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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부부가 사는 법

세 살배기 늦둥이 딸 키우는 유퉁·자가 부부

“29세 나이 차 극복한 남다른 사랑법”

기획·김명희 기자 / 글·김순희‘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2007. 02. 20

자그마치 스물아홉 살 연하의 아내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탤런트 유퉁. 여섯 번 이혼하고 일곱 번째 맞은 몽골 출신 아내와의 사이에서 2년 전 늦둥이 딸을 얻은 그가 ‘나이 차 극복한 성생활 비결’을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세 살배기 늦둥이 딸 키우는 유퉁·자가 부부

유퉁은 스물아홉 살 연하 아내 자가와의 사이에서 2년 전 늦둥이 딸 다예를 얻었다.


나이 차가 자그마치 ‘스물아홉 살’이라고 한다. 탤런트 유퉁(50)과 몽골인 아내 자가(21) 부부 얘기다. 17개월 된 딸 다예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 부부의 삶이 궁금해 그가 운영하는 물 좋고 공기 맑은 대구 팔공산 자락 국밥집을 찾았을 때 유퉁은 2층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붓놀림을 멈춘 그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작업실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머리를 한쪽으로 묶은 한 소녀가 그를 부른다.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큰아들보다 아홉 살 적고 작은아들보다는 일곱 살이 어린” 그의 아내 자가였다.
“2004년 뉴질랜드에 이민을 갔다가 전 재산을 사기당하고 자살할 결심을 했어요. 그런데 죽기 전 문득 몽골에 있는 양부모 생각이 나더라고요. 10년 전 촬영차 몽골에 갔다가 한 부부와 부모·자식의 연을 맺었거든요. 양부모를 만나러 잠시 들렀다가 그곳에서 자가를 만났어요. 하루는 나이트클럽에 함께 놀러 갔는데 춤추는 모습이 환상적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한 순간에 반해버렸죠(웃음).”
그의 눈에 자가가 들어온 순간 나이는 정말‘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느꼈고 자가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고 한다. 가슴에 사랑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자 자살 결심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는 자가를 통해 다시 ‘남자’가 됐다고 한다.
그는 울란바토르의 한 아파트에서 자가와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4년 말 자가가 임신을 하자 자가의 부모에게 결혼허락을 받았다. 2005년 5월 한국으로 돌아와 혼인신고를 마친 후 석 달여 만에 딸을 낳았다.
“첫 아내를 제외한 다른 아내들과의 사이에서는 갖은 노력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아기가 안 생겼어요. 그랬는데 자가에게 아이가 들어선 겁니다. 그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연애할 때 농담으로 자가에게 ‘내 아이를 낳아달라’고 했더니 ‘어린 내가 어떻게 아이를 낳느냐’며 손사래를 치더라고요. 마음속으로는 ‘낳고 싶어도 못 낳는다’는 혼잣말을 하던 참이었죠.”

세 살배기 늦둥이 딸 키우는 유퉁·자가 부부

유퉁은 요즘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행복하다고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자가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다예’ 덕분이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다. 자가는 그의 일곱 번째 아내다. 여섯 아내 모두 혼인신고를 하고 호적에 올렸던 사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가 자신의 과거를 술술 털어놓았다.
“결혼은 사랑의 서약이자 전쟁의 시작이죠. 이혼은 그 전쟁을 끝내자는 ‘휴전 협정’이고요. 저는 열아홉 살에 첫 결혼을 한 후 10년 동안 3번 이혼했어요. 그 이후에도 세 번 더 이혼했고요. 아내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예뻤죠. 헤어진 이유요? 그건 다 저 때문이에요. 잔소리를 감당하지 못했거든요. 사업을 하든, 그림을 그리고 조각에 미쳐있든 가만히 지켜봐주기를 바랐는데… 아내 입장에선 그게 쉬운 일이 아니죠.”
“여러 번에 걸친 이혼의 사유가 외도 때문이었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맹세코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은 모든 걸 다 바쳐 아내를 사랑했다고 한다.
“모든 걸 바쳐 사랑해도 마음이 다 하면 어쩔 수 없는 게 부부관계인 것 같아요. 옆에 있는 사람이 잔소리 하는 걸 못 참아 하는 성격인데 그런 점에서 자가는 그 어떤 여자보다 저를 잘 알고 있고 이해하려 노력해주는 편이에요. 이제야 삶이, 사랑이, 가족이 뭔지 깨달았어요. 자가는 제게 운명의 여인이죠. 자가 덕분에 죽음의 유혹을 물리치게 됐는데 다예까지 얻었으니…. 이 두 사람을 위해 여생을 살기로 작정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의 아내 자랑은 끝없이 이어졌다.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인터뷰 중 낮잠을 자고 있던 다예가 일어나 ‘아빠, 아빠’하고 아장아장 작업실로 걸어 들어오자 그의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나에게 이런 행복이 찾아올 줄 몰랐다”고 거듭 자랑했다.
“자가는 나이는 어리지만 어리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제게는 여자로 보이거든요. 지금은 아이 낳고 살이 좀 빠져서 그렇지, 처음 만났을 때는 볼륨 있는 몸매였어요. 아이를 낳은 후 가끔 ‘가슴이 작아져서 부끄러워’라고 말하는데 전 ‘괜찮다’고 대답해요. 제 눈에는 지금도 톡 하고 건들면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느껴지거든요.”

섹스는 한쪽에서 공을 넘기면 다른 쪽에서 받아주는 ‘탁구’처럼…
최근 이들 부부는 성생활을 도와주는 ‘보조기구’의 지면광고에 출연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낯 뜨거운 광고일 수 있지만 두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어린 신부’는 이 광고출연에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전혀 이상하거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몽골에서는 섹스를 일종의 ‘스포츠’처럼 여기거든요. 친척과 하지만 않는다면 크게 개의치 않아요. 유럽의 개방된 성문화를 닮은 것 같아요.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만 맞으면 뒷골목에 가서 (섹스를) 하고 오기도 하니까요.”
유퉁은 엄청난 나이 차를 극복한 부부 간 성생활 비결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저는 그림을 그릴 때나 조각을 할 때 미친 듯이 거기에만 매달리는데 섹스를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것만 생각하죠. 잡념이 끼어들면 안 되거든요.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가 음악을 듣는 거예요. 섹스할 때 꼭 음악을 틀어놓죠. 장르에 상관없이 그날 분위기와 어울리는 음악이면 다 좋아요.”

자가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남편은 섹스를 할 때도 무척 섬세하다”고 말했다.
“어떤 날은 촛불을 켜 놓기도 하고 어떤 날은 TV를 켜 놓고 그 위에 수건을 걸쳐 놓죠. 그러면 방안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져요. 수건도 두께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져요. (남편이)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더라고요. 불빛을 최대한 활용해서 섹스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거죠.”
아내의 모든 점이 사랑스럽기만 하다는 유퉁은 부부간의 성생활에 대해 “성기와 성기의 결합이 섹스가 아니다. 섹스는 애무를 어떻게 하느냐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했다. 촉각 후각 청각 시각 미각 등 오감이 절정에 다다를 수 있어야만 섹스라는 것. 밀린 숙제를 하듯 하는 ‘의무방어전’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섹스는 ‘탁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탁’ ‘탁’ ‘탁’ ‘탁’, 한쪽에서 공을 넘기면 다른 한쪽에서 받아쳐야죠. 공이 제대로 오가지 않으면 섹스가 재미없어져요. 상대에게 공을 넘겼는데 저쪽에서 공을 되받아 치지 않으면 경기가 중단되잖아요. 이쪽에서 열심히 애무를 해줬는데 저쪽은 받기만 한다, 그러면 안 되죠. 그건 불공정한 게임이죠.”
“두 사람은 ‘탁구처럼 살고 있느냐”고 묻자 주저하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한 그는 “연애할 때 섹스에 대해 잘 몰랐던 자가는 손만 잡아도 귓불을 살짝 애무해도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흥분했는데 그 모습이 신선하고 아름다웠다”고 고백했다. 옆에 있던 자가에게도 “남편과의 성생활에 만족하느냐”고 물었더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유퉁보다 한 술 더 떠 “남편이 나보다 한 살 어리게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남편은) 주변에 누가 있으면 죽어도 안 해요. 불안한 상태에서는 할 수 없다는 거죠. 몽골 아파트에서 동거할 때도 누가 우리 집에 와서 자면 못했어요. 처음엔 그게 이해가 좀 안 됐어요.”
유퉁이 “카섹스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남들이 볼까봐 불안해서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한국말에 능숙한 자가는 “누가 보면 좀 어때?”라고 웃으며 받아쳤다.

늦둥이 딸 키우며 느끼는 인생의 또 다른 재미
다예는 그에게 자식 키우는 재미를 흠뻑 안겨준다고 한다. 첫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키울 때는 자신이 너무 어렸던 탓인지 그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 그는 요즘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식당 일 다 마치고 침대에 세 식구가 나란히 누웠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다예가 제게 재롱을 떨면 그에 질세라 자가가 저한테 푹 안겨요. 셋이서 침대를 뒹굴다 보면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지금 이 순간이 천국이라고 느껴지는 거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행복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어요.”
인터뷰 중 그의 집에 택배로 물건이 도착했다. 상자에는 다예와 자가의 옷이 담겨 있었다. 대전에 살고 있는 그의 후배가 자가에게 보낸 생일 선물이었다. 그는 아내의 생일을 동네방네 소문냈다고 한다. 부모 형제를 떠나 타국에서 맞이하는 생일인 만큼 많은 사람이 축하해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고.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남편이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놨더라고요. 목욕 하라고요. 생일이라고 특별히 그렇게 해준 거예요. 남편과 사는 게 재미있어요. 옛날 연애할 때 얘기도 해주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도 들려주는데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거든요.”
한국말을 곧잘 하는 자가는 생김새는 물론 사고방식까지 한국 여성과 비슷하다. 한국에 온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가계부를 쓰고 있는 자가의 모습에서 유퉁은 2003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평생 국밥집을 운영하며 죽기 직전까지 자식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사랑과 꼼꼼함이 묻어난다는 것.
“자가와 다예 중 누가 더 소중하냐고 물으면 전 두말없이 ‘자가’라고 대답합니다. 다예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제겐 자가가 더 소중하거든요. 그동안 많은 여자와 살았지만 자가처럼 저를 편하게 해준 여자는 없었어요. 부부싸움을 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저와 성격이 잘 맞아요. 제 예술세계를 이해하고 작품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이 나이에 사람 사는 재미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자가와 살면서 나이차는 잊은 지 오래됐어요. 소중한 제 아내이자 아이 엄마일 뿐이죠.”
‘울퉁불퉁’하게 반세기를 살아왔지만 이제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안정을 찾았다는 유퉁. 그에게서 진한 사골국물 같은 사랑의 향기가 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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