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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남자의 삶

강원도 산골마을에 둥지 틀고 새 삶 시작한 작가 이외수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6. 08. 24

작가 이외수가 40년 터전이었던 춘천을 떠나 강원도 화천 다목리 감성마을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자연이 주인이고 인간은 친구라는 그곳에서 야생화와 여자와 사랑에 대한 산문집을 준비 중인 작가를 만났다.

강원도 산골마을에 둥지 틀고 새 삶 시작한 작가 이외수

“자연 속에서 느낀 아름다움, 평화로움을 글로 써서 소외받고 아픈 사람들의 영혼에 안식 주고 싶어요”

서울을 빠져나가 47번 국도를 타고 두 시간여. 강원도 화천군으로 접어드는 오르막길을 한참 달려간 곳에 작가 이외수의 새 보금자리가 있었다. ‘다목리(多木里)’라는 이름 그대로 눈 돌리는 곳마다 산과 나무와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그는 생애 60번째 여름을 맞는 중이었다.
“올 1월에 이곳으로 이사왔어요. 겨울에 왔기 때문에 이곳의 봄이 어떨까 참 궁금했죠. 그런데 워낙 고지대인데다 산 속이라 4월 말까지도 눈이 오데요. 살면서 이렇게 봄을 애타게 기다려본 건 처음이었어요.”
그토록 기다리던 봄을 보내고, 이제 여름의 한가운데서 이외수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외수의 문학적 고향은 춘천이다. 1965년 춘천교대에 입학한 뒤부터 40년을 그곳에서 살았고,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 ‘장외인간’ 등 이외수의 대표작 곳곳에는 춘천의 향기가 짙게 배어있다. 그래서 춘천 사람들은 ‘호수’, ‘막국수’와 함께 ‘이외수’를 ‘춘천 3수’라고 부르며 사랑했다. 그런 이외수가 환갑을 맞는 올해 화천 다목리행을 결심한 것이다.

배고픔과 절망 속에서 추구한 문학의 꿈
사실 춘천은 이외수의 ‘청춘’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도시다. 춘천에서 그는 절망했고, 배고팠으며, 방황하다 빛나는 성공을 거뒀다. 춘천교대를 7년 동안 다니다 결국 도중하차했을 무렵, 그는 시인 최돈선과 방 한 칸을 얻어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운 좋은 날은 라면으로 때우고 운 나쁜 날은 하루 종일을 굶었다고 한다. 물론 운 나쁜 날이 운 좋은 날보다 훨씬 많았다. 어쩌다 아는 선배를 만나 밥 한 끼 얻어먹은 날이면 겨우내 연탄 한 장 땐 적 없는 냉방에 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밥 먹은 기운이 쉬 빠져나갈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굶거나 얻어먹는 것이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못 견디겠다 싶던 어느 날 아침, 그는 용기를 내 최 시인에게 소설을 한번 써보겠노라는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바로 다음 날이 강원일보 신춘문예 마감일이었다. “너는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친구의 말에 힘을 얻어 그날 밤 벼락치기로 써낸 소설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작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도 가난은 여전히 이외수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춘천의 번화가 명동에 나가 한번에 딱 20원씩 구걸하곤 했다고. 그때 20원이면 삶은 감자 작은 것 두 알이나 번데기 한 봉지를 살 수 있었다. 하루는 굶고 다음 날은 번데기 20원어치를 사 먹고, 다시 그 다음 날은 굶고 다음 날은 삶은 감자를 사먹는 생활을 2년간 이어가는 동안 그는 결핵을 네 번이나 앓았다. 지금도 폐 한쪽이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시 겪은 가난과 배고픔 때문이다.

강원도 산골마을에 둥지 틀고 새 삶 시작한 작가 이외수

강원도 화천군 다목리 감성마을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이외수(오른쪽)·전영자(왼쪽) 부부.

강원도 산골마을에 둥지 틀고 새 삶 시작한 작가 이외수
강원도 산골마을에 둥지 틀고 새 삶 시작한 작가 이외수

화천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는 이외수 부부.


이외수가 미스코리아 강원 진 출신에 그보다 여섯 살이나 연하인 지금의 부인 전영자씨(54)를 만난 것은 이처럼 가난하고 볼 것 없던 청춘 시절이었다.
“아르바이트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다실에서 DJ를 하게 됐어요. 다실 한구석에 소파를 놓고 그걸 침실 겸 응접실 겸 서재로 쓰고 있었는데, 하루는 어디 나갔다 들어오니 그 소파에 다실 안이 다 환해지도록 예쁜 미인이 앉아있는 겁니다.”
이 소파는 내 자리니 일어나라는 둥, 다방 의자에 주인이 어디 있느냐는 둥 가벼운 실랑이 끝에 그가 아가씨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가씨, 참 미인이신데 앞으로 이 다실에 자주 출몰해주쇼. 내가 한 번 아가씨를 꼬셔볼 작정이니까. 아가씨도 틀림없이 나를 좋아하게 될 테니 기왕이면 미리 좀 좋아해주쇼.”
노숙자 차림의 총각이 걸어오는 수작이 어찌나 황당하고 모욕적이었는지 “실은 그때 당신 손이 닿은 어깨 부위를 도려내고 싶었노라”고 나중에 고백했다는 전영자씨는 그러나 만남이 거듭되면서 초라한 옷과 봉두난발 긴 머리 뒤에 감춰진 이외수의 순수함과 정직함, 따뜻한 마음에 반해버렸다. 6개월 연애 뒤 이들은 이외수가 ‘세대’지에 중편 ‘훈장’을 발표해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이듬해인 76년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뒤에도 이외수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기인’으로 유명한 그는 술 문제로 전씨의 속을 많이도 썩였다. 이외수에게는 경범죄 재판기록이 54회나 되는데 대부분이 통행금지 위반, 음주소란이라고.
“한번은 파출소에 잡혀가서 하룻밤 자고 일어났는데 파출소장이 불러서 얘기를 합디다. 술에 엉망으로 취한 나를 잡아왔더니 내가 ‘이 술집은 꼭 파출소처럼 만들었네’ 하면서 좋아하더래요.”
‘어쩜 술집 실내장식이 꼭 파출소 같으냐’고, ‘종업원들에게 경찰복까지 입혔느냐’고, ‘이 집 장사 잘되겠다면서 술 더 가져오라’고 호기를 부리는 그에게 맹물을 가져다줬더니 물 마시며 계속 더 취하더라는 것.
“그러면서 글 쓰는 양반이라던데 맞냐고 물어요. 자기도 문학을 좋아한다며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거 아니냐고, 앞으로는 이런 데서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더군요.”

화천에 온 뒤 이외수는 세수를 자주 하게 됐다고 한다. 깨끗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 내장까지 투명하게 씻겨지는 것 같아 세수를 안 하고 돌아다니기가 영 미안하다는 게 그 이유다.



맑은 자연의 품에 안긴 뒤로는 저절로 규칙적인 생활 하게 돼
그런 이외수에게 화천행은 거침없고 자유롭던, 그래서 때로는 오만하기까지 했던 청춘시절에 대한 작별인사였는지도 모른다. 화천군이 이외수를 초대하기 위해 26억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한 ‘감성마을’이 그의 새 보금자리. 이외수는 햇빛을 끌어안도록 설계된 중간 마당을 가운데 두고 집필실과 주거공간이 마주보고 있는 새 집에서 아내와 둘째 아들 진얼, 문하생 2명, 객식구 1명(식구들 건강을 돌봐주는 무허가 주치의라고 한다)과 함께 산다. 산자락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과 마당 끝자락을 휘돌아감는 계곡 안에 아늑히 자리 잡은 이곳은 이외수에게 새로운 ‘감성’을 충전해줄 뿐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삶을 가르친다고 한다.
“일부러 노력한 것도 아닌데 생활습관이 모두 바뀌었어요. 글쓰기 시작한 뒤부터 늘 해 뜰 무렵 잠자리에 들어 오후 두세시는 돼야 일어났는데, 여기서는 아침이면 눈을 뜨고 해가 지면 잠을 자거든요. 밤에 일하고 늦게 일어나던 때는 하루에 한 끼만 먹었는데 요새는 두 끼도 먹고, 세 끼도 먹죠. 밥맛이 좋아지고 맑은 공기 마시며 산책을 자주 하니 몸도 절로 좋아졌어요.”
화천에 온 뒤 또 달라진 것은 세수를 자주 하게 됐다는 것. “깨끗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 내장까지 투명하게 씻겨지는 것 같아 세수를 안 하고 돌아다니기가 영 미안하다”는 게 그 이유다.
“제 작품의 독자들은 낮은 곳에 있는 이들, 사회에서 소외당한 채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작가는 그런 이들에게 영혼의 안식을 주고 희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 제가 썼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현실의 부조리에 좌절하고 고통받다 죽어가곤 했죠. 이제 그런 일은 더 이상 없을 겁니다. 이곳에서 느낀 아름다움, 평화를 글 안에 담고 싶어요.”
그래서 이외수는 올해 말쯤 야생화와 여자, 사랑, 잠언 등을 주제로 한 산문집을 펴낼 계획이라고 털어놓았다. 미리 정해놓은 이 책의 제목은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라고.
“사실 제목을 정해놓고 책을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책의 첫 구절도 이미 생각해뒀죠. ‘한 남자의 가슴에서 한 여자의 이름이 지워질 때마다 다목리의 야생화가 한 송이씩 피어난다……!’입니다. 이 책을 통해 여자에게서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 취하는 남자들에게 내면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감별하는 심미안을 일러주고 싶어요.”
이외수는 “언젠가 생명의 아름다움과 인간에 대한 교훈이 갈피마다 스며들어 있는, 읽는 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책을 쓰고 싶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아직도 이외수에 대해 기인, 도사, 괴짜 소설가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화천군 다목리 감성마을을 찾아가보라고 권하고 싶어졌다. 푸른 나무와 맑은 공기, 그리고 ‘읽는 이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쓰는 자의 고통’을 떠안은 해맑은 영혼의 작가가 반갑게 맞아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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