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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 인터뷰

‘동행’ 가수 최성수 ‘영화 같은 사랑’ 첫 공개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7.01.24 09:41:00

80, 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 최성수가 새 앨범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유학 중 두 아이의 엄마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지난 2002년 늦둥이를 낳은 뒤 인생의 행복을 알았다는 가수 최성수 프라이버시 인터뷰.
‘동행’ 가수 최성수 ‘영화 같은 사랑’ 첫 공개

최성수(47)가 돌아온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수줍은 듯한 미소로 큰 인기를 누리다 지난 95년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난 뒤 한동안 모습을 볼 수 없던 그가 오랜만에 새 앨범을 내는 것. 지난해 일일드라마 ‘얼마나 좋길래’ 주제곡을 통해 목소리로 먼저 방송에 복귀한 최성수를 서울 압구정동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최성수는 여전히 따뜻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80~90년대 여성팬을 사로잡던 미소도 여전했다. 하지만 그 사이 그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됐다고 한다. 대중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져 있는 동안,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결혼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린 것. 오랜만에 만난 최성수는 뒤늦게 찾아온 사랑과 그로 인해 얻게 된 일상의 행복에 대해 솔직하게 들려줬다.
최성수와 부인 박영미씨(44)의 연애담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 97년 박씨가 라디오에서 우연히 최성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전 미국 유학 중이었는데,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전화를 걸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어요. 아내가 그걸 들은 거죠. 한참 얘기를 듣다보니 ‘저 사람 참 멋있다’는 느낌이 들더래요(웃음).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해 제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하더라고요.”
박씨는 최성수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나는 당신 팬이 아니고, 사실 노래도 잘 모른다. 그런데 라디오를 듣다보니 정말 좋은 사람 같더라. 같이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가 많아 귀찮아하곤 했는데, 묘하게 그 전화는 싫지 않았다고.

‘동행’ 가수 최성수 ‘영화 같은 사랑’ 첫 공개

“가수한테 전화해서 ‘나는 팬이 아니다’라고 하다니, 사실 굉장히 당돌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죠. 나중엔 거의 매일 통화했어요. 그 사람이 전화 걸어주는 걸 기다리다 못해 제가 먼저 전화를 하기도 하고요. 아내는 ‘당신은 유학생이니 내가 걸겠다’며 바로 끊고 다시 걸어주곤 했어요. 그런데도 한 달 전화요금이 수백만원씩 나오더라고요.”
사랑이 시작된 거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최성수는 가수로 한창 인기를 누리던 93년 한 차례 결혼을 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대중의 관심 속에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고도 불화와 갈등을 거듭하다 6개월 만에 끝내버린 결혼생활의 상처로 그는 또 다른 사랑을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박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서울에서 스포츠 의류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박씨는 90년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던 상태였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호감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친구’ 이상의 거리로 다가가는 것을 조심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고.

4개월여 전화로 이어진 인연, 첫 만남에서 강렬한 사랑 느껴
“그렇게 넉 달이 흘러갔어요. 아내는 제 얼굴을 알지만, 전 아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죠. 참 궁금한데도 괜히 부담을 주게 될까봐 ‘보고 싶다’는 말도 못했어요. 그런데 그해 12월 아내가 뉴욕에서 사업 관련 행사가 있다며 미국에 가는 김에 당신도 한 번 만날 수 있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두 사람은 보스턴 공항에서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씨는 최성수를 만나고는 싶은데, 그냥 갈 수 없으니 사업 핑계를 댄 것이었다고 한다. 이 만남에서 그들은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던 ‘진짜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보스턴이 바닷가재 요리로 유명해요. 그래서 제가 바닷가재를 대접하겠다며 아내를 레스토랑에 데려갔죠. 사실 저는 비싸서 사먹을 엄두도 못내는 건데 혼자 큰 놈 한 마리를 다 먹데요(웃음). 그것도 손가락으로 조심조심 먹는 게 아니라 손으로 턱 잡아서, 정말 맛있고 복스럽게 먹는 거예요.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어요. 저는 원래부터 손으로 잡고 먹어야 하는 걸 젓가락으로 헤집어놓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좋았어요. 아니, 사실을 말하면 뭐가 좋았는지 설명하는 게 웃긴 일이죠. 뭐에 씌었는지 그냥 다 좋더라고요. 씩씩하게 먹는 모습, 시원시원 말하는 모습, 전부 다 예뻤어요.”
박씨 역시 최성수를 보고 흠뻑 빠졌다고 한다. 그 순간 두 사람에게는 한 차례 결혼의 실패도, 두 아이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고. 한국으로 돌아간 박씨는 서둘러 사업을 정리했고, 이듬해 2월14일 밸런타인데이에 두 사람은 보스턴의 한 성당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치렀다.
“사랑에 빠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오직 그 사람만 보이고, 주변 것은 다 상관 없더라고요. 당시 아내는 한국에서 꽤 크게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오직 저와 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다 접었어요. 저도 주위에서 ‘다른 사람 아이를 키우는 게 절대 쉬운 거 아니다’라고 하는 말들이 귀에 안 들어왔죠.”
최성수는 그때의 불같은 결정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니, 후회는커녕 그날 이후로 늘 ‘지금이 바로 내 인생의 전성기’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세상에 널리 알리지 않은 건 둘 다 두 번째 결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조심스러워야 했다고.

‘동행’ 가수 최성수 ‘영화 같은 사랑’ 첫 공개

휴대전화 액정화면에 있는 아들 동현이의 사진을 보여주는 최성수.(왼쪽)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박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액정화면을 한 번 보더니 ‘하이~ 마누라!’ 하는 그의 입매엔 벌써 웃음이 한가득 걸려 있다.
“우리는 커플요금제를 써야 해요. 하루에 거는 전화의 3분의 2를 서로한테 하니까요. 주위 사람들이 너희는 아직도 신혼이냐고 놀리는데, 진짜 신혼 때와 다른 걸 모르겠어요.”
그는 전화기에 저장시켜 놓은 아내와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가 ‘우리 큰아들’이라고 소개한 사진 속 주인공은 박씨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일우군(21). 현재 미국 미시간주립대 호텔경영학과 2학년이라고 한다. 작은딸 선정양(17)도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최성수는 “우리 딸이 지난 학기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다”며 “‘가문의 영광’이라 성적표를 액자에 넣어 집에 걸어뒀다”고 자랑했다. 반듯하고 모범적인 아이들 덕분에 요즘은 어디를 가든 어깨가 으쓱해진다고 한다.
“지난 2001년 버클리에서 학위를 받은 뒤 저희 부부만 돌아오고 아이들은 미국에 남겨뒀어요. 방학 때마다 집에 오는데, 지금 다 한국에 들어와 있어 집안이 화기애애하죠.”
아이들 얘기가 나오자, 그러잖아도 싱글벙글이던 최성수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졌다. 결혼 전 주위에서 많은 이들이 아이 문제에 대해 걱정해주는 바람에, 그도 내심 고민이 없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감사하게도 그를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줬다고.
“처음 결혼할 때 당장 ‘아빠’가 되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에게도 ‘아저씨는 엄마를 정말 사랑해서 너희를 더 사랑하게 됐단다. 하지만 굳이 아빠라고 부르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아저씨가 너희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만 알아줘’라고 했죠.”
아이들은 그의 이런 친근한 모습을 좋아했다고 한다. 친아버지가 큰아들이 다섯 살, 딸은 돌일 때 세상을 떠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던 것도 최성수와 더 빨리 친해지는 이유가 됐다.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집 밖에서 생기곤 했다고.
“결혼한 뒤 딸이 바로 미국에 오지 못해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담임교사가 아버지, 어머니 이름을 적어내라고 하더니 친구들 다 있는 데서 ‘넌 왜 아버지와 성이 달라?’ 하고 물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엉엉 울면서 그 얘기를 하는데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죠. 세상에 태어나서 아빠라고는 저 하나밖에 모르는 아이한테 그게 할 소린가 싶고요. 당장 성을 바꿔주고 싶었지만, 호주제 때문에 할 수 없었어요. 그때부터 호주제만 없어지면 바로 성을 바꾸자고 약속했죠.”
최성수는 법적인 문제가 정리되고 아이들이 다 미국에 들어간 뒤에야 더 이상은 그런 상처를 받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들은 차를 몰고 미국에서 캐나다까지 함께 여행을 하는 등 수시로 여행을 다니며 끈끈한 ‘식구’가 됐다고.

‘복덩이’ 막내 동현이 덕분에 더 큰 가족 사랑 얻어
최성수는 이날 반가운 소식도 들려줬다. 2002년 결혼 4년 만에 늦둥이 아들 동현이를 얻었다는 것이다. 세 차례의 인공수정 끝에 얻은 ‘귀한 아이’라고 한다.
“사실 저는 이미 있는 두 아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자꾸 ‘당신 닮은 아이를 꼭 낳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적지 않은 나이에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데, 아이를 낳고서야 비로소 아내가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지 알게 됐죠. 동현이가 우리 가족의 마스코트가 돼서, 저희 모두를 한층 더 단단하게 묶어주고 있거든요.”
최성수의 휴대전화 액정 화면은 그가 동현이를 꼭 안고 찍은 사진. 한눈에도 아이의 선한 눈매가 최성수와 꼭 닮은 게 보였다. 사진 위에 쓴 ‘내사랑 내새끼’라는 글에서도, 최성수가 뒤늦게 얻은 자식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분명히 전해져왔다.



“사실 아이를 낳고 처음 한동안은, 정말 세상에 다시 없이 행복하면서도 표현을 잘 못했어요. 위의 두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돼 일부러 좋아하는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고, 무슨 일을 하든 두 아이에게 먼저 관심을 기울였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일우나 선정이 모두 동현이를 자기 자식처럼 귀여워하는 게 보이는 거예요. 10살 이상 차이가 나니까 질투는커녕, 사랑스럽기만 한 모양이더라고요.”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한 번은 아이들에게 “솔직히 아빠가 동현이만 예뻐하는 것 같아서 서운하지 않니? 아빠가 무의식중에 동현이만 챙기는 것 같지 않아?” 하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저렇게 귀여운 아이를 어떻게 감히 우리와 비교할 수 있느냐”며 “나도 오빠보다 동현이가 좋다” “당연히 나도 너보다 동현이가 훨씬 예쁘다”고 얘기해 최성수를 편안하게 해줬다고 한다.
“그제야 동현이 덕분에 우리 모두가 진짜 가족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현이는 제 아들이면서 동시에 일우랑 선정이 동생이잖아요. 마침내 우리 모두 피가 섞인 식구가 된 거죠.”
그 뒤부터 최성수는 마음껏 동현이를 사랑할 수 있게 됐다고. 사실 그에게 동현이는 만들어진 순간부터 태어나 자라는 과정까지 다 지켜본 첫아이라는 점에서 각별하다고 한다.
“인공수정을 통해 생겼으니까, 처음 착상되는 순간부터 1mm씩 자라는 과정까지 다 지켜봤잖아요. 전 늘 아내와 같이 병원에 가서 아이가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봤어요. 가끔씩은 큰아들도 함께 병원에 갔죠. 저희가 다니던 데가 불임 전문병원이라, 아들이 같이 가면 다른 산모들이 ‘아니 저렇게 큰 아들이 있는데 왜 또 자식을 낳으려고 고생하나’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어요. 일우는 그게 부끄럽다고 하면서도, 막상 아이 움직이는 걸 보면 좋아하곤 했죠(웃음).”
최성수 부부는 동현이를 가진 뒤 태교에도 각별히 신경을 기울였다고 한다. 늘 배 속 아이와 대화를 나눴고, 좋은 음식만 골라 먹으며 최선의 몸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썼다고. 또 태교 책을 읽은 이들은 시신경이 발달된다고 하는 시기엔 햇빛을 배 쪽에 집중적으로 쏘여 시각을 발달시키고, 청신경이 발달되는 시기엔 음정조율기와 메트로놈을 통해 음감과 박자 감각을 길러줬다고 한다.
그렇게 공들인 아이여서 그랬는지, 동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달랐다고 한다. 보통 아이들은 분만실에서 나올 때 그저 소리 내 울게 마련인데, 동현이는 세상을 두리번거리는 등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고.
“네, 저 팔불출 맞아요(웃음). 하지만 정말이라고요.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저와 대화가 통해요. 같이 퍼즐을 하면, 저와 아내가 한편을 하고 덤벼도 못 당할 만큼 머리도 좋죠. 동현이를 볼 때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좋은 일을 해서 이런 복을 받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최성수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멋지게 잘 자라준’ 아들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까지 둔 그는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해요. 가끔 정말 괴로운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인생은 다 그런 거라고 참고 사는 사람들을 보죠. 하지만 그때 생각을 바꾸면 또 다른 기회가 열리고 사랑이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요.”
최성수는 2001년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귀국한 뒤 그동안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미사리, 용인 등에 있는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을 해왔다. 이번에 새 앨범을 내는 건 이제 음악인으로서의 삶도 다시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직접 작곡한 ‘동행 two’와 다른 유명 작곡가들의 곡을 모아 2월 초 앨범 발매를 목표로 한창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술 담배에 손도 대지 않고, 꾸준히 라이브 공연을 하며 목을 가다듬어온 덕분에 노래 실력이 전혀 녹슬지 않았다는 평을 들었다고.
“쉬는 동안 음악환경이 많이 바뀌었죠. 이제는 방송에 나가 노래하려면 개인기를 익히고 한번씩 망가지기도 해야 한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그럴 생각 없습니다. 예전처럼 최선을 다해 제 노래를 부를 뿐이에요. 혹시 히트를 치지 못한다 해도, 예전 만한 인기를 못 얻는다 해도 두렵지 않아요. 저한테는 늘 저를 최고라고 믿어주는 가족이 있으니까요(웃음). 정말 제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과 좋은 노래를 나누는 것, 그래서 다 함께 행복해지는 게 제 꿈입니다.”
최성수는 이런 마음을 담아 2006년 12월30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데뷔 후 첫 디너 콘서트를 연다. 이날 공연에서 그는 귀에 익은 히트곡뿐 아니라 새 앨범에 실릴 신곡들도 미리 들려줄 계획이다.

여성동아 2007년 1월 5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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