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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기피증과 우울증 극복하고 연기활동 재개한 ‘순돌이’ 이건주

기획·이남희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6.08.24 16:35:00

‘순돌이’ 이건주가 어엿한 청년이 돼 돌아왔다. KBS 단막극 ‘드라마시티-누가 4인조를 두려워하랴’로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낸 것. 그가 아역 탤런트 출신으로서 겪어야 했던 그간의 마음고생과 연기자로 새 출발하는 각오를 들려줬다.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극복하고 연기활동 재개한 ‘순돌이’ 이건주

“꼭 꿈꾸는 것만 같아요. 오디션에 응했을 때는 작은 역이라도 최선을 다하려고 했는데 주연을 맡아 놀랍고 기뻤어요. 첫 촬영을 나갔는데, 어려서 많이 해본 건데도 낯설고 떨리더라고요.”
오래전 MBC 일요 아침드라마 ‘한지붕 세 가족’에서 ‘순돌이’로 사랑받았던 아역 탤런트 이건주(25)가 씩씩한 청년이 돼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7월 초 방영된 KBS ‘드라마시티-누가 4인조를 두려워하랴’에서 대학 진학이 평생 소원인 중국집 주방보조 석봉 역을 맡은 것. 이 드라마는 올해 초 실제 있었던 4인조 강도사건을 모티프로 해 더욱 화제가 됐다.
‘누가 4인조를…’이 방송된 다음 날,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25세의 어엿한 청년이 되었건만, 그의 겉모습은 예전 순돌이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그동안 모습을 볼 수 없던 사이 훌쩍 자라 있었다.
그는 다섯 살이던 지난 1986년 6·25특집극으로 제작된 MBC ‘베스트극장-시사회’로 데뷔, 이듬해 MBC ‘한지붕 세 가족’에서 임현식과 박원숙의 아들 ‘순돌이’ 역할을 맡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한지붕 세 가족’이 끝난 92년 이후, 점차 드라마나 영화 출연이 뜸해졌다. “이제 넌 한물갔다” “자라면서 귀여움도 사라져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없다”는 등 주변의 부정적인 이야기에 그는 상처를 받으면서 점점 자신감을 잃었다고 털어놓았다.
“사람들이 뒤에서 제 험담을 하지 않을까 늘 불안했어요. 집처럼 드나들던 방송국에 가는 일조차 힘들었고, 나중엔 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그러면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생겼죠. 살면서 늘 사람들을 경계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도 그런 마음이 남아있어요.”
학교생활은 더욱더 어려웠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친구가 없었어요. 제가 텔레비전에 나오고 인기도 있고 하니까, 또래 친구들이 질투를 한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성격이 모나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처음 보는 아이들조차 저를 싫어하는 건 견딜 수가 없었어요.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고 너무 힘들었어요.”
중학교 때는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를 있는 그대로 봐주질 않았고, 그가 하지도 않은 일을 갖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이건주 재수 없다’ 이런 말은 그래도 참을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건주가 본드를 했다’는 등 제가 하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가며 욕하는 것은 억울했어요. ‘내가 연예인을 왜 해서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나’ 회의가 생기더라고요. 연예인이란 이유 하나로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도, 욕을 먹는 것도 더 이상 싫었어요. 그래서 연기를 그만두기로 결정했죠.”
그는 결국 97년 KBS 청소년 드라마 ‘스타트’를 끝으로 연기활동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연기를 하지 않을 생각으로 서울국악예고에 진학했다. 아역시절부터 친한 탤런트 이재은의 권유도 한몫했다. 그런데 막상 입학해보니 적응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몇 달 다니지 못하고 안양예고 문예창작과로 전학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적응을 못하기는 마찬가지. 급기야 1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97년 호주 멜버른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97년 호주로 도피성 유학,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평범하게 살고파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극복하고 연기활동 재개한 ‘순돌이’ 이건주

한때 연예 활동을 포기하려고 했던 이건주는 ‘힘내라’는 팬들의 격려글을 보면서 열심히 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처음엔 그저 여행을 간 거였어요. 그런데 절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뒤에서 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행복했어요. 그래서 아예 유학을 결심했죠. 그곳에서 친구들도 사귀고 자유롭게 살면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어느 정도 극복했어요.”
어릴 때 멋모르고 연기를 시작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겪으며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던 그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남들처럼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요즘 아역 연기자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며 “아이들에게 다른 적성이 있다면 그것을 살려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난 2000년 말 귀국한 그는 한 인터넷방송에서 인터넷 자키와 웹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그리고 2001년 주변의 권유로 남자 3인조 그룹 ‘튠업’의 멤버로 활동하며 음반도 냈지만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닌 것 같아 활동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 후 조용히 있으려는 그를 주변에서 가만 놔두질 않았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오디션을 보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오디션을 보면 번번이 떨어졌죠. 그럴 때마다 울기도 많이 울고, 상처도 많이 받았죠. 무엇보다 자신감이 없어졌어요.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왜 괜히 바람은 넣어서, 왜 괜히 희망을 갖게 해서 힘들게 하나 싶어 사람들을 원망했어요.”
그러나 동시에 그는 오기가 생겨 연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러주는 곳이 없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지붕 세 가족’에 함께 출연했던 선배 연기자들에게 가끔 연락을 하면, ‘방송을 아예 안 하는 줄 알았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더러 먼저 방송국에 찾아가 인사를 드리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하지만 왠지 모르게 겁이 났어요.”
바로 그때 그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데뷔작인 ‘베스트극장’에서 조연출을 맡았던 이대영 PD였다. 2002년 MBC 드라마 ‘로망스’를 연출할 때, 이 PD는 “너무 작은 역할이라 미안하다”면서 그에게 김재원의 친구 역할을 맡아보겠냐고 제안했다는 것. 그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고, 생각할 것도 없이 좋다고 했다.
그는 이후 또다시 오랫동안 공백을 가졌다. 그러다 지난해 연극 ‘마술가게’의 주연을 맡게 되면서 다시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처음엔 사람들이 저를 탐탁해하지 않았죠. ‘하다하다 안되니까 이제 연극을 하겠다고 나서는구나’ 하면서 저를 보는 눈이 곱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욱 열심히 했고, 다행히 제 공연을 보고 사람들이 조금씩 저를 인정해주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다시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고요.”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청에서 공익요원으로 근무 중인 그는 시청의 허락을 받고 7월26일부터 시작하는 어린이연극 ‘쿠킹 싸이언스’의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올 연말 군 복무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연기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
“방송복귀 소식이 전해진 날, 제 홈페이지에 하루 동안 3천~4천 명의 네티즌이 다녀갔어요. ‘왜 또 나오냐’ ‘뚱뚱해서 보기 싫다’는 등의 악플도 많지만, ‘힘내라’는 격려의 글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고 있죠. 그리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열심히 살도 뺄 거예요. 어렵게 복귀한 만큼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릴 테니, 앞으로 기대해주세요.”

여성동아 2006년 8월 5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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