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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한국 야구의 자존심

연이은 홈런포로 한국 야구의 진수 보여준 이승엽

기획·김명희 기자 / 글·이헌재‘동아일보 스포츠부 기자’ / 사진ㆍ동아일보 사진DB파트, gamma 제공

입력 2006.04.12 11:25:00

WBC 최고 수훈 선수 이승엽. 2003년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작성하며 한국 최고 타자로 인정받은 그는 이제 메이저리그에서도 주목받는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병석에 계신 어머니께 영광을 바친다”는 그를 미국 현지에서 만났다.
연이은 홈런포로 한국 야구의 진수 보여준 이승엽

“어머니, 안녕하시죠? 제가 말하는 걸 들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 해서 오늘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게요.”
지난 3월16일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WBC 2라운드 일본전에 앞서 이승엽(30·일본 요미우리)은 TV 인터뷰를 통해 대구에 있는 어머니 김미자씨(58)에게 안부를 전했다. 그의 어머니는 2001년 뇌종양 수술을 받은 후 현재까지 투병 중이다.
승리가 확정되자 이승엽은 평소와 달리 마음껏 기쁨을 발산했다. 동료들을 끌어안고 펄쩍펄쩍 뛰며 운동장을 돌았다. 첫째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겼던 미국과 일본에 진 빚을 갚았기 때문. 그는 앞서 미국전에서도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한국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오늘의 영광을 어머니께 바칩니다. 그리고 미국이 저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좋습니다. 3년 전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을 때는 대우를 못 받아서 정말 섭섭했거든요.”
이번 대회는 ‘이승엽을 위한 무대’라고 할 만하다. 한국이 2라운드까지 6연승을 하는 동안 그는 홈런만 5방에 10타점을 올렸다.
메이저리그 애너하임구단 빌 스맨턴 단장은 3월16일 한 인터뷰에서 “이승엽의 타격을 좋아했다. 아니 그의 모든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제안을 하지 못했다”며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이승엽이 미국에 와 애너하임 등 몇몇 구단과 접촉했지만 헐값의 계약조건을 내걸었다 놓친 데 대한 아쉬움을 나타낸 것.
2003년 이승엽은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인 56개의 홈런을 때린 후 해외 진출을 선언했지만 원했던 메이저리그에서는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아 결국 일본 롯데구단으로 갔다. 이에 대해 당시 이승엽은 “미국 팀들이 내 입으로 말하기도 싫을 정도로 초라한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일본의 벽도 만만치 않았다. 전혀 다른 야구 스타일에다 집요하게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일본 투수들 앞에 이승엽은 일본 진출 첫해 2군 추락의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딱 1년만 더 일본에서 야구를 하자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시즌이 끝난 뒤 거의 하루의 휴식도 없이 훈련에만 매진했죠. 손바닥 껍질이 벗겨지고 굳은살이 박이는 과정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연이은 홈런포로 한국 야구의 진수 보여준 이승엽

이승엽은 2002년 이송정씨와 결혼, 두 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다.


이승엽은 이듬해 30홈런을 날리며 체면치레를 했다. 일본시리즈에서도 3홈런을 치는 맹활약을 하며 올해 초에는 최고 명문 구단이라는 요미우리로 팀을 옮겼다. 이번 대회에서는 그동안 일본에서 받은 설움을 단번에 날려보내는 홈런을 때렸다. 3월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과의 아시아 예선에서 8회 역전 2점 홈런을 친 것.
“일본에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근력을 키웠고, 투수와의 수 싸움도 늘었고, 타격 기술도 몰라보게 좋아졌어요. 그때의 고생이 없었으면 아마 이번 대회에서의 이승엽도 없었을 겁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에서 쏟아지는 관심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을까?
“사실 힘들어요. 부담도 너무 크고…. 못 치면 비난이 저한테 쏟아질 거잖아요. 물론 지금처럼 잘 치면 영웅이 되기도 하겠지만…. 저는 프로 선수입니다. 프로라면, 한 분의 팬이라도 저를 지켜보고 응원을 한다면, 그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승엽 선수 아버지 이춘광씨 미니 인터뷰
“아파도 내색 않고 열심히 뛰어준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글·김명희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연이은 홈런포로 한국 야구의 진수 보여준 이승엽
“감기 기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핑 테스트 때문에 약조차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제가 걱정을 한다는 걸 알면 승엽이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내색 안 했어요.”

이승엽의 아버지 이춘광씨(63). 아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그는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낸 아들이 대견하다. 코칭스태프와 다른 선수들에게도 골고루 공이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들을 키우며 보람 있었던 순간을 차근차근 짚어나가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 묻어났다.



“93년 고등학교 재학시절, 투수로 청룡기 우승을 이끌었고 94년 세계청소년대회에서 13년 만에 우승을 일구기도 했죠. 2003년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울 때도 그렇고. 매순간 화면이 정지된 것처럼 잊혀지지가 않네요.”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아들의 야구 입문을 환영했던 것은 아니다. 이승엽은 여섯 살에 박철순 투수에게 반해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지만 이씨는 2남1녀 중 막내인 이승엽이 운동보다는 공부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승엽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장충단구장 담장을 훌쩍 넘기는 홈런을 치는 것을 본 뒤부터 적극적으로 후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춘광씨는 아내 김미자씨의 병세에 대해 “지난 가을보다 많이 호전돼 승엽이가 경기를 할 때는 간혹 의식을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그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거의 매일 전화를 하다시피한다고.

“틈을 내기 어려울 텐데 되도록이면 제 엄마가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통화를 하려고 애쓰는 게 눈에 보여요. 다행히 요즘 컨디션이 좋아져서 3월16일 일본전은 맑은 정신으로 보면서 응원했죠.”

이승엽은 지난 2002년 모델 출신 이송정씨(24)와 결혼, 두 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다. 이춘광씨는 큰일을 해낸 아들만큼이나 고물고물한 손자가 보고 싶은 눈치다. 그는 “남편 없이 혼자 이삿짐을 챙기느라 힘들었을 것”이라며 며느리 걱정을 했다. 이승엽이 요미우리로 이적함에 따라 이들 부부는 지난 3월16일 지바에서 도쿄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이승엽이 WBC에 참가하는 관계로 이송정이 혼자 짐을 떠안았다는 것.

“제 손자라서 그런지 이목구비가 또렷한 게 정말 잘났어요(웃음).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이가 생기면서 며느리가 많이 어른스러워졌어요. 다만 몸이 약한 게 걱정인데 건강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지금까지 무지개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온 아들이 자랑스럽다”는 이춘광씨. 이승엽의 앞날에는 이미 일곱 빛깔 무지개가 화려하게 펼쳐진 듯하다.


여성동아 2006년 4월 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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