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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쌍둥이 아빠’ 조인직 기자의 육아일기 5

아이 감성지수 높여주는 동화책 읽어주기

기획·권소희 기자 / 글·조인직‘신동아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2007. 03. 15

아이 감성지수 높여주는 동화책 읽어주기

책을 꼭 진지하게 읽을 필요는 없다. 여러 책을 바닥에 흐트려 두면 알아서 각자 좋아하는 책을 들고 뒹굴뒹굴 구르며 책과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다.(왼쪽) 책을 읽다가 집중력이 떨어질 때는 간식을 준비하는 것도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방법이다.(오른쪽)


아이에게 ‘동화책 읽어주기’는 아빠들에게 쉽고도 어려운 ‘과업’이다.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어렵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어지간해서는 아이들로부터 ‘아주 재밌었다’는 반응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내 신상의 변화는 이따금씩 마치 내가 연기자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결혼 전에, 혹은 아이를 갖기 전에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엄마 아빠들을 보고 너무 ‘오버’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나도 막상 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 최대한 감정을 넣어서 재미있게~
아이들은 마치 연기자 캐스팅을 앞둔 PD와도 비슷하다. 연기자인 아빠는 PD앞에서 오디션을 보는 배우처럼 최선을 다해 가진 것을 모두 보여줘야 한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열심히 하는 연기와 대충하는 연기를 철저하게 구분해 낸다.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대사에 감정을 넣고 ‘쇼’를 하면 웃기도 하고 무서워도 하면서, 시선을 나에게 계속 맞춘다. 그러나 내가 조금이라도 꾀를 부리면서 대사처리를 대강 하면 언제든 자리를 뜬다.
신기한 건, 이렇게 감정을 넣어서 대사를 몇 번 말하다 보면 어느새 책 한 권이 통째로 외워진다는 것이다. 나보다 더 ‘오버’해서 대사를 연기하는 아내의 경우는 책을 안 보고 아이들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해주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감정을 실어 영어책을 읽다 보면 외우기 쉽다는 선생님들 말씀을 듣곤 했는데, 나는 그걸 십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체험하게 된 셈이다.
경험상 아이들이 이야기에 푹 빠지도록 하게 만드는 좋은 방법은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전부 가족들의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자 어른은 무조건 “이건 엄마~”, 멋있는 남자아저씨는 “이건 아빠~”, 예쁜 소녀나 아가씨들이 나오면 “이건 민정이(혹은 유정이)~” 하면서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식이다.
아이 감성지수 높여주는 동화책 읽어주기

여러번 들은 책의 내용을 기억하고 몸으로 내용을 설명하는 민정이.(왼쪽) 그림이 크고 색이 화려한 책은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여준다. 좋아하는 동물그림 책을 보고 있는 유정이.(오른쪽)


우리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엄마를 잃어버렸어요’라는 동화책에는 펠릭스라는 서양 꼬마가 등장해 엄마 손을 잡고 장을 보러 가다 그만 엄마를 잃어버린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때 그 꼬마를 나는 딸 이름(유정 혹은 민정)으로 바꿔 부른다.
“엄마를 잃어버렸대… 어떡해!!” 하면서 내가 직접 우는 시늉도 했다가 아이를 붙잡고 조금씩 흔들어주면 아이의 표정도 점차 고조되기 시작한다. 펠릭스는 “엄마, 엄마” 하면서 소리 높여 엄마를 찾는데 이때 아이들과 함께 “엄마”를 외치자고 하면 십중팔구 진지하게 따라 하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 밖에 책에서 먹는 장면이 나올 때면 책에서 음식을 빼내는 시늉을 하며 진짜 음식이라도 되는 냥 한 번은 아빠 입에, 또 한 번은 아이들 입에 집어넣어주며 “음냐음냐 쩝쩝 맛있다”라고 외쳐주는 것에 대해서도 아이들은 열렬한 반응을 보인다.

아이 감성지수 높여주는 동화책 읽어주기

배우처럼 목소리 톤을 바꾸며 책을 읽어주는 아빠와 함께 책을 보고있는 민정이. 서로 읽은 책을 바꿔보며 감상을 나누는(?) 쌍둥이들. 인내심을 가지고 그림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여러번 이름을 가르쳐 주면 아이들은 금새 단어를 익힌다.(왼쪽부터 차례로)


기대치를 높게 잡지 말고 PD(아이)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라
두 번째로 연기자인 아빠가 갖춰야 할 덕목은 ‘쓸데없이 기대치를 높게 잡지 말고 PD(아이)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라’는 것이다. 아빠의 기대치만 높이다간 좌절하기 쉽다.
나도 예전에 멋들어진 디자인으로 치장돼 있고, 영어 음성서비스도 제공되는 고가의 영어 동화책을 아이들에게 사준 적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뿐더러 틈만 나면 그 비싼 책을 깔고 앉아서는 북북 찢어대며 즐거워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터득한 지혜는 ‘아이들도 그들만의 취향이 있다’는 것이다. 허접하게 보이는 책이라도 어느 순간 ‘필’이 제대로 꽂힌 페이지가 있으면 그때부터 아이들은 그 부분을 반복해서 보고 즐거워 한다. 우리집의 경우 유정이는 빵 그림, 민정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고양이를 보면 항상 미소를 지으며 좋아한다.
동화책은 우회적인 훈계의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든다. 요즘 한창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착한 아이’라는 책은 내가 보기에도 속이 시원할 정도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요즘 아이들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찡찡대며 떼를 부릴 때 업어주고 장난감 자동차를 함께 굴려주다가도 별 효과가 없으면 나는 언제든 이 책을 편다.
첫 장을 열면 “착한 아이는 떼 부리지 않아요”라는 글과 함께 우는 아이의 모습에 엑스표를 쳐놓은 그림이 나온다. 나는 그걸 보여주면서 “착한 아이는 어떻게 한댔지?”라고 되묻는다. 발달이 빠른 민정이는 손을 좌우로 휘저으며 ‘이러면 안 돼’라는 의사를 전달하며 곧 얌전한 모습을 보인다. 이 밖에 잘 시간이 됐는데 잠을 안 자는 오리가 동료들에게 미움받는 내용이 담긴 책들도 있어, 읽어주다 보면 엄마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속시원히 할 수 있게 된다.
책을 읽어줄 때 종종 “쇠 귀에 경 읽기”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은 내가 중얼대는 동화의 내용 자체보다 그림에, 또 그 내용을 과장된 몸짓으로 표현하는 엄마 아빠의 연기에 더 많은 신경을 쏟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확실히 아이들의 머리는 스펀지 같아서인지 ‘어떻게 이런 거까지 다 기억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책 속의 과일그림을 보며 이름을 가르쳐줄 때 매번 “따라 해보라”며 보채도 가만히 있던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사과, 빵, 당근…” 하며 이름을 외워댈 때면 놀랍기까지 하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아빠들은 좀더 인내심을 갖고 동화책 읽어주기에 매진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되는 것이다.

조인직 기자는…
동아일보 정치부 경제부 등에서 7년여간 일했으며, 지난해 7월부터 시사월간지 ‘신동아’ 기자로 일하고 있다. 2002년 10월 결혼해 2005년 5월 쌍둥이 딸인 유정·민정이를 낳았다. 쌍둥이다 보니 손이 많이 가고 그만큼 육아에 적극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그는 이제 ‘육아의 달인’이라는 애칭을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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