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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현 선수 가족 인터뷰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시대 열어가는~

글·이남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6.11.24 10:26:00

‘특급 골잡이’ 설기현이 요즘 프리미어리그에서 놀라운 활약을 펼치고 있다. 국가대표팀 경기를 치르고 지난 10월 중순 영국으로 출국하는 설기현 선수 가족을 만나 요즘 생활에 대해 들었다.
설기현 선수 가족 인터뷰

지난 10월12일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만난 설기현 윤미 부부.


축구선수 설기현(27·레딩FC)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지난 시즌 박지성을 빼고 프리미어리그(잉글랜드 프로축구)를 논할 수 없었다면, 올 시즌은 설기현의 독무대다. 박지성, 이영표에 이어 지난 7월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그는 3개월 만에 2골2도움을 기록하며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영국 방송사 BBC 선정 ‘금주의 베스트 11’에 2주 연속 뽑힌 것은 물론 유럽 축구 전문 인터넷 매체인 ‘골닷컴’에서 프리미어리그의 ‘떠오르는 스타’ 7명 중 1명으로 선정됐다.
서울에서 열린 시리아와의 아시안컵 예선전을 치르고 지난 10월12일 영국으로 출국하는 설기현 선수 가족을 만났다. 공항에서 수많은 기자에게 둘러싸인 설기현은 “앞으로도 좋은 플레이를 보여드리겠다”고 짧은 소감을 밝혔다. 부인 윤미씨(25)의 내조에 대해 묻자 그는 “내가 좋아하는 닭요리를 잘 해준다”며 수줍게 아내 사랑을 털어놓기도 했다.
“요즘 두 아이를 혼자 키우느라 살이 더 빠졌다”는 윤미씨는 어린 두 아이의 육아에 매달리는 엄마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상큼했다. 하지만 숙달된 솜씨로 아들 인웅(5)과 딸 여진(2)을 번갈아 챙기는 모습은 영락없이 ‘프로 엄마’였다.

유럽 진출 뒤 처음으로 한국에서 함께 추석 연휴 보낸 가족
설기현의 어머니 김영자씨에게 올 가을 아들 부부의 입국은 더없이 큰 선물이었다. 처음으로 추석 연휴를 며느리, 손자, 손녀와 함께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A매치가 서울에서 두 달에 한 번씩 열렸으면 좋겠다. 그래야 손자, 손녀 재롱을 자주 볼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번 추석에는 며느리와 송편도 같이 빚고, 맛있는 것도 많이 해먹었어요. 대표팀 합숙훈련 때문에 기현이는 강릉집에 못 와서 서운했지만…. 손녀 여진이는 아직 말을 못하는데 얼마나 잘 걷는지 모릅니다. 마침 내일모레(10월14일)가 여진이 돌이라서 반지 반 돈과 옷을 좀 샀어요. 영국에서 돌잔치를 하는데, 못 가봐서 서운하지 뭐.”
김영자씨는 지금의 설기현을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87년 광산 사고로 남편을 잃고 포장마차 3년, 막노동 12년, 과일 좌판 3년을 하며 아들을 최고의 축구선수로 키워낸 대단한 어머니다. 93년 중학생이던 설기현이 “힘들어서 축구를 못한다”고 했을 때, 김씨는 아들을 자신이 일하던 공사판에 데리고 갔다고 한다. 벽돌과 시멘트를 나르고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미장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설기현은 그날 어머니가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보며 “나중에 꼭 훌륭한 선수가 돼 엄마를 호강시켜드리겠다”고 결심했다고.
설기현은 2000년 벨기에 로열 앤트워프에 입단하며 계약금을 몽땅 털어 어머니에게 집을 선물했다. ‘성공해서 효도하자’는 다짐을 지킨 셈이다. 요즘 김씨의 낙은 집에서 아들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관전하는 것이다.
“집에 케이블 방송이 나오지 않아 기현이가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을 넣는 장면을 못 봤어요. 친척 오빠 전화를 받고서야 둘째(설기현)가 골을 넣었다는 걸 들었지. 그날 새벽에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많이 축하해줬어요. 다음 날 당장 케이블 TV를 설치했습니다. 이제는 골 넣는 장면 절대 안 놓치려고요.”

설기현 선수 가족 인터뷰

설기현의 어머니 김영자씨가 손자 인웅군을 끌어안고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외쪽) 잠든 딸 여진을 유모차에 태우고 인천공항 출국장을 떠나는 윤미씨.(가운데) ‘붕어빵 부자’ 설기현 선수와 인웅군이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오른쪽)


프리미어리거 설기현을 있게 한 또 다른 여인은 바로 부인 윤미씨다. 2000년 벨기에 로열 앤트워프에 입단해 향수병에 시달리던 설기현은 여자친구인 윤미씨에게 “나를 위해 희생해달라. 나중엔 내가 널 위해 희생하겠다”고 매달렸다. 당시 부산 동아대 섬유미술과 학생이던 윤미씨는 학교 공부를 포기하고 벨기에로 날아가 설기현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 두 사람은 설기현의 허리부상으로 먼저 혼인신고를 하고, 2003년 늦은 결혼식을 올렸다.
윤미씨는 부산 친정에서 장어, 붕어, 흑염소 등 영양식과 닭곰탕을 공수해 설기현의 체력보강에 신경을 쓴다고. ‘앞에서 많이 웃어주기’ 작전으로 설기현에게 힘을 불어넣는 애교 만점 아내이기도 하다. 그런 아내에게 설기현은 인터뷰에서 늘 고마운 마음을 밝힌다.
“(아내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아니고 돈도 없던 제게 다 포기하고 와줬어요.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잖아요. 요즘은 제가 잘하고 있어선지 아내의 얼굴이 밝네요.”
김영자씨도 며느리 윤미씨의 자랑에 여념이 없다.
“며느리는 착하고 요리도 잘하고, 남편한테도 얼마나 잘하는지…. 닷새에 한 번은 꼬박꼬박 연락을 주고, 입국할 때마다 예쁜 선물을 챙겨 와요. 아이 둘을 혼자서 키우는 게 힘들 텐데, 나이가 어린데도 정말 잘해요.”
설기현은 잔재주를 피울 줄 모르는 성실함으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2001년 벨기에 명문 안더레흐트로 이적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동점골을 뽑아 온 국민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하지만 2004년 잉글랜드 2부 리그 울버햄튼 원더러스FC로 이적한 후 그는 지난해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다. 잦은 부상,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이어 ‘역주행 논란’으로 그는 네티즌으로부터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지난 5월 열린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패스할 곳을 찾지 못한 그가 한국 진영으로 공을 몰고 들어간 것. 당시 윤미씨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수비는 따라붙고 패스해줄 만한 데는 없던데… 역시 인터넷은 무섭다”고 쓰며, 속상한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설기현은 이에 대해 “플레이에 비판을 가하면 기분이 좋지 않지만, 그때 경험이 오히려 큰 공부가 됐다”며 성숙한 모습을 드러냈다.
숱한 시련은 설기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화려한 조명을 받고 프리미어리거가 된 박지성과 달리 조용히 영국 땅을 밟았던 설기현은 올 시즌 놀라운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최근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가 발표한 선수 랭킹에서 13위까지 올라섰다. 프리미어리그 진출 ‘선배’ 격인 이영표, 박지성도 랭킹 20위 안에는 들지 못했다. 최근 한국 축구팬들의 가장 큰 관심 인물로 떠오른 설기현에게 인기 비결을 묻자, 그는 “유럽에 처음 진출한 6년 전부터 쭉 해오던 대로 하고 있을 뿐”이라며 겸손하게 답했다,
“유럽생활이 6년째지만,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처음이에요.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한국에 중계되니까, 팬들이 TV로 제 경기를 보게 된 거죠. 그래서 팬들이 놀라고 기대 이상으로 감동하시는 것 같아요. 그냥 한결같이 노력했을 뿐인데…. 가족과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뛰겠습니다.”

여성동아 2006년 11월 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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