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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간직한~ 정동길

글·구가인 기자 / 사진·김성남 기자

입력 2007.01.17 17:31:00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길, 정동길…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도 많은 거리. 서울시청 별관 건너편에 위치한 덕수궁 돌담길부터 정동 경향신문사까지 뻗어있는 1km 남짓한 길을 걸으면 각기 다른 색의 추억들과 만나게 된다.
추억을 간직한~ 정동길

# 낭만 가득 덕수궁 돌담길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는 광화문에 대한 노래라기보단 정동길을 위한 노래인 듯하다. 홀로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보면 그 노래의 한두 구절이 떠오른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한때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연인들은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혹자는 돌담길 주변에 남녀 사이를 흐리게 하는 기운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하고, 다른 이는 길이 워낙 길다보니 함께 걷다보면 자연히 말다툼을 하게 된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듯 분분한 설 중에서도 가장 상식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헤어진 연인을 포함한 모든 연인이 한번쯤은 정동길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연인과 헤어지고 난 후 홀로 이 낭만적인 거리를 걸었던 이라면 손을 꼭 쥐고 돌담길을 걷는 커플을 보며 억한 심정에서 ‘돌담길의 저주’를 되씹었을 만하다.
지금보다 데이트 코스가 많지 않았던 80~90년대, 너무 북적거리지도 그렇다고 외지지도 않은 고즈넉한 정동길은 데이트하기에 적격이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 정동길 곳곳에서 유행가 가사처럼 ‘발걸음을 나란히’하고 걷는 다정한 연인들을 숱하게 만날 수 있다. 예전보다는 길에 차와 사람들이 늘어 한적한 분위기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길의 경사가 완만해 걷기 부담 없는데다 각종 문화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복잡한 도심과는 사뭇 다르게 호젓함을 주는 이만한 데이트 코스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낙엽이 깔린 가을과 눈 쌓인 겨울, 바닥에서 은은하게 조명이 올라오는 밤이면 더욱 낭만적이다.
돌담을 따라 쭉 걷다보면 바닥 분수를 중심으로 서울시립미술관, 미 대사관저, 경향신문사 쪽으로 갈라지는 네거리가 나온다. 그리고 그 네거리에 정동제일교회가 있다. 비록 노래가사처럼 ‘조그맣진’ 않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돌담길을 걸은 뒤에는 예배당에도 들러보자. 가슴속에 남아있는 어떤 그리움 혹은 낭만이 울컥 솟아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추억을 간직한~ 정동길

정동길은 가운데 바닥분수를 기준으로 네 갈래 길로 나뉜다. 정동길 바닥 타일. 러시아공사관, 정동제일교회, 덕수궁 돌담길 등이 새겨져 있다. 가요 ‘광화문 연가’에 등장하는 정동제일교회.(왼쪽부터 차례로)



추억을 간직한~ 정동길

화려한 빛의 축제 ‘루미나리에’가 펼쳐지는 서울시청 광장. 겨울방학 동안 실외 스케이트장도 개장한다. 재현된 유관순 열사의 교실(이화여고). 을미사변 후 궁을 나온 고종황제가 1년여간 머물렀던 러시아공사관. 지금은 일부만 남아있다.(왼쪽부터 차례로)


추억을 간직한~ 정동길

실내공연과 더불어 다양한 무료 야외공연이 열리는 정동극장.(왼쪽) 옛 대법원 건물이었던 서울시립미술관.(오른쪽)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학교 가는 길
정동길은 학교 가는 길이기도 하다. 창덕여중과 예원학교, 이화여고 등이 이 길에 있고, 서울시립미술관 근처 배재빌딩은 한때 배재고가 있던 자리다. 그래서 오래전에는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 연애합시다” 식의 장난기 어린 구애사건도 벌어지곤 했다고. 구한말 근대식 교육이 시작되고 이곳에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등이 개교하면서 ‘학교 가는 길’로서 정동길의 역사도 시작됐다. 이중에서도 이화여고는 일반 고등학교이지만 구경삼아 들러봐도 좋을 곳이다. 일반 공연장으로도 자주 쓰이는 이화여고 백주년 기념관을 비롯해 유관순 열사가 학교에 다니던 1910년대 교실풍경을 재현해 놓은 심손기념관(이화박물관), 1950년대 이화여고에 재직 중이던 수학교사가 설계한 국내 최초 석조 노천극장인 원형극장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이화여고 외에도 정동길에는 정동제일교회나 옛 신아일보사가 있던 신아기념관 등 1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이 많다. 특히 덕수궁 길 중간 즈음 정동극장 옆 골목에는 1900년 러시아 건축가가 덕수궁의 별채로 지은 최초의 서양식 벽돌건물이자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인 중명전이 있다. 원래 덕수궁 내에 있었지만 일제가 덕수궁 축소공사를 하면서 궁궐 밖 건물이 됐다고. 이 밖에도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황제와 왕세자가 궁에서 나와 1년여 간 머물렀던 역사 속 러시아공사관 일부가 경향신문사 뒤편 정동공원 꼭대기에 남아있다. 아이들의 역사교육을 위해 한번쯤 방문해봐도 좋을 듯. 정동길은 이처럼 낭만을 품은 동시에 역사적인 의미도 살아있는 길이다.



# 미술관, 공연장, 스케이트장… 풍성한 나들이길
정동길 중간 분수 옆으로 난 숲길을 오르면 다다르게 되는 서울시립미술관은 원래 대법원 건물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미술관뿐아니라 법원과도 어울린다 싶다. 주로 규모 있는 전시를 여는 이곳 미술관은 3층 건물로 돼 있는데 3층 카페테리아에 가면 창밖으로 돌담 너머 덕수궁의 내부모습을 즐길 수 있다.
정동길에는 이 밖에도 경향신문사 내에 있는 영화관 스타식스정동부터 난타 전용극장, 비보이 전용극장 등 문화예술공간이 많은데 그중 정동길 중반에 위치한 정동극장은 빠뜨리면 안될 곳이다. 97년 문 열어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정동극장에서는 실내 공연과 더불어 날이 풀리는 4~9월에 재즈와 판소리,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무료 야외공연도 열린다. 최근 리모델링 공사로 한결 산뜻해졌는데 극장 안마당인 쌈지마당 한쪽에 카페식 레스토랑이 생겨 분위기를 돋워준다.
또 겨울이라면 정동길을 다 걸은 뒤 덕수궁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시청 앞 광장 스케이트 장에도 방문할 만하다. 2004년부터 학생들의 겨울방학에 맞춰 2월 중순까지 개장하는 이곳 스케이트장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금·토·일 11시까지, 대여료 1시간당 1천원) 이용할 수 있다. 시청 앞 광장은 특히 겨울밤이 가장 아름답다. 매년 화려한 빛의 축제 ‘루미나리에’가 열리기 때문. 시청 앞 광장에서 스케이트를 즐기고, 화려한 조명 사이를 걷는 느낌은 정동길을 느리게 걷는 즐거움과는 다른 재미와 낭만으로 가슴에 남을 것이다.

여성동아 2007년 1월 5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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