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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책을 펴는 즐거움

‘호밀밭의 파수꾼’

순수함을 포기하지 않아 고통받고 좌절하는 어린 방랑자의 초상

기획·김동희 기자 / 글·민지일‘문화에세이스트’

2006. 09. 13

퇴학 당한 10대 소년의 눈으로 기성사회와 교육계의 위선을 고발한 작품. 세상의 가식과 위선에 괴로워하면서도 순수함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쫓기듯 달려온 삶에서 잠깐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을 듯하다.

‘호밀밭의 파수꾼’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50.5×103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숀 코너리가 주연한 ‘파인딩 포레스터(Finding Forrester)’란 영화가 있다. 은둔한 노작가와 다소 불량기가 있는 고등학생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길거리 농구선수 자말은 동네 아파트에 칩거하는 이상한 노인의 정체를 궁금해한다. 호기심을 못 이긴 그는 어느 날 노인의 아파트에 몰래 들어갔다 실수로 책가방을 놓고 나온다. 노인은 가방 속에서 뛰어난 자말의 글을 발견하고 그를 받아들여 문학수업을 시작한다. 세상에서 꼭꼭 숨어버린 괴팍한 노인과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흑인 고등학생의 문학 동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영화의 선전 포스터에는 멋진 카피가 실려 있다. “세상을 등진 남자와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오려는 남자, 그 두 남자의 아름다운 조우가 시작된다!” 세상을 등진 남자, 숀 코너리가 분한 포레스터의 모델이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다. 그리고 영화의 끝 무렵 포레스터가 자말에게 보낸 편지에 써있던 “한때 난 꿈꾸는 걸 포기했다. 실패가 두려워, 심지어는 성공이 두려워서…”는 소설에서 10대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처했던 바로 그 상황과 심경을 짧지만 명료하게 대변한 것이나 다름없다.

10대 속어 거침없이 사용해 기성세대의 위선과 가식 질타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1년 출간됐다. 16세 소년 홀든이 네 번째로 옮긴 사립학교에서마저 퇴학당하고 집에 돌아갈 때까지 며칠간을 독백 형식으로 서술한 책은 출간 즉시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다. 10대들이 쓰는 속어, 비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기성사회와 교육계의 위선을 가차 없이 고발했기 때문. 당시 미국 중고교에선 학생들을 망친다며 상당 기간 금서로 취급했다. 지금은 해마다 세계에서 20만~30만 부씩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 목록의 꼭대기에 있는 작품이다.

“나는 펜실베이니아 펜시고등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제길, 다섯 과목 중 네 과목에서 낙제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무지하게 추운 겨울이었다. 늙고 냄새나는 스펜서 선생에게 돼먹지 않은 충고를 듣고 헛소리 변명을 늘어놓은 뒤 기숙사로 돌아왔다. 룸메이트나 옆방 친구는 속물이고 귀찮고 지저분한 놈들이다. 룸메이트는 내가 좋아하는 제인과 데이트를 하러 나가 차 안에서 더러운 짓을 하고 돌아왔다. 한바탕 놈을 패주려 했지만 오히려 나만 늘씬하게 두드려 맞았다. 한밤에 기숙사를 나와 집이 있는 뉴욕행 기차를 탔다.
뉴욕에선 싸구려 호텔에 묵었다. 변태들이 숙박하는 그곳에서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속아 창녀를 소개받았다가 돈만 뜯겼다. 술집과 바를 돌며 친구나 여자들을 만났지만 심드렁하다. 거짓, 가식뿐이다. 존경하던 앤톨리니 선생 집에 가 토론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선생이 내 귀두를 조물거리고 있다. 거리 곳곳에 ‘이런 씹할’ 따위 더러운 욕이 쓰여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 피비는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깨끗하며 착한 아이다. 그 아이는 거짓과 위선이 가득하고 더러움뿐인 이 도시를 내가 떠나겠다고 하자 같이 간다며 집을 나선다. 그해 겨울 내가 왜 정신병원에 입원했는지 이제 여러분은 알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캔버스에 유채, 73.7×92.1cm.


주인공의 행적은 사실 크게 눈에 띌 만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답답한 일상을 중얼중얼 나열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은 의외로 긴박하다. 숨이 탁탁 끊긴다. 절묘하게 비유하고 끊임없이 냉소하며 10대 소년의 세계를 한눈에 그림처럼 보여주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쉽게 놓을 수가 없다.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한 어른의 세계를 정의하는 홀든의 독백도 무릎을 치게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도리 없이 그런 말들을 해야만 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목사들에 대해서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다. 그들은 하나같이 틀에 박힌 거룩한 목소리를 만들어 설교를 한다. 난 그게 싫다. 왜 좀 더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설교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목사들의 이야기가 순 거짓말처럼 들리는데도 말이다.”

“여자들의 문제점은 남자가 마음에 들면, 정말 나쁜 놈이라도 열등감이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말로 훌륭한데다 진짜로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도, 거만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주 똑똑한 여자들도 그렇다.”


위험지대에서 뛰노는 꼬마들을 돌보는 파수꾼이 되고 싶은 홀든의 꿈
세상을 향해 순수를 외치는 홀든은 사실 이제는 어른이 된 우리들의 소년시절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배우는 것과 보는 것이 다른데서 오는 자괴감, 말 따로 행동 따로 어른들에게서 느끼는 공허감이 홀든에게 어디로든 도망쳐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소망을 간직하다 어른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자연히 냉소적이 돼버린 홀든. 그러나 여전히 순수를 지키고 자신의 역할을 다해보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미쳐버리는 그를 누구도 욕할 수 없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다. 홀든이 바라는 꿈이란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것이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아이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아이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위험지대에서 뛰노는 꼬마들을 돌보는 파수꾼이 되겠다는 홀든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혼자 하염없이 중얼거리며 이렇게 하소연한다.

“정말 문제다. 어디서도 아늑하고 평화로운 장소를 절대 찾을 수 없다는 것 말이다. 그런 곳은 없는 것이다.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곳에 일단 가보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틈을 타서 어떤 자식이 바로 코 밑에다 ‘이런, 씹할’이라고 써놓고는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죽어 무덤에 묻히면 비석 밑 홀든 콜필드란 이름 옆에 누군가가 ‘이런, 씹할’이라고 몰래 써놓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순수한 마음이 강박관념을 낳았다. 샐린저는 영화 속 포레스터처럼 다시 세상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가 엄청나게 히트한 작품을 내고도 왜 은둔했는지, 여전히 세상 빛을 받는 걸 꺼려했는지, 실패도 성공도 두려워 꿈꾸는 걸 포기했는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민음사 펴냄. 공경희 옮김.
글쓴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1919년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대를 중퇴하고 유람선 승무원으로 일하는가 하면 육류 수입업에 종사하기도 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자원 입대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뉴요커’ 등 유명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으며 걸작으로 평가받는 ‘호밀밭의 파수꾼’ 외에도 ‘아홉 편의 이야기’ ‘프래니와 주이’ ‘목수여, 지붕의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 시모어의 서장’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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