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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여성 최초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강금실

‘결혼 경험, 라이프스타일, 인생 철학 솔직 공개’

글·이남희 기자 / 사진·김형우 박해윤 홍중식 기자

2006. 05. 04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대중적 인기를 누린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보랏빛 이미지를 내세워 딱딱한 선거 풍토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여성 최초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강금실 전 장관이 본지와 만나 전격적으로 출마를 결심한 이유부터 사랑과 행복에 관한 생각까지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았다.

‘여성 최초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강금실

서울 종로구 필운동 소호 갤러리에서 만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우와~, 사인해주세요.”
지난 4월15일 봄이 찾아든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한 유명인사의 출연에 동네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열렬한 사인 공세에 시달리는 주인공은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49). 한 꼬마가 “아줌마, TV에서 봤어요. 뭐 하시는 분이에요?” 하고 묻자 그는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는 사람이야” 하며 빙그레 웃는다.
야외에서 사진 촬영을 마친 강 전 장관의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필운동 소호 레스토랑에서 이뤄졌다. 미술관을 겸한 이곳은 미술에 관심이 많은 강 전 장관이 모임 장소로 자주 애용한다고. 피아노 선율이 은은하게 흐르던 카페에서 그는 ‘인간 강금실’의 삶의 여정을 소탈하게 털어놓았다.

‘이미지 정치’라는 비판엔 여성에 대한 비하가 숨어 있어
“너무 즐거워서 죄송하다”며 법무부 장관직을 떠난 그가 1년 5개월 만에 서울시장 후보로 돌아왔다. “정치는 절대 안 하겠다”던 그가 마음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선택의 기로에 설 때, 마음이 가는 쪽을 택한다’는 것은 강 전 장관의 평소 지론이기도 하다.
“(시장 출마 권유를 받고) 고민할 때, 서울시정에 관한 전문가들, 서울시의 전통과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애쓰는 분들을 만나며 ‘서울을 보다 아름다운 도시로 바꿀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다가온 기회를 거절하기보다는 같이 바꿔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결심을 굳히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죠.
머리와 가슴이 일치할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하잖아요. ‘여건이 어렵다, 약점이 있다’ 이런 걸 따지는 건 머리가 하는 선택인데, 결국 진심에서 우러난 선택이 가장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살다보면 쉬운 일이 없는데, 그걸 잘 헤쳐나가려면 진심으로 문제에 접근해야죠. 출마도 제 마음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강 전 장관의 결심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던가요.
“(출마에 대해) 찬반양론이 있었어요. 반대하는 분들의 논리는 ‘우리나라 정치문화는 아직 혼탁하다. 선거에 나가면 본인 뿐 아니라 가족도 다치니, 끼어들지 않으면 좋겠다’는 거였죠. 특히 존경하는 김정환 선배(시인)께서 굉장히 반대하고 걱정하셨죠. 그런데 가장 반대했던 그분이 지금은 저를 가장 열심히 도와주고 있어요(웃음). 그런데 뭐, 제가 다칠 게 있나요.”
-서울을 바꾸겠다는 말,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서울의 역사와 전통을 복원해서 국제도시로 만들었으면 해요. 광화문 복원사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서울의 역사를 볼 수 있게 만들고, 시민들이 자연을 느끼며 거닐 수 있는 길도 조성하고 싶어요. 청계천에 대한 시민의 반응이 좋은 것도 결국 ‘역사적 공간’을 되살려냈기 때문 아닐까요? 빈부격차 문제, 교통 문제 등 서울에는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가 쌓여 있잖아요. 각 동의 센터에서 주민들이 아이들의 보육, 교육, 문화생활 문제를 직접 논의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 거예요. 서울이 고향 같다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그는 자신의 정책구상에 대해 뚜렷한 소신을 밝히고 있지만, 아직 ‘이미지 정치’라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보랏빛 이미지로 상징되는 강 전 장관의 ‘감성 행보’는 기존 정치 풍토에서 낯선 풍경이기 때문.
연보랏빛 투피스 정장, 보라색 목걸이, 보라색 자수정 반지…. 소호 레스토랑을 보랏빛으로 물들인 강 전 장관의 패션이 눈부시다. 이렇듯 화려한 외관 때문에 그의 콘텐츠가 오히려 과소평가받는 것은 아닐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선거니까, (색깔로 의사를 표출하는) 그 정도의 형식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옷 입는 것도 일종의 의사 표현이잖아요.

‘여성 최초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강금실


사실 ‘이미지 정치’라는 비판에는 여성에 대한 비하가 숨어 있어요. 만약 제가 남자로서 13년간 판사를 했고 로펌을 6년간 경영했고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면 그렇게 출마 선언을 한들 ‘콘텐츠가 없다’는 말이 나오겠어요? 우리 사회는 아직 여성에 대한 실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특별히 보라색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소화하기가 힘든 색인데….
“경영학에서 사람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공간을 ‘레드 오션(red ocean)’, 경쟁이 없는 새로운 공간을 ‘블루 오션(blue ocean)’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런데 ‘블루 오션’을 계속 창출하기 어렵다 보니, 레드 오션과 블루 오션이 공존하는 새로운 길을 찾게 됐어요. 그것이 바로 ‘퍼플 오션(purple ocean)’이죠.
빨강과 파랑의 균열을 넘어선 보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저희의 선거철학을 잘 보여주는 색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보라색을 택할 때 망설였어요. 쉽게 질리는 색이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반응이 좋네요(웃음).”
-선거를 대비해 옷은 몇 벌이나 장만하셨나요? 출마 선언 당시, 강남의 고급 부티크에서 옷을 맞췄다는 구설에 휘말렸는데….
“보라색 정장 세 벌에 재킷 두 벌 정도 구입했어요. 특별히 많이 구입하진 않았어요. 원래 보라색을 좋아해서 주변 사람들이 보랏빛 액세서리를 많이 선물해주기도 했고.
‘강남의 고급 부티크에서 옷을 맞췄다’는 보도는 와전된 거예요. 사진 촬영하던 분들이 제게 ‘부티크에서 가져온 옷을 입고 찍으라’고 해서 잠시 입었던 건데…. 저는 부티크에서 옷을 맞출 만큼 시간이 없어요.”
-그러면 주로 어디에서 옷을 구입하시나요?
“지난해 말에는 ‘타임’에서 옷을 샀고, ‘엘르’ 브랜드도 사 입고…. 주로 백화점의 기성복을 잘 입는 편이에요. 보통은 집 앞 백화점에 들러서 옷을 구입하죠. 동대문 시장에도 가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요. 대신 아가씨가 된 제 조카들이 동대문시장에서 예쁜 액세서리를 사다 줘요.”
-공식행사에 나갈 때 코디는 누가 도와주시죠?
“옷 고르는 것은 제가 직접 해요. 액세서리를 매치하는 것도 그렇고…. 다만 방송에 출연할 때나 오늘처럼 사진을 촬영할 땐 미장원에서 메이크업을 받지요. 헤어스타일도 마찬가지고. 원래 옛날부터 패션 감각 있다는 말은 좀 들었어요(웃음).”

“여성으로 부당한 대우 받으면 원칙으로 풀어나가요”
강금실이란 이름 앞에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서울지역 첫 여성 형사부 단독판사, 최초의 여성 법무법인 대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첫 여성 부회장…. 여기에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이란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화려한 컬러의 숄과 짧은 스커트, 진한 메이크업과 커다란 액세서리, 새침하게 다문 입…. 그는 기존의 엄격하고 보수적인 남성 사회를 비웃듯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과 자태로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 결코 길들여지지 않았던 그는 어떻게 여성 리더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이 늘었지만, 사회환경은 아직도 남성 중심적이에요. 상대방을 헐뜯고, 공격하고 싸우는 지금의 정치환경에서 여성이 살아남는다는 게 쉽지 않죠.



법무부 장관은 강한 권력을 갖는 자리지만, 처음에는 사람들이 여성인 저를 동등하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특히 검찰은 여성 부장검사가 겨우 한 명 나올 정도로 보수적인 조직인데, 여성 법무부 장관이 왔으니 어이가 없었겠죠. 하지만 개혁에 대해 갈등을 빚고 토론을 벌이면서 나중엔 검찰과 사이가 좋아졌어요. 법무부 장관 시절 가장 보람된 일을 꼽는다면 ‘검찰과 상호인정 관계가 됐다’는 거죠.”

‘여성 최초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강금실

강금실 전 장관은 “남성 중심 조직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 리더의 역할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차별에는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저는 원칙대로 나가자는 스타일이에요. 여성에 대한 비하가 있다 해도 그 부분에 대해 강하게 대항하면 일이 더 꼬이거든요. 강자와 약자의 갈등이 있을 땐, 강자인 남성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원칙을 내세워야 해요. 공격에 맞대응하지 않고 원칙으로 푸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 이때 ‘포용성’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마찰이 생기면 저는 근본적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열어요. 서로 생각이 달라도 ‘당신 말도 일리가 있는데’ 하고 접근하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죠. 그런 마음가짐 갖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웃음).”
전문가들은 연예인을 능가하는 강 전 장관의 인기 비결에 대해 특유의 ‘여성적인 리더십’을 꼽는다. 기존 여성 정치인들이 남성적 조직문화에 순응했다면, 그는 자신의 여성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것. 정치판을 향해 “코미디야, 코미디” 하고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리는 그의 ‘쿨함’은 사람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저는 ‘여성 1%’ 시대 사람이에요. 3백 명 사법고시 합격자 중에서 여성은 세 명밖에 없었거든요. 그 시대에 어떻게 처신하고 살까 고민했지만, 저는 성격상 저 자신을 속이지 못해요. 원래 취향과 성격이 여성적인데, 그런 면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며 살아온 거죠.
제가 출마를 결심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여성들의 권유였어요. 그분들은 제게 ‘여성으로서의 정치인 역할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남성이 만들어놓은 영역에 비위를 맞추지 않고, 특유의 여성성으로 남성 중심의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죠.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성으로서 저는 커다란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강 전 장관은 대중적 인기를 한몸에 받는 대한민국의 성공한 여성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도 ‘약자’로서 여성의 존재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그는 공약으로 출산과 보육에 관련된 다양한 정책을 내놨지만, 정작 자신은 출산 경험이 없다. 남편이 사업을 하며 얻은 빚을 갚느라 결혼생활이 깨어지는 경험도 했다. 그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저는 정말 아기를 낳고 싶었는데, 전 남편과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어요. 기회가 안 온 거죠. 결혼생활 도중 아이를 못 낳았고, 이혼하고 보니 40대 후반이 돼버렸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만큼 세상에서 기쁜 일이 있을까요? 저도 아기가 생기면 판사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할 생각도 있었다니까요(웃음). 요즘 우리의 문제점은 자기 아이들한테만 관심을 갖는다는 거죠. 입양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관대해져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입양을 하겠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기회가 오면 마다하진 않을 생각이에요.”
-입양 자격 미달이신데….(입양부모의 첫 번째 조건은 ‘혼인 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요? 저는 사실 강아지를 키워요. 강아지가 제 딸이에요.”

아기를 갖고 싶었지만 기회 놓쳐… “살림과 요리엔 소질 없어요”
-살림과 요리는 잘 하시나요?
“제가 살림을 잘 못하는 것은 전 남편 탓이 커요.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 원룸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렸는데, 남편은 살림을 모두 제게 맡기고 손 하나 까딱 안 했어요. 똑같이 돈을 버는데 저만 일을 해야 하니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래서 저도 살림을 잘 안 하게 된 것 같아요(웃음).

요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부산에서 판사로 근무할 때, 남편이 주말마다 빵을 사들고 서울에서 내려왔어요. 제가 해준 요리는 맛이 없어서 그렇다는 거예요. 못해도 ‘잘한다, 잘한다’ 해줘야 신이 나서 요리를 할 텐데….”

그는 2003년 법무부 장관 재임 당시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9억원의 빚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그가 판사에서 변호사로 전직한 것도 전 남편이 운영하던 출판사의 부도 때문. 경제적 어려움으로 극단의 고통을 경험한 그는 돈에 대해서 남다른 철학을 갖고 있다.

‘여성 최초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강금실

강 전 장관은 4월5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출마를 선언하기에 앞서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아직 은행에서 대출받고, 법인에서 빌려 쓴 빚이 좀 남아 있어요. 변호사 개업 초기에는 몇 년간 매일 심각한 빚 독촉에 시달렸죠. 다른 종류의 고통은 본인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돈 문제는 그렇지 않아요. 돈이 사람을 끌고 가서 헉헉대게 만드니까. 사람은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선거전은 ‘체력전’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연일 이어지는 인터뷰 일정도 소화해야 한다. 잠이 많다고 알려진 그는 어떻게 체력관리를 하고 있을까.
“홍삼가루를 우유에 타서 아침에 먹는데 아주 좋아요. 집에 늦게 들어가다 보니 잠은 많이 자지 못하고 있어요.”
강 전 장관은 가늘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소유자다. 한국의 선거 유세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정치인의 ‘지르는 발성’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에게 목소리 관리 노하우를 묻자 역시 독특한 비결을 들려준다.
“집에서 노래를 해요. 노래를 하면 목청이 트이잖아요. 최근에는 드라마 ‘명성황후’ 주제가인 ‘나 가거든’을 외웠는데 (아직 사람들 앞에서) 부를 기회는 없었어요.”
-강 전 장관의 싸이월드 미니홈피(www.cyworld.com/withkumsil)에 자우림의 노래 ‘일탈’이 깔려 있던데….
“제가 자우림 노래를 좋아해요. 여성 보컬의 보이스(김윤아), 정말 멋있어요.”
강 전 장관 하면, 춤 이야기를 빠뜨릴 수가 없다. 이명박 시장의 “강 전 장관이 노는 것, 춤추는 것 좋아하니 서울시 공무원들은 매일 놀 수 있지 않겠냐”는 발언은 한때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운동 대신 춤을 춘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음악이나 미술에 한 가지 취미라도 갖는다면 삶이 훨씬 더 풍요롭지 않겠냐는 것.
“제가 대학 다닐 때 한국에 명무전(북춤)이 유행이었어요. 새마을운동 때문에 그러한 춤이 다 사라졌죠. 훗날 곳곳에 숨어 있던 춤꾼을 발굴해서 ‘명무전’을 서울무대에 올렸는데 그것을 보고 감명받아 춤을 배우기로 결심했어요. 춤은 사람의 영혼을 건드리는 흥이 있어요. 제게 아이가 있었다면, 어릴 때부터 악기를 한 가지 배우도록 시켰을 거예요. 음악이나 미술, 문학 등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자라야 머리도 좋아지고 심리적으로 안정되거든요.”
-최근 이성으로부터 데이트 요청을 받은 적은 있나요?
“해도 해도 너무한 것이 법무부 장관 하고 나니까 단 한 번의 기회도 오지 않는 거예요(웃음).”
-이상형을 말씀해보세요. 그러면 남성이 용기를 갖고 도전할지도….
“사실 요즘은 남녀 간 사랑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강금실 전 장관은 ‘행복 지상주의자’다. 내키지 않는 건 결코 하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본인의 의지대로만 살아온 것은 아니다. 주변의 여건이 형성되면 그가 늘 결단을 내리는 식이었다. 서울시장 후보로 선 지금, 그는 어떤 행복을 꿈꿀까.
“법무부 장관을 그만두고 1년 5개월 동안 쉬면서 저는 ‘사적인 영역’에 있었죠. 그러나 이제는 ‘공적인 영역’에 진입해 같이 행복해지는 길을 택한 거예요. 많은 사람이 저로 인해 행복하다면, 저도 행복한 거죠. 정치인은 시민 한 명, 한 명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 것인지 고민하고 답을 찾는 사람이니까요.
각자에게 주어진 것을 잘 채워가는 게 바로 행복 아닐까요? 지위나 역할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결정되는 건 아니잖아요. 공적인 영역에서 큰 흐름을 바꿔나가는 일도 소중하지만,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잘 키우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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