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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최고 인기! ‘타짜’가 궁금하다

영화 ‘타짜’ 실제 모델 장병윤 파란만장한 인생

글·이남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6.11.23 15:26:00

한 청년이 화투에 빠져 타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영화 ‘타짜’가 5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가을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 고니의 실제 모델인 전직 타짜 장병윤씨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술, 도박, 마약, 여자에 빠져 방황하고 신들림으로 짓눌렸지만, 마침내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영화 ‘타짜’ 실제 모델 장병윤 파란만장한 인생

모성애를 자극하는 깊은 눈망울을 지녔다. 한때 국내 최연소 타짜(화투판에서 남을 속이는 기술을 가진 사람)로 이름을 날리며 전국을 누빈 그의 첫인상은 짐작과 달리 선하고 부드러웠다. 올 가을 최고 흥행작으로 떠오른 영화 ‘타짜’의 기술고문을 맡은 전직 타짜 장병윤씨(51).
그의 현재 직업은 농부이자 어부다. 경남 산청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고, 강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판다. 그가 한 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3천만원 정도. 한때 몇 시간에 수억원이 오가는 도박판을 주무르던 그였지만, 이제는 “지금의 소박한 생활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19년 전 자신이 몸담았던 도박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그는 “도박은 사회악”이라고 자신의 신념을 설파한다.
가을 정취가 완연한 10월 초, 장병윤씨를 만나기 위해 경남 산청을 찾았다. 거울같이 맑은 경호강이 굽이쳐 흐르고, 지리산 자락을 껴안은 산청은 장씨의 삶의 터전이다. 그는 기자를 자신의 트럭에 태우고 산청의 이곳저곳을 보여주면서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 산청의 한 다방에서 ‘눈보다 손이 빠른’ 그의 화투 기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음식점 앞 룸살롱에 간 뒤 여자와 환락에 눈떠
산청에서 나고 자란 그가 서울로 올라간 것은 열네 살 때였다. 초등학교 졸업앨범비를 못낼 정도로 가난하던 그는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지만,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절망 끝에 혈혈단신으로 서울로 올라온 그는 여름엔 ‘아이스께끼’를 팔고, 가을에는 볶은 콩과 삶은 달걀을 팔았다. 껌부터 시작해 멍게, 해삼에 이르기까지 10대 시절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였다.
“큰형님이 ‘카수(가수)’ 한다고 서울의 한 작곡가한테 논밭 다 팔아 돈을 줬는데 사기를 당했지요. 형님도 그렇고 우리 아버지도 그렇고 착하고 순박하게 살아온 사람들인데, 나쁜 사람들한테 속은 겁니다. 어질게 살아온 아버지와 형님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저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영화 ‘타짜’ 실제 모델 장병윤 파란만장한 인생

장병윤씨의 독보적인 기술 중 하나는 바로 5장 바꿔치기. 그의 손은 눈보다 빨랐다.


상경한 지 2년이 지나 그는 우연히 만난 요리연구가 왕준련씨 밑에서 요리수업을 받게 됐다. 끈질긴 노력 덕분에 그는 2년 뒤 인천의 한 음식점에 주방장으로 가게 됐고, 다시 서울 홍은동의 한 음식점에 요리사로 스카우트됐다. 그때가 열아홉 살 무렵이었다. 당시 그 음식점 건너편에 있던 룸살롱은 장씨의 인생행로를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음식점 맞은편에 ‘쓰리랑 아리랑’이라는 룸살롱이 있었어요. 거기는 유명 배우, 정치인, 기업 회장들이 드나들던 곳인데, 그곳 웨이터가 저한테 가끔 가게를 구경시켜줬습니다. 예쁜 여자들이 거의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는데, 그런 별천지가 어디 있나 싶었죠. 명색이 주방장인 제가 칼이나 국자를 잡아야 하는데, 머릿속에는 온통 룸살롱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식당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돈을 싸들고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주방장을 하며 받는 월급이 2만원이었는데, 룸살롱을 드나들던 사람들은 하룻밤에 1천, 2천만원을 우습게 썼어요. 나도 그렇게 폼 나게 살고 싶어서 음식점을 그만두고 유흥업소 취직을 알아봤습니다.”
20대 초반, 친구의 소개로 부산 유명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며 그는 처음 화투장에 손을 댔다. 당시 통행금지가 있어 밤 12시에 영업이 끝나면 귀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직원들이 모여 함께 화투를 친 것. 그는 이미 아내와 자식을 두었지만, 가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투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나이트클럽 일을 그만두고 계란 도매상을 하며 짭짤한 수익을 올리자 그는 본격적으로 큰 판에 끼어들었다.
“한번은 오토바이를 고치러 갔다가 화투판에 끼어들어 앉은자리에서 많은 돈을 날렸습니다. 오토바이 가게 주인과 여러 놈들이 짜고 저한테 돈을 뜯어낸 거죠. 그게 어찌나 억울하던지 저는 계란장사도 때려치우고 아예 타짜를 만나 부산 광복동, 남포동 등지로 도박만 하고 다녔습니다. 타짜랑 같이 다니니 돈은 타짜가 다 따도, 제가 돈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어깨너머로 타짜의 기술을 배웠는데, 독하게 마음을 먹으니까 석 달 만에 스승의 경지도 뛰어넘었습니다.”
장씨가 화투판에서 돈을 날리고 타짜를 찾아나서는 모습은, 흡사 영화 ‘타짜’에서 누나 위자료까지 도박으로 몽땅 날린 고니(조승우)가 타짜 평경장(백윤식)을 찾아가 화투의 기술을 배우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장씨가 허영만 화백의 만화 ‘타짜’의 탄생에 도움을 줬고 그 인연으로 영화 ‘타짜’의 기술자문을 맡기도 한 만큼, 고니는 마치 장씨의 분신처럼 느껴진다.
장씨는 22세 최연소 타짜가 됐다. 그는 화투기술자인 타짜일 뿐 아니라 카드 기술자인 마귀, 카지노에서 속임수를 쓰는 블랙딜러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고. 타짜가 된 후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돈을 딸 수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하루 13시간 이상을 화투, 카드와 씨름했다.
그의 독보적인 기술 중 하나는 5장의 화투패를 한꺼번에 바꾸는 것이다. “잠시 보여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그는 바닥에 광 다섯 장을 깔았다. 하지만 그가 그 화투패들을 가져갔다 다시 펼치자 다른 패로 바뀌어 있었다. 눈보다 손이 빨랐기 때문에, 기자는 속임수의 비밀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장병윤씨는 “1장 바꿔치기(패를 손바닥이나 손등에 숨겼다가 다른 패와 바꿔치기하는 것)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5장 바꿔치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영화 ‘타짜’ 실제 모델 장병윤 파란만장한 인생

고구마 밭에서 일하는 장병윤씨 가족.


화상 입고 두 손가락이 붙은 딸, 유방암에 걸린 어머니…
그의 어려 보이는 얼굴은 도박판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처럼 생긴 덕분에, 사람들은 타짜인 그를 만만하게 여기고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그는 현란한 화투 기술로 돈뿐 아니라 시계며 반지, 금 20돈짜리 던힐 라이터까지도 닥치는 대로 쓸어모았다. 이렇게 쉽게 번 돈은 여관방을 잡고, 여자를 사는 데 쓰였다. 그의 20대는 도박과 술, 여자로 채워져갔다.
그는 도박판에서 하루에 무려 17억원을 딴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돈이 모두 장씨의 차지가 되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돈을 뜯길 사람을 도박판에 앉히려면 영화 ‘타짜’의 정 마담(김혜수)처럼 설계사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함께 ‘공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기도박은 손기술도 좋아야 하지만 편을 짜서 얼마나 굳건한 팀워크를 이루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실제로 판이 끝나고 타짜에게 떨어지는 수익은 딴 돈의 30% 정도라고.
“타짜가 혼자서 낯선 화투판에 등장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신변의 위협을 무릅쓴 채 돈을 따는 일에만 집착하는 강심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타짜가 돼서 돈을 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딴 돈을 들고 어떻게 그 판을 벗어나는가가 더 큰 문제지요. 큰돈이 걸린 판은 대부분 주먹세계가 연결돼 있게 마련이고, 그런 으스스한 판에서 돈을 따는 일도 사실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사람들이 ‘영화 ‘타짜’에서처럼 도박판에 폭력이 쓰이는 경우가 많냐’고 묻는데, 보통 한 군데서 많이 해먹다가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고 돈을 돌려주는 경우도 적잖았습니다.”
“그래도 전국의 도박판을 휩쓸며 짭짤하게 돈을 벌어들인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도박판에서 번 돈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습니다. 그 돈으로 사업을 하면 망하기 일쑤고, 쉽게 번 돈은 다 유흥비로 탕진되기 때문이죠. 그때 제가 호텔비와 여관비로 쓴 비용만 따져도 집 몇 채 값은 될 겁니다.”
그가 도박판을 전전하다가 8개월 만에 집에 들어갔을 때, 그의 부인은 아들을 큰집에 맡겨두고 어린 딸아이는 미국으로 입양을 보낸 상태였다. 그는 “딸아이를 미국으로 보낸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도박판을 전전하며 그의 여성 편력은 갈수록 심해졌다. ‘탈이 좋은’데다 값비싼 옷을 입고 외제 자동차를 끌고 다닌 탓에 그의 주변엔 항상 여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술집 호스티스는 물론 여대생, 일본에서 건너온 과부와도 사귀었다.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20대 시절에는 항상 성기가 발기돼 있어 하루도 여자 없이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관계를 가진 여자만 해도 수백 명이 넘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그랬던 것은 다 귀신의 장난이 아니었나 싶어요.”
첫 번째 부인과 헤어진 그는 23세에 두 번째 부인을 만났지만, 결혼생활은 역시 순탄치 않았다. 8년간의 결혼생활을 돌이켜보면, 그는 한 달에 몇 번 겨우 집에 들어가는 정도였다.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그는 딸과 아들을 두었는데, 아들은 태어난 지 백일도 안돼 숨지고 말았다. 아들이 세상을 뜬 지 얼마 안돼서 딸아이는 뜨거운 커피포트에 손을 데여 두 손가락이 붙는 사고를 당했다.
“지금 그 딸아이가 벌써 스물여섯 살이 됐습니다. 그 아이 손가락이 붙은 것은 전적으로 제 탓이죠. 제가 손가락으로 속임수를 쓰니까 딸아이한테 그런 일이 생긴 거죠. 그뿐입니까. 두 번째 아내에게는 눈이 안 감기고 입이 돌아가는 ‘아사풍’까지 왔습니다. 착하게 살던 동생은 누명을 쓰고 4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요. 게다가 어머니는 유방암에 걸리셨습니다. 제 주변에서 자꾸 나쁜 일들만 일어났지요.”

영화 ‘타짜’ 실제 모델 장병윤 파란만장한 인생

장병윤씨는 경호강에서 민물고기를 잡는 어부로 살아가고 있다.


마약, 권총, 여자, 화투, 카드가 바글거리던 지옥을 보고 속죄의 길로
자신의 불행에 절망하며 그는 더욱 방탕한 삶에 빠져들었다. 두 번째 아내를 두고도 그는 이혼남 행세를 하며 과거 요정에서 일하던 여성과 동거했다. 동시에 호텔의 바텐더, 룸살롱에서 일하는 아가씨와도 사귀면서 그는 네 집 살림을 했다. 끊임없이 쾌락을 좇으면서도 그는 항상 죄의식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만난 것이 바로 마약이었다.
“30대 초반 즈음인가, 고향 후배로부터 마약을 배웠습니다. 보통 주사기로 마약을 맞았죠. 마약은 책임감을 잃게 하고, 온갖 걱정, 부끄러움을 잊게 합니다. 마약을 하고 나면, 콜라를 마실 때 액체가 목구멍으로 모래알처럼 넘어가지요. 네 번째로 마약을 맞을 때는 아예 약을 끊을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어요. 그러다보니 몸무게는 73kg에서 60kg으로 줄고, 입안의 점막에는 콩알만한 피멍이 솟아올랐습니다. 게다가 마약을 하면서 성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죠. 어느 날은 마약을 맞고 몇 시간 동안 여자와 관계를 갖다가 허리에서 ‘뚝’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마약에 취하면 허리가 부러져도 못 느낄 정도지요.”
그는 요즘도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 “죄 지은 것을 갚는 것”이라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10년 넘게 도박을 해온 그는 80년대 혼인빙자간음, 사기, 폭력, 마약 혐의로 구치소를 들락거리는 신세가 됐다. 그가 도박과 마약을 끊게 하려고, 가족들이 일부러 그를 경찰에 신고한 것. 그는 세 차례 경찰에 붙잡혔다가 검찰의 선처 등으로 풀려났는데, 그때마다 구치소에서 ‘신내림을 받으면 풀어주겠다’는 할머니 귀신을 봤다. 자신을 둘러싸고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데다 주변에서 잇달아 불행한 일들이 생기자, 그는 무당을 찾아갔다. “신내림을 받아야 우환이 사라진다”는 무당의 말을 듣고 그는 87년 견습 박수무당이 됐다.
“귀신이 내린 뒤 2개월 동안 지옥을 봤습니다. 한번은 제가 회칼을 들고 제 팔뚝살을 포로 뜨는데, 살이 화투장으로 변해서 날아갔어요. 또 한번은 칼을 크게 휘둘러 제 뱃가죽을 열자 그 속에서 콜라, 사이다, 맥주, 밥, 국수, 땅콩, 여자, 권총, 마약, 화투, 카드가 바글바글거렸습니다. 지금까지 지었던 죄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여주는데 어찌나 끔찍하던지…. 저는 잘못을 빌고 또 빌었습니다.”
이어 그는 “천국 가자”는 음성을 들은 뒤 곧 천국을 보게 됐다고 한다. 하늘의 구름 밑까지 이어진 가시나무를 타고 오르는데, 구름 위에 올라선 순간 이승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는 것. 지옥과 천국을 체험한 후 그는 도박과 마약 등 자신을 옭아매던 모든 것을 끊었다. 이후 기독교에 귀의하며, 속죄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32세 때의 일이었다.
어렵게 도박의 유혹에서 벗어난 그는 조금 남아있던 돈을 털어 형과 음식점을 열었다. 그가 서울의 음식점에서 어깨너머 배웠던 냉면을 팔았다. 한때 음식점은 하루 매상이 5백만원이 넘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지만, IMF 외환위기가 닥치며 하루 매상이 몇 십만원대로 떨어졌다. 음식점을 내기 위해 빌렸던 은행이자를 갚지 못해 음식점은 결국 망하고 말았다. 아직도 채 갚지 못한 빚 6억원이 남아있지만, 그는 ‘옛날에 화투 쳐서 뺏은 거 이렇게 돌려주는구나’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92년에는 세 번째 부인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당시 미장원에 다니던 아내의 참한 인상에 반해 결혼하게 됐고, 아들 찬호(12)와 찬주(7)를 낳았다. 그는 요즘 무럭무럭 커가는 아이들을 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
“찬호가 어렸을 때 많이 아팠어요. 왜 그럴까 고민해봤는데, 교회에 다니면서도 제가 이 사람(아내) 말고 여러 여자들을 만난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대요. 술과 도박, 마약은 끊겠는데, 여자를 멀리하는 것은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하나님께 ‘아이를 낫게 해주면 아내 외에 다른 여자는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기도했더니, 그제야 찬호의 병이 나았어요. 이런 저를 이해해준 아내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그는 모범생인 아들 자랑에 여념이 없다.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찬호는 요즘 학급에서 반장을 맡고 있다고.
“제가 바라는 대로 아이들이 잘 커줘서 신기합니다. 저는 찬호가 어릴 때부터 그저 ‘아이가 약한 친구들을 보면 잘 돕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했는데, 정말 반에서 ‘착한 어린이’로 뽑혔으니까요.”
그는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장남 성용씨(30)와도 함께 살고 있다. 한때 화가를 꿈꾸던 장병윤씨의 영향을 받아 성용씨는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손가락에 화상을 입었던 딸 성리씨는 현재 이혼한 두 번째 부인과 살고 있다. 장병윤씨는 “과거 아이들에게 상처 준 것이 미안하다”며 자식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도박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 ‘타짜들의 히든 테크닉’이란 책을 펴냈고, 드라마 ‘올인’에서 이병헌의 손 대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음식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는 수시로 음식점 컨설팅을 다닌다. 그는 사람들에게 “음식점의 위치가 나쁘고 건물이 허름해도 음식이 맛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어탕국수 음식점 체인을 서울에 내는 것도 그의 계획 중 하나다.

“큰 욕심 안 부리고, 남편과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면 행복”
하지만 장병윤씨는 정작 자신의 직업을 ‘농부’ 혹은 ‘어부’라고 말한다. 고향에서 1만7천 평 땅에 고구마 농사를 짓고, 직거래 사이트인 ‘아이 지리산(www.ijirisan.co.kr)’을 열어 전국 각지에 고구마를 판매하고 있다. 또 경호강에서 쏘가리, 잉어, 메기 등 민물고기를 잡는 것도 그의 일과 중 하나다. 하루에 몇 억원을 움켜지던 그는 지금의 소탈한 일상에 만족하고 있을까.
“제가 이렇게 고구마 농사를 많이 지어도, 결국 우리 가족이 먹는 양은 한정돼 있는 거 아닙니까. 신은 우리가 나눠 갖도록 세상을 만들었어요. 더 많이 소유하려고 아등바등하는 것도 소용없는 일이지…. 큰 욕심 안 부리고, 열심히 일하고, 남편과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면 행복한 거 아니겠습니까?”
“뛰어난 도박기술을 갖고 있으니, 강원랜드의 돈도 왕창 휩쓸 텐데…” 하는 기자의 말에 장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만약 강원랜드에서 융통되는 총자금과 같은 액수의 돈을 갖고 있다면, 3번 만에 돈을 딸 수도 있을 겁니다. 3번에 1번은 이기게 설계돼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갖고 도박에 매달리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카지노, 경륜, 경마, 경정, 바다이야기 등 모든 도박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결코 돈을 딸 수 없도록 설계돼 있어요.”
장병윤씨는 술과 마약, 도박, 여성 편력에 빠져있던 지난 세월을 매일 속죄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을 옭아맨 모든 굴레에서 해방됐지만 여전히 “수백 번을 빨아도 깨끗해질 수 없는 더러운 빨래처럼 죄의 자취가 남아있는 것 같다”고 했다.
‘돌아온 탕자’의 거침없는 고백은 마치 모든 죄를 씻어내는 고해성사처럼 느껴졌다. 인터뷰를 끝낼 무렵, 장병윤씨는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밝혔다. 작별 인사를 건네며, 그가 지금의 평온한 미소를 영원히 간직하길 가슴속으로 빌었다.

여성동아 2006년 11월 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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