은 노동을 하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 은퇴하고 집에서 가만히 있는 돈만 까먹고, 놀기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약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게으르고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사보고 싶은 건 다 사볼 것이다. 먹고 싶은 것도 먹을 것이고, 얼굴에 발라보고 싶은 것도 다 발라볼 것이다. 내가 저 신발을 벗고 들어와서, 내일 저 신발을 다시 신고 나갈 수 있겠는가? 이런 마음으로 충실하고 화끈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인생에 나이가 있다고 누가 말했는가? 자기가 자기에게 언도하는 그날, 파삭 늙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놓아버릴 때 우리는 그렇게 늙어버리게 된다.”
▼ 당신은 6남 3녀를 모두 외국인으로 입양했다. 한국에서도 요즘 입양에 대해 서서히 의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입양에 대해 조언을 해 달라.
“우리나라에서는 내 자식, 내 핏줄, 내 자식새끼가 만들어준 제삿밥에 너무 집착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혈연이 지나친 가족 중심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버려진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누구나 자기 배로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 같은 코에 나 같은 입에 날 닮은 아이를 갖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자신의 닮은꼴을 열망한다는 것은 다른 꼴은 봐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은 차이를 인정할 줄 몰라 다양성을 상실하는 문화를 만들고, 결국 차이와 차별을 구별할 줄 몰라 초록이 동색이 되기를 희망하는 천편일률의 사회를 만들고 만다. 모두 다 나와 같기를 희망하는 세상, 모두 다 내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는 세상, 이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의 연대를 잃어버린 세상이다. 나눔의 미덕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이의 인생을 생각하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다면, 굳이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키우는 것이며, 결국 그것이 내가 같이 커가는 길이기도 하다.”
▼ 당신은 지금 스스로를 행복한 여성이라고 생각하는가?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인간은 자극을 받으면 진면목이 나온다. 그게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다. 내공이 쌓이면 환경을 컨트롤할 수 있다. 나는 돼지 밥도 먹어봤고, 죽은 아이를 삼 개월 동안 몸속에 넣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었고, 다섯 시간으로 예정했던 유방암 수술을 열세 시간에 걸쳐 받기도 했었다. 죽는다는 것이 어떠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내게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다. 오늘이 나의 생일이고 오늘이 내 결혼식 날이며, 또한 바로 오늘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지금 가장 행복하다. 행복은 스스로를 믿고 흔들림 없이 자신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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