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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가족이 사는 법

GE코리아 이채욱 회장 부부의 ‘가족경영 & 성공적인 자녀교육’

“편지와 문자메시지, 자연스러운 스킨십으로 늘 사랑을 표현하세요”

글·이남희 기자 / 사진ㆍ조영철 기자

2006. 04. 12

한 기업의 평사원에서 출발해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성공의 계단을 오른 GE코리아 이채욱 회장. 그는 “집안의 행복이야말로 성공에 이르는 열쇠”라고 말한다. 기업경영뿐 아니라 가족경영에서도 남다른 성과를 거둔 이채욱 회장의 가족사랑법.

GE코리아 이채욱 회장 부부의 ‘가족경영 & 성공적인 자녀교육’

식구 사랑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이채욱 회장 가족. 윗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둘째 딸 승민씨, 큰딸 승윤씨, 사위 진동희씨, 부인 김연주씨, 그리고 이채욱 회장.


“인생의 성공은 화목한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72년 삼성의 공채 신입사원으로 출발해 최고 글로벌 기업의 CEO에 올라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로 통하는 GE코리아 이채욱 회장(60). 그가 설파하는 ‘가족경영 노하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3월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암동에 자리한 이채욱 회장의 자택을 방문했을때 이채욱 회장과 김연주씨(54) 부부, 그들의 두 딸과 큰 사위가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들 가족의 다정다감한 모습이었다. 재계에서 이채욱 회장 부부는 ‘자식 농사’를 잘 지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세 딸의 면면을 살펴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이들을 다양한 문화 공연에 데려간 어머니, 딸의 선택을 존중한 아버지
서글서글한 성격의 장녀 승윤씨(30)는 현재 한국휴렛팩커드(HP)에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진동희씨(31·호주계 금융사인 맥코리은행 근무)와 결혼한 그는 일과 사랑을 동시에 성취한 커리어우먼이다. 맏이다운 믿음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이 회장과 종종 와인을 즐기는 ‘친구 같은 딸’이다. 최근엔 임신 3개월에 접어들어 온 가족에게 기쁨을 안겼다.
둘째 딸 승민씨(28)는 사법고시를 패스한 예비 법조인이다. 가녀린 몸매에 조용한 성격을 지녔지만, 하고자 하는 일은 밀어붙이는 강단의 소유자다. 사법고시를 마치고 합격자 발표가 날 때까지 그는 오디션을 쫓아다니며 자신이 노래를 부를 만한 무대를 찾아다녔다. 그는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기 전 서울의 한 호텔 바에서 한 달간 노래를 불렀는데, 그 사연이 동아일보에 보도돼 화제를 모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점만 고루 닮았다는 셋째 딸 승은씨(26)는 현재 미국 GE에 근무하고 있다. 승은씨가 아버지의 ‘빽’으로 GE에 입사했다고 착각하면 오산이다. 식구들 모르게 GE 입사를 준비했을 만큼 독립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미국 코넬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승은씨는 GE에서 3개월간 대학생 인턴으로 일하며 특허를 따기도 했다. GE 역사상 대학생 인턴이 특허를 취득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그는 GE의 ‘에디슨 프로그램’(이공계 출신 젊은 리더 양성 코스)을 이수할 정도로 기업에서 촉망받는 인재다.
이채욱 회장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부부간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부인이 아이들의 생활을 옆에서 꼼꼼히 챙기고 관리했다면, 자신은 자유롭게 풀어주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
김연주씨가 세 딸을 키우며 가장 주력한 것은 바로 품성 교육이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가르쳤고, 어떤 낯선 환경에 처하더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심어주고자 한 것. 세 딸이 구김살 없이 제 몫을 다하는 전문직 여성으로 성장하기까지 어머니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아이들이 훌륭한 품성을 지닐 수 있도록 좋은 문화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특히 주의를 기울였죠. ‘볼쇼이 발레’부터 ‘투란도트’ 같은 각종 오페라까지 좋은 공연이 있으면 항상 아이들을 데리고 갔어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문화행사를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아이들은 지성과 감성을 두루 키울 수 있었어요.”

GE코리아 이채욱 회장 부부의 ‘가족경영 & 성공적인 자녀교육’

“시간이 없어 가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죠. 사랑을 표현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아요. ”


큰딸 승윤씨가 옆에서 어머니의 말을 거든다.

“초등학교 시절 주산학원, 웅변학원 같은 곳에 다녀본 적이 없어요. 늘 부모님과 함께 공연을 보고 박물관에 다니느라 바빴거든요. 수많은 학원에 다닌 것보다 가족과 함께 즐겼던 문화체험이 훨씬 더 저를 성장시킨 것 같아요. 공연 관람은 바쁜 아버지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죠.”
어머니의 교육이 ‘엄격한 관리형’이라면, 아버지의 교육은 ‘자율방임형’에 가깝다. 이 회장은 세 딸의 말을 경청하고, 늘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왔다. 96년 싱가포르에서 그가 막내딸과 단둘이 살아야 했을 때,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인 딸에게 집 선택까지 맡겼을 정도다.
“막내는 싱가포르에서 저와 함께 한 유일한 가족이라 유난히 정이 돈독합니다. 그때 큰아이는 대학생이었고, 둘째 딸은 고3 수험생이어서 아내를 비롯한 세 가족은 한국에 머물러야 했거든요. 말이 싱가포르 거주지, 제가 1년에 2백여 일이나 출장을 다녀 막내는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어요. 집 선택도 막내에게 맡겼더니, 즐거워하며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보더라고요. 사실 제가 생각해둔 다른 집도 있었지만, 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결정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싱가포르에 있을 때가 자신이 가장 성장했던 시기’라고 말하는 막내에게 저로선 고마울 따름이죠.”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을 믿어주고 묵묵히 격려해준 아내에게 감사해”
이채욱 회장은 친척의 소개로 70년대 중반 부인 김연주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채욱 회장 부부에게 “상대의 무엇에 반했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재미있다. 먼저 이채욱 회장은 “총명한 미인이었다”고 짤막하게 답한다. 김연주씨는 수줍은 소녀처럼 “이 양반을 처음 봤을 때 눈빛이 강렬했다”고 고백한다. 서울 명동의 한 음악카페에서 이 회장은 “나의 반쪽이 돼주겠냐”며 부인에게 청혼했다. 프러포즈를 받고 살며시 떨리는 부인의 손길을 보며 그는 아내가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였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은 수십 년간 흔들림이 없었다. 이채욱 회장이 신입사원에서 글로벌 기업의 수장으로 발돋움하기까지 김연주씨의 내조는 큰 버팀목이 됐다. 섬세하고 빈틈없는 성격의 김연주씨는 남편의 비즈니스 일정을 체크하며 그림자처럼 그를 챙겼다. 매일 아침 남편의 건강을 위해 녹즙과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채욱 회장은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를 믿고 지켜봐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1970년대 후반 삼성물산 과장 시절, 저는 고선박 수입사업을 추진하는 담당자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고선박이 들어차 있는 부산 감천만에 태풍이 몰아닥쳐 20만 톤급의 배가 바다 속으로 침몰해버리고 만 거예요. 회사 자본금의 3분의 1을 잃는 최악의 상황에서 저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고를 수습한 뒤 사표를 내려고 했어요.
그때 아내는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며 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사표를 낼 경우 제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아파트를 팔아 회사에서 받은 융자까지 다 갚더군요. 아내는 저를 믿고 묵묵히 격려해줬어요. 제가 회사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걱정을 덜어주려 했던 아내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감천만의 태풍’은 이채욱 회장에게 쓰디쓴 실패의 기억을 남겼지만, 동시에 역전의 계기를 제공했다. 감천만 인부들과 부대끼며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열정을 쏟았던 그를 회사가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고 후 1년 뒤 사표를 던졌지만, 회사는 오히려 그를 삼성의 57개 해외지점을 총괄하는 해외사업본부장으로 승진시켰다. 이 경력은 이 회장이 글로벌 리더로 거듭나는 토대로 작용했다.
이후 89년 그는 삼성GE의료기기의 사장으로 부임했다. 삼성과 GE의 합작사인 이 회사는 창립 이래 줄곧 손실만 내며 존폐의 기로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가 부임하면서 회사는 6년간 연평균 45%의 매출성장을 기록하며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그의 활약을 지켜본 GE 파울로 프레스크 부회장이 96년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강력히 권유해 그는 삼성에 적을 둔 채 GE 메디컬사업부문 동남아·태평양 지역 책임자로 부임하기에 이른다. 당시 그는 IMF 외환위기로 인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했지만, 특유의 헌신적인 리더십으로 구조조정 대상자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GE코리아 이채욱 회장 부부의 ‘가족경영 & 성공적인 자녀교육’

이채욱 회장, 김연주씨 부부는 요즘도 편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고 한다.



일련의 성공을 거두며 그는 GE 초음파 의료기기 아시아 총괄사장으로 취임했다. 이때 삼성에서 GE로 적을 옮겼다. 그는 시장점유율 6위이던 사업을 1년 만에 1위로 끌어올리며 또 한 번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2002년 오랜 해외생활로 가족과 떨어져 지냈던 그는 회사에 사의를 밝혔다. 가족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GE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그를 GE코리아 사장으로 승진 임명했다. 2005년에는 그를 다시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일과 가정에 모두 충실했던 이채욱 회장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낸 것이다.
잦은 해외 근무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이 회장은 어떻게 가족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는 “시간이 없어 가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의 양과 사랑의 양은 결코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회장의 생각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그가 아버지와 남편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가족에게 엽서 쓰기’였다. 출장 중 매일 밤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공짜 엽서에 사랑하는 마음을 적어 가족에게 보낸 것. 심지어 바쁠 때는 엽서에 ‘?’라고만 써서 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식구들은 그 엽서를 보며 남편에게, 아버지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요즘도 부인에게 종종 “사랑한다”고 편지를 쓴다. 옆에 있던 두 딸이 “부모님의 애정행각, 정말 닭살스럽다”며 맞장구를 친다. 가족의 대화를 지켜보던 사위 진동희씨도 이야기를 거든다.
“장인어른께서 제게도 종종 사랑의 마음을 담아 문자메시지를 보내세요. 지난해 가족의 일원이 된 저도 장인어른이 가족을 아끼는 마음을 보며 감동을 받을 때가 많아요.”
글로벌 기업 GE를 성공적으로 이끈 이채욱 회장은 가족경영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는 ‘아내를 하루 세 번 칭찬하고 하루 네 번 야단치라’는 인도의 속담을 인용하며, 가족에 대한 관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내를 세 번 칭찬하든 네 번 야단치든, 일단 아내를 보고 관찰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 가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식구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 그가 밝히는 가족경영 노하우다.
“아이들이 어릴 때, 밤에 자다 깨어난 딸을 화장실에 데려가는 것이 제 임무였어요. 아이들을 화장실에 데려다주면서 꼭 안아주곤 했는데, 그렇게 저의 사랑이 전달된 거죠. 지금도 아침 일찍 출근할 때, 잠든 딸의 발을 살며시 만져주면 딸이 씩 웃어요. 그렇게 자연스런 스킨십을 통해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딸들과 이야기할 때 주로 애칭을 부르고, 조크도 많이 합니다. 그렇게 서로 가까워지는 거죠.”
세 딸을 우수한 인재로 키운 이채욱 회장은 여성 리더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그가 일하는 여성에게 던지는 충고는 귀 기울여볼 만하다.
“최근 한 대학 총장은 제게 ‘요즘 장학금을 거의 여학생이 휩쓴다’고 전하더군요. 그뿐입니까. 기업인사 담당자들도 한결같이 여성 사원의 입사시험 점수가 남성 사원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해서는 정작 남자에게 보호받으려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여직원들에게 ‘스스로 성차별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준비된 인재로서 여성 스스로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를 끊임없이 개척해나갔으면 합니다.”
이채욱 회장은 최근 미래의 리더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백만불짜리 열정’을 발간했다. 35년간의 사회생활에서 축적한 성공 노하우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통해 엿보는 그의 삶은 열정 그 자체다. 경북 상주 산골에서 태어나 면서기를 꿈꿨던 소년은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영남대 법학과를 졸업한다. 법조인이 되고 싶었지만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취업을 선택했다.

GE코리아 이채욱 회장 부부의 ‘가족경영 & 성공적인 자녀교육’

1 둘째 딸 승민씨는 서울 한 호텔의 바에서 한 달간 노래를 불러 동아일보에 ‘화제의 예비 법조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2 큰딸 승윤씨의 결혼식 사진. 3 세 딸 승윤, 승민, 승은씨의 초등학교 시절 모습.



졸업 즈음 최고 대우를 약속하는 기업도 있었지만, 큰물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삼성을 택했다. 그는 실패의 경험을 오히려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키며 열정적인 리더로 거듭났다. “성공의 4대 요소는 열정, 겸손, 자기혁신, 따뜻한 배려”라는 이 회장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그가 에세이에 쓴 가족에 대한 단상은 ‘가정이야말로 행복의 근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운다.
“나에게 가정은 뭉클함이기도 하면서 미안함인 동시에 자랑스러움이기도 하다. 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내, 믿음직하고 어여쁜 큰딸, 똑똑한 둘째, 당찬 막내딸…. 그들은 나의 사랑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이기도 하다. 모두 다 가족이면서도 각각 다른 역할로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다. 마치 쓰이는 곳이 각각 다른 비타민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순간, 가슴 한편에 부러움이 밀려들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 가족에게 앞으로도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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