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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미국 현지 인터뷰

어머니 병 간호 위해 억대 연봉 변호사직 포기한 새러 수 존스 감동 사연

글 & 사진·김지현 ‘미주 중앙 시카고지사 기자’

입력 2006.12.23 12:35:00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촉망받는 변호사로 일하던 한 여성이 병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부와 명성을 포기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현대판 효녀 심청 스토리의 주인공은 한국계 혼혈 미국인 새러 수 존스씨. 관절염으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가정교사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존스씨를 미국 현지에서 만났다.
어머니 병 간호 위해 억대 연봉 변호사직 포기한 새러 수 존스 감동 사연

하버드대 재학 시절 받은 상장을 보여주는 새러 수 존스씨. 그의 집에는 존스씨의 어린 시절 추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가득하다. 거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존스씨(위에서부터).


미국 시카고 다운타운 북부. 조금만 걸어나가면 미시간 호수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그곳 작은 아파트에 새러 수 존스씨(35)와 그의 어머니 백최선씨가 살고 있다. 존스씨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8평 정도 되는 거실에서 SAT(미국 대학입학시험)를 준비하는 6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가정교사 같은 모습. 하지만 그는 지난 2004년까지 보스턴 ‘롭스 · 그레이 로펌’에 근무하던 변호사다. 지난 96년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세계 최고의 컨설팅 회사 매킨지에 입사했을 만큼 촉망받는 인재이기도 했다. 미 국무부 인턴, 매킨지 뉴욕 본사 컨설턴트 등을 거친 그는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가 됐고 한 때 보너스를 제외한 연봉이 15만 달러(약 1억4천만원)에 이를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가 명성과 부를 뒤로한 채 시카고 시골 마을에서 가정교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셨거든요. 지난 75년부터 관절염을 앓으셨는데, 점점 상태가 심해지시더니 혼자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가 됐어요. 아버지와 94년 이혼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를 돌봐드릴 사람은 저 외엔 아무도 없었죠. 전 로스쿨을 졸업하고 2001년부터 로펌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한창 근무 하다가도 집에서 연락이 오면 당장 달려 들어오곤 했어요. 하지만 일과 간호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죠.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려면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존스씨가 이렇게 마음먹은 건 어릴 때부터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온 어머니의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머니 백씨는 70년대 초반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가 미국인 켄트 존스씨와 결혼, 존스씨를 낳았다. 결혼 초부터 불화가 끊이지 않았지만 백씨는 딸을 평범한 가정에서 키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존스씨가 성년이 될 때까지 참고 견뎠다고 한다.
“어머니는 저를 잘 키우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감수하셨어요. 어른이 된 뒤 제가 어머니께 ‘원한다면 이혼하라’고 권했을 정도로요. 그런 어머니가 편찮으신 걸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그런데 어머니는 혼자 화장실도 못 갈 만큼 편찮으시면서도 제가 로펌을 사직하면 요양원에 들어가겠다고 버티셨어요.”
오랜 실랑이 끝에 존스씨가 로펌을 사직한 건 지난 2004년의 일이었다고 한다. 백씨는 “나 때문에 딸아이가 성공이 보장된 미래를 포기했다는 게 마음 아프다. 딸에게 늘 미안하고, 지금이라도 짐을 덜어주고 싶은데 이 아이가 고집을 꺾지 않는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존스씨가 가정교사를 시작한 건 24시간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가 거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 어머니 백씨는 부엌에 앉아있거나 방 안 침대에 누워 딸의 수업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학생들 가르치며 빠듯하게 생계 꾸려가고 있지만 잘나가던 변호사로 살던 시절보다 훨씬 더 행복해요”
어머니 병 간호 위해 억대 연봉 변호사직 포기한 새러 수 존스 감동 사연

“식사시간이나 목욕시간처럼 어머니께 제가 꼭 필요한 시간을 피해 수업을 하고 있어요. 수업 도중에도 어머니가 부르면 1분 안에 달려갈 수 있으니 정말 편하죠.”
현재 존스씨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은 20여 명. 처음엔 미국인 학생 2명으로 수업을 시작했는데, ‘잘 가르친다’는 입소문이 퍼져 학생 수가 늘었다고 한다. 특히 로스쿨에 진학하려는 이들 사이에서 존스씨는 어느새 유명 강사가 됐다고. 사실 그는 하버드 로스쿨에 다니며 조교로 일하던 시절, 담당 교수에게 ‘이제까지 가르친 학생 중 가장 탁월한 티칭(teaching) 능력을 가진 학생’이라고 쓰인 상장을 받았을 만큼 가르치는 분야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변호사 업무는 아니지만, 하버드 로스쿨에서 익힌 또 다른 특기를 가정교사로 일하며 살려가고 있는 셈이다.
“이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월수입이 1천5백 달러(약 140만원)밖에 안됐어요. 월세를 내는 데도 부족해 그동안 모아둔 돈을 꺼내 써야 했죠. 하지만 좀 빠듯하긴 해도 이젠 제가 버는 돈만으로 충분히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어요.”
존스씨에게는 지금도 매킨지 등 예전에 근무하던 회사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한 곳에서는 연봉 30만 달러(약 2억8천만원)를 제안했다고. 하지만 그는 “내 인생의 목표는 돈이 아니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며 거절했다. 지금 존스씨가 바라는 건 다시 사회로 나가 큰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어릴 때 전 에스페란토(국제보조어) 구사 능력 대회 미국 대표였어요. 어머니와 함께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에스페란토 대회에 참가했죠. 지금도 앨범을 보면 그때의 추억이 생생히 떠올라요. 언젠가 어머니가 건강해지시면, 다시 한 번 그렇게 함께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요. 그 생각만 해도 마음이 즐거워지죠.”
그가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시카고 변호사 오케스트라도 존스씨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존스씨는 하버드대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을 정도로 수준급의 바이올린 실력을 자랑한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존스씨는 “내가 여행을 꿈꾸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이끌어준 사람은 어머니였다”며 “이제는 내가 어머니와 함께 할 때”라고 말했다.

여성동아 2006년 12월 5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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