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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방송 후 화제

자퇴 후 미국 버클리 음대 입학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

“‘무엇을 하든 열정을 다하라’는 엄마의 가르침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어요”

기획·이남희 기자 / 글·이주영‘자유기고가’ / 사진ㆍ박해윤 기자

2006. 04. 04

음악을 향한 열정을 억누를 수 없어 과감히 학교를 박차고 나온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양. 중학교를 자퇴한 그가 최근 미국 버클리 음대 장학생으로 선발돼 화제다.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스타 연주자’ 진보라양의 독특한 삶의 행로.

자퇴 후 미국 버클리 음대 입학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진보라양은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않는데 피아노 앞에 앉아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최근 KBS ‘인간극장’을 통해 소개돼 화제를 모은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양(19). 출중한 외모에 재능까지 타고났으니 또래 아이들과 분명 다를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지만, 환한 미소로 재잘거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귀여운 10대 소녀다.
음악에 몰두하고 싶어 다니던 중학교를 자퇴할 만큼의 강단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진양과 몇 마디 나누면서 기자는 그가 지닌 무한한 끼와 열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는 제가 전교 1등을 하다가 자퇴했다는 식으로 소문이 나 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반에서 5, 6등 하는 정도였어요. 하지만 공부하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수학이랑 과학은 특히 제가 좋아하는 과목이었죠.”
열등생도 문제아도 아니었던 보라양은 2001년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학교를 그만뒀다. 일반 중학교를 다니면서 피아노 연습을 병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학교를 그만둔 것이 너무 섭섭해 집에서 하루 종일 교복을 입고 피아노를 친 적도 있다고.
“피아노 콩쿠르와 학교 시험이 겹치는 때가 많았어요. 학교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자꾸만 피아노를 멀리해야 한다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죠.”
딸이 느닷없이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할 때 쉽게 받아들일 부모는 그다지 많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보라양의 엄마인 이수정씨(46)는 딸의 의견을 존중해 흔쾌히 승낙했다고.
“엄마는 뭐든 우리가 원하는 걸 열정을 다해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무조건 남들이 하니까 하라는 식의 교육은 하지 않으셨죠.”

공부보다는 예술 방면을 두루 경험할 수 있도록 환경 마련해준 어머니
사실 보라양의 예술적인 재능은 엄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이수정씨는 보라양을 낳기 전까지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엄마는 저를 키울 때 옷을 일일이 만들어 입혔어요. 저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독특한 옷을 입히고 싶어하셨죠.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엄마들은 아이에게 영어나 수학 같은 공부를 가르치기 바쁜데, 엄마는 예술교육을 중점적으로 시켰거든요.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 제가 기억하는 한 저는 항상 피아노를 치고 있었어요.”
예능교육에 있어서 누구보다 열성적인 엄마 밑에서 자란 보라양은 피아노는 물론 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 개인 레슨을 받았다. 거기에다 취학 전 무용과 미술 교육까지 두루 섭렵했다.
“아마 더하기 빼기는 초등학교 들어가서 처음 구경했을 거예요. 그 정도로 엄마는 제가 공부보다는 예술 방면을 많이 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줬어요. 피아노 학원에 갈 때는, 반드시 엄마 손을 잡고 함께 갔어요. 제가 피아노 레슨을 받는 동안 엄마는 꼭 제 옆에 있어줬고요. 덕분에 저는 한 번도 레슨을 빼먹은 적이 없어요.”
보라양이 피아노 치는 것을 지겨워하면 바이올린 레슨에 치중하고, 바이올린 연주를 지겨워하면 피아노에 치중하는 식으로 보라양의 엄마는 딸의 음악교육에 열성을 다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음악공부를 시킬 생각은 아니었고 그저 다양한 예술을 많이 접하게 해주면 나중에 커서 아이의 감성이 풍부해지겠거니 하는 생각에서였다고.

자퇴 후 미국 버클리 음대 입학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


“피아노 연주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였어요. 그냥 하루에 두세 시간씩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게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제가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가 돼 있는 거예요.”
클래식 피아노를 치던 보라양이 재즈로 방향을 바꾼 건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아버지가 비틀즈의 광팬이라 어릴 때부터 팝송이라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그는 ‘재즈’라는 말도 모른 채 그냥 즉흥 연주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악보대로 치는 건 재미가 없었어요. ‘예스터데이’도 제 식대로 바꿔서 맘대로 피아노를 쳤죠.”
그렇게 변주하고 느낌대로 연주하는 게 재즈라는 걸 알게 된 것이 중학생 때다.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의 연주를 듣고 그의 강렬한 열정에 매료돼 재즈의 길을 택한 것이다. 학교를 자퇴한 그는 서울재즈아카데미에 다닌 지 3개월 만에 한전아츠풀센터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재즈 신동’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레슨을 받지 않은 지 한참 됐어요. 이제는 그냥 무슨 곡이든 진보라 스타일로 해석해 연주해요. 콘서트가 있으면 하루 종일 연습하지만 보통 때도 하루 두세 시간은 꼭 피아노 연습을 해요. 그 시간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해야 하는 ‘절대 분량’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음악을 위해 학교까지 그만뒀는데, 아무것도 안되면 어쩌나 두려움에 시달렸어요”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프로 연주자로 자리 잡은 만큼, 그는 자기 관리에도 철저하다.
“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았어요. 아무래도 또래 아이들과 달리 학교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인 게 힘들었어요. 음악을 위해 학교까지 그만뒀는데, 아무것도 안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솔직히 있었고요.”
그런 보라양에게 가장 큰 힘이 돼준 사람은 바로 엄마와 동생 초록양(15)이다. 학교를 그만둔 후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피아노와 씨름하는 보라양을 가장 잘 이해하고 친구처럼 놀아준 사람도 바로 엄마다.
보라양은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를 떠는 대신 엄마와 영화를 보고 엄마와 놀며 사춘기를 보냈다고 한다. 초록양은 유명한 언니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리고 언니의 음악을 진정으로 좋아해주는 속 깊은 동생이다.
“아무래도 엄마가 그림자처럼 저를 따라다녀야 하니까 초록이로서는 서운한 마음이 많이 들었을 거예요. 어릴 때는 제가 피아노 연주를 하면 그 옆에서 다른 음악을 틀어버릴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데, 요즘은 제가 연주하는 곡을 듣고 ‘좋다’고 말해줘요.”
유명한 큰딸 때문에 혹시나 작은딸이 서운해할까봐 엄마가 내놓은 묘안은 바로 ‘온 가족이 일요일에 도서관 가기’ 행사다.
“제가 학교를 그만두고 난 후 아빠까지 네 식구가 매주 일요일마다 도서관에 갔어요. 아빠는 거기서 책을 보거나 밀린 일을 하고, 엄마랑 저랑 초록이는 책을 보거나 공부를 했어요. 이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우리 집의 특별한 행사예요.”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할 때 자신을 이해하고 격려해준 가족이 가장 고마웠다는 보라양은 검정고시로 중·고교 졸업자격을 취득했다.
“중학교 3학년 겨울에 고등학교 과정까지 끝냈어요. 수학이나 국어를 좋아해서인지 공부하면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어요. 단지 연주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니 학원 다닐 시간이 없었죠. 학원의 ‘한 달 총정리반’에 들어가 공부를 속성으로 끝내느라 좀 힘들었어요.”



자퇴 후 미국 버클리 음대 입학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

진보라양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프로 연주자로 자리매김한 만큼 자기 관리에도 철저하다.



얼마 전 미국 버클리 음대 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을 앞두고 있는 보라양은 여전히 꿈이 많은 소녀다.
“음악은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이고, 다른 일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모델도 그중 하나고요.”
그를 눈여겨본 한 의류업체 담당자에 의해 모델로 발탁된 그는 최근 시작한 모델 일도 또 다른 즐거움이라며 밝게 웃는다.
“모델 일도 재미있어요. 또 다른 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즐거워요. 처음에는 그냥 통통한 몸으로 의류 모델을 했는데, 지난해부터는 제대로 된 모델 모습을 보여주려고 10kg이나 살을 뺐어요. 그전에는 제가 얼굴만 작고 몸은 통통했거든요.”
음악을 하겠다고 울먹이면서 학교를 그만둔 보라양은 이제 제법 의젓한 숙녀로 변신했다. 그건 세월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변화이기도 하지만, 꿈을 향해 온힘을 다해 달려온 한 인간의 노력이 가져다준 변화이기도 하다.
“가끔 ‘학교를 포기하고 음악을 하겠다’며 교무실에서 울먹이던 제 모습이 떠올라요. 만약 그때 엄마가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학교나 다니라’고 했다면 아마 지금의 저는 없겠죠? 힘든 선택이었지만 후회는 없어요. 친구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걸어갈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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