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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긍정의 힘

‘동메달리스트의 행복 찾기’

‘따뜻한 밥 한 그릇’ 시인 김사인이 들려주는~

글·이남희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7.01.18 10:33:00

숨 가쁘게 앞만 보며 달려온 삶이 고단하게만 느껴지는가. 잠시 달음박질을 멈추고 주변을 바라보면 세상의 아름다움이 보일 것이다. 소박한 일상의 정겨움을 찬미하는 김사인 시인으로부터 ‘희망을 보는 마음 갖기’에 대해 들었다.
‘동메달리스트의 행복 찾기’

사소한 일상의 아름다움과 서투름의 미학을 일깨워주는 김사인 시인.


뼛속까지 추위가 밀려드는 겨울이면,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지닌 사람이 그리워진다. 불교방송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살며 사랑하며’를 진행하고 있는 김사인 시인(52·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은 겨울에 더욱 만나고픈 사람이다. 그는 10년간 신어온 낡은 신발에서, 뒷골목의 허름한 단골 식당에서, 찬바람 부는 퇴근길에서 발견한 소박한 일상의 정겨움을 두런두런 들려주기 때문이다.
최근 김사인 시인이 라디오 방송에서 들머리 인사말로 건넨 이야기들을 엮은 산문집 ‘따뜻한 밥 한 그릇’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책 속의 구절은 모두 그가 그날그날 스튜디오에 앉기 전 직접 쓴 글들이다. 정지선을 조금 지나쳐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지하철을 바라보며 그는 “너무 완벽하고 매끄러운 것보다 때로 그런 다소의 어수룩함과 서투름 쪽에서 인간의 냄새와 온기를 느끼게 된다”고 ‘서투름의 미학’을 설파한다. 또 “서민적이라는 것의 요체는 좀 못난 듯한 정다움과 편안함에 있다. 그것이 지혜의 모습이기도 하다”며 뒷골목 단골 식당을 예찬한다.
지난 12월 중순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서 김사인 시인을 만났다. 선한 눈을 꿈뻑이며, 어눌하고 느릿한 말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의 모습은 다정하고 소탈하다.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비결을 묻자 그는 쑥스러운 듯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사람이 모자라서 그렇죠, 뭐(웃음). 우여곡절이 많은 80년대 저는 진보운동을 하면서, 크고 근사한 명분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다가 감옥에 수차례 들락거리는 고초를 치르기도 했지요. 그때 저는 ‘큰 명분이 경우에 따라 필요하지만, 역으로 사람을 억압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세상을 조금이나마 살리는 힘을 가지려면, 작고 구체적인 것들에 대한 나지막한 섬김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알게 된 거죠. 존재하는 작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 모이면, 세상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겠어요?”
90년 노동해방문학지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그는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가 든 가방을 잃어버린 뒤 한동안 시를 쓰지 못했다. 글을 잃어버린 상처가 꽤 깊었기 때문이다. 그는 87년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를 발표한 지 19년 만에 비로소 두 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펴냈다.
“원고를 잃어버리고 난 후 허탈감이 컸어요. 저는 제가 쓴 시도 못 외우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한동안 평론가 행세만 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시쟁이 기질이 되살아나더군요.”
그는 시련을 오롯이 견디며 삶을 관조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50년 넘는 인생을 살며 한번도 세상에서 내리고픈 충동을 느낀 적이 없었겠는가. 김 시인은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지금의 상황을 잘 치러내면 시간이 흘러 변화가 찾아온다”고 말했다.
“도망자 생활을 하느라 가계를 돌볼 힘조차 없던 80년대가 제겐 가장 힘든 시기였죠. 82년 결혼한 아내는 저를 대신해 꿋꿋이 생계를 꾸렸습니다. 당시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아내가 어린 두 딸의 사진을 보내왔는데, 그것을 보며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아빠의 부재’가 여실히 느껴졌으니까요.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면 아마 덜 속상했을 겁니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볼 면목이 없어 자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용서하고 예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마음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며 견디다보면 시간이 상처를 치유해주더라고요.”
그는 나이듦을 긍정하고 낡은 것들을 찬양한다. 오랜 시간을 통해 축적된 것이 지닌 기품과 아우라(독특한 분위기)는 무엇과도 비견될 수 없다는 것. 그는 “나이 드는 일에 쓸쓸함이 없지 않지만, 오랜 세월을 잘 견뎌온 사실 자체가 대견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뻔한 거짓말’에도 60~70% 정도의 진심이 담겨 있어요”
‘동메달리스트의 행복 찾기’

김 시인은 “나이드는 자신을 보며 오랜 세월을 잘 견뎌온 사실 자체가 대견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1등주의’가 지배하는 시대, 김 시인은 ‘동메달의 기쁨’을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2위인 은메달리스트의 얼굴엔 간발의 차이로 놓친 금메달에 대한 애석함이 드러나지만, 3위인 동메달리스트에게는 하마터면 메달권 밖으로 탈락할 뻔한 위기에서 살아난 기쁨이 비친다는 것. 2006학년도 대입수능시험을 치른 둘째 딸이 빼어난 점수를 얻지 못한 아쉬움도 그는 ‘동메달의 기쁨’을 곱씹으며 달랬다고 한다.
“과연 금메달을 딴 사람이 가장 행복하기만 할까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은메달의 분함과 억울함, 서운함에 사로잡혀 울상을 짓고 있기보다는 동메달의 소박한 기쁨을 활짝 누리면 좋겠습니다. 인생이란 것이 쓰면 쓴 대로 달면 단 대로 저마다 한몫씩의 공부가 되니까요.”
김 시인은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값진 인생공부를 한다. 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오는 화물차 운전기사, 야간 경비원, 중학생, 노숙자 등 여러 청취자들도 그의 스승이 된다고. 그는 한 신문의 독자 칼럼을 읽으며 얻은 깨달음을 조용히 들려줬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역에 도착했습니다. 며느리는 한 할머니가 껌을 사라고 치근거리자 ‘왜 사람을 귀찮게 하냐’고 화를 냈죠. 하지만 시어머니는 껌 파는 할머니가 다가오자, 짐 보따리에서 꺼낸 따끈한 가래떡 몇 가닥을 뚝 떼어주면서 ‘추운데 이것 좀 잡숴보우’ 했다는 겁니다. 보통사람이라면 대개 며느리처럼 행동하겠죠. 하지만 ‘마음이 엇갈리는 지점’에서 시어머니처럼 따뜻하고 선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의 삶에 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베푸는 일이 당장은 손해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나중에는 더 큰 보답으로 돌아오거든요.”
착한 척 살아가는 것이 결국 위선은 아닐까. 이에 대해 김 시인은 “100% 진심이 아니더라도 착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거기에 사람살이의 도리에 대한 생각과 의지가 보태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하는 ‘뻔한 거짓말’ 1위는 ‘어머님 벌써 가시려고요? 며칠 더 계시다 가시지’, 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하는 ‘뻔한 거짓말’ 1위는 ‘아가, 난 너를 딸처럼 생각한단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뻔한 거짓말’에도 사실 60~70% 정도의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잖아요. ‘어머님, 더 계시다 가세요’라는 말 속에는 적어도 그래야 마땅하다는, 또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의 애씀도 실려있는 거니까요.”
작가 신경림씨는 김사인 시인에 대해 “삶의 큰 길에서 조금은 비껴나 있고 조금은 뒤처져 있는 것들을 삶의 중심으로 다시 세우는 시인”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따스한 시선을 통해 우리는 ‘희망을 보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
“숨 가쁘게 앞으로만 달려가는 일상에서 한 발 물러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어느 하나 예쁘지 않고 황홀하지 않은 게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속도와 능률, 이윤만 추구하며 살아가다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다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깃든 마음을 보게 될 거예요.”

여성동아 2007년 1월 5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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