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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Happy Talk

안쓰러운 남편, 힘이 더해가는 아내

일러스트·송재호

입력 2006.09.18 15:00:00

나이를 먹으면 몸매와 취향도 바뀌지만 부부의 주도권도 바뀐다. 연약하던 아내는 그악스럽게 바뀌고, 듬직하던 남편은 무기력하고 소심해진다. ‘대한민국 남성들이 원하는 것’이란 책을 쓰고 난 뒤 주위 친구들에게 그 책을 읽고 남편을 이해해보라고 했더니 관심 없다는 반응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활동력이 더 왕성해지는 아내와 달리 점점 작아지는 중년의 남편들을 보면 ‘고소하다’는 생각보다 ‘안쓰럽다’는 마음이 앞선다.
안쓰러운 남편, 힘이 더해가는 아내

중년이 넘으면 남성과 여성은 변한다. 몸매와 성격, 취향도 변하지만 특히 부부의 경우엔 주도권이 바뀌는 것 같다.
연애시절이나 신혼 초기엔 이슬만 먹고 살 것 같고, 바퀴벌레만 봐도 기절초풍을 하던 연약한 아내가 마흔이 넘어서면 삼겹살 안주에 소주를 캬악~ 거리며 먹다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에 젓가락이라도 대면 “내가 먹으려고 찜해놓은 건데 왜 건드리냐”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휴지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척척 잘 잡고 관절이 쑤신다고 끙끙대다가도 피아노며 냉장고를 옮기는 괴력을 발휘한다.
반면 남편은 어떤가. 연애할 때나 신혼 초기엔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성격에 직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실력파, 그리고 그 어떤 고통과 위기상황에서도 슈퍼맨처럼 아내를 구해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흔이 넘으면서 아내의 생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초기 치매증세를 보이는가 하면, 회사에선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무능력자, 밤중에 바스락 소리가 나면 이불을 뒤집어쓰는 비겁한 아저씨로 변한다. 우리 부부의 사적인 이야기를 일반화시키는 억지를 부렸다면 죄송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이가 들면서 ‘인용 출처’가 변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여자친구들을 만나면 대화의 시작과 끝이 거의 비슷했다.
“음, 우리 남편이 그러는데 그런 데 투자하느니 차라리 은행에 예금해두는 것이 훨씬 낫다고 그러더라.”
“우리 아이 아빠가 그러는데 그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잘못한 거래.”
“우리 그이가 미국에서 좀 살았잖아, 미국에서는….”
아무리 남편 흉을 보는 척하다가도 대부분은 자기 남편의 박식함, 폭넓은 상식과 인간관계, 예리한 판단력 등을 은근히 자랑하며 남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모든 가치판단의 근거와 기준이 남편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남편이 학자거나 엄청나게 많은 지혜와 경험을 가진 이들도 아닌데 말이다.

가치판단의 기준이던 남편이 연민의 대상으로…
그러던 친구들이 나이 들고 그야말로 ‘아줌마’가 되자 대화 속에서 남편의 역할이 바뀌었다. “우리 그이가~”라며 콧소리와 함께 시작되던 말들이 “그 인간이 말야”로 험악해지거나 혹은 “아유, 꼴에 사내라고 어제는 싸움 끝에 집을 나가더라” “그냥 큰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대체 내 남편은 언제 철드냐” 등의 한심하고 연민에 가득 찬 모습으로 그려진다. 대신 가치판단의 기준은 “뉴스에서 보니까 말야” “우리 딸아이가 그러는데~” 등으로 달라졌다.
중년의 남편은 아내에게 더 이상 훌륭한 가이드가 아니다. 아니 아예 남편에 대한 관심도 없어진 것 같다. 지난해 나는 ‘대한민국 남성들이 원하는 것’이란 책을 썼다. 우리나라 중년남성들이 속으로 얼마나 아파하고 중년위기에 시달리는지 등을 다뤘는데 출판사에서는 남자들보다 그 아내들이 그 책을 읽어서 자기 남편들의 실상을 알 거라며, 대박이 날 거라고 했다. 그런데 너무 안타깝게도 중년여성들이 그 책을 사지 않아 별로 안 팔렸다. 친구들에게 왜 안 사냐고, 읽어보면 남편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했더니 다들 이렇게 말했다.

안쓰러운 남편, 힘이 더해가는 아내

“우리 영감한테 아무 관심 없어. 아프건 말건 알아서 살라 그래.”
이렇게 아내들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남편에게 관심이 없어진다는데 남편들은 점점 아내에 대한 관심과 의존도가 높아진다. 중년남성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집사람이 그러는데 위암에 걸렸어도 나은 사람이 있대요. 무슨 약을 계속 먹었다던가?”
“마누라가 그러는데 강남 재개발 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차라리 강원도 어느 지역에 땅을 사두는 게 낫다는 거야.”
“아이들 엄마랑 어제 미장원엘 가서 머리를 잘랐어요. 앞머리를 짧게 치는 게 유행이라나 뭐라나….”
청춘시절에 이들은 절대 “우리 집사람이 그러는데~” “아내와 어디를 갔는데~”로 시작하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괜히 다른 여성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아내와 갈등이 심해 별거를 고려하고 있다거나 멀쩡한 아내를 아픈 여자로 만드는 등 엉뚱한 시나리오를 쓰긴 했어도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난 척하고 박식하고 마누라 알기를 우습게 알던 남성들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성들이 우위를 차지해서는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오랜 삶의 체험을 통해 얻은 생존의 지혜가 아닐까. 마누라 몰래 주식투자했다가 깡통계좌 만든 일, 아내가 극구 말리는데도 호기 좋게 친구 빚보증 섰다가 집을 날린 일 등 대형사고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벌여놓은 번거로운 일들을 아내가 수습해 놓은 게 다반사가 아니었을까. 더욱이 신혼시절엔 작은 반지하 전세방에서 시작했는데 부인이 열심히 청약통장 만들고 분양정보 얻으러 돌아다녀 번듯한 집도 마련하고 무사히 아이들 대학에 보내놓은 걸 보면 아무리 못생기고 심술궂은 마누라라고 해도 “싸부님~” 하고 무릎 꿇고 싶어지지 않을까.

놀라운 정보력과 적응력의 주부들, 작아지는 남편들
더구나 요즘 같은 초고속 인터넷의 정보화 시대엔 남편들보다는 집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고 전화로 혹은 찜질방이나 슈퍼마켓에서 만나 수시로 수다를 떠는 아내들이 훨씬 다채롭고 수준 높은 정보를 공유한다. 연예계 가십은 물론 우리나라 부동산이나 세금 정책에 이르기까지 그 광대한 정보와 식견을 기자인 나도 따를 재간이 없다.
그 뿐인가, 적응력은 또 얼마나 놀라운가. 칠순의 우리 외숙모는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내려받은 온갖 동영상들을 딸과 아들에게 이메일 첨부 파일로 보낸다. ‘비보이’의 현란한 최신 공연까지 말이다. 절대 할 일 없는 할머니가 아니다. 치매 증세를 보이는 남편을 간호하고 일하는 아들 부부 대신에 외손녀를 맡아 키우는 틈틈이 즐기는 취미활동이다. 남자 연예인도 신구, 주현 등은 관심 없고 “조인성이나 천정명이 이상형”이라고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할 때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물론 영감님들도 인터넷을 즐긴다. 포르노 사이트에 가입하거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욕을 남기고 스트레스를 푸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서도 혹여 아내에게 들킬까 전전긍긍이다.
순리에 따라, 삶의 경험에 따라 아내를 새로운 스승으로 모시거나 신흥 종교로 귀의한 아저씨들을 보면 ‘당연하지’란 생각보다는 안쓰러운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여보 식사하세요”에서 “밥먹어요”로, 또다시 “어이, 밥 챙겨드셔. 나 나가우”로 변하는 아내를 보는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싶어서다.
오십이 넘어서도 여전히 철없는 내 남편을 보면서 ‘철들자 망령난다’는 말이 맞을까, 차라리 영원히 철이 안 들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내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영감이 나을지, 불량영감으로 동네방네 돌아다니는 게 나을지 아직 계산이 안 나오긴 했지만….
유인경씨는…
안쓰러운 남편, 힘이 더해가는 아내
경향신문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 편집위원. 얼마 전 ‘대한민국 남자들이 원하는 것’을 펴낸 뒤 KDI,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등 ‘아저씨’들이 많은 곳에서 강의 초빙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의 홈페이지(www.soodasooda.com)에 가면 그의 다른 칼럼들을 읽어볼 수 있으며 진솔한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여성동아 2006년 9월 5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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