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와 풍선, 2003, 캔버스에 아크릴릭, 165×100cm
당연한 얘기지만 문학의 영원한 주제는 삶이다. 사랑과 미움, 지배와 복종, 고통과 쾌락, 피고 시듦, 그 모든 것이 삶이라는 큰 강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삶을 지탱하는 건 무엇일까. 사랑· 종교·명예… 그런 건 삶의 틀을 바꾸지만 생명 그 자체를 유지시켜주진 않는다. 사는 건, 이것도 당연한 얘기지만, 먹는 것이다. 먹고 마시지 않으면 우리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는 물음처럼 사는 것과 먹는 것 사이엔 한 치 틈도 없다. 음식이 곧 삶인 것이다.
음식은 그러나 문학의 본령에 들어온 적이 없다. 오히려 먹는 얘기는 한사코 꺼려왔다. 비천하다고 생각한 탓일까. 멕시코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이런 문학의 음식 기피, 부엌 기피를 과감히 던져내 성공한 작품이다. 요리하는 이의 마음이 음식에 담기고 그걸 먹은 사람은 감응한다는 주술적 분위기에서 작품은 시작한다. 끈끈한 사랑이야기에다 맛있는 요리법을 절묘하게 버무렸다.
주인공 티타는 ‘양파 다지는 냄새에 하도 운’ 탓에 어머니 배 속에서 달도 못 채우고 세상에 나왔다. 월계수 향, 고수 향, 마늘 향과 함께 파스타를 넣은 수프 냄새가 진동하는 부엌 식탁 위로…. 거기다 ‘막내딸은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모셔야만 한다’는 관습과 전통도 그녀에게 떠메어졌다. 모신다는 건 곧 먹여 살리는 것이니 그녀가 부엌에서 나며 그토록 운 건 이미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감각의 향연
‘티타는 삶의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을 혼동했다. 부엌을 통해 삶을 알게 된 사람에게 바깥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언니들과는 정반대였다. 언니들에게 부엌은 미지의 위험으로 가득 찬 두려운 세상이었다. 언니들은 부엌에서 노는 건 어리석고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 평생 부엌데기 운명을 타고난 티타. 사랑에 눈뜬 그녀는 젊은 페드로와 마음이 통하지만 애꿎게도 그는 언니 로사우라에게 장가든다. 막내딸이 어머니를 모시는 전통을 깰 용기는 없고, 대신 사랑하는 여인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 언니와 결혼하는 길뿐이었기 때문. 이 잘못된 결혼식을 계기로 음식에 얽힌 사랑과 분노, 그리고 마법에 걸린 듯한 환상이 줄줄이 이어지며 소설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로사우라와 페드로의 결혼식 날. 티타는 한숨과 눈물, 그리고 페드로에 대한 연모의 정으로 반죽한 밀가루를 재료로 웨딩 케이크를 만들어 하객들에게 내놓는다. 한창 흥겨워야 할 시간, 그 케이크를 먹은 사람들은 사랑에 실패한 티타의 쓰린 가슴에 감염돼 발작을 일으킨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케이크를 한 입 깨무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그리움에 휩싸였다. 눈물을 흘리는 건 이 괴이한 식중독의 첫 번째 증세에 불과했다. 모든 하객들은 크나큰 슬픔과 좌절감의 포로가 됐다. 결국 하객들 모두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안뜰이나 뒤뜰 화장실로 흩어졌다. 모두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몇몇 운 좋은 사람들만이 제때 화장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마당 한가운데서 단체로 함께 토해야 했다.’
이렇게 일년 열두 달을 상징하는 열두 가지 요리를 만들고 함께 먹으며 사랑은 미움, 그리움이었다가 불꽃이 되고 또 영혼이 된다. 아몬드와 참깨를 넣은 칠면조 요리를 만들면서 모든 물질이 왜 불에 닿으면 변하는지, 평범한 반죽이 어떻게 토르티야가 되는지, 불같은 사랑을 겪지 못한 가슴은 왜 쓸모없는 반죽덩어리에 불과한 것인지 티타는 깨닫게 된다.
장미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만들면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장미 소스, 메추리 고기, 포도주, 음식 냄새 하나하나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페드로를 향한 정염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그걸 먹은 티타의 또 다른 언니 헤르트루디스는 온몸을 이글거리게 하는 욕정에 못 이겨 샤워장으로 뛰어들지만 욕정의 불을 끄지 못한다. 알몸으로 뛰쳐나간 그녀는 말을 타고 달려온 혁명군 장교와 말 위에서 젖가슴을 출렁이며 격렬한 정사를 벌이고 끝내 집을 나가 혁명에 가담한다.
굴레를 부수고 자신의 목소리와 존재 가치를 찾아낸 여성의 이야기
과일, 2003, 캔버스에 아크릴릭, 46×40cm
22년의 세월이 흐르기까지 티타는 온갖 사랑의 신산(辛酸)을 맛본다. 페드로보다 더 아늑하게 자신을 돌보아줄 법한 의사와의 사랑도 경험하고 결혼도 약속하지만 마음 속 페드로를 끝내 지우지 못한다. 그러면서 음식이 아니어도 사랑은 우리를 살아가게 이끄는 진정한 동력임을 깨달아나간다. 그것은 불꽃이며 그 불을 댕겨야만 영혼도 살찌운다는 것을….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댕길 수 없다는 겁니다.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한 거죠.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이 책에서 요리는 감각이며 욕망이다. 오감(五感)을 활짝 열어 성의 가장 은밀한 부분이 파르르 떨리는 모습을 그리다가 짐짓 요리에 빠져든 주인공을 보여주는 환상적 기법으로 작가는 이제껏 보지 못한 부엌 문학, 요리 문학을 창조해냈다. 시인이 단어로 유희하듯 티타는 음식을 요리하며 유희를 즐긴다. 작가는 그런 주인공의 열중하는 모습을 통해 ‘남자’와 ‘관습’과 ‘억압’을 조롱하며 환상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그녀가 요리를 통해 쟁취한 것은 궁극적으로 사랑이지만 관습과 전통이라는 굴레, 억압을 깨부수고 맞서 결국 자기의 목소리와 존재가치를 찾는 것이었음을 독자는 책을 덮으며 느낄 수 있다. 작가가 주문처럼 외우는 레서피가 귓전에 맴돈다. “양파는 아주 곱게 다진다. … 달걀을 깨서 흰자를 분리한다. 노른자 6개를 생크림 1컵과 함께 휘젓는다.…” 민음사 간. 권미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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