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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4개월’ 김은혜 앵커 첫 공개

속 깊고 든든한 남편, 신혼생활, 2세 계획…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KAMA 스튜디오 제공

입력 2006.08.24 10:21:00

우리나라 최초의 기자 출신 여성 앵커 김은혜. 늘 단정하고 반듯한 인상의 그가 요즘 싱글벙글 웃는 일이 많아졌다. 지난 3월 결혼한 후 새로 깨닫게 된 소소한 행복 덕분이다. 일도, 사랑도 놓칠 수 없다고 말하는 김은혜의 신혼일기를 소개한다.
‘결혼 4개월’ 김은혜 앵커 첫 공개

한창 쏟아붓던 장맛비가 주춤해진 7월 중순, 오랜만에 내리쬐는 햇살이 반가운 아침에 여의도 MBC 사옥에서 김은혜 앵커(35)를 만났다. 막 뉴스를 마치고 스튜디오를 나서는 그는 아침 햇살만큼이나 화사해 보였다. 진분홍색 재킷에 검은 바지. 다정하고 따뜻한 인상. 이 사람이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콘크리트 먼지가 가득한 사고 현장에서 차가운 목소리로 분노를 쏟아내던 그 ‘김은혜’가 맞는 걸까. 혼란이 일 즈음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인사를 건네는 씩씩한 목소리. 김은혜였다.

요리와 선물로 사랑 전하는 남편
김은혜 앵커에게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93년 MBC에 입사한 뒤 최초의 정치부 국회 담당 여기자, 최초의 여기자 출신 앵커 등 새로운 길을 열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얼마 전 또 하나의 도전이 시작됐다. ‘주부 앵커’가 된 것이다. 지난 3월 김·장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는 동갑내기 국제변호사 유형동씨와 화촉을 밝힌 그는 이제 결혼생활 갓 백일을 지낸 새내기 주부. 그 사이 미셸 위 인터뷰를 위한 하와이 출장과 5·31 지방선거, 2006 독일월드컵 등 굵직굵직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신혼생활을 만끽할 틈도 없었다는 그는, 하지만 눈에 띄게 부드러워 보였다.
“결혼 전에 인터뷰를 참 많이 했어요. 그때마다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어머니가 되면 세상의 기쁨, 슬픔, 고통, 번민을 더 많이 알게 돼 앵커로서 부족했던 2%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곤 했죠. 그런데 아직은 결혼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네요. 인생의 쓴맛을 보기보다는 오히려 신랑의 배려 덕분에 더 편해진 것 같은데,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닭살스러운가요?(웃음)”

‘결혼 4개월’ 김은혜 앵커 첫 공개

지난 3월 결혼한 김은혜·유형동 부부.


매일 아침 6시에 방송되는 ‘MBC 뉴스 투데이’ 진행자 김은혜 앵커의 출근시간은 오전 4시. 결혼 뒤에도 그는 새벽 3시면 일어나 준비하고 집을 나선다고 한다. 문제는 국제변호사로 일하는 남편 유씨의 퇴근시간이 바로 그 무렵이라는 것. 유씨는 빠를 때는 밤 12시, 평소에는 다음 날 오전 3시가 돼야 집에 돌아온다고. 그래서 평일에 이들 부부는 현관 앞에서 잠시 안부만 전하고 헤어질 때도 있다고 한다. 대신 주말은 온전히 함께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함께 집안일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는다고.
“집안 살림 면에서 보면 남편이 모든 면에서 저보다 뛰어나요. 특히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또 참 잘하죠. 프랑스 요리까지 척척 해내고, 스파게티 같은 간단한 요리는 30분 정도면 차려내요. 가끔씩 저도 요리를 하는데, 전 두세 시간 끙끙거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국적 불명의 음식들을 차려놓거든요. 남편은 일단 ‘사랑의 힘’으로 맛있게 먹어준 뒤 ‘다음엔 내가 할게요’ 그러죠(웃음). 더 잘하는 사람이 많이 하는 게 효율적이잖아요. 그래서 요리는 주로 남편이 해요.”
대신 김 앵커는 청소 등을 맡는다고 한다.
힘든 순간 오직 남편만이 줄 수 있는 배려를 느끼며 감동을 받은 일도 있다. 지난 5·31 지방선거 때 김 앵커는 엄기영 앵커와 함께 메인 선거 개표방송의 진행을 맡았다. 지금껏 남자 기자와 여자 아나운서를 메인 앵커로 기용해온 MBC가 처음으로 여기자를 주요 시간 선거방송에 투입한 것. 언제나처럼 ‘내가 실수하면 다시는 이 자리에 여기자가 서지 못하겠구나’라는 긴장감이 그를 엄습했다고 한다. 선거방송 준비를 시작한 때부터 전국 후보자들의 이력과 선거구의 특기사항들을 외우느라 스트레스와 피로가 뒤범벅된 나날을 보냈다고. 특히 선거 당일은 새벽 2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종일 선거방송에만 매달려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출근을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향해 걸어가다 그는 웬 바구니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고. 눈을 부비고 살펴보니, 유 변호사가 김 앵커를 위해 직접 구운 빵과 우유를 담아놓은 것이었다고 한다.
“잠든 저를 깨울까봐 살금살금 빵을 굽고, 혹시 못 볼까 싶어 제가 깨면 움직이는 동선에 딱 놓아둔 거였죠. 빵이 얼마나 많은지, 그날 회사에 들고 가서 틈날 때마다 먹으며 배를 채웠어요. 그게 없었으면 아마 일하느라 하루 종일 굶었을 거예요.”
말수가 많지 않은 유 변호사는 늘 그렇게, ‘돌아보면 항상 곁에 있는 든든함으로’ 김 앵커에게 사랑을 표현한다고 한다. 지난 4월 김 앵커가 하와이 출장을 떠났을 때도 그랬다. 그전부터 “올 여름휴가 때는 같이 하와이에 가자”고 말하던 남편은 그가 혼자 하와이에 가게 되자 “잘 다녀오라”는 말 외에는 별 이야기가 없었다고. 그런데 돌아와보니 “한 번 옷장을 열어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없는 사이 지나버린 결혼 한 달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을 준비해두고 김 앵커를 기다린 것.
“사람마다 사랑을 보여주는 방법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제 신랑의 경우엔 그게 요리나 선물인 거죠. 저는 주로 ‘말’이고요(웃음).”
유 변호사처럼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김 앵커는 남편을 ‘운명’으로 생각한다. 30여 년을 살아오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만난 지 30초 만에 ‘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건 유 변호사가 처음이었다고. 대형 로펌에 다니는 변호사면서도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그의 검소함과, 외국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군대에 자원입대한 올곧음에도 반했지만, 사실 김 앵커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예사롭지 않은 인연은 그 외에도 여럿 더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 앵커는 고등학교 때까지 플루티스트를 꿈꾸는 음대 지망생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플루트를 불기 시작해 8년 동안 오직 음악만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그가 기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건 선화예고 2학년 때, 그를 가르치던 플루트 교사가 음대 입시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면서부터다. 김 앵커는 신문에서 관련 보도를 읽으며 그동안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선과 진리가 실은 허위이고 어둠일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이때의 경험은 그가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 기자라는 전혀 다른 삶을 살도록 이끌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김 앵커가 소중한 꿈을 품고 초등학교 때부터 8년이나 플루트 레슨을 받으러 다녔던 그 음악교사의 집이 바로 유 변호사의 집이었다는 사실이다.
“남편은 이집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거든요. 그런데 시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외국으로 나가시기 전 서울에서 오래 살던 집을 다른 이에게 빌려주셨다는 얘기를 듣게 됐어요. 그 집이 바로 그 플루트 선생님 집이더라고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남편은 그냥 ‘우연’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전 이런 게 운명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습죠?(웃음)”
김 앵커는 볼을 약간 붉히며 쑥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우연이든 운명이든, 두 사람이 서로를 알기 전부터 남다른 인연으로 연결돼 있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결혼 4개월’ 김은혜 앵커 첫 공개

김은혜 앵커는 결혼 후 남편과 함께 미래를 꿈꾸는 행복을 알게 됐다고 한다.


“과거와 미래가 묶여있는 운명 같은 사람과 함께 공동의 꿈을 꾸고 있어요”
김 앵커와 유 변호사는 평생의 꿈도 통한다고 한다. 김 앵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계획이 하나 있다. 아무리 물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고 설명할 뿐 말을 아끼는 바로 그 꿈을 얼마 전 유 변호사가 ‘자신의 소망’이라며 김 앵커에게 들려주었다고. 오전 3시, 여느 때처럼 막 퇴근한 유 변호사와 출근 준비에 바쁜 김 앵커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남편이 문득 ‘나는 나중에 이런 일을 하고 싶은데 당신도 같이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거예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싶을 만큼 깜짝 놀랐죠. 평생 제 마음속에만 있던 꿈을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된 거니까요. 다시 한 번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는 사실 ‘닭살 커플’과는 거리가 멀어요. 서로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남편이 말수도 적죠. ‘제 어디가 좋아서 결혼하셨어요?’ 하고 물으면 ‘그걸 꼭 얘기해야 하나요’ 하며 말을 돌릴 정도로 쑥스러움도 많이 타요. 그래서 전 아직도 남편이 왜 저랑 결혼했는지 모른다니까요(웃음). 하지만 삶을 대하는 방식,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아요. 그게 참 힘이 되죠.”
평생을 함께할 ‘든든한 동반자’를 만난 김 앵커는 그래서 참 많이 행복해 보인다.
그에게는 아직도 꿈이 많다. 20대가 여기자로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과정이었다면, 30대는 곧 다가올 40·50대를 위해 내공을 쌓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는 김 앵커. 그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지금도 꾸준히 자신을 단련하고 있다고 한다. 언제든 다시 현장에 뛰어들 수 있도록 점심시간에는 꼭 취재원을 만나고, 독서와 외국어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조만간 출산의 기쁨도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젊음과 아름다움이 제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다면 결혼과 출산이 두려울지 몰라요. 하지만 전 능력으로 인정받는 기자, 앵커가 되고 싶거든요.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없겠죠. 언제든 제 자리에서 꼭 필요한, 저를 믿고 바라보는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여성동아 2006년 8월 5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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