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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경기도지사 김문수 가족 첫공개

글·이남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6.07.27 10:31:00

7월1일부터 경기도를 이끌 신임 도지사 김문수. “경기도를 대한민국 성장엔진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힌 김 도지사가 소박한 가정생활과 남다른 가족사랑법을 공개했다.
“경상도 남자의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 깬 혁명가 아내, 아빠를 늘 자랑스러워 하는 예쁜 딸…”
신임 경기도지사 김문수 가족 첫공개

남자의 눈물은 힘이 세다. 남들 앞에서 쉽게 눈물을 보이지 못하기에 더욱 곁에서 지켜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7월1일 경기도지사 취임을 앞둔 김문수 당선자(55)의 자택을 찾았을 때, 기자는 눈가에 맺힌 그의 눈물을 봤다. 김 지사의 외동딸 동주씨(24·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4년)가 아버지의 첫 선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담담하게 말하던 딸이 갑작스레 눈물을 터뜨리자, 김 지사의 눈시울도 붉게 물들었다.

신임 경기도지사 김문수 가족 첫공개

외동딸 동주씨가 어린 시절 교도소에 있던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은 장난감 자동차.


“여섯 살 때인가, 어머니를 따라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를 면회 간 적이 있어요. 아버지가 제 손에 무언가를 꼭 쥐어주셨죠. 바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 나오는 작은 장난감 자동차였어요. 아버지가 제게 주신 첫 선물이란 생각에, 지금껏 그 자동차를 고이 간직해왔습니다.”
과거 가족이 함께 모여 산다는 것조차 꿈꿀 수 없었던 김 지사 가족에게 요즘만큼 행복한 때가 있을까. 그가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59.6%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31개 시·군의 경기도를 이끌 수장이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책임도 무겁다. 남편이 미처 방문하지 못한 곳곳을 누비며 지원유세를 벌인 김 지사의 부인 설난영씨(53)는 “도민들로부터 힘들다는 말씀 많이 들었다. 도지사가 된 남편이 그 일을 언제 다 해결할지 나도 돌덩이를 짊어진 것 같다”고 당선소감을 밝힌다.

신임 경기도지사 김문수 가족 첫공개

외동딸 동주씨가 아버지의 첫 선물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물을 터뜨렸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여름 소나기가 한차례 퍼부은 지난 6월9일, 김문수 경기도지사 가족을 부천시 소사구 자택에서 만났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 지사와 부인 설난영씨, 외동딸 동주씨가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의 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집안 분위기가 소박하다. 30평 남짓한 집에서 고급 가구나 대형 벽걸이 TV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다양한 책과 신문, 잡지들이 거실을 가득 메우고 있다.
지난 50여 일간 선거유세를 위해 31개 시·군을 돌았던 김 지사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몸무게는 5kg이나 빠져 수척했지만, 그는 보약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에너지가 넘쳤다.
“오늘 오전에도 4개 시·군을 돌며 당선 인사를 하고 왔어요. 선거가 끝난 후 31개 시· 군의 모든 관계자를 만나느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지역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뛸 생각입니다. 무게차를 타고 양평에서 선거유세를 할 때, 제게 피로회복제 한 박스를 주려고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쫓아오던 한 노인이 잊히질 않아요. 오토바이 운전도 서툴던 그분이 수차례 넘어지면서도 기를 쓰고 제게 음료수를 주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그건 나라를 위해 힘써달라는 진정한 마음 아닐까요?”

웨딩드레스 입지 않고 올린 결혼식 하객 상당수는 사복경찰
김문수 지사와 부인 설난영씨는 70년대 말 노동운동을 하며 처음 만났다. 당시 김 지사는 드레스 미싱공장을 시작으로 공장에 위장취업해 노동운동을 했고, 설씨는 구로공단 세진전자 노조 분회장과 금속노조 남서울지역지부 여성부장을 맡고 있었다. 그 시절 노동운동가들이 그랬듯, 두 사람은 연애감정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러다 제5공화국 초기 김 지사가 계엄당국에 쫓기고 있을 때 그가 설씨의 자취방에 피신하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부인의 어떤 모습에 끌렸냐”는 질문에 그는 “내 아내는 안 울 것 같아서…” 하고 입을 열었다.
“저는 군부독재 시절 혁명을 꿈꿨던 사람이니까 처음엔 결혼을 안 하려고 했죠. 하지만 점차 ‘내가 잘못 되더라도 덜 울 사람을 찾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설난영씨는 나 없이도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는 씩씩한 여성 같았어요. 전혀 사치스럽거나 화려하지도 않았고요. 아내에게 많이 끌렸지만, 처음엔 일부러 무관심한 척했어요. 이후 아내에게 청혼을 했는데 ‘안 됩니다’ 하고 단번에 거절당해 자존심이 상했죠. 여기서 포기하면 바보가 된다는 생각에 여러 차례 아내를 설득했어요.”
당시 설씨가 청혼을 거절한 이유는 김 지사가 남자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동운동에 대한 신념이 워낙 강해서 결혼에 별 뜻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40여 일간 행방불명 됐다가 돌아온 김 지사를 보며, 설씨는 남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깨달았다고 한다.
“처음 봤을 때, 남편은 청색 작업복이 잘 어울리는 순수한 모습의 청년이었어요. 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줬는데, 당시 보기 드문 친절한 사람이었죠. 남편이 맑고 똑똑하다는 인상은 받았지만, 저보다는 어리게만 느껴졌어요. 특별한 감정이 없었으니 프러포즈를 거절한 거죠.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40여 일간 사라진 거예요. 알고보니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갔던 거예요. 그 이후 남편을 보면서 제 맘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어리게만 보였던 남편의 얼굴에서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거든요.”
두 사람은 천신만고 끝에 지난 81년 9월 서울 봉천동 봉천중앙교회 교육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한달수 당시 금속노조 위원장이 섰다. 둘은 청첩장을 돌리지도 않았고, 부인 설씨는 모든 여성이 꿈꾸는 웨딩드레스조차 입지 않았다. 노동운동을 벌이던 동지들의 결합이었다. 이날 결혼식에 온 하객 중 상당수는 사복경찰이었다. 당국은 두 사람이 ‘위장 결혼식’을 하며 시위를 벌인다고 의심, 결혼식장 근처에 전경버스를 다섯 대나 배치했다. 두 사람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데 경찰이 여러모로 큰 몫을 한 셈이다.

신임 경기도지사 김문수 가족 첫공개

김문수 도지사의 자택 거실에는 김 도지사 부부의 다정한 사진들이 놓여 있다.


“저는 당시 숙녀복 정장을 입고 결혼식을 올린 것에 전혀 아쉬움이 없어요. 그날 결혼식에 온 하객들 대부분이 힘든 노동자들이었죠. 현실적으로 화려하게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불가능했지만, 여러 사람에게 귀감이 될 검소하고 조용한 결혼식을 치르고 싶었죠. 올해 우리 부부가 결혼 25주년을 맞는데 결혼기념일 때도 남편은 경기도지사 일로 바쁘지 않을까요.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은 중요하지 않아요. 두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지(웃음).”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경북 영천 출신의 김 지사는 다분히 유교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결혼 초기 부인과 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아내는 집안에서 남편보다 지위가 낮다’고 생각한 탓에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아내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 그러나 외동딸 동주씨를 키우며, 또 부인과 대화를 나누며 그는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경상도 남자들은 대개 ‘자신이 이야기할 때 여자가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내가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다 보니 저와 갈등이 생긴 거죠. 하지만 살면서 남성중심적인 제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모든 것을 참아준 아내에게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부부싸움은 열 번 해도 별로 득이 되는 게 없더라고요. 아내에게는 숙이고 사는 게 현명합니다(웃음).”



3년간 감옥에 있으며 딸 교육 문제로 고민
결혼 후에도 설난영씨의 사회활동은 이어졌다. 남편과 구로공단, 청계피복, 주안공단 등 공단에서 어머니 노동자를 위한 탁아소를 운영했고, 이후 뜻 맞는 지인들과 한국여성노동자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 92년 경기도 부천시에 뿌리를 내리며 설씨는 ‘운동 생활’을 접었다. 김 지사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강성 운동권’이던 그도 자신의 꿈을 펼치기보다는 남편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에게 못다 한 사회생활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처음 부천에 왔을 땐, 제 모든 사회활동이 중단된 것에 대한 소외감이 컸어요. 일에 대한 욕구도, 제 역량도 한참 고조돼 있었거든요. 하지만 정치인 아내로서 하는 일이 그때까지 벌여온 저의 사회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옛날에는 여성노동자에 국한된 일만 해왔는데, 정치인 아내로서는 빈민, 노인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문제를 도울 수 있어 오히려 좋았습니다.”
설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독거노인과 병원환자를 찾아 목욕봉사를 한다. 성당 봉사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3선 의원 부인답게 누가 정치 현안에 대해서 물으면 또박또박 대답해준다. 지난 5·31 지방선거 운동기간에는 시장통과 거리를 누비며 ‘자다가도 잠꼬대로 나라 걱정하는 남편’을 찍어달라고 호소했다. 김 지사에게 설씨는 ‘일당백’을 하는 최고의 파트너다.
‘김문수의 여인’을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바로 외동딸 동주씨다. 뽀얗고 갸름한 얼굴의 동주씨는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를 지녔다.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돼라’고 가르친 부모의 영향을 받아 그는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열혈 노동운동가 부모를 둔 덕에 그는 남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동주씨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때를 떠올렸다.
“엄마를 따라 시위현장을 다니며 민중가요를 즐겨 불렀어요. 그땐 노래 부르는 게 마냥 좋았어요.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그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몰랐죠. 한번은 아빠 엄마가 모두 서울 남부경찰서에 잡혀 가셔서 이모 손을 잡고 부모님을 면회 가는데, 오랜만에 엄마 아빠 본다고 어찌나 신이 나던지….”
김 지사는 딸을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며 “다른 집 아이들처럼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딸이 한창 아빠를 찾을 나이에 그는 3년간 감옥에 있었다. 어린 딸이 철창 너머 죄수복을 입은 자신을 면회하고 돌아갈 때마다 그는 딸의 교육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늘 염려스러웠다고 한다. 어머니 노동자를 위한 탁아소를 운영했던 설난영씨는 “딸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이를 맡기는 주탁아소에서 길렀다”며 “어린아이를 어미 품에서 키우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김 지사 부부는 딸이 다행히 예쁘고 원만한 성격으로 자라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감추지 못한다.

신임 경기도지사 김문수 가족 첫공개

김문수 도지사· 설난영씨 부부는 “다른 부모처럼 많이 챙겨주지 못했지만 예쁘고 착하게 자란 딸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김 지사 가족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14년 전,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에 둥지를 틀면서부터다. 이전에는 노동운동을 하던 김 지사가 수배 중이어서 다른 곳에 숨어있기 일쑤였고, 설씨 역시 사복경찰의 감시를 피해 다니기에 바빴다. 두 사람이 같이 있게 된 후에는, 해고된 노동자들과 집에서 함께 살았다. 설난영씨는 “그 당시엔 ‘우리끼리 오붓하게 산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둘째를 낳을 생각은 없었느냐”고 묻자 “결혼을 안 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겠다며 정관수술까지 한 운동가도 있었는데 둘째까지 낳는 것은 미안한 일이었다”고 털어놨다.
김 지사의 아버지는 집안 살림보다는 문중 제사나 조상 비석 세우기를 더 가치 있게 여기던 분이었다. 문중의 대부였던 그의 아버지는 월급의 대부분을 손님 접대로 사용했다. 결국 문중 사람의 보증을 잘못 서서 집과 월급이 차압되고 식구들은 전깃불도 없는 판잣집으로 쫓겨다니는 상황이 됐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김 지사는 막연히 동경했던 서울에서 본 거지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가난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곧 사회 모순에 대한 비판으로 변해갔다. 그는 “사회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당시 할 수 있었던 일은 시위와 위장취업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한일도루코노조위원장,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거치며 ‘노동운동의 대부’로 성장했다.
그러던 김문수 지사가 90년대 초반 신한국당에 입당했을 때, 운동권에서는 그를 ‘변절자’라고 욕했다. 운동하면서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해온 그가 정치를 한다고 했을 때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변절자’라는 사람들의 비난에 김 지사는 당당하게 항변한다.
“제가 신한국당 입당을 결심한 시기는 바로 동유럽권이 몰락하고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패배할 때였어요. 운동권의 지향점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배’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성장 위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에 대해 저는 비난하지 않는데, 어떤 사람들은 저를 지렁이 보듯 싫어하기도 해요. 그것은 독선 아닌가요? 좌와 우를 아우를 수 있는 열린 태도가 우리 사회에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95년 김 지사가 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을 때, 중학생이던 딸 동주씨는 남들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로 인해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오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생인 그는 이제 아버지를 위해 적극 선거운동을 돕는다. ‘정치인 아버지’의 딸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을까.
“중·고교 시절에는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 일부러 관심을 끊었어요. 남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요. 아버지가 늘 자랑스러웠지만, 다른 사람들의 공격을 받을까봐 앞서 방어한 거죠. 대학에 들어온 후 노동운동사를 학회에서 공부했는데, 아빠 엄마 이름을 책에서 발견하니 기분이 남달랐어요. ‘부모님이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해오셨구나’ 하고 깨닫게 됐죠. 요즘은 크게 불편하거나 힘든 점은 없어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잠꼬대하는 남편
집안에서 김 지사의 ‘야당’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부인 설난영씨는 ‘정치인 김문수’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점수 역시 별로 나쁘지 않다고 덧붙인다.
“정치가가 된 후 남편이 하루에 5시간 이상 자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희생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죠. ‘감사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하며 잠꼬대를 할 정도예요. ‘완벽한 정치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남편은 바쁘지만 아버지로서도 최선을 다해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늘 딸부터 찾아요. 집에 늦게 들어와서도, 꼭 공부하는 딸의 방문을 열고 영어로 말을 겁니다. 영어공부 얼마나 많이 했나 테스트하기 위해서지요.”
2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벌인 투사는 이제 열정적인 우파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김문수 지사는 경기도에서 자신의 새로운 꿈을 펼치고자 한다.
“경기지역은 중국의 상하이와 베이징, 일본의 도쿄와 맞설 수 있는 대한민국의 경쟁력입니다. 지금까지 경기도의 성장을 가로막았던 수도권 규제를 풀면, 기업과 외자를 유치하고 1백20만 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경기도를 세계 어느 도시와 대결해서도 승리할 수 있는 대한민국 성장엔진으로 만들겠습니다.”

여성동아 2006년 7월 5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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