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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아이 셋 둔 싱글맘과 외국인 총각으로 아름다운 사랑 꽃피운~미니박·짐 하버드 부부

“남편은‘내 삶의 기적’, 아내는‘신이 보내준 무지개’예요”

기획·김명희 기자 / 글·강은아‘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6. 12. 22

5년 전 결혼한 한국인 미니박과 미국인 짐 하버드 부부는 드라마 같은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 아이 셋을 데리고 힘들게 살아가던 미니박 앞에 혜성처럼 나타난 하버드씨는 “아이 셋은 내 인생의 보너스”라며 감동적인 청혼을 했다.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로 살아가는 이들 부부의 유쾌하면서도 가슴 찡한 결혼생활 이야기.

아이 셋 둔 싱글맘과 외국인 총각으로 아름다운 사랑 꽃피운~미니박·짐 하버드 부부

아이 셋을 가진 이혼녀가 아홉 살 연상의 외국인 총각과 재혼했다. 속된 표현으로 여자 쪽이 ‘땡 잡았다’ 싶은데 웬걸, 남자는 “패키지로 자식까지 왕창 보너스로 얻었다”며 더 좋아한다. 남자는 절망 속에 지쳐가던 한 여자 앞에 나타난 ‘삶의 기적’이고 여자는 사제의 삶을 꿈꾸던 남자에게 ‘신이 보내준 무지개’다. 서로 치켜세우기에 여념이 없는 미니박(46)과 짐 하버드(55) 부부.
뮤지컬을 통한 어린이 영어교육법을 창안해낸 박씨와 성악가로 활동하며 전 세계를 다니던 하버드씨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 99년. 80년대에 한국에서 잠시 머물렀던 하버드씨가 68개국 공연을 마친 후 옛 친구를 찾아 한국을 다시 방문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친구가 어린이 영어 뮤지컬 프로그램 관련 학원사업을 하고 있던 박씨와의 만남을 주선한 것.
“제가 개발해낸 뮤지컬을 통한 영어교육 사업의 조력자를 구하던 중이었거든요. 미국인인데다가 성악가로 활동한 짐의 이력이 제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제가 운영하던 학원을 방문해달라고 했죠.”

“오마 샤리프 같은 멋진 첫인상에 반했어요”
아이 셋 둔 싱글맘과 외국인 총각으로 아름다운 사랑 꽃피운~미니박·짐 하버드 부부

하버드씨는 소개받은 바로 다음 날 학원을 찾아왔다고 한다.
“교실 문이 열리고 ‘척’ ‘척’ ‘척’ 걸어 들어오는 그의 모습이 마치 영화 ‘닥터 지바고’의 남자주인공 오마 샤리프 같았어요. 소위 ‘뿅 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심장이 딱 멈추는 듯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업적인 만남이었기에 박씨는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고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하버드씨는 천부적으로 아이들과의 친화력이 좋을 뿐 아니라 유머감각, 상대에 대한 배려심을 갖춘 그야말로 어린이 교육의 적임자였다. 성악가다운 그윽한 발성과 전문배우 같은 연기력을 고루 갖춰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았다. 박씨는 그야말로 듬직한 조력자를 얻은 후 사업에서도 인생에서도 용기와 활력을 얻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사업 관계로 지속적으로 만났는데 첫 만남 후 2년째 가을 어느 날, 늦은 시간까지 혼자 사무실에 남아 일을 하고 있던 박씨에게 하버드씨가 찾아왔다고 한다.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따로따로 곱게 포장한 장미꽃 3백 송이를 안고.
“하느님이 신앙이 신실한 짝을 보내주실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어요. 제가 원하는 짝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신부로서 사제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2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지켜보니 미니박이야말로 그토록 기다렸던 하느님이 보내준 제 영혼의 파트너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청혼을 했죠.”
천하의 행복을 다 얻은 것 같았던 그 순간의 감격이 되살아나는 듯 얼굴이 환해진 박씨가 남편의 말에 이어서 덧붙인다.
“무릎을 꿇고 반지를 주면서 청혼을 했어요. 그리고 한 달 뒤에 결혼식을 올렸죠.”
사람들은 흔히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 앞에서도 ‘누가 이익이네’, ‘누가 아깝네’ 하며 손익계산을 따지려 들곤 한다. 한 번의 이혼 상처를 가진 박씨는 1남2녀를 두고 있었다. 초혼인 하버드씨가 손해를 본 것 같은 느낌은 없을까. 슬쩍 그의 마음을 떠 보았다.
“손해 보는 느낌? 그런 것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이 여자와 결혼하면 가족과 결혼하는 것이다, 자식 셋을 보너스로 얻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죠. 저의 가족도 제가 선택한 결혼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요. 부모님은 제가 9형제 중 좀 별나다고 생각하고 계셨거든요.(웃음)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생겨난 손자와 손녀들을 빨리 보고 싶다는 말씀부터 하셨어요.”

“아내가 인생에 저를 넣어주어 사랑을 얻고 가족을 얻었으니 고마울 뿐이에요”
박씨 또한 마냥 ‘횡재’한 것 같은 기분은 아니었을 터. 전 남편과는 왕래가 끊긴 상태였지만 아이들에게 선뜻 재혼의 뜻을 밝히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아이들과 한강유람선을 타면서 식사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너희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단서를 달고 아이들에게 엄마의 재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아이들은 의외로 흔쾌히 찬성했다고.
하버드씨가 아이들에게 이미 ‘친구같이 좋은 아저씨’로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큰딸(19)은 친구들에게 당장 전화를 걸어 “짐 아저씨가 우리 엄마랑 결혼해, 이제 우리의 ‘미제’ 아빠야”라면서 자랑을 하기도 했다고.
“아내가 인생에 저를 넣어주어서 사랑을 얻고 아이를 얻고 가족을 얻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제 인생의 틀이 완성된 느낌입니다. 사실 제가 좀 답답하고 이상한 사람인데 이런 저를 받아들이고 사랑해주니 정말 고맙죠.”

아이 셋 둔 싱글맘과 외국인 총각으로 아름다운 사랑 꽃피운~미니박·짐 하버드 부부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미니박·짐하버드 부부. 아이들은 두 사람의 결혼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었다.


아내를 자신의 삶의 ‘무지개’라고 표현하는 하버드씨는 능숙한 한국말로 무지개색의 빨주노초파남보라는 운을 띄워가며 아내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표현했다.
“빨리빨리 추진력 있게 아이들을 교육시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주님을 인생의 첫째로 세우고 /No problem. 모든 일에/초처럼 자신을 불태워 희생할 줄 알며/파-이 세상에 땅을 파서 주님의 씨를 뿌리는 자기는 나의 무지개/남을 자신처럼 생각하고/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당신.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한 선택은 당신이오.”
이에 질세라 박씨 역시 남편 자랑에 침이 마른다.
“저의 무너진 마음을 조심스럽게 쌓아올린 소중한 사람이에요. 앞만 보고 무작정 있는 힘을 다해 힘들게 달려가는 저를 다독이며 ‘잠시 앉았다 갑시다’라면서 숨을 돌리게 해주고 내 인생에 행복이란 맛깔스런 양념이 돼주었죠. 천진난만하고 섬세하고 진지하며 여유로움을 두루 갖추었고요.”
스물여섯에 이런저런 사정에 떠밀려서 별 준비도 없이 급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첫 결혼. 박씨는 사랑 없는 결혼이었지만 아내로서 주부로서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고. 하지만 결국 이혼을 해야만 했다. 결혼에 실패한 게 서러웠고 혼자 해나가는 사업이 고달팠고 아이 셋과의 삶이 불안했다. 단 하루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살 수가 없던 시절.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그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는 늘 활기차고 열정적이고 환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고.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살 때는 남몰래 울었는데 짐을 만나고부터는 그 앞에서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넋두리를 쏟아냈어요. 짐은 끝까지 편안하게 잘 들어주었죠. 울다 지쳐서 깜빡 잠이 들기라도 하면 조용히 맞은편에 앉아 기다려주었고요.”
결혼은 현실의 삶이니 살다보면 의견 차이나 감정의 대립이 생기기 마련일 것이다. 잉꼬부부라고 하지만 다툰 적은 없었을까.
“부부싸움은 정말 안 했어요. 성격이 좀 다른데 그 때문에 오히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죠. 저는 빨리빨리 서두르고 목적지향적이어서 급히 밀고 나가는 성격인데 남편은 굉장히 느긋하고 여유가 있어요. 같이 외출준비를 하면 제가 먼저 나가서 기다릴 때가 많아요. 하지만 제가 뭘 잘 잊어버려요. 먼저 준비를 마쳤다고 나가서 기다리다보면 자동차 열쇠를 놓고 나왔다든가 하는 식이죠. 그럼 남편이 열쇠도 챙기고 외출 준비를 꼼꼼하게 하고 나오기 때문에 부부 싸움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남편이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할 때는 아이들이 과연 남편의 진심을 알아줄까 걱정스럽기도 했죠”
의견 차이가 생기는 부분은 아이들 교육문제. 하버드씨가 원칙에 충실한 편이라 정해진 규칙을 100%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작은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식탁에 앉아서 다리 하나를 의자에 올려놓고 먹는다거나 준비해놓은 음식을 물어보지도 않고 먼저 먹어버린다거나, 또는 소리를 내가면서 먹는 일들에 대해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잠잘 채비를 하고 있는 엄마의 침실에 노크도 없이 들어오는 것 역시 배려 없는 행동으로 여겨 잔소리를 하게 된다고.
“어디서나 상대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태도와 습관이 몸에 배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정에서부터 기본적인 생활 예절교육이 잘돼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제가 잔소리를 좀 하죠. 그런데 제 말은 잘 안 들어요.(웃음)”



박씨는 사소한 일에 잔소리를 하는 외국인 새 아빠에 대해 아이들이 혹시라도 괜한 오해를 할까 두려운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짐의 생각이 옳긴 해요. 아이들을 반듯하게 매너를 갖춘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하고요. 하지만 아무래도 외국인이고, 새 아빠이다보니 혹시라도 그의 진심이 잘못 받아들여지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 때문에 제가 말리는 편이에요.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제가 맡고 남편은 아이들을 토닥거려주는 일을 맡는 걸로 문제를 풀었죠.”
스페인어를 전공하던 대학시절 MBC 대학가요제에서 수상할 정도로 수준급의 노래 실력을 갖춘 박씨는 한때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다. 졸업 후 영어강사와 어른 대상의 팝송 영어강사를 하다가 노래로 배우는 영어의 효과를 체험하게 되면서 지난 96년부터 영어 뮤지컬 프로그램 사업을 시작했다. 자신이 직접 작품을 선택해 노래를 만들고 안무까지 개발해 어린이집이나 교회 등에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한다고. 최근 이 부부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배우고 대화하며 영어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가정방문 학습지 형태의 프로그램도 개발했다고 한다. 박씨는 “영어 노래와 대사를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영어와 친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춤과 노래로 배우는 영어는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영어를 익히고, 소극적인 아이들에게도 자신감을 키워준다는 게 장점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팝송을 많이 들으면서 영어에 대한 감각을 길렀습니다.”
상대에 대한 인간적 존경과 신뢰가 있기에 미니박과 짐 하버드 두 사람은 서로가 더없이 소중하고 애틋하다. 게다가 이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는 삶의 사명도 함께할 수 있으니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더욱 소중하고 행복해 보인다. 이 부부가 특별해보이는 것은 국제결혼이어서도 아니고 아이 딸린 이혼녀와 총각의 만남이어서도 아니다. 많은 부부가 알면서도 깜빡 놓치고 있는‘상대에 대한 인간적 존경과 배려’ 덕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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