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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국제자연미술 비엔날레’기획자 고승현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6.10.19 09:34:00

‘자연미술’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개척해 우리나라에 소개한 미술가 고승현씨. 현재 충남 공주에서 열리고 있는‘금강국제자연미술 비엔날레’를 주관한 그를 만나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드는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어보았다.
‘금강국제자연미술 비엔날레’기획자 고승현

금강의 맑은 물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충남 공주 연미산 자연미술 시민공원. 요즘 이곳에서는 ‘2006 금강국제자연미술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큰 타원형을 이룬 채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는 대나무들, 네모난 철판 구조물 위로 눈물을 흘리듯 똑똑 떨어지는 바위틈 샘물…. 울창한 푸른 숲 곳곳에 자리 잡은 색다른 자연의 모습이 바로 이 특별한 비엔날레에 출품된 미술작품들이다.
국내외 작가 51명의 작품이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이 비엔날레를 주관한 한국자연미술가협회 고승현 회장(51)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자연예술가. 그는 미대 재학시절 마음에 품은 “자연이 가르치고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예술을 하리라”는 결심을 지금껏 지켜나가며 우리나라 자연미술계를 이끌고 있다.
“일반 미술과 자연미술의 차이점은 예술작품이 자연과 동떨어져 있느냐, 아니면 그 안에서 함께 뒹구느냐에 있어요. 보통의 작품들은 작가가 혼자 책임지고 구상해 만들어낸 뒤 갤러리에 전시되잖아요. 그 안에서 자연은 철저히 배제되죠. 하지만 자연미술 작가들은 작품을 자연 안에 전시합니다. 이때는 작품과 자연의 어우러짐이 제작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죠. 우리끼리는 ‘자연미술 작품의 절반은 자연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해요.”
고 회장이 자연미술 작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81년. 군대를 마치고 미대 3학년으로 복학하면서 기존 틀을 깨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던 때였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의 미술은 주로 실내에서 이뤄졌다. 이제는 자유로운 공간, 야외로 나가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고향인 충남 공주에서 그의 생각에 공감하는 친구와 선후배들을 모았고, 이들과 함께 금강변에 모여 밤을 새우며 ‘새로운 미술’에 대해 토론했다고 한다.
“제도권 안에 편입되기 전부터 미술은 존재했고,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어쩌면 더 아름다운 모습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들과 함께 이제 우리가 바로 그 미술을 되살려보자고 뜻을 모았죠.”
그해 여름, 고 회장과 뜻을 같이하는 친구 21명은 금강 백사장에 텐트를 쳐놓고 6박7일 동안 야영한 끝에 ‘야외현장미술연구회 야투(野投)’를 만들었다. 들 ‘야(野)’자와 던질 ‘투(投)’자를 묶어 만든 이 이름은 ‘작가의 생각을 자연에 투영해 서로 교감을 이루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는 새로운 예술을 해보겠다는 의욕에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아요. 금강변에 모여서 강물이 만들어놓은 흔적을 따라 그림 그리고, 밤새 새들이 찍어놓은 발자국 안에 물감을 칠하며 다양한 실험을 했죠.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가면서 각자 자연과 만나는 나름의 방식들을 찾아냈어요.”

‘금강국제자연미술 비엔날레’에 출품된 국내 작가 4인의 작품
‘금강국제자연미술 비엔날레’기획자 고승현

고승현의 ‘Sound of a Hundred Years - 가야금 014’, 이용덕의 ‘꿈꾸는 말’. 김도명의 ‘항아리’, 김해심의 ‘물을 생각하면서’(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세상이 변할수록 자연미술이 더 성장할 거라고 믿어요”
몇 해가 지나면서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작업에 ‘자연미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단체명도 ‘야투자연미술연구회’로 바꿨다.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계의 중심인 서울의 화단은 ‘변방’ 공주지역 젊은이들의 현장미술 움직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야투의 자연미술에 먼저 주목한 건 멀리 독일이었다고 한다. 89년 독일 함부르크 미술대학에서 회장을 초청해 해외전을 열어준 것이다.
“독일 화가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뜨거웠어요. 현대미술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찬사가 쏟아졌고, 한국에서 같이 작품을 해보자는 독일 작가들의 제안도 줄을 이었죠.”
이에 힘입어 공주에서 첫 금강국제자연미술전을 개최한 것이 지난 91년의 일이다. 정부와 기업체 모두 이 작은 전시회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회원들이 동분서주하며 기금을 모은 끝에 전시회를 치러냈다고. 이후 국제교류는 계속 이어졌고, 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 환경과 생태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야투’는 새삼 새로운 예술 조류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금강국제자연미술전’은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비엔날레로 자리 잡았고, 올해는 충남도와 공주시가 후원하고 세계 17개국에서 온 해외작가 24명과 국내작가 27명이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국제행사로 성장했다.
“자연미술은 그저 한때의 유행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기술이 발달하면서 하이테크놀로지와 최첨단 정보기술 시스템에 근거한 미술이 발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저는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아니 어쩌면 세상이 변할수록 더 자연 그 자체로 돌아가는 미술이 성장할 거라고 믿어요. 인간이 자연 앞에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이 한층 더 분명해질 테니까요.”
젊은 시절 겁 없고 자신만만하던 그도 자연미술에 열중하면서 신앙을 갖게 됐다고 한다. 금강 백사장을 거닐며 수많은 모래알과 흐르는 강물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절대자의 작품일 거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일부가 되는 것, 자연과 하나가 돼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자연의 절대적 아름다움과 생명의 위대함을 만나게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평생 자연미술을 하면서 깨달은 건 인간이 오만과 욕심을 버리고 겸허히 자연 앞에 순응하는 순간, 최고의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죠.”
그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자연미술 학교를 세워 후배들을 길러내는 것이다.
“자연이 가르치고 이끄는 길을 따라서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발전시켜나가고 싶어요.”
고 회장과 다른 자연미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2006 금강국제자연미술 비엔날레’는 10월30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041-853-8828(야투자연미술연구회)

여성동아 2006년 10월 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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